삶의 생각

무엇을 남길 것인가/경포호수

Margaret K 2018. 6. 12. 04:26


무엇을 남길 것인가 필리핀 봉사 중에 하루는 현지 투어를 한다. 이번에는 ‘APO REEF 국립공원’을 다녀왔다. 아포리프 섬은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산호 군락지며, 수중환경이 뛰어나 스쿠버 다이빙을 안 해도 스노쿨링만 갖고도 거북이나 상어를 볼 수 있을 만큼 해양생물이 다양하고 풍부한 곳으로 유명하다. 우리 일행은 섬을 한 바퀴 둘러본 후, 점심식사를 하는데 국립공원 본 캠프건물 벽에 이런 글귀가 보였다. ‘Take Nothing but Pictures Bring Nothing but Memories Kill Nothing but Time Leave Nothing but Footprints‘ ‘사진 외에는 어떤 것도 가져가지 마시오. 기억 외에는 어떤 것도 갖고 오지 마시오. 시간 외에는 어떤 것도 죽이지 마시오. 발자국 외에는 어떤 것도 남기지 마시오.’ 나는 밥 먹다 말고 그 액자를 바로 사진에 담아 두었다. 원래 이 문구는 네팔 어느 마을 어귀에 쓰여 있던 글귀라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되었다. 물론 글의 전체 개념은 자연을 존중하고 자연에 대한 악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좋은 추억만 남기고 다른 것은 가져가지도 말고 놓고 가지도 말라는 것이다. 필리핀 정부에서도 ‘아포리프’를 보전하기 위해 1년 중 3개월만 입장을 허락한다. 그 기간 중에도 입장객 수까지 제한하면서 자연을 보존하려고 나름대로 애를 쓰고 있다. 하지만 무인도인 이 국립공원 섬을 운영하기 위한 인력들과 함께 관광객들이 숙식하면서 파생되는 어쩔 수 없는 환경적 피해들을 생각해 봤다. 오지여행가로 유명한 한비야 씨는 불편함은 물론이요 위험까지 감수하면서도 오지 여행을 고집하는 것은 ‘오지는 문명에 찌들지 않은 현지인들의 꾸밈없는 삶을 보고 느낄 수 있어서’라고 했다. 졸지에 오지여행 전도사가 된 그녀 덕분에 관련 TV프로그램과 서적 출간이 늘어나면서 일반인까지 오지여행에 관심이 부쩍 늘고 있다. 하지만 더 변하기 전에 더 망가지기 전에 갔다 와야 한다는 강박들이 방문하려는 관광객이 늘어나면서 새로운 문제들이 도출되고 있다. 짐작할 수 있는 일이지만 여행을 하면서 더불어 자연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밖에 없는 현실 앞에서 우리는 다시금 참된 여행의 의미가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캄보디아 앙코르와트도 유적보호를 위해 수년간 잠정폐쇄한다는 소문도 나돌았지만, 관광수입이라는 현실적인 벽에 부딪쳐 유야무야된 상태다. 이런 상황 속에서 ‘사진 외에는 아무 것도 가져가지 마시오. 발자국 외에는 아무 것도 남기지 마시오.’라는 경고성 표구를 어찌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보낼 수 있겠는가. 하지만 나는 이러한 자연보호 표구를 보는 순간 처음 의도와 다르게 인생과 결부시키면서 다르게 해석해 보았다. 인생이란 사진 곧 ‘좋은 추억’ 외에는 죽을 때 가져가서는 안 된다. 아니 사실 갖고 갈 수도 없다. 사진과 발자국에는 ‘좋은 추억’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우리가 눈을 감을 때 가져가야하고 가져갈 수 있는 것은 재물이나 명예가 아니라 바로 ‘좋은 추억’이다. 인생이란 추억만 남기고 가는 것이다. 행복이란 좋은 기억이 많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어리석은 인간은 엉뚱한 것만 남기려고 한다. 명승고적을 찾아가면 무엇인가 남기고 싶은 인간의 심성을 쉽게 볼 수 있다. 부자들은 돈을 남기고 싶어 하고, 정치인들은 자신의 이름을 남기려고 얼굴에 철판을 깔고 살아간다. 물론 사람은 취향에 따라 중독자처럼 욕망의 늪에 빠져있는 분야가 다르다. 그 중에서 가장 가치 있다고 여기는 것은 ‘예술’이라 할 수 있다. 아직도 로댕의 조각은 남았다. 미켈란젤로 그림도 남았다. 물론 추사 김정희 글씨도 남아 있다. 인생은 가도 예술은 남는다. 하지만 예술은 가도 사랑은 남는다. 사랑의 중심엔 기억과 추억이 있다. <8월의 크리스마스>에서 시한부 삶을 살고 있는 남자에게 그녀는 소나기처럼 찾아왔다. 남자는 만남이 더할수록 자신은 왜 죽어야 하는지 고통스러웠다. 뜨거운 사랑을 가슴에 묻고 떠나야 하는 남자는 과연 행복했을까. 하지만 적어도 그의 외로움, 두려움, 고통, 분노 등은 선물처럼 주어진 사랑을 가슴에 품을 수 있었다는 것이 천만 다행으로 여겨졌다. 나는 배경은 여름인데 왜 크리스마스라고 이름 붙였을까 궁금했는데 영화를 보면서 곧 이해가 되었다. 세상은 시한부 인생처럼 내가 어찌할 수 없는 다양한 인생의 비가 내리지만 크리스마스라는 가장 감성적인 계절에 죽어야 한다. 그럼에도 정원은 비록 ‘썸’단계에 머물다가 갔지만, 눈을 감을 때 다림과의 기억과 추억이 큰 위로가 되었다고 여기기에 영화는 덤덤한데도 눈물을 흐르게 했다. 눈물겹도록 미친 사랑을 하든 아니면 무인도에 혼자 사는 것처럼 외롭게 살았든 모든 인생은 어느 날 문득 삶의 모든 짐을 내려놓고 육신은 땅에 묻혀야만 한다. 산다는 것은 사전 예행연습 없이 혼자 있다가 어느 덧 둘이 있다가 여러 명이 함께 인생 여행을 해보지만, 마지막에는 결국 혼자 남는 것이 인생여행이다. ‘그 때 잘했어!’, ‘그건 아무리 생각해도 아니었어!’ 나이가 들수록 지나간 추억을 더듬으면서 이런 독백 속에 웃고 울면서 서서히 마지막 순간을 생각하며 대비한다. 크리스마스이브 날, 다림이 초조한 얼굴로 사진관을 찾아온다. 문 닫힌 사진관 안에는 이 세상에서 가장 밝게 웃고 있는 그녀의 사진이 액자에 넣어져 걸려 있었다. 그래 인생은 ‘8월’에는 많은 비가 옴에도 사랑이 있었고, ‘크리스마스’라는 가장 감미로움 속에 죽음이 있다. 그 죽음 앞에 다림의 사진처럼 가장 환하고 행복하게 웃으려면, <아포로 리프 공원> 격언처럼 그나마 최선은 지워지지 않을 단 한 번 추억여행에서 아무 것도 가져가지 않고, 아무 것도 남기지 않는 것이다. 오로지 좋은 기억만 갖고 가자. 오로지 좋은 추억만 남겨놓자. 그러기 위해서 내 이웃에게 어떻게 해야 할지 내 인생에게 무엇을 해야 할지를 날마다 고민하고 남은 시간은 오직 그 일을 위해 살고 싶다. 2018년 5월 18일 강릉에서 피러한(한억만) 드립니다.

 사진허락작가:하누리님, 우기자님, 이요셉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