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을 따라

2018년 새해 첫날 교황 강론:전문{2018년1월1일 월요일(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세계 평화의 날)]

Margaret K 2018. 1. 9. 20:06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미사 강론입니다.

https://www.vaticannews.va/en.html

http://w2.vatican.va/content/francesco/en/homilies/2017.index.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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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님 강론 날짜]2018년1월1일 월요일[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세계 평화의 날)]

[강론 당일 독서와 복음 말씀] 제1독서 : 민수기 6,22-27

                                         화답송 : 시편 67(66),2-3.5.6과 8(◎ 2ㄱ)

                                          제2독서 : 갈라티아서 4,4-7

                                          복음 : 루카 복음 2,16-21

http://maria.catholic.or.kr/mi_pr/missa/missa.asp?menu=missa&missaid=8565&gomonth=2018-01-01&missatype=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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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pe Francis celebrating Mass on New Year

 

2018년 새해 첫날 교황 강론:전문

https://www.vaticannews.va/en/pope/news/2018-01/pope-homily-new-year-2018-mother-of-god-full-text.html

http://w2.vatican.va/content/francesco/en/homilies/2018/documents/papa-francesco_20180101_omelia-giornata-mondiale-pace.html

 

프란치스코 교황은 새해 첫날,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 미사 강론을 전했습니다. 교회는 또한 1월 1일을 ‘세계 평화의 날’로 지내고 있습니다.

 

새해 첫날 미사의 프란치스코 교황 강론의 공식 영어 번역 전문

 

프란치스코 교황 성하 강론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

2018년 1월 1일

 

한 해가 성모님의 이름 안에서 시작됩니다. 천주의 성모님은 우리 성모님의 가장 중요한 호칭입니다. 하지만 왜 예수님의 어머니라고 하지 않고 하느님의 어머니라고 말하는지 우리는 물을지도 모릅니다. 과거에 어떤 사람들을 단순히 후자(예수님의 어머니 : 역자 주)라고 부르는 것에 만족하고 싶어했습니다. 하지만 교회는 마리아님이 하느님의 어머니임을 선포했습니다. 우리는 감사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 호칭는 하느님과 우리 자신에 대한 매우 중요한 진실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마리아에게서 육신을 취하신 순간부터 그리고 영원히 그분께서는 우리의 인성을 취하셨습니다. 이제 더 이상 사람이 없는 하느님이 계시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분의 어머니에게서 취하신 육신은 이제와 항상 영원히 우리 자신의 것과 같은 것입니다. 마리아님을 하느님의 어머니라고 부르는 것은 우리에게 이것을 상기시킵니다. 하느님께서는 인간에게 가까이 계십니다. 마치 아기가 자신을 태중에 품고 있는 어머니와 가까운 것, 바로 그것처럼 말입니다.

 

어머니[mothe(mater)]라는 단어는 물질(matter)이라는 단어와 관련이 있습니다. 그분의 어머니 안에서 천주, 끝이 없으신 하느님께서는 우리와 함께 계실 뿐만 아니라 우리와 같아 지시려고 당신 자신을 작게 만드셨고 당신께서 물질(matter)이 되셨습니다. 이것은 기적이고 위대한 새로움입니다! 사람은 더 이상 혼자가 아닙니다. 더 이상 고아가 아니고 영원한 자녀입니다. 한 해가 이 위대한 새로움과 함께 시작됩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렇게 기도하면서 그것을 선포합니다. 하느님의 어머니! 우리의 외로움이 끝났다는 것을 알게 된 기쁨은 우리의 것입니다. 우리가 사랑 받는 자녀가 되었다는 것을 깨닫는 아름다움, 우리가 우리의 이 자녀됨을 결코 빼앗기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깨닫는 아름다움은 우리의 것입니다. 당신 어머니의 품 안에서 쉬고 있는 연약하고 어린 하느님 안에서 우리 자신을 돌아보는 것, 그 인성을 깨닫는 것은 주님께 소중하고 신성한 것입니다. 이제부터 사람의 생명을 섬기는 것이 하느님을 섬기는 것입니다. 모든 생명, 엄마의 뱃속에 있는 생명부터 노인, 고통 받는 사람들, 병든 이들의 생명까지 그리고 골치 아픈 사람들이나 혐오스러운 사람들까지도 환대 받아야 하고 사랑 받아야 하고 도움 받아야 합니다.

 

이제 오늘의 복음 말씀의 이끄심을 따라 갑시다. 하느님의 어머니에 대한 단 한가지만이 이야기되고 있습니다. “마리아는 이 모든 일을 마음속에 간직하고 곰곰이 되새겼다”(루카 복음 2, 19). 마리아님께서는 모든 일들을 그저 마음 속에 간직했습니다. 마리아님께서는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복음은 예수님 탄생의 전체 이야기 안에서 마리아님 자신에 대해서는 단 한마디도 쓰지 않고 있습니다. 여기에서도 성모님은 당신의 아드님과 계시는 분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갓난아기”, “말을 하지 못하는” 아이십니다. 하느님의 말씀은, 하느님께서 “예전에는 (…) 여러 번에 걸쳐 여러 가지 방식으로 (…) 말씀하셨”는데(히브리인들에게 보낸 서간 1,1), 이제 “때가 차자”(갈라티아서 4,4) 침묵하십니다. 모든 것들이 그분 앞에서 고요하게 되는데 하느님께서는 당신 자신이 말이 없는 아기이십니다. 그분의 위엄은 말이 없습니다. 그분 사랑의 위엄은 낮은 곳에서 드러납니다. 이 침묵과 낮음은 그분 왕권의 언어입니다. 그분의 어머니께서는 당신의 아들에게 동참하시어 이 모든 일을 침묵 속에서 마음 속에 간직했습니다.

