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프란치스코

가난 부인과 성 프란치스코의 거룩한 교제

Margaret K 2017. 12. 18. 20:39

 


가난 부인과

성 프란치스코의

거룩한 교제





책 머리에


이 작품은 전기가 아니다. 인물이 등장하는 우의적인 시극이다. 이상적인 가난을 강렬하게 부각시키는 힘이 있으므로 이 작품을 프란치스코의 전기와 같이 취급한다. 이 작품은 성 프란치스코를 통하여 그리스도의 정신을 새롭게 피어나게 한다. 성 프란치스코가 택한 삶은 복음을 실천하기 위한 모험적인 것이었고, 신비적인 체험을 동반했으며, 그 삶을 다룬 이 작품은 높은 시이고, 매혹적이면서도 이룰 수 없는 꿈을 향한 긴장과 그 꿈을 이룬 기쁨을 나타내 보이고 있다.



표제(表題)


라틴어 원제(原題)는 Sacrum commericum beati Francisci cum domina Paupertate(가난부인과 복되신 프란치스코와의 거룩한 교제)이다. 14세기부터 이태리어로 Mistiche nozze(신비로운 혼인)라고 번역되었다. 이 작품이 쓰인 후에 단테(Dante)가 신곡(新曲) 11장에서 프란치스코와 가난 부인과의 혼인을 다루었고, 또한 아씨시 대성당의 지하성당 천장화에도 프란치스코와 가난 부인과의 혼인식을 그려 놓은 그림이 있다. 그 후에 이러한 주제가 문학과 미술에 많이 등장하였다.


성 프란치스코의 글이나 첼라노의 제1생애에도 이러한 혼인에 관한 묘사가 없다. 프란치스코는 지극히 높은 가난을 말할 때 여주인(domina)이나 귀부인(domina santa)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였지만, 이는 기사도 정신에서 나온 것이고, 정배의 의미로 쓴 것은 아니었다. 그 후 첼라노의 제2생애, 그리고 보내벤투라의 대전기에서 가난을 정배처럼 표현하게 된다. commercium의 뜻은 우선 물건 교환을 뜻하고, 또한 사귐도 뜻한다. 1첼라노 35에서도 이런 교제의 뜻으로 commercium이란 말을 사용하였다. 또 하나의 의미는 비유적인 의미로 사랑의 관계나 성관계까지도 뜻한다. 또 계약이라는 뜻도 있다(2첼라노 10).


작가와 작품 연대


14개의 사본 중 7개의 사본은 이 작품이 1227년에 완성되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렇기만 하다면 이 작품은 사부님의 글이나 전기와 같은 가치를 지닌다. 그러나 평자들은 이 연대에 대해서 회의적이다. 모든 사분의 근거가 되는 13세기의 원본이 2권 있는데, 그것이 모두 유실되었다. 또한 beatus란 용어도 시성식 전에는 자주 사용되지 않았었던 용어이다. 14세기 초에는 이 작품이 널리 퍼져 있었다. 1305년의 Ubertino de Casale가 쓴 Arbor vitae(생명의 나무)는 이 작품을 인용하면서 ‘오래된 작품’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그 저자는 거룩한 학자였다고만 적고 있다.

작품의 내용에서는 연대를 유추할 수 있는 근거가 없다. 초기 형제들과는 이무런 연관성도 갖고 있지 않은 독립적인 작품이고, 다른 작품의 영향 또한 받지 않았다. 일정한 인명이나 때와 장소가 나오지도 않는다. 초기 프란치스칸 작가들과 공통된 점은 가난의 이상을 잃어가는 형제들로 해서 생기는 불만이다. 그러나 이것도 어디까지나 비유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확실하다고 할 수는 없다. 이 작가는 옛 시적에의 향수를 혼자 품고 있는 듯하며, 이를 환상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작품 연대는 형제회가 도시 중심으로 수도원을 짓기 시작한 시기로 보아야 될 것이다. 1240년과 1244년 사이에 형제회에 이러한 변화가 있었다.

총장들의 역대기에 의하면 이 작품의 저자가 Johannes de Parma로 되어 있는데, 이분은 1247년에서 1257년까지 총장직에 있다가 그후 Greccio 은둔소에서 살았던 분이다. 그리고 1289년에 작고하였다. 이 총장은 신학자였고, 이상과 꿈이 높았으며, 특히 ‘가난’에 열성적이었다. 따라서 그가 이 작품의 작자일 가능성도 있다. 어찌되었든 이 작품은 신구약을 모두 섭렵한 사람의 작품이다. 신학자인 동시에 시인인 이 저자의 크나큰 공로는 가난에 대한 프란치스코의 이상을 그린 점이겠지만, 그보다는 구원의 역사적 배경 안에서 가난을 보았다는 점일 것이다.

결론적으로 이 작품은 13세기 중엽의 작품으로 봐야 할 것이다. 가난에 대한 해석 문제가 크게 대두되기 이전의 작품임에는 틀림이 없다.

가난 부인과 성 프란치스코와의 거룩한 교제



머 리 말


1. 인간의 마음 안에 하느님을 맞아들일 수 있는 공간과 장소를 마련하는 일에 있어서, 그리고 보다 쉽고 보다 좋은 길을 제시하여 하느님께 이르게 하는 특출하고도 빼어난 모든 덕행들 중에서, 거룩한 가난의 덕행이 단연 두드러지며, 여타의 덕행보다 품위에서도 앞서고 능가한다. 왜냐하면 가난은 실로 모든 덕행의 기반이요 수호자이기 때문임은 물론, 복음삼덕 중에서1) 차례에서나 이름에서 맨 첫 자리이기 때문이며, 또한 의당 그래야 한다. 다른 덕행들은 튼튼한 이 가난을 기반으로 하여 그 위에 마련되기만 하면, 폭우나 홍수 또는 폭풍이 밀어닥쳐 파괴될까봐 두려워하지 않아도 된다.2)


2. 덕행의 주인이요 영광의 임금이신, 하느님의 아드님께서 세상 한가운데서 구원을 이룩하실 때, 이 가난의 덕행을 지극히 사랑하셔서 그것을 찾아내어 밝히신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분은 설교생활을 시작하실 때에 이 덕행을 믿음에 입문하는 이들의 손에 들려 있는 등불로 생각하시고, 당신 집의 기초가 될 반석으로 삼으셨다. 다른 덕행들은 하늘 나라를 약속으로 받는 것이나, 이와 달리 가난은 하늘 나라와 바로 직통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하기 그분은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행복하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하고 말씀하신 것이다.3)


3. 하늘 나라는 이 세상의 재물을 도무지 소유하지 않는 이들의 차지이고, 또한 영성적인 것에 관심을 가져 영원한 것을 그리워하는 이들의 차지라고들 하는데, 이는 매우 타당한 말이다. 지상적인 것을 대단치 않게 생각하는 사람은 천상적인 것을 양식으로 삼아 살아가지 않으면 안 되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상적인 모든 것을 포기하야 그것을 쓰레기로 여기는4) 사람은 거룩한 천사들의 식탁에서 떨어지는 맛 좋은 부스러기5)를 지금의 이 유배생활에서도 맛갈지게 먹을 수 있고, 이 주님의 맛이 얼마나 좋고 부드러운지를 음미하게 될 것이다.6) 가난은 틀림없이 하늘 나라를 차지하도록 해주는 것이며, 하늘 나라를 영원히 소유할 수 있게 하는 안전한 것이고, 천상 복락을 앞당겨 거룩히 맛보게 하는 것이다.


4. 이러한 이유로 구세주의 참다운 모방자요 제자인 복되신 프란치스코는 그의 회두 초기에서부터 온 정열을 쏟아서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이 거룩한 가난을 모색하고 찾으려 하였으며, 또한 자기 것이 되도록 하였다. 이 과정에서 그는 역경에 처해도 가난에 이를 수 있는 기회만 생기면 절대로 주저하지 않았고, 뜻대로 되지 않아도 두려워하지 않았으며, 어떠한 수고나 육신의 고달픔도 마다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주님께서 하늘 나라의 열쇠를 가난에게 맡기셨기 때문이다.


복되신 프란치스코가 가난을 찾다7)

 

5. 프란치스코는 자기 영혼이 갈구하는 바를 부지런히 찾아, 마치 집요한 개척자처럼 온 동내를 돌아다니기8) 시작하였다. 그는 광장에 서 있는 사람들에게도 물었고, 길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에게도 묻곤 하였다: “사랑하는 나의 임 못 보셨나요?”9) 그들은 그것이 낯선 외국의 말이기나 하듯이 그 뜻을 알아듣지 못하였다.10) 그들은 그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고 말하였다. : “이 사람,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네. 우리말로 해야 대답을 하지 않겠나!”

당시 아담의 후예들은 가난에 관하여 토론과 얘기를 나눠보자고 할라치면 대답도 하지 않았고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이지만 당시에 그들은 가난을 극렬히 증오하기만 하였고, 가난에 관하여 물어오는 사람들에게 정답게 말할 줄도 몰랐다.11) 하여 그들은 그에게도 무지한 사람처럼 대답을 하였고, 그가 찾아 헤매는 것에 대해서 아는 바가 전혀 없노라고 잘라 말했다.


6. 복되신 프란치스코가 말했다. : “그러하시다면 저는 훌륭하고 지혜로운 사람들을 찾아가 그들에게 말을 해 보겠습니다. 그들은 주님의 길을 깨달아 알고 있고, 하느님의 심판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12) 이 어쩌면 가련하고 미련스러운 백성들은 주님의 길과 하느님의 심판을 모르고 있으니 말입니다.”13)

이리하여 그는 지혜로운 사람들을 찾아갔다. 그러나 그들은 더욱 사납게 답하였다: “우리 눈앞에 당신이 들고 온 새로운 가르침이란 뭐요? 당신이 찾아다니는 가난은 당신과 당신의 자식이나 차지하도록 하시오. 그리고 앞으로 당신의 추종자들이나 차지하도록 하시오! 쾌락을 즐기는 것과 재물을 충분히 소유하는 것만이 우리의 관심사요, 우리의 인생은 짧고 고통스러우며, 수명이 다하면 누구나 별 수 없이 죽소.14) 우리의 목숨이 붙어 있는 한 즐기고 먹고 마시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은 없소. 그 외의 것은 모르오.”


7. 복되신 프란치스코는 이런 언짢은 말들을 듣고 마음속으로 깜짝 놀라서 하느님께 감사드리며 말했다.: “주 하느님, 안다는 사람들과 똑똑하다는 사람들에게는 이 모든 것을 감추시고 오히려 철부지 어린 아이들에게 나타내 보이시니 감사합니다, 그렇습니다. 아버지! 이것이 아버지께서 원하신 뜻이었습니다.15) 내 생명의 아버지이시며 주인이신 주여, 그들의 입방아에 나를 버려두지 마시고, 그로 인해서 화를 입지 않게 하소서. 오히려 당신의 은총으로 제가 구하는 바를 찾아 만날 수 있도록 새 주소서. 저는 당신의 종이옵고 당신 여종의 자식이기 때문이옵니다.”16)


8. 이리하여 복되신 프란치스코는 황급히 그 마을을 떠나 어느 들판으로 갔다. 그곳에서 그는 멀리 슬픔에 지쳐 앉아 있는 두 노인을 보았다. 그 중의 한 노인이 말을 했다. : “억눌려 마음이 찢어지고 나의 말을 송구스럽게 받는 사람을 보살피지 않으면 내가 누구를 보살피겠습니까?”17) 그러자 노인이 말했다.: “우리는 아무것도 세상에 가지고 온 것이 없으며, 아무것도 가지고 갈 수 없습니다.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으면 우리는 그것으로 만족합니다.”18)


프란치스코가 가난이 있는 곳을

가르쳐 달라고 청하다


9. 복되신 프란치스코는 이 두 노인에게 가까이 다가가 말했다. : “제발 부탁하옵니다. 말씀 좀 해 주십시오. 가난 부인은 어디에서 숙실을 하며, 한낮에는 어디에서 쉬고 있습니까? 저는 그녀에 대한 사랑으로 기력이 다했습니다.”

대답으로 그들이 말했다.: “착한 형제여, 우리는 지금까지 3년 반 동안19) 여기에 앉아 있었습니다. 그래서 가끔 그녀가 지나가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녀를 찾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그녀는 어떤 때에 여러 명과 동행하여 자나갔지만, 매번 외롭게 헐벗어 돌아오곤 했습니다. 그녀는 어느 동료의 호위도 바지 못했으며, 옷가지도 입지 못한 채 치장도 못하고 돌아오곤 하였습니다. 그녀는 서럽게 울며, 오빠들이 나를 모욕했다20)고 말했습니다. 그때마다 우리는 그녀를 이렇게 위로하곤 했습니다. ‘학한 사람이 앞으로 당신을 사랑하게 될 터이니,21) 지금은 참으십시오.’”


10. “오, 형제여, 그래서 그녀는 지금 막 주님께서 이끌어 크고 높은 산으로 올라갔습니다. 하느님께서 그녀를 야곱의 모든 막사보다 더 즐겨하시어,22) 그녀는 지금 성산에 머물러 있습니다. 거인들이라해도 그녀의 발치에 이를 수 없으며, 독수리도 날아 봐야 그녀의 목에도 미치지 못하지요. 사람들이 오직 낙(樂)만을 누리려 하는 이 땅에서는 가난을 찾는 이가 없으니, 가난은 어쩔 수 없이 모든 사람들로부터 멸시를 받는 외로운 처지가 되었습니다. 해서 그녀는 사람들의 눈에는 도무지 보이지 아니하고, 심지어는 하늘을 나는 세에게마저 숨겨져 있습니다.23) 하느님만이 가난으로 가는 길을 알고 계시며, 가난이 있는 것을 아십니다.”24)


11. “그러니 형제여, 그녀와 가까이 하고 싶다면 그대의 환락이 옷을 벗어 던지고, 온갖 무거운 짐과 그대를 얽어매는 죄를 벗어 버리십시오.25) 이런 것들로 해서 홀가분하지 못하면 그대는 아득히 높은 곳에 있는 그녀에게 올라 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안심하십시오. 그녀는 상냥하고, 그녀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쉽게 나타나며, 그녀를 찾는 사람들은 그녀를 발견하게 마련입니다.26) 형제여, 그녀를 생각하는 것 그 자체가 깨달음의 완성입니다. 그리고 그녀를 응시하며 깨어 있는 사람은 곧 편안해질 것입니다. 그대가 그 산에 오르는 동안 충고를 듣고 도움을 받아, 넘어지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하여 믿음직스러운 몇몇 동료들을 데리고 가도록 하십시오. 넘어지면 일으켜 줄 사람이 있어 좋을 것이며, 외톨이는 넘어져도 일으켜 줄 사람이 없어 딱하기 때문입니다.”27)


복되신 프란치스코가 형제들을 훈계하다


12. 복되신 프란치스코가 이 현자들의 충고를 받아들여, 믿음직스러운 동료들을 뽑은 다음 그들과 함께 길을 재촉하여 산기슭에 다다랐다. 그리고 자기 형제들에게 말하였다. : “자, 올라갑시다. 주님의 산으로! 가난 부인의 하느님께서 계신 집으로!28) 그녀에게서 그녀의 길을 배우고, 그 길을 따라 걸읍시다.”

산이 너무 가파르고 험하여 그들이 산행을 여러모로 궁리하고 있을 때, 그들 중의 몇몇이 서로 말했다.: “주님의 산으로 오를 이 누구인고?29) 누가 그 정산에 도달할 수 있겠는고?”


13. 이를 알아차리고 복되신 프란치스코가 그들에게 말했다: “형제들이여, 생명에 이르는 문은 좁고 또 그 길이 험해서, 그리로 찾아드는 사람이 적습니다.30) 주님 안에서 그분의 힘을 받아 강인해지십시오.31) 아무리 난감한 일이라 해도 수월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대들의 의지를 짓누르는 무거운 짐들을 벗어던지고, 그대들의 죄의 짐들을 떨쳐 버리십시오. 그리고 무장을 갖추고 만반의 준비를 하십시오.32) 뒤에 있는 것을 잊고, 앞에 있는 것을 향하여 당신들의 힘이 다하도록 매진하십시오. 여러분의 발바닥이 닿기만 하면 어디든지 그곳은 여러분의 차지가 될 것임을33) 제가 말씀드립니다. 우리의 숨결이신 주 그리스도는 우리를 앞장서 가시니,34) 그분은 사랑의 밧줄로 여러분을 이 산의 정상으로 이끌 것입니다. 형제들이여, 가난을 아내로 삼는다는 것은 멋있는 일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간단히 그녀의 품안을 즐길 수 있을 것입니다. 그녀는 아무도 차지하지 않는 과부 신세이고, 이 덕행의 여왕을 사람들은 모두 지긋지긋해하며 질시하기 때문입니다. 어디에도 감히 이에 방해를 부리는 자도 없고, 항의하는 자도 없으며, 그녀와 우리가 어울리는 것을 금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진 자도 없습니다. 그녀의 벗들마저 원수가 되어 등을 돌렸으나 말입니다.”35) 그가 이렇게 말하자 모두가 거룩한 프란치스코를 따라 함께 걷기 시작하였다. 


형제들이 힘들이지 않고 등정하는 것을 보고

가난이 놀라다


14. 프란치스코와 그의 형제들이 정상을 향하여 수월하게 오르고 있는 동안, 보라, 가난 부인이 산꼭대기에 서서 저 아래로 비탈길을 굽어보고 있었다. 그러다가 이 사람들이 거의 날다시피 하며 힘차게 올라오는 것을 목격하고는 크게 놀라 말하였다. : “누가 저렇게 구름처럼 두둥실 뜨다시피 하며 날아오느냐? 둥지로 돌아오는 비둘기처럼 날아드느냐?”36) 거치적거리는 것 없이 저렇게 가뿐히 올라오는 사람들을 보기는 참으로 오랜만이다. 모든 짐들을 벗어던졌구나. 내 마음 안에 있는 은밀한 것을 그들에게 전하여, 그들로 하여금 그들 주위에 버티고 있는 낭떠러지에 눈을 돌리지 않게 하고, 다른 이들과는 달리 그들의 수고로운 등정을 후회하지 않도록 해주리라. 나의 동의 없이는 그들이 나를 차지할 수 없는 것은 사실이지만, 내가 구원의 계획을 그들에게 일러 주면 하늘에 계신 나의 아버지께서 나에게 상급을 주실 것이다.” 그때 하늘에서 이런 소리가 그녀에게 들려왔다.:37) “시온의 딸아, 두려워 말라. 이들은 주께 복받은 종족이며38) 꾸밈없는 사랑으로 뽑힌 백성이니라.”


15. 그래서 가난 부인은 무(無)의 옥좌에 비스듬히 누워 상서로운 축복으로 형제들을 맞아들이며 말을 건네었다.: “형제들이여, 그대들은 어떠한 연유로 여기를 오시는지, 그리고 어찌 그다지도 다급하게 슬픔의 골짜기에서 빛의 산으로 올라오게 되었는지를 말해 주시오. 혹시 저를 찾는 것이나 아닌지요? 보시다시피 저는 천하며, 광풍에 시달려 고생을 해도 위로해 주는 이 없는 몸이옵니다.”39)


복되신 프란치스코가 가난에게 찬사를 보내다


16. 그들이 답하여 말했다.: “부인이여, 당신을 찾아왔습니다. 그러니 편한 마음으로 저희를 맞이하여 주실 것을 청합니다. 우리는 덕행들의 주인의 종이 될 것을 원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분은 영광의 임금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당신이 덕행의 여왕이라고 익히 들어 왔고, 또한 이는 어느 정도 우리의 경험에서 배운 바입니다. 그러하와 당신의 발아래 무릎을 꿇고 겸손되이 청하는 일은, 황공하옵지만 저희와 더불어 지내며, 그분께서 높은 곳에서 태어나서 죽음의 그늘 밑 어둠 속에 앉았던40) 이들을 방문하러 오셨을 때에 당신이 길이 되었듯이, 이번에는 저희가 영광의 임금님께 가는 마당에 당신이 길이 되어 주십시오. 그대는 힘이 있으며, 온 세상 위에 군림하고 있고, 그대는 왕 중의 왕께옵서 만덕(萬德) 위에 만덕의 여왕과 여주인으로 앉히셨음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면 당신을 통하여 우리를 속량하신 그분께서 당신을 통하여 우리도 받아 주실 것입니다. 당신이 우리를 구하기로 마음만 먹는다면 우리는 진정 구원받을 것입니다. 왕 중의 왕이요, 군주 중의 군주이며, 천지의 창조자이신 그분께서 그대의 엄위와 영화에 사로잡히셨으니 말입니다. 옥좌에 앉아 계신 부요롭고 영광스러운 임금님이 왕궁을 떠나 그 많은 제산과 영화를 버리셨습니다. 그러고 나서 하늘의 옥좌로부터 내려오신 것은41) 당신을 찾아 애틋이 만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17. 그러므로 당신의 엄위는 굉장하고 당신의 높이는 무엇에도 비교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분은 하늘의 수많은 권품 천사들과 능품 천사들을 뒤로 하시고 이승으로 내려오시어, 진흙의 수렁과42) 어둠과 죽음의 그림자 속에43) 누워 있는 당신을 찾으셨으니 말입니다. 당신은 살아 있는 모든 피조물들에게 싫기만 한 존재였으며, 그들 모두가 당신에게서 달아났습니다. 그들은 되도록 당신을 멀리했습니다. 때로 어떤 이는 당신을 완전히 떠날 수가 없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당신에 대한 그들의 역겨움이나 혐오감이 남보다 덜했기 때문은 아니었습니다.