 

그 침묵은 우리에게 말합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마음 속에 “간직하”려면 우리는 침묵이 필요하다고. 우리가 구유를 바라보는 동안 말이 없어야 합니다. 구유를 묵상하면서 우리는 우리가 사랑 받는다는 것을 새롭게 발견합니다. 우리는 삶의 진정한 의미를 음미합니다. 우리가 침묵 속에서 바라보는 동안 예수님께서 우리의 마음에 말씀하시도록 합니다. 그분의 낮음은 우리의 교만을 낮춥니다. 그분의 가난은 우리의 물질적인 과시에 도전합니다. 그분의 다정하신 사랑은 우리의 완고한 마음을 어루만지십니다. 하느님과 함께 있기 위해 매일 침묵의 시간을 따로 마련하는 것은 우리의 영혼을 “간직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의 자유를 소비지상주의의 따분함에서, 현란한 광고들에서 “지키고 간직하는 것”이고, 공허한 말의 흐름 속에서, 허무한 대화와 요란하게 지르는 소리의 그 강한 물결로부터 우리의 자유를 “지키고 간직하는 것”입니다.

 

복음은 마리아가 ‘이 모든 일’을 마음 속에 간직하고 곰곰이 되새겼다고 계속해서 이야기해 주고 있습니다. ‘이 모든 일’은 무엇일까요? ‘이 모든 일’은 기쁨과 슬픔들입니다. 한편으로 예수님의 탄생, 요셉의 사랑, 목동들의 방문, 빛나는 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불확실한 미래, “여관에는 그들이 들어갈 자리가 없었”(루카 복음 2,7)기 때문에 집이 없었던 상태, 거부를 당했다는 적막감, 마구간에서 예수님을 낳아야 한다는 실망감. 희망과 걱정들, 빛과 어둠들. 즉 ‘이 모든 일’은 마리아님의 마음 안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마리아님은 어떻게 했습니까? 마리아님은 이 모든 일들을 곰곰이 되새기셨고 다시 말해 마리아님은 이 모든 일들을 하느님과 함께 마음 속으로 깊이 생각하셨습니다. 성모님께서는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마리아님은 하느님께 모든 것을 올려 내어 바치셨습니다. 그것이 마리아님이 그 모든 것들을 “마음 속에 간직한” 방법입니다. 우리가 그것들을 내어 바칠 때 우리는 모든 일들을 “간직”합니다. 우리의 삶이 두려움의 먹이가 되지 않도록 함으로써, 미신 또는 괴로움의 먹어가 되도록 놓아두지 않음으로써, 우리의 마음이 닫히지 않도록 또는 망각하지 않도록 함으로써, 하지만 모든 것을 하느님과의 대화로 향하게 함으로써 “간직”합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마음 안에 우리를 간직하시는 하느님께서는 그때에 우리의 삶 안에서 머무르시기 위해 오십니다.

 

그러니까 이것이 하느님의 어머니의 비밀들입니다. 침묵하면서 모든 일들을 소중하게 간직하는 것 그리고 모든 일을 하느님께 바치는 것. 그리고 이 일이 성모님의 마음 안에서 일어납니다. 복음에서 결론 지어 이야기해 줍니다. 그 마음은 우리를 사람의 핵심을 바라보게 만듭니다. 그 또는 그녀의 애정과 삶의 핵심을 바라보게 합니다. 한 해의 시작에 우리는 또한 순례 중인 그리스도인들처럼 그 핵심에서 다시 새로 출발할 필요를 느낍니다. 과거의 짐들을 뒤로 하고 정말로 중요한 것들에서 출발할 필요가 있다고 느낍니다. 우리는 오늘 우리 앞에 가장 중요한 출발의 지점을 두고 있습니다. 바로 하느님의 어머니입니다. 마리아님은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바로 그 모습입니다. 하느님께서 당신의 교회에 바라시는 바로 그 모습입니다. 다정하시고 낮으신 어머니, 물질적인 것들에서는 가난하시고 사랑에서는 풍요하시며 죄에서 자유로우시고 예수님과 일치를 이루시며 우리의 마음 안에 하느님을, 우리 생활 안에 우리 이웃을 간직하시는 어머니. 다시 새로 출발하기 위해서 우리의 어머니를 바라봅시다. 성모님의 심장 안에 교회의 심장이 뛰고 있습니다. 우리가 앞으로 나아가기를 원한다면 우리가 되돌아가야 한다고 오늘의 대축일이 우리에게 가르쳐 줍니다. 구유에서부터, 품 안에 하느님을 안고 있는 어머니로부터 새로 시작하기 위해서.

 

마리아님에 대한 신심은 영적인 예절이 아닙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인 삶의 필수 요건입니다. 성모님을 바라보면서 우리는 모든 종류의 필요 없는 짐들을 뒤로하고 정말로 중요한 것을 재발견하도록 요청 받습니다. 성모님의 선물, 모든 어머니와 모든 여성의 선물은 교회에게 가장 소중합니다. 왜냐하면 성모님도 어머니이고 여성이기 때문입니다. 남성들이 생각을 추상적으로 하고 단언하고 강요한다면 여성, 어머니는 “간직”할 줄 알고 자신의 마음 속에 모을 줄 알고 삶을 내어 줄 줄 압니다. 우리의 신앙이 단순히 어떤 사상이나 교리로 축소되는 것이 아니라면 우리 모두에게 하느님의 다정하신 사랑을 간직할 줄 알고 우리 주변의 모든 심장 박동을 느낄 줄 아는 어머니의 마음이 필요합니다.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가장 좋은 사람, 성모님께서는 올 한 해를 보호하시고 지켜주소서. 그리고 당신 아드님의 평화를 우리의 마음과 세계에 가져다 주소서.


출처: https://www.mariasarang.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