18. 만군의 주님께서 내려오시어 당신을 소유하시고 나서, 당신을 모든 종족 중에 높이셨고, 신부처럼 관을 씌워 꾸미시어 높은 구름 위에 올리셨습니다. 많은 이들이 당신의 힘과 영광을 몰라보고 노골적으로 당신을 증오하고 있으나, 그것이 당신에게는 조금도 해가 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당신은 영광의 그리스도의 흔들리지 않는 거처인 거룩한 산 위에서 유유히 거닐고 있기 때문입니다.


가난의 위엄


19. 지존하신 성부의 아드님께서 당신의 아름다움에 이토록 매혹되어,44) 이 세상에서는 당신하고만 하나 되셨고, 당신만을 신뢰할 수 있는 여인으로 전격적으로 맞아들이셨습니다. 그분께서 빛으로 충만해 있는 그분의 집을 떠나 지상으로 오시기 전에, 당신은 벌써 그분이 흡족해하실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 놓았고, 그분이 앉으실 옥좌와 그분이 수실 거처를 준비해 드렸습니다. 그 거처는 가장 나난한 동정녀였으며, 그분은 그 동정녀에게서 태어나 이 세상을 비추셨던 것입니다. 당신은 새로 태어나신 그분을 어김없이 맞으러 나갔고, 그리하여 그분도 당신에게서 쾌적한 장소를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그곳은 지성적인 기쁨을 주는 장소가 아니었습니다. 복음사가가 말하듯, 그분은 머무실 발이 없어서 여물통에 누우셨습니다.45) 당신은 떨어진 적이 없이 애초부터 그분을 동반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분은 이 세상에 나타나 사람들과 어울리는 일생 동안, 비록 여우도 굴이 있고 하늘의 새도 보금자리가 있지만 머리 둘 곳조차 없었습니다.46) 구약의 예언자들의 말문을 열게 하셨던 그분이, 때가 되어 사람들을 가르치시려고 입을 떼시어 하신 여러 말씀 중에 제일 먼저 하신 말씀이 당신께 찬사를 보내며 극구 칭찬을 하시는 말씀이었습니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행복하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47)


20. 게다가 그분이 인간을 구하시기 위하여 자신의 거룩한 설교와 훌륭한 생활을 증거 할 몇몇 증인들을 선발 하실 때, 그분은 부요한 상인들을 택하지 않으시고 진정 가난한 어부들을 택하셨으니, 이는 당신이야말로 모든 이로부터 사랑을 받아야 함을 보여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기필코 당신의 선(善)과 거대함과 힘과 위엄이 모든 이에게 드러나도록 하기 위하여, 그리고 당신이 다른 모든 덕행들을 얼마만큼 능가하는지를 누구에게나 밝히시려고, 또 당신을 빼놓고는 덕행을 이야기할 수 없음도 알게 하시려고, 또한 당신의 왕국은 이 세상 것이 아니고48) 하늘의 것임이 드러나도록 하기 위하여, 그분이 선택하고 사랑한 제자들마저도 모두 겁에 질려 그분을 버렸을 때에도 당신만은 영광의 왕을 따라다녔습니다. 어찌 되었든 가장 믿음직한 내조자요, 가장 부드러운 연인인 당신은 잠시도 그분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더구나 그분이 누구에게서나 멸시를 받고 있는 것을 볼 때, 그럴수록 당신은 신의를 지키며 더욱 그분과 함께 있지만 않았더라면 그분이 그렇게까지 모든 사람들에게 멸시를 받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21. 유대인들이 그분에게 욕설을 퍼부을 때나, 바라사이인들이 그분에게 모욕을 줄때나, 대제사장이 그분을 저주할 때나 당신은 그분과 함께 있었습니다. 그분이 매를 맞을 때나, 친 뱉음을 당할 때나, 채찍을 당할 때나 당신은 그분과 함께 있었습니다. 모든 사람으로부터 존경을 한 몸에 받았어야 할 그분이 모든 사람으로부터 희롱을 당하였지만, 오직 당신만이 유일하게 그분을 위로해 드렸습니다. 당신은 그분이 십자가에 죽을 때까지49) 그분을 한치도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에 그분이 맨몸으로 달려, 두 팔이 쭉 펼쳐지고 손과 발이 못으로 찔렸을 때, 당신은 십자가 위에서까지도 그분과 더불어 고통을 당했습니다. 그리하여 십자가상의 그분에서 당신밖에는 영광되이 현현(顯現)된 것이 없었습니다. 그분이 하늘로 떠나가실 때, 뽑힌 이들에게 날인할 도장을 당신에게 맡기셨습니다. 그 결과 영원한 하늘 나라를 간절히 원한 사람은 누구나 당신에게 와서 하늘 나라를 애원해야 했고, 천국에 들어가려 해도 당신을 통해야만 되었습니다. 그 까닭은 당신의 도장이 찍히지 않은 사람은 아무도 하늘 나라에 들어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50)


22. 하오니, 부인이여, 우리를 가련히 여기시고 우리에게 당신의 은총의 도장을 찍어 주십시오. 당신은 지존하신 분에게서 간택을 받았고, 영원으로부터 점지를 받았으니, 이러한 당신을 전심으로 사랑하지 않을 천치 바보가 어디 있겠습니까? 하늘의 능품 천사들이 모두 흠숭을 드리는 그분께서 당신에게 그러한 영예를 부여하셨을진대, 누가 당신을 존경하고 공경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당신의 발자국 걸음걸음마다에 전능하신 주님께서 그다지도 겸허하게 몸을 굽히셨고, 당신을 몸에 밀착시키셨으며, 위대한 사랑으로 서로를 묶으셨을진대, 누가 당신의 걸음걸음에 기꺼이 흠숭을 드리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하오니, 부인이여, 당신께 애걸합니다. 그분을 통해서, 그리고 그분을 봐서라도 목숨과도 바꿀 수 없는 우리의 간청을 묵살하지 마시고, 모든 위험에서 우리를 구하소서. 오, 영화로운 부인이여, 영원히 축복받은 부인이여!”


가난 부인이 응답하다


23. 형제들의 이러한 말에 가난 부인은 반색을 하며 상냥한 목소리로 즐겁게 말했다. : “고백하건대, 나의 형제들이여, 그리고 나의 절친한 벗들이여, 당신들이 말을 시작할 때부터 저는 줄곧 행복한 기분에 젖었습니다. 형제들의 열의와 거룩한 제안을 듣고, 저는 한없는 기쁨에 넘쳐 있습니다.51) 당신들의 말들은 저에게 금보다 순금보다 더 바람직하고, 꿀보다 진꿀보다 더욱 달콤합니다.52) 말하는 이는 당신들이 아니라, 당신들 안에서 말씀하시는 성령이시고,53) 지존하신 임금님에 관하여 당신들이 이야기한 것은 그분의 성령이 당신들에게 가르치신 것입니다. 지존하신 임금님께서 은총으로 나를 연인으로 취하시어, 이 땅에서 나에 다한 비난을 말끔히 씻으시고, 나를 하늘의 왕자들 중에서 영광되게 만드셨습니다.


24. 지루할지 모르지만, 제가 살아온 인생 여정을 하나하나 말씀드려 볼까 합니다. 장황하기는 하겠지만 여러분에게 그럴 수 없이 유익할 것입니다. 이로해서 당신들은 어떻게 살아야 하느님을 기쁘게 해 드릴54) 수 있는지를 배우게 될 것입니다. 쟁기를 잡았으니 뒤를 돌아보지 않으면서55) 말입니다.

저는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배움이 없는 사람이 아닙니다. 오리혀 사물의 질서와 생물들의 다양함과 세월의 무상함을 알고 있는 아주 예로부터 있었던 여자이며, 온갖 풍상을 겪은 여자입니다. 나는 긴 세월에 걸친 경험과 예민한 천성과 은총에 힘입어 인간의 흔들리는 마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가난이 낙원에 있었을 때를 회상하다


25. 나는 한때 내 하느님의 낙원에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사람은 나체로 걸어다녔습니다. 사실 나도 그곳에서 벌거벗은 남자 안에서 남자와 함께 이루 말로 다 할 수 없이 현란한 낙원을 휘젓고 다녔으며, 나에게 불행이 닥칠 것이라고는 생각할 수도 없었고, 의심할 수도 없었으며, 두렵지도 않았습니다. 그 사람은 지존하신 분으로부터 옳고 착하고 지혜있게 만들어졌었고, 나는 그 남자와 영원히 함께 있게 되리라고 믿고 있었습니다. 나는 너무나도 즐거웠었고, 내내 그의 앞에서 뛰놀았습니다.56) 사연인즉 그가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고 온전히 하느님께만 속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26. 아뿔싸 애석한지고! 창조 이래 금시초문인 끔찍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전에 영광 중에 지니고 있던 지혜를 잃어버려서 하늘에는 있을 자리가 없게 된 불행한 악마가 뱀에 스며들어 뱀의 모습으로 거짓을 말하며 그 사람에게 접근하여, 그 사람을 자기처럼 하느님의 계명을 거스르는 자기 되게 하려고 공격했던 것입니다. 이 가엾은 사람은 그 간교한 것을 믿고, 그것에 굴복하였습니다. 그러고는 자기를 낳은 하느님을 지고 최초의 범법자를 따라 또 하나의 범법자가 되었습니다. 성서가 그에 관하여 말하듯, 그도 처음에는 벌거숭이었지만 아주 순수했기에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았었습니다. 그러나 한번 죄를 범하고 나서는 자기가 벌거숭이임을 깨닫고 부끄러운 나머지 무화가 나무 잎을 엮어 앞을 가렸습니다.


27. 나의 반려자가 범법자가 된 것을 보고, 그리고 가릴 것이 없어 잎으로 앞을 가린 것을 보고, 나는 그를 떠났습니다. 그러고는 멀찍이에서 울먹이며 그를 바라보기 시작했습니다. 살을 에는 듯한 바람에서, 그리고 상처 입은 나의 마음에서 누군가가 라는 구해 주리라는 한가닥 기대를 하고 있었습니다.

갑자기 하늘에서 세찬 바람이 부는 듯한 소리가 들려오더니,57) 낙원을 뿌리까지 뒤흔들고, 이어 찬란한 빛이 하늘에서 비쳐 왔습니다. 정신없이 바라보는 중에 나는 전능하신 주님께서 날이 저물어 선들바람이 이는 동산을 거니시는 것을58) 보았고, 말로 다 할 수 없는 영광과 현란한 불빛을 보았습니다. 천사들의 무리가 그분을 에워싸고 우렁찬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거룩하시다, 거룩하시다, 거룩하시다, 만군의 주 하느님, 그의 영광이 온 땅에 가득하도다.’59) 천만 신하들이 그분을 떠받들고 있었고, 억조창생들이 그분을 모시고 서 있었습니다.60)


28. 이제 말이지만 저는 놀라움과 공포로 기력이 쇠하여 갔고, 겁에 질려 부들부들 떨었으며, 소름이 끼쳤고, 가슴은 방망이질을 하듯 두근거렸습니다. 나는 깊은 구렁 속에서 부르짖었습니다.: ‘주여, 자비를 베푸소서. 주여, 자비를 베푸소서. 당신 종을 심판으로 부르지 마옵소서. 살아 있는 누구도 당신 앞에서 의로운 사람이란 없삽나이다.’61) 그러자 그분이 저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가서 나의 노여움이 풀릴 때까지 잠깐 숨어 있거라.’62)

그리고 이내 그분은 나의 반려자를 불러 말씀하셨습니다.: “아담아, 너 어디 있느냐?63) 그가 대답했습니다.: ‘주여, 당신께서 동산을 거니시는 소리를 듣고 알몸을 드러내기가 두려워 숨었습니다.’64) 예루살렘에서 예리고로 내려가던 강도들이 그를 만나,65) 창조주의 모상을 잃어버린 그에게서 천성적인 모습까지 벗겨가는 바람에 그는 참말로 알몸이 된 것입니다. 그러나 지극한 자비를 지니신 지존하신 임금님께서는 자기에게 돌아올 수 있는 기회를 그에게 주시고 그의 회개를 기다리셨습니다.


29.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가엾은 사람은 그른 일에 마음이 기울어져서 자신의 죄를 변명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죄에 죄를 더하고, 하느님의 공정한 심판이 내릴 진노의 날에66) 자기가 받을 벌을 쌓아 쟁여 놓는 꼴이 되었습니다. 이에 하느님께서 그와 그의 후손을 그냥 두지 않으시고 책벌을 내리셨는데, 그것은 바로 죽음이라는 놀라운 저주였습니다. 주 하느님께서는 재판을 하여 그를 에덴의 동산에서 내쫓으셨습니다. 이 재판은 옳고 자비 넘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분은 재판의 선고를 완화시켜 명하시기를 흙에서 난 몸이니 흙으로 돌아가라고 하셨습니다. 그분께서 그에게 가죽옷을 만들어 입혀 주시어,67) 한번 순수의 옷을 벗은 그에게 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임을 그것으로 표시하였습니다.


30. 나의 반려자가 죽음의 가죽옷을 입고 있는 것을 보고 나는 완전히 그를 떠났습니다. 그는 이마에 땀을 흘리어 부자가 되게시리 던져졌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해서 나는 울며불며 세상을 떠돌아다니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그 후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그밖의 선조들이 부자가 될 약속을 받게 되었고,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차지하리라는 약속도 받게 되었기에, 나는 발을 붙이고 쉴 곳을 찾지 못했습니다. 이 모든 사람들에게서 나는 안식처를 물색했으나 끝내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소소문하여 나를 찾아 나서신 지존하신 분께서 성부의 품을 떠나 이 세상에 내려올 때까지, 케루빔이 내내 낙원의 입구에서 빙빙 돌아가는 불칼을 들고 서 있었던68) 까닭에, 나는 어디고 있을 곳이 없었습니다.


그리스도의 유언


31. 지존하신 분께서는 일을 마치시고 당신을 보내신 성부께 돌아가시려 할 즈음에 신심 있는 뽑힌 자들에게 나에 관한 유언을 남기셨고, 거역해서는 안되는 신성한 기록으로써 그것을 확실히 하셨습니다.: 금이나 은이나 동전을 가지고 다니지 말라.69) 여행하는 데 아무 것도 지니지 말 것이니, 자루나 전대나 빵이나 지팡이나 신발은 물론 여벌 내의도 가지고 다니지 말라.70) 누가 재판을 걸어 속옷을 가지려고 하거든 겉옷까지도 내주어라. 누가 억지로 5리를 가자고 하거든 10리를 같이 가주어라.71) 재물을 땅에 쌓아두지 말아라. 땅에서는 좀먹거나 녹이 슬어 못쓰게 되며, 도둑이 뚫고 들어와 훔쳐 간다.72)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또 무엇을 입을까 하고 걱정하지 말라.73) 내일 일은 걱정하지 말라. 내일 걱정은 내일에 맡겨라. 하루의 괴로움은 그날에 겪는 것만으로 족하다.74) 너희 가운데 누구든지 나의 제자가 되려면 자가가 가지고 있는 것을 모두 버려야 한다.75) 이외에도 여러 말씀들이 같은 책에 씌어 있습니다.


사도들


32. 사도들과 제자들 모두가 이 말씀들을 성심성의껏 지켰습니다. : 그들은 주님이자 스승이신 그분으로부터 들은 말씀들 중에서 단 하나도 빠뜨리지 않았고, 단 한 시간도 잊지를 않았습니다. 그들은 가장 용감한 군인처럼 그리고 세상의 재판관처럼 몸소 구원의 계명을76) 이행하였고, 또 한편 그들은 어디에서나 그것을 걸교하였으며, 주님께서는 여러 가지 기적을 행하심으로써 그들의 설교에 협력해 주시고 확인도 해주셨습니다. 그들은 사랑에 불탔습니다.: 어디에서나 그들은 자비로운 마음을 지녔고, 가난한 사람을 만나면 누구든지 돌보아 주었으며, 말만 하고 실천하지 않는다는 말을 듣지 않으려고 크게 조심도 하였습니다. 그들 중의 하나가 자신 있게 말했습니다.: ‘나는 내가 이러한 일들을 했다는 말을 못합니다. 다만 그리스도께서 성령의 힘을 받도록 하시어 나로 하여금 말하고 실천하게 하셨다는 말씀을 드릴 수밖엔 없습니다.’77) 또 다른 사도가 말했습니다.; ‘나는 은과 금을 가지지 않았습니다.’ 이리하여 그들은 모두 살거나 죽거나 간에 나에게 지극한 찬사와 칭찬을 보냈습니다.

그들의 말을 들은 사람들은 들은 것들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실천하려고 노력하였으며, 따라서 사람들은 재산과 물건을 팔아서 모든 사람에게 필요한 만큼 나누어 주었습니다.78) 모두 함께 지내며 모든 것을 공동 소유로 내어놓아79) 하느님을 찬양하였으며, 이것을 보고 모든 딴 사람이 그들을 우러러보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주께서는 구원받을 사람을 날마다 늘려 주셔서 신도의 모임이 커갔습니다.80)


사도들을 뒤따른 사람들


33. 적어도 십자가에 달리신 가난하신 분의 피의 온기가 사도들의 기억에 남아 있던 한은, 그리고 흘러넘치는 고통의 잔이 사도들의 가슴을 취하게 했던 한은 사도들의 진실한 말들은 오랫동안 여러 사람들의 뇌리에 살아 있었습니다. 그들이 찢어지게 가난하여, 어쩌다 나를 저버려야 하는 유혹을 당할라치면, 그들은 주님의 자비심이 드러난 그분의 상처를 기억이 떠올리며, 유혹을 받았다는 사실만으로 혹독하게 스스로를 벌하곤 하였으며, 더욱 굳건히 나에게 매달려 열심히 나를 껴안았습니다. 나는 영원하신 임금님의 슬픈 고통이 그들의 기억 속에 늘 생생하게 살아 있도록 하기 위하여, 언제나 그들과 함께 있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그들은 나의 말에 적지 아니 위로를 받고서, 철고행대(鐵苦行帶)로 기꺼이 육신을 괴롭혔으며, 자신들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거룩한 피를 즐거운 마음으로 바라보았습니다. 이 승리는 아주 오랫동안 계속되었고, 그 결과로 매일 수천 명이 지존하신 임금님의 도장을 받게 되었습니다.81)


가난에 유익하지 못한 정적(靜寂)


34. 애석하도다! 이렇게 격전을 치른 후 얼마 안가서 정적이 찾아왔습니다. 그러나 이 정적은 어떤 전쟁보다도 해로운 것이었습니다. 처음에도 도장을 받은 사람이 얼마 되지 않았지만,82) 정적이 계속될수록 더욱 줄었고, 나중에는 극소수에 불과했습니다. 이제 모두가 나를 떠나서, 정적 중에 나의 쓰라림은 극에 달했습니다. 모두가 나를 내쫓아 나는 누구에게도 쓸모없는 몸이 되어 버렸습니다. 모두가 나를 버렸습니다. 이 정적은 내가 구해서 얻은 것이 아니고, 나의 원수가 가져다 준 것입니다. 이 정적은 내 자식들이 가져 온 것이 아니고 웬 낯선 사람들이 가져 온 것입니다. 실로 내가 기르고 키웠던 자식들이 도리어 나에게 반항했습니다.83)


35. 그러던 중에 주님의 등불이 내 모리 위에서 빛났고, 그 횃불로 어둠을 몰아내며 살아가려 하자, 악마가 나와 함께 있던 많은 사람들 안에서 사납게 극성을 부렸고, 세상이 그들에게 옥신각신하다가 많은 사람들이 세상과 세상에 속한 것들을 사랑하게 되기 시작했습니다.


가난의 자매 박해


36. 그러나 하느님께서 나에게 하늘 나라를 약속하셨듯이, 그렇게 하늘나라를 약속한 나의 자매인 박해,84) 즉 모든 덕의 완성인 박해는 나의 옆에 있었고, 그녀는 모든 면에서 신뢰할 수 있는 보조자였으며, 힘있는 조력자였고, 속이 깊은 충고자였습니다. 사랑이 미지근해지는 사람을 보든가, 아니면 천국의 사물들을 잠시 잊고 어떤 형태로든 지상적인 사물들을 마음에 품는 사람들을 만날 때, 그녀는 즉각 불호령을 내려 그녀의 군대를 진두지휘하였습니다. 이어서 곧 나의 아들들을 부끄러움에 얼굴을 들지 못하게 하여, 그들로 하여금 다시 주님의 이름을 찾도록 하였습니다. 그런데 지금 나의 그 자매는 나를 떠난 상태이고, 해서 초롱초롱했던 나의 눈빛은 사라졌습니다. 왜냐하면 나의 자식들은 박해자 없이 평온한 생활을 하였지만, 실제에 있어서는 집안싸움과 분쟁으로 서로 처참하게 상처를 입히며, 부(富)와 낙(樂)을 차지하고자 서로 시비를 걸고 서로 질투했기 때문입니다.


가난 부인이 참으로 가난한 자들을 칭찬하다


37. 차차 시간이 흐름에 따라, 어떤 이는 다시 호흡을 가다듬고 결심을 하여 가야 할 길을 재차 걸었습니다. 앞서 많은 사람들이 궁핍하여 어쩔 수 없이 걸었던 길이었습니다. 결심을 하고 가난한 길을 걷고자 한 모든 이들이 나에게 달려와 진심으로 많은 기도와 눈물로 청한 것은 저희들에게 영원한 평화를 약속해 줄 것과 함께 있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전능하신 분께서 나를 버리시지 않고 아이들도 나를 에워싸며 돌아가던 그 시절처럼 내가 저희들과 함께 그렇게 있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품격이 있었고, 온화했으며, 우리 아버지 하느님 앞에 거룩하고 흠 없는 사람이었고,85) 일생동안 형제애로 일관했으며, 마음이 가난하였고, 가진 게 도무지 없었으며, 거룩한 삶으로 충만하였고, 하늘에서 내린 선물이 무진장하였으며, 열정적이었고, 희망을 가지고 기뻐했으며, 환난 속에서 참았고,86) 마음은 온유하고 겸손하였으며,87) 마음에 평화를 유지하였고, 언행이 일치하였으며, 서로 마음이 맞았고 이웃과는 하나 되어 즐겁게 어울렸습니다. 마침내 이 사람들은 하느님께 봉헌되어, 천사들을 즐겁게 해 주었고, 사람들에게 친절했으며, 스스로에게는 엄격하였고, 다른 이에게는 관해하였으며, 행동거지가 경건하였고, 걸음걸이는 점잖았으며, 표정이 즐거웠고, 마음은 깊었으며, 일이 잘 되어 갈 때 겸손하였고, 차림새는 가히 검소하였으며, 잠은 거의 자지 않았고, 절제가 있었으며, 자주하였고, 선행의 빛에 자신의 모습이 드러났습니다. 나의 영혼은 그들의 영혼과 단단히 합일하여 우리는 믿음도 하나 마음도 하나였습니다.


거짓 가난한 자들


38. 얼마 안가서 우리 사람이 아닌88) 벨리알의 어떤 아들들이89) 우리 중에 생겨나 부질없는 말이나 늘어놓고, 추악한 짓들을 저질렀으며, 사실은 그렇지도 않으면서 자기들은 가난하다는 말을 하였습니다. 그러고 나서 나를 진심으로 사랑했던 위에서 말한 훌륭한 사람들이 나를 거들떠보지도 않게 되었고, 나를 모욕했습니다. 그들은 부정한 소득을 좋아하던 보소르의 아들 빌라암이 간 길을 따른 것입니다.90) 그들은 마음이 썩고 진리를 잃어서 종교를 한탄 이득의 수단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었으며,91) 그들은 거룩한 사도회의 수도복을 입었지만 새 사람이 될 줄을 몰랐고, 단지 구태의연할 뿐이었습니다. 그들은 손위 사람들을 비판하였고, 거룩한 수도회 설립자들의 생활과 품행을 입에 올렸으며, 이들을 신중치 못하다든가 너그럽지 못하다든가 냉정하다는 말로 뒤에서 헐뜯었습니다. 그러고는 나를 서약한 자들이면서도 나를 두고 굼뜨다는 둥, 거칠다는 둥, 심술궂다는 둥, 교양이 없다는 둥, 둥하다는 둥, 생가기 없다는 둥으로 말하였습니다. 이런 일들을 몰고 오는 자가 나의 철천지원수이며, 양의 탈을 쓰고 교활하게 늑대의 난폭성을 은닉하는 자입니다.92)


탐욕


39. 재물을 모아 놓고는 잃지 않으려고 전전긍긍하게 하는 것이 바로 탐욕입니다. 내가 돌보아 준 덕분에 그들은 티끌에서 일어났고, 거룸에서 들어 올려졌건만, 그들은 나를 저버리고는 완전히 저버리지 않은 척하려고 탐욕을 좀 더 거룩한 이름으로 위장시켜 부르는 습관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탐욕에 관하여 나에게 말할 때 평화로운 모습으로 말을 하였으나, 속으로는 교활하게 간계를 꾸몄습니다. 폐허가 되어 보이지 않는 산 위에 있는 마을도 드러나게 마련인데,93)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은 무릇 신중한 맛이 있어야 하고, 장래를 생각하는 비축성이 있어야 한다는 이유로 그들은 탐욕을 신중이나 비축으로 바꿔 불렀습니다. 제아무리 그리 해도, 그러한 신중함은 차라리 혼란스러움이라고 불러야 하는 것이고, 그러한 비축은 오히려 모든 선(善)을 잊어버리게 하여 파멸을 초래하는 건망증이라고 불러야 타당할 것입니다.

그러고도 그들은 나에게 말했습니다. : ‘그대는 함이 있고 천국은 그대의 것이니, 두려워 마시오. 자선을 계속적으로 한다는 것은 좋은 일이며, 좋은 결실을 맺기 위하여 시간을 낸다든가, 궁핍한 사람들에게 희사를 한다든가, 가난한 사람에게 무엇을 주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가난이 거짓 수도자들에게 권고하다


40. 내가 그들에게 말했습니다.: ‘형제들이여, 여러분이 말씀하신 그런 것이 좋은 일이라는 것을 부정하지는 않겠습니다. 진정 바라건대, 그보다는 어려분이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았을 때의 일을 생각해 보도록 하십시오.94) 뒤를 돌아보지 마십시오. 세간을 꺼내려고 지붕에서 집안으로 내려오지 마십시오. 겉옷을 가지러 밭에서 집으로 돌아가지 마십시오.95) 세상사에 얽매이지 마십시오.96) 여러분을 더럽히고 타락시키는 이 세상 사물에 얽히지 마십시오. 구세주를 알고부터 여러분은 그런 것에서 뛰쳐나오지 않으셨습니까? 이 세상 사물에 얽힌 사람은 필연적으로 그에 덮치게 마련이고, 그러한 사람들의 마지막 형편은 처음보다 더 비참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겉으로는 자선을 베푸는 듯이 보이지만,97) 그들은 거룩한 계명에 따라 살도록 지워진 그러한 생활에서 떠나 살기 때문입니다.’


거짓 수도자들의 반응


41. 내가 이런 말을 그들에게 권고했더니, 그들 사이에서 논란이 일어났습니다.98) 어떤 이는 나를 착한 여자라고도 하고, 좋은 말을 들었다고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어떤 이는 달랐습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자기를 따르게 하려고 우리를 속이려는 수작입니다. 가련한 주제꼴에 우리까지 모두 자기처럼 몹쓸 꼴이 되게 하려는 것입니다.’


가난이 착한 수도자에 관하여 말하다


42. 회두할 때 지녔던 크나큰 열의와 위대한 사랑을 아직도 마음에 간직하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그들 가운데 그래도 끼어 있어서, 그때 나의 원수는 나를ㄴ 내쫓아 그들 주변에 얼씬하지 못하도록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외침으로 하늘의 문을 두드렸고, 끈질긴 기도로 하늘을 뚫었으며, 자신들을 관상에 이르도록 하였고, 자싱적인 모든 일을 멸시하도록 노력하였습니다. 그러자 온 누리의 창조주께서 나에게 명을 내리셨고, 나의 창조주께서 내가 살 곳을 정해 주시며 말씀하셨습니다. : ‘너는 야곱의 땅에 네 집을 정하고 이스라엘에서 네 유산을 받아라. 그리하야 내가 세운 백성 안에서 뿌리를 내려라.’99) 하여 나는 부지런히 그리 되려고 하였습니다. 그럭저럭 그들과 함께 있게 되어, 우리는 임금님께서만 거니시는 길을100) 따라 함께 달렸고, 내가 있음으로 해서 그들은 젊은 나이에 노장들 틈에서 영예를 누렸습니다.101) 사람들은 그들을 우러렀으며, 그들을 거룩하다고 일컬어지는 것을 해롭게 여기기 시작하였고, ‘나는 사람에게서 찬양을 받으려 하지 않는다.’102)라고 하신 성자(聖子)의 말씀을 떠올리고는, 그들에게 베풀어지는 영광을 철저히 거절하였습니다.


탐욕이 신중함이라는 이름으로 자신을 위장하다


43. 그러나 그들이 그리스도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길을 걷게 되자, 탐욕이 신중함이라는 이름으로 위장하여 그들에게 말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사람들 앞에서 그렇게 불친절한 너의 모습을 보이지 않도록 해라. 그리고 그들이 너에게 보이는 경의를 그런 식으로 무시하지 말아라. 오히려 그들에게 좀 붙임성 있게 대하고, 그들이 너에게 보이는 칭찬을 노골적으로 일축하지 말아라. 마음으로만 그렇게 하면 되지 않겠느냐? 왕등과 알고 지내는 것이 나쁠 게 무어냐? 군주들과 친분을 맺는다든가, 유명 인사들과 가까이 지내는 것도 마찬가지다. 그 이유는 그들이 너에게 그렇게 경의를 표하고 존경을 드릴 때, 그리고 그들이 너를 추켜세우며 만나러 올 때, 이러한 것을 지켜보는 많은 이가 그들의 태도를 보고 훨씬 쉽게 하느님께 돌아 올 것이기 때문이다.’


44. 그들은 이러한 말에 유익한 점이 많다고 생각하여 그만 그 말을 받아들였습니다. 길을 따라 매복된 함정에 자기를 지키지 못하고 기어코 그들은 영화와 명예를 기꺼이 가슴에 안고 만 것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에게 공공연히 외적으로 보내지는 찬사만큼이나 내적으로도 스스로를 그렇다고 여겼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들의 영광을 아첨하는 사람들의 입에 두었습니다. 이는 미련한 처녀들이 기름을 판 사람들한테 속은 일이나 마찬가지이고, 쓸모없는 종이 땅에다가 자기의 재능을 묻어서 속은 일이나 한가지인 것입니다.103) 그러나 사람들은 그들을 겉과 속이 같은 사라이라고 여겼습니다. 그래서 지은 죄를 탕감해 보려는 속셈으로 그들에게 자기들 재산을 아낌없이 내주었습니다. 그들은 그러자 재산을 처음에는 똥으로 여기는 척하며 말했습니다.: ‘우리는 가나합니다. 그리고 늘 가난하기를 소원합니다. 하여 우리가 구하는 것은 여러분 자신이지 여러분의 재물이 결코 아닙니다.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으면 그것으로 만족하시오.104) 헛되고 헛됩니다. 모든 것이 헛되기 때문입니다.’105) 이리하여 그들에 대한 사람들의 신뢰도는 일취월장하였고, 재물이 거룩한 사람들로부터 이토록 일축되는 것을 보고서, 많은 사람들이 자기들 재산을 조금은 가볍게 보게 되었습니다.


인간적인 행위인 비축(備蓄)


45. 한편 사악한 나의 원수는 이것을 보자, 몹시 격노하여 이를 갈기 시작하였고, 배가 아파서 말했습니다.: ‘자, 모든 사람이 다 그 부인을 따라가니,106) 이를 어쩐다? 듣든 안듣든 비축이라는 이름을 빌어 그들 마음에 가 닿도록 속삭여 보리라.’

그러고 나서 ‘비축’은 그것을 실행으로 옮겨 공손하게 말했습니다.: “왜 당신들은 하루 종일 이렇게 빈둥거리며 서 있기만 하오?107) 당신들은 내일을 위하여 비축해 놓은 것도 없지 않소. 당신들이 사치스런 물건들만 피한다면 그러한 생활필수품이야 가져서 해 될 것이 없지 않으냐는 말이오. 필요한 것을 실제로 당장 다 손에만 쥐면, 당신들은 아주 안락하고 편안하게 자신들의 구원을 이룰 수 있을 것이고, 다른 이들의 구원도 이룰 수 있을 것입니다. 당신을 위해서나 당신을 따르는 이들을 위해서나 시세 좋을 때 비축해 두십시오. 은인들이란 나중에는 처음에 가지고 있던 헙헙함도 사라지는 법이고, 늘 주던 선물도 거두기 마련이기 때문입니다. 당신들이 지금처럼 늘 애긍에 의지하야 살 수만 있다면 좋겠지만, 그게 불가능한 것이, 하느님께 당신들이 가난한 사람들을 기억해서,108) 그들에게 주려고 필요한 물건들을 가지고 있다면, 그렇게 가지고 있는 것이 하느님께도 기쁘지 않을까요?’ 그분도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행복하다.109) 왜 당신들은 주는 물건들을 받지 않습니까? 그것은 주는 사람이 받을 영원한 상급을 빼앗는 것인데, 왜 이러한 일을 피하지 않습니까? 당신들은 이처럼 부(富)를 아무 것도 아닌 걸로 여기니 말이지만, 그렇다면 그들과의 교제를 두려워해야 할 이유도 없지 않습니까? 악은 물질에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느님께서는 당신께서 만드신 것을 보시고, 참 좋다고 하셨기 때문입니다.110) 착한 사람들에게는 모든 것이 다 좋은 것입니다. 착한 사람들을 유익되게 하고, 착한 사람들에게 봉사하도록 하기 위하여 만물이 만들어진 것입니다. 그런데, 오, 얼마나 많은 부자들이 이것을 악용하는지! 만약 당신들이 그들처럼 물질을 소유했다면 당신들은 그들과 달리l 잘 사용했을 것입니다. 당신들의 동기가 거룩하고, 생각도 거룩하기 때문입니다. 당신들의 부모는 유복하게 할 염려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니 당신들에게 필요한 물건들을 소유한다면, 좀 더 걸맞는 그리고 좀 더 정리된 생활을 하게 될 것입니다.’

나의 철천지원수인 ‘비축’은 이러한 이유와 또 이와 비슷한 다른 이유를 들어 그들에게 말했습니다. 이미 양심이 썩을 대로 썩은 그들 중의 몇몇은 이에 동의하였습니다. 그러나 다른 이들은 그러한 말에 귀를 틀어막고 비축녀(備蓄女)의 논지에 날카로운 답변으로 반박을 하였습니다. 비축녀와 그들은 성서를 근거로 하여 서로 논쟁을 벌였습니다.


탐욕이 게으름111)의 도움을 청하다


46. 그러나 탐욕녀(貪慾女)는 이 사람들을 자기 뜻대로 할 수 없음을 알고, 끝까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방법을 바꿨습니다. 그녀는 선행을 하기도 싫어하며, 또 시작한 일을 마치기도 싫어하게 하는 게으름을 부르기로 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녀는 게으름이라는 여자와 손을 잡고, 그들을 유혹하기로 작정한 것입니다. 이 두 여자는 실제로는 절친한 사이가 아니었고, 같은 운명을 지닌 여자들도 아니었습니다. 그래도 그들은 옛적에 빌라도와 헤롯이 구세주를 적대하여 음모를 꾸몄듯이 함께 신이 나서 음로를 꾸몄습니다.

작전을 끝내고서 게으름이 으르렁거리며 포효를 하였습니다. 그러고 나서 군사를 거느리고 공격을 개시하여, 이 사람들의 경계선을 넘어 들어갔습니다. 이 여자는 총력을 기울여 그들의 사랑의 불을 껐으며, 미지근하고 우둔한 쪽으로 유인하였습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서서히 무너지면서 무기력에 빠져, 죽은 사람처럼 되어 갔습니다.112)


그녀 게으름에 점령당한 수도자


47. 그렇게 되자 그들은 가엾게도 그들이 두고 떠났던 에집트의 고기 냄비와 파와 마늘을113) 그리워하기 시작하였습니다. 한때는 고결한 마음으로 업신여겼던 것을 이제는 추잡스럽게 찾았습니다. 그들은 마지못해 하느님의 계명 길을 걸었습니다. 그리고 메마른 마음으로 권고들을 따랐습니다. 그들은 짐에 눌려 차츰 기력이 쇠해갔고, 정신을 가누지 못했으며, 숨도 제대로 쉬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양심의 가책도 없었고, 통회할 줄로 몰랐습니다. 순명을 해도 불만이 꼭 찬 순명이었습니다. 생각들이 세속적이었고, 기쁨이라야 방탕스런 기쁨이었습니다. 꾸며진 슬픔에, 조심성 없는 a라, 헤픈 웃음, 싱글벙글하는 표정, 의식적인 걸음걸이, 부드럽고 하늘거리는 옷, 매끈한 옷자락, 꼭 들어맞는 옷, 잠은 늘어지게 잤고, 식량은 쟁여 놓고 먹었으며, 술은 퍼마셨습니다. 어리석기 짝이 없는 말이나 하고, 농담이나 늘어놓고, 쓸데없는 말로 세월을 보냈습니다. 그들은 우매한 말로 사람들을 웃겼고, 혼자 앉아서 규칙이나 직책을 두고 이러쿵저러쿵 하였으며, 인간사에 부지런히 관심을 갖느라고 정신이 없었습니다. 영신 수련에는 관심조자 없었고, 구령(救靈)에 흥미가 없었습니다. 화제(話題)라야 천상 사물에 관한 것은 거의 없었고, 그들에게는 영원에 대한 그리움 또한 불타오르는 일이 도무지 없었습니다.


48. 그러다가 그들은 고집이 세져서 서로 증오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서로 지배하려 들었고, 자기 형제가 대죄 중에 있다고 몰아세우곤 하였습니다. 그들은 일이 어렵다 싶으면 피하였고, 헛된 즐거움만을 찾아 헤맸습니다. 그 연유는 그들에게 참다운 즐거움을 찾을 능력이 없어서였습니다. 그래도 할 수 있는 한 거룩한 모습을 계속적으로 유지해서, 무가치한 사람이 되지 않았음을 보이려 하였고, 거룩한 말 몇 마디를 해서 자신들의 비참한 생활을 순진한 사람 앞에 숨기려고 발버둥쳤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속이 하도 썩어서, 자신들의 무게를 주체하지 못하여 그들의 본모습이 그대로 밖으로 드러났습니다.


49. 마침내 그들은 세속 사람들에게 아첨하기 시작했습니다. 말하자면 그 사람들의 주머니에서 돈을 짜내어, 자기들의 집을 크게 만들고, 송두리째 포기 했던 것을 늘려 나갈 마음으로 그들과 친한 사이가 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들은 부자들에게 말을 팔았으며, 귀부인들을 추켜세웠습니다. 그리고 궁정을 자주 드나들었고, 제후들과는 지성으로 만났습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집을 연달아 차지하고 땅을 차례로 사들일114) 수 있을 정도가 되었습니다. 그들은 주님의 속생각을 모르고, 못된 일만 골라서 해 온115) 덕분에 이제는 거물이 되었고, 부자가 되었으며, 땅에서는 강력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들은 존경을 받는 통에 멸망으로 빠져 들었고, 유산될 때 덜어지는 태아처럼 땅으로 떨어졌습니다. 그러고도 나에게 말합니다.: ‘우리는 그대의 친구입니다.’


가난했던 사람들이 부자가 되어 가난을 핍박하다


50. 세속에서 살면 몰골도 사납고 천덕꾸러기가 되었을 것들이 나에게 돌아와서는 나를 이용하여 부자가 되었으니, 이를 생각하노라면 가슴이 미어집니다. 비계가 끼고 디룩디룩 살이나 쪄가며 고집까지 세져서, 나를 비웃고는 힘껏 걷어찼습니다. 그들은 세속에서 살 때 입에 풀칠도 제대로 못하는 인물로 여겨졌던 자들입니다. 그들은 먹지를 못해 굶주려 말라비틀어졌고, 풀을 뜯어 먹었으며, 나무껍질을 벗겨 먹었고, 재난이 덮치면 비참한 신세가 되어 몰골이 말이 아니었습니다. 이제 그들은 공동생활로 만족하지 않고, 스스로 떨어져 나가, 거기에서 부끄러움도 없이 자기 배를 채우고 있습니다. 세속적인 친구들 중에서도 보잘것없던 친구들인 그들이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었답시고 우쭐대는 꼴이라니! 필요 없는 것을 계속해서 애긍하니, 다른 형제들에게는 그들과 함께 살아가는 것이 꽤나 짐스럽습니다. 이들은 전에 보리빵이나 물조차도 갖추지 못하고 살던 주제들이고, 집이 없어서 떨기나무 속에 있는 것만으로 즐겁게 생각했던 자들입니다. 미련스럽고 바보 같은 자식들, 이 땅에서도 인정받지 못한 놈들이, 비참한 신세가 되어 버린 나를 괴롭히려 들었습니다. 보기 싫어서 나를 가까이 하려고도 아니하고, 거리낌 없이 내 얼굴에 침을 뱉었습니다. 나는 그들에게 치욕을 당했고, 공포심에 사지를 떨었습니다. 나와 가까이 지냈고, 또 오랫동안 동무가 되었던 그들이 나를 모욕했습니다. 그들은 나 같은 여자가 있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했습니다. 내가 그들에게 자비를 베풀어 자신들이 풍요로워졌음을 알면서도, 그럴수록 그들은 나를 더욱 모질게 대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나의 이름만 들어도 몸서리를 쳤습니다.


가난이 그들에게 돌아오라고 권하다


51. 나는 슬픔에 지쳐 그들에게 말을 건네었습니다. : ‘나를 떠난 자식들아, 돌아오너라. 그러면 너희의 마음을 바로잡아 나를 배반하지 않게 하여 주리라.116) 모든 탐욕을 조심하라. 탐욕을 부리는 자는 우상을 숭배하는 자다.117) 돈을 사랑하는 사람치고 돈으로 만족하는 사람이 없다.118) 너희는 처음에 빛을 받고 나서 많은 고난의 도전을 받으면서도 견디어 냈던 시절을 생각해 보아라.119) 뒤로 물러나 멸망할 사람들이 되지 말고, 믿음을 가져 구령하는 사람이 되어라.120) 모세의 율법을 무시한 자도 두세 증인만 있으면 용서 없이 사형을 받는다. 그러니 하느님의 아들이 짓밟고 자기를 거룩하게 해준 계약의 피를 더럽히고 은총의 성령을 모욕한 자가 받을 벌이야 얼마나 더 가혹하겠느냐?121) 사람의 생명은 재산의 많고 적음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니, 너 반역자들아, 이를 마음에 새겨 두어라.’122)

그러나 그들은 벌컥 화를 내며 말했습니다.: ‘가련한 계집아, 꺼져 버려! 우리 앞에서 비켜! 너의 가르침 따위는 알고 싶지도 않다.’123) 그래서 내가 그들에게 말했습니다.: ‘나를 불쌍히 여겨다오. 나의 친구인 너희들만이라도 나를 불쌍히 여겨다오. 왜 너희는 이유도 없이 나를 박해하는 거냐? 너희와 나는 한 길을 갈 수은 없음을 말하지 않았더냐? 애당초 내가 너희를 만났던 것이 후회막급이구나!’


주께서 가난에게 말씀하시다


52. 그랬더니 주님의 말씀이 나에게 오시어 이르셨습니다. : ‘술람의 여인아, 돌아오라. 돌아오라. 네 모습 보고 싶구나.124) 이놈들이 나를 울화가 치밀게 만드는구나. 그놈들은 네 말을 들을 마음이 없으니, 너의 말도 들으려 하지 않을 것이다.125) 이놈들은 내 말을 아니 듣고 거역하여 나에게서 떠나가 버렸다. 이놈들은 너를 배척한 것이 아니라 나를 배척한 것이다.126) 왜냐하면 너는 너의 이익을 돌보지 않고 그들을 가르쳤고, 너의 유익을 생각하여 그들에게 훈계를 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이 너를 받아들이는 척하지 않았더라면, 그들이 그렇게까지 부자가 되지는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애초부터 너에게서 이득을 보고 부자가 된 다음에 도망가려고 작정을 하고 너를 사랑하는 척만 한 것이다. 이놈들이 배반하고서는 돌아오지 않으려고 버티고 있다.127) 이놈들은 지금까지 너에게 사기나 쳐왔고, 또 목숨까지도 노릴 자들이니, 이들이 너에게 좋은 말을 한다 해도 믿지 말라. 너는 이런 백성을 너그럽게 보아달라고 빌지 말라. 나는 너의 소리를 들어 주지 않겠다.128) 그들이 나를 먼저 거역하였기에, 나도 그들을 버렸기 때문이다.’


가난 부인이 수도회의 발전과 퇴보를 생각하여

복된 프란치스코에게 타이르다129)


53. 자, 형제들이여, 대단히 길게 비유를 들어 그대들에게 나의 내력을 말했습니다. 해야 할 바를 아시려거든 한눈팔지 말고 똑바로 앞만 내다보십시오.130) 뒤를 돌아본다든가 하느님을 속이는 일은 위험천만한 일입니다. 롯의 아내를 생각해 보십시오. 131) 그리고 자기가 성령을 받았노라 말하는 사람을 다 믿지 마십시오.132) 그러나 사랑하는 형제 여러분, 나는 여러분을 믿습니다. 나는 다른 사람에게서보다는 여러분에게서 더 좋은 구원의 축복을133) 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모든 것을 송두리째 버렸고, 모든 짐에서 완전히 자유롭기에 그러한 구원의 축복이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을 뒷받침할 만한 가장 확실한 증거는, 유사 이래 누구도 차지한 사람이 거의 없었던 나를 차지하려고 그대들이 이 산의 정상을 정복했다는 사실입니다. 나의 벗들이여, 잘 들으십시오.134) 나는 하도 악한 사람을 많이 보아 와서, 착한 사람들의 덕까지 의심을 합니다. 나는 자주 양의 탈을 쓰고 나타나는 몹시 굶주린 늑대를 접해 왔습니다.135)


54. 내가 여러분에게 신신 당부하고자 하는 것은 여러분 모두가 다, 신앙과 인내를 바탕으로 하여 나를 차지했던 거룩한 사람들을 닮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내가 두려워하는 것은 다른 이들에게 일어났던 일이 여러분에게도 혹시 일어나지 않을까 하는 것이고, 이 때문에 여러분에게 유익한 충고를 드리겠습니다. 즉 처음부터 너무 높은 것은 바라지 말고, 너무 거룩한 것을 바라지 말라는 것입니다. 오히려 그리스도의 안내로 한 발짝씩 차근차근 앞으로 내디디면 최후에는 가장 높은 곳에 다다르게 될 것입니다. 쓸모없는 거름이 여러분의 뿌리에 스며들어서, 여러분으로 하여금 열매를 맺지 못하게 하는 자가 되게 하지 않도록 조심하십시오. 왜냐하면 그 다음에 여러분에게 올 것은 도끼뿐이기 때문입니다.136) 지금 여러분 안에 있는 착한 마음을 완전히 신뢰하지 마십시오. 사람의 감각이라는 것은 선보다는 악에 기우는 경향이 농후하기 때문이며, 사람의 의지라는 것은 비록 누가 보아도 확실할 정도로 악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손치더라도, 지금까지 습관된 것으로 쉽사리 되돌아가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매우 열심할 때에는 모든 것이 무척 가볍게 느껴졌으리라 짐작되지만, 그러나 그의 종들 가운데에도 믿을만한 자 없고, 그의 심복들 가운데에도 허물없는 자 없다137) 는 말씀을 기억하십시오.


55. 이렇게 해서 여러분이 많은 어려움들을 당장은 쉽게 견딜 수 있겠지만, 조금 시간이 지나 마음이 해이해지면 받은 은혜에 무감각해질 것입니다. 여러분은 원하기만 하면 좋은 상태로 되돌아갈 수도 있고, 또 최초의 위로를 다시 회복할 수 있다고 생각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한번 태만해지면 거기에서 뿌리를 뽑아 완전히 헤어나기란 쉽지 않습니다. 일단 그리되면 여러분의 마음은 다른 곳으로 향하게 되고 좀체로 그 마음은 여러분에게 처음으로 돌아가라고 소리 높이 외치지 않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도 모르는 사이에 마음이 무기력해지고, 영적으로 태만해지면 여러분은 안일하게 변명을 할 것입니다. ‘사람이란 처음처럼 그렇게 열심한 법이 아닙니다. 요즈음 시대는 다릅니다.’ 그렇게 말한다면 이는 사람이 모두 마쳤다고 생각했을 때 그것은 시작에 불과하다는138) 말의 뜻을 모른다는 말밖에 안 됩니다. 그리고 마음속에서는 이런 말만 들릴 것입니다. ‘내일, 내일 내 첫 남편에게 돌아가야겠다. 그때의 내 신세가 지금보다 나았지.’139)

형제들이여, 나는 여러분에게 많은 것을 미리 타일렀습니다. 그리고 아직도 할 말이 많지만 지금은 여러분이 그 말을 알아들을 수 없을 것입니다.140) 그러나 내가 지금까지 한 말들을 여러분에게 분명하게 설명해드릴 날이 올 것입니다.


복되신 프란치스코가 형제들과 함께 답하다


56. 이 말에 복되신 프란치스코는 자기 형제들과 더불어 땅에 부복하였다. 그리고 하느님께 감사를 드리며 말하였다. ‘우리의 부인이여, 말씀 즐거웠습니다. 그리고 거기에는 어떤 모순도 없었습니다. 당신과 당신의 지혜에 대한 소문은 익히 우리 동네에서 듣고 있었습니다만 과연 그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내가 들어온 이야기는 이제 보니 사실의 절반에도 훨씬 못 미치는 정도였습니다. 당신 앞에서 늘 당신의 지혜로운 말씀을 듣는 사람이나 신하야말로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당신으로 인하여 기뻐하시는 당신의 주 하느님께서는 세세에 찬미를 받으소서. 당신의 사랑을 받으신 주 하느님께서는 당신을 영원히 사랑하시어 당신을 여왕으로 삼아, 당신으로 하여금 하느님의 종들에게 자비와 법을 베풀도록 하셨습니다.141) 오, 길을 잘못 든 사람들을 바르게 인도하시고, 죄 짓는 자들을 타이르시는 당신의 마음씨는 얼마나 착하고 부드러운지요!’142)


57. “자, 부인이여, 당신에 대한 영원하신 임금님의 사랑과 그분에 대한 당신의 사랑으로 청하오니, 우리의 원을 채워주시고, 우리에게 자비와 온유를 베풀어주십시오. 당신이 하시는 일은 위대하며 설명할 길이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을 터득치 못한 사람들이 당신에게서 빗나간 것입니다.143) 그리고 접근할 수 없을 만큼 당신은 온 몸에 가시가 돋쳐있고, 행군하는 군인처럼 홀로 의연히 걸어가시니, 진정으로 당신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당신과 함께 있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당신의 종이고, 당신 목장의 양떼입니다.144) 세세대대에 영원히 우리는 맹세하고 다짐합니다. 의로우신 당신의 법을 지키겠습니다.145)


가난이 동의하다


58. 이러한 프란치스코의 말에 가난 부인은 깊은 감동을 받았고, 또 늘 자비를 베풀고 용서하는 것이 그녀의 성격인지라, 도저히 견딜 수가 없어, 급히 달려가 그들 모두를 껴안고는, 각 형제 하나하나에게 평화의 입맞춤을 하며 말했다. “자, 나의 형제들이여, 나의 아들들이여, 여러분을 통하여 나는 더 많은 사람들을 얻게 되리라는 것을 알았으니, 곧 여러분과 함께 가겠습니다.”146)

복되신 프란치스코는 기쁨을 주체할 길이 없어, 주님께 희망을 잃지 않는 자들을 버리지 않으시는 전능하신 하느님을 큰 소리로 찬미하기 시작하였다. “주님께 뽑힌 형제들이여, 주님께 찬미를 드립시다. 나날을 즐겁게 보내며, 그분께 영광을 드립시다. 주님은 어지시고, 그 자비는 영원하십니다.”147)

산을 내려오면서 그들은 가난 부인을 그들이 머물던 집으로 데려왔다. 때는 이미 정오에 가까웠다.


형제들과 가난과의 향연


59. 준비가 끝나자, 형제들은 가난 부인에게 자기들과 함께 식사할 것을 간곡히 부탁했다.

여인이 말했다. “먼저 경당을 보여주십시오. 그리고 회의실, 뜰과 회랑, 식당, 주방, 침실, 마굿간, 예쁜 걸상들, 윤기 나는 탁자들, 거대한 집들을 보여주십시오. 나는 여기에 와서 아직 그런 것들을 못 보았습니다. 내가 본 것이라고는 원하는 것이면 무엇이나 다 갖고 있기나 한 듯 유쾌해하며 행복스러워하는, 그리고 위로에 가득 차 있는 여러분뿐이었습니다.”

그들이 답하여 말하였다. “우리의 부인이시여, 그리고 우리의 여왕이여, 당신의 종인 우리는 긴 산행에 시달렸습니다. 그리고 당신도 우리와 함께 오시느라 많이 힘드셨을 것입니다. 그러니 괜찮으시다면 우선 먼저 식사를 합시다. 한숨을 돌리고 나서 원하시는 것을 해 드리겠습니다.”


60. 그녀가 답하였다. “말씀 감사합니다. 그러면 손 씻을 물과 수건을 주십시오.”

그들은 재빨리 몸을 놀려 깨진 질그릇에다 물을 채워 가져왔다. 그 집에 성한 그릇이라곤 없었던 것이다. 그녀가 손에 물을 끼얹는 동안, 그들은 여기저기 수건을 찾아다녔다. 그러나 아무리 찾아도 수건이 보이지를 않자, 한 형제가 그녀에게 자기가 입던 투니카를 내밀었다. 그녀는 감사하는 마음으로 그것을 받아들고는, 마음속으로 하느님을 찬미하였다. 하느님께서 자기를 그런 사람들 가운데 있도록 해 주셨기 때문이었다.


61. 그러고 나서 그들은 식사가 준비되어 있는 곳으로 그녀를 안내하였다. 그녀는 식사하는 곳으로 들어가 둘러보았다. 거기에는 아무 것도 없었고, 보이는 것이라고는 보리와 밀기울로 만든 빵조각 서너 개가 풀밭에 놓여있을 뿐이었다. 그녀는 몹시 놀라서 중얼거렸다. “누가 이런 일을 일찍이 본적이 있었던가?148) 모든 사람을 보살피시는 주 하느님은 찬미받으소서. 주님께서는 언제나 무엇이든지 하시고자 하면 그것을 하실 힘이 있으시기 때문입니다. 이런 일을 통하여 당신의 백성에게 당신을 찬미하도록 가르치시는군요.” 그들은 둘러앉아서 하느님께서 내려 주신 선물에 함께 감사를 드렸다.


62. 잠시 후 가난 부인은 준비된 음식을 그릇에 담아서 달라고 하였다. 그런데 보라, 대접 하나에 덩그러니 냉수를 채워 온 것이다. 그 물에다 빵을 적셔서 먹기 위한 것이었다. 그릇도 많지 않았고, 준비된 음식도 보잘것없었다.

그녀는 요리 안 된 것이라도, 냄새 좋은 야채라도 달라고 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밭지기도 없었고, 밭이라는 걸 도대체 모르는 사람들이라서, 숲에서 들풀을 뜯어다가 그녀앞에 놓았다.

그녀가 말하였다. “조금 쓰군요. 소금 주시겠습니까? 간을 맞추어야겠습니다.”

그들이 말하였다. “부인, 기다리십시오. 마을에 나가서 구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누군가가 줄지도 모릅니다.”

그녀가 말하였다. “저 그렇다면 잘라야 되니, 칼 좀 주십시오. 그리고 방이 너무 딱딱하고 굳어서 빵도 잘라야겠습니다.”

그들이 그녀에게 말하였다. “부인, 우리는 칼을 만드는 대장공이 없습니다. 칼 대신에 이(齒))를 사용하십시오. 곧 부인을 위해서 칼 한 자루를 구해보도록 하겠습니다.”

“포도주 좀 있으십니까?” 그녀가 물었다.

그들이 답하여 말하였다. “부인, 포도주라곤 없습니다. 사람에게 꼭 필요한 것은 물과 빵뿐입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의 신부는 포도주를 독약인 양 피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63. 갖가지 음식으로 배를 채우는 것보다, 부족하지만 그 부족한 것을 서로 나눔으로써 배를 채운 그들은 이러한 은총에 하느님께 찬미를 드렸다. 그리고 그들은 피로를 풀어드리려고 가난 부인을 쉴 자리로 안내하였다. 그녀는 헐벗은 몸으로 헐벗은 땅에 누웠다.

그녀는 머리에 벨 푹신한 베개를 청하였다. 즉시 그들은 돌 하나를 집어다 그녀의 머리 밑에 밀어 넣었다.

그녀는 실로 가장 평화로운 숙면을 했다. 그녀는 일찍 일어나서 뜰과 회랑을 보여달라고 하였다. 그들은 여인을 어떤 언덕으로 데리고 가서, 그곳에서 내려다보이는 벌판을 보여주고 말하였다. “부인, 이것이 우리의 뜰과 회랑입니다.”


가난 부인이 형제들을 축복하고,

그들이 받은 은총에 머무를 것을 권하다


64. 그러자 그녀는 모두들 자기 둘레에 앉으라고 하고서 그들에게 생명의 말을 하였다. “넘치는 사랑으로 나를 여러분의 집으로 맞아들여 준 아들들이여, 하늘과 땅을 만드신 주 하느님께로부터 축복을 받으십시오. 오늘 여러분과 함께 있으면서 나는 낙원에 든 것이 아닌가 했습니다. 나는 위안을 받고 기쁨에 넘쳐 있습니다.149) 그리고 이렇게 늦게 여러분에게 온 것을 용서해 주십시오. 진정 주님께서는 여러분과 함께 계신데, 나는 그것을 몰랐습니다.150) 아, 내가 보고 싶었던 것을 지금 나는 보고 있고, 내가 소원했던 것을 지금 가지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천국에서 낭군으로 모시고 있는 그분의 모습을 나에게 보여준 여러분들과 나는 지상에서 하나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주께서 여러분의 굳센 힘에 강복하시고, 여러분의 손이 하는 일을 받아주시기를!


65. 지극히 사랑하는 나의 아들들께 간절히 바라며 구합니다. 성령의인도로 시작한 일에 꾸준하십시오. 사람들이 흔히 그렇듯이 완덕의 지향을 버리지 마십시오. 어둠의 온갖 덫을 피하고 가장 완전해지도록 분투노력하는 여러분들이 서원한 생활은, 가장 높고 인간을 초월하는 것이며, 인간의 힘을 넘어섭니다. 그리고 그 생활은 옛사람들의 완덕을 섬광처럼 비춥니다. 여러분은 천국에 들어갈 것이 분명하니 의심하지 않아도 됩니다. 왜냐하면 여러분은 이미 앞으로 영원히 받을 유산을 보증 받았고, 그리스도의 영광된 사람으로 표를 얻어서, 벌써 성령의 약속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모든 일에 있어서 여러분은 그분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분이 이 세상에 오셨을 때 모아들였던 초대교회의 사도들이나 신도들과 흡사하게 된 것입니다. 그분이 살아계실 때 신도들은 그것을 이루었지만 여러분은 그분이 안 계실 때 그것을 완벽하게 이루려고 시작하였습니다. 여러분은 이렇게 말해도 떳떳합니다. ‘보다시피 저희는 모든 것을 버리고 당신을 따랐습니다.’151)


66. 무서운 전투나 힘겨운 일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은 큰 상을 받을 것이니 말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믿음의 근원이시며 완성자이신 예수님만을 바라봅시다. 그분은 장차 누릴 기쁨을 생각하고 부끄러움도 상관하지 않고 십자가의 고통을 견디어 내셨으니,152) 여러분은 여러분이 고백하는 그 희망을 굳게 간직하십시오.153) 여러분이 달려야할 길을 사랑을 가지고 꾸준히 달려가십시오.154) 인내를 가지고 달리십시오. 여러분이 하느님의 뜻을 행하고 하느님께서 약속해 주신 것을 받으려면 인내가 반드시 필요합니다.155) 하느님께서는 여러분이 하느님의 거룩한 은총으로 시작한 초월적인 일을 마치도록 하실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약속에 충실한 분이십니다.


67. 하느님을 거역하는 자들을 조종하는 악령이156) 흡족해할 수 있는 그 어떤 것을 여러분에게서 발견하지 못하도록 하십시오. 절대로 흔들리지 마시고, 절대로 머뭇거리지 마십시오. 이는 악령이 여러분 안에서 여러분에 맞서서 자기의 사악한 일을 할 수 있는 거점을 찾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왜냐하면 악령은 뽐내고 우쭐대고 허풍치며 매우 건방지기157) 때문입니다. 악령은 여러분 때문에 노심초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악령은 여러분을 교활한 무기로 겨눌 것입니다. 그리고 악의의 독기를 여러분에게 주입하려고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전에 다른 사람들을 점령하고, 넘어뜨리어 그들을 자기 밑에 놓고 지배했었던 악령인지라, 자기 위에 있는 여러분을 가만히 보고 있지 못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68. “지극히 사랑하는 형제들이여, 천국의 모든 시민들이 여러분의 회두를 보고 큰 즐거움을 느끼고 있으며, 영원하신 임금님 앞에서 새로운 노래를 불렀습니다. 천사들은 여러분으로 인하여 여러분 안에서 기뻐합니다. 여러분을 통하여 많은 사람이 동정을 지킬 것이고, 도 정결로 찬연히 빛날 것이며, 동정들만이 특별한 자리를 차지하게시리 되어 있는 천국의 허물어진 도시가 다시 복구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결혼하지 않은 남자와 여자들은 하늘에 있는 하느님의 천사들처럼 될 것입니다.158) 사도들의 생활은 여러분에 의해 새롭게 빛나고, 그들의 가르침이 여러분에 의해 설교되고, 매우 거룩한 표양이 제시될 때, 그들은 그런 것을 보고 매우 흐뭇해 할 것입니다. 순교자들은 자기들의 거룩한 피가 쏟아져 흘러나옴으로써 자신들의 정절이 다시 새로워지리라는 기대 속에서 행복해하고 있습니다. 증거자들은 악마를 이겨낸 그들의 승리가 빈번히 일어는 것을 보고 기뻐 춤을 출 것입니다. 어린 양이 가는 곳이면 어디든지 따라가는159) 동정들은 그 숫자가 여러분을 통해서 매일 증가하는 것을 보고 기뻐할 것입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하늘에 있는 모든 궁정은 기쁨에 차 있습니다. 새로운 입주자들로 매일 연회가 베풀어지기 때문이며, 지상의 골짜기에서 피어오르는 거룩한 기도의 훈훈한 향기로 끊임없이 그들이 새로워지기 때문입니다.


69. 그러므로 형제 여러분, 하느님의 자비가 이토록 크시니 나는 여러분에게 권고합니다.160) 하느님께서 여러분에게 이렇게 가나나한 생활을 선택하게 하셨으니, 여러분은 여기에 들어올 때 지녔던 그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십시오. 바빌로니아의 강가에서 산에 오르려 했던 그 목적을 가지고 살아가십시오. 여러분에게 주어지는 은총을 겸허하게 받아들이십시오. 그 은총을 여러분을 위해서 죽으신 예수그리스도께 영원한 찬미와 영광과 영에를 드리는 데에 가치 있게 사용하십시오. 우리의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영원한 영광의 하느님이시며, 성부와 성령과 함께 세세대대에 영원히 살아계시고 다스리시며 지배하시고 통치하십니다. 아멘.”


이 책은 복되신 프란치스코께서 서거하신 후 천주 강생 1227년161) 7월에 완성되었다.



역자 후기


가난을 정확하게 파악하여 정곡을 찌르는 데는 시원하다 못해 통쾌하기까지 하였다. 저자의 날카로운 지성(知性)에 혀를 내둘렀다. 더구나 시극(詩劇)이라는 문학 형식을 빌어서 가난을 전하니, 그 생명감이 더해진다.

또한 고전의 가치성이 여지없이 드러나는 작품이다. 역시 고전은 영원한 것이고, 누구나 읽어야 할 것임을 새삼 느꼈지만, 과연 현대인들에게 이 작품이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궁금하다. 어찌되었든 이 작품 하나에서 가난의 본질을 알아들으면 전기물 수십 편을 읽는 것보다 앗지 않을까 싶다.

성균관대학교 성찬경 교수의 도움으로 문장을 다듬었다. 그리고 해득하기 어려운 부분은 이번에도 배요셉 형제의 도움을 받았다.

AD CLARAS AQUAS, FLOTRENTIAEQUARACCHI A PP. COLLEGII S. BOMNAVENTURAE에서 1929년에 나온 라틴어본(本)을 우리말로 옮겼다.


1985년 7월 15일

역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