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프란치스코

성 프란치스꼬의 여행과 꿈/메레이 버도 신부

Margaret K 2017. 12. 11. 21:49

성 프란치스꼬의 여행과 꿈

-메레이 버도 신부-




차례 

* 첫머리에 *


* 1 *

(1)꿈의 여로

(2)

 (3)스뽈레또에서의 꿈

 (4)새로운 탄생

(5)동굴

(6)고독

(7)청빈의 귀부인

(8)최초의 승리

(9)그 새로운 날

(10)성다미아노 성당

(11)아버지와의 결별


* 2 *


(1)해방된 사람

(2)그리스도의 사명(使命)

(3)어릿광대

(4)바람에 불리어

(5)음유시인

(6)프란치스꼬의 신비적 혼인

(7)악령과 천사

 (8)형제

(9)맛세오 형제

(10)완전함과 성실함

(11)전쟁

(12)청빈과의 신혼시대

(13)교황과 거지

(14)글라라

(15)혁명적 인간

(16)형제애

(17)지네쁘로 형제

(18)종달새와 참새

 (19)세 개의 정점

 (20)작은 꽃

(21)청빈의 귀부인과 글라라

(22)굽비오의 이리

(23)이름이 없는 삶

(24)원탁의 기사

(25)초상화가 진열된 화랑

(26)비행의 꿈

(27)상인의 아들

(28)레오 형제

(29)평화의 기도

(30)복음의 증인

(31)크렛치오 동굴의 아침

(32)크렛치오의 성탄

(33)노동의 아름다움

(34)사랑

(35)꿈을 좇는 사람들

 (36)고행의 의미

(37)형제인 당나귀

(38)산에 내리는 비

(39)세상의 이방인

(40)미사

(41)산상의 은둔처

(42)스바시오 산의 비

 (42)갑옷과 홑옷

(43)카나리아

(44)구비오 주교


* 3 *


(1)여행과 꿈

 (2)황수선

(3)최대의 유혹

(4)산 위의 사람

(5)계절과 날씨

(6)라 베르나 산

(7)악령의 미망(迷妄)

(8)라 베르나의 찬가

(9)병에 대하여

 (10)옷에 대하여

(11)실의에 대하여

(12)찬미 받으소서, 내 주님

 (13)참된 동반자

(14)여성의 힘

(15)사랑의 축복

(16)평화를 얻기 위한 폭력

(17)생애의 최후의 날

(18)길 위에서

(19)아씨시를 찾아올 작은 이들

(20)그리스도의 상흔

(21)자매인 죽음

* 끝맺음 *




여행과 꿈

여행과 꿈. 이 두 개의 것이 프란치스꼬의 인생을 크게 변화시켰다. 말하자면 이 둘은
프란치스꼬라는 존재를 짜는 실의 한올 한올을 꼬아나갔던 것이다. 스바시오 산 위에 선
그는 사랑하는 고향 마을과 산 아래 펼쳐진 평야, 멀리 보이는 산들을 오래오래 바라보았다.
그렇게 바라보고 있으려니까 산들은 작은 들판이 모여 겹쳐져서 하나의 높이에 이르러,
주위의 땅을 하느님에게 드리려고 받쳐들고 있는 모습으로 보인다. 그리고 그들 높은
곳에서는 여행의 어려운 지점이나 길의 굴곡이 환히 잘 내다보였고, 벌판 위에 자욱이 끼어
꿈을 흐리게 하며 산의 모습을 시계로부터 지워버리고마는 아지랑이나 안개의 움직임도 잘
알 수 있었다.

산바람이 얼굴과 해어진 옷자락을 들치며 불어닥치는 추위도 잊은 듯 여전히 산꼭대기에 서
있는 프란치스꼬는 그토록 큰 고통과 공포, 곤란과 노고 속에서 지금까지 잘도 꿈을 지녀올
수 있었다고 스스로 놀라는 것이었다. 물론 자기 혼자의 힘만으로 된 것은 아니다. 꿈을
간직해 온 사람은 프란치스꼬라기보다는 오히려 예수님이었다. 예수님! 그 이름은 얼마나
부드러운 울림을 그의 마음에 전해주는 것인가. 언제나 곁에 계셔주시면서 꿈을 보내주시고
여행을 계속하게 해주셨던 분! 프란치스꼬는 사랑의 지탱이 없이는 어떤 사람도 이
들판에서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가 형제들에게 써 보낸 편지는 거의 그
일에 대한 것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그에게 있어서 사랑의 의지는 주 예수 그분이었다.

주님은 언제나 끊임없이 속삭여주셨다.

"프란치스꼬, 작은 자여. 나의 사랑을 의심하지 말라. 나는 결코 너를 버리지 않는다."

주 예수만큼 충실한 벗이 또 어디에 있을까.

프란치스꼬는 미사 중에 언제나 주님의 임하심을 특별히 생생하게 느꼈다. 단지 주님의
몸과 피로써 부양되고 있다는 것뿐만 아니라 성체가 제단 위에 안치되어 있는 교회 안에
언제나 예수님이 계셔주시고 그 현존에 의해서 그는 지탱되고 부양됨을 알았다.
프란치스꼬가 주님의 교회를 깨끗이 꾸며두는 일에 관해서만은 타협하지 않고 고집을 세운
것은 바로 그 때문이었다, 교회 안에는 주님이시며 왕이신 동시에 형제이시며 구세주이신
그분께서 특별한 모습으로 머물러 계시는 것이다. 교회는 주님의 성(城)이므로 그리스도의
기사인 프란치스꼬는 온나라 안을 돌아다니며 그 성에 뭔가 잘 어울리지 않는 오점이
없도록 주의 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생명의 빵은 여행의 양식이며, 주님의 현존은 꿈에게
생명을 보내주셨다. 여행의 길동무가 이렇게 늘 진실된 분이 아니었더라면 도저히
여기까지는 오지 못하였을 것이다.

예수님은 지금 프란치스꼬가 서 있는 곳과 같은 높은 산꼭대기에만 계시는 분이 아니다.
높은 곳에 서서 따르는 자들을 아득히 먼 아래로 굽어보고 계시는 것이 아니라 산에서
내려오셔서 따르는 자들이 여행을 계속하는 들판에까지 오신다, 먼지투성이의 길을 함께
여행하는 두 사람의 나그네, 바로 예수와 주님에게 충실히 따르는 기사의 모습이다. 하지만
그 모습에는 왕의 권위와 같은 것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차라리 짐차를 뒤에 끌고 있는
두 마리의 소와 흡사하다 - 짐차를 끄는 두 마리의 소.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하신 복음의 말씀을 읽을 때마다 프란치스꼬는 그 상상을 떠올렸다. 옆에 계시면서
함께 멍에를 짊어져주시는 분이 주님 자신이라는 것을 알면 어떠한 멍에도 지기 쉽고, 끌고
가는 것이 꿈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 그 짐은 참으로 가벼울 것이다. 주님과 내가 두 마리의
소처럼 나란히, 나비의 날개로 만들어진 짐차 속에 길게 끄을리는 보드라운 비단같은 꿈을
끌고 간다 - 프란치스꼬는 그렇게 상상해 보는 것이없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꿈을 좇아 출발했으나 도중에서 좌절하고 말았다. 그들은
자기 혼자의 힘으로 멍에를 짊어지고 가려하다가 모든 것을 못쓰게 만들고 만 것이다.
멍에의 반대 쪽이 땅에 질질 끌리는 것을 보고 어떻게 해보려고 미친 듯이 몸을 구부린다.
그 결과 수레는 기울어지고 더럽혀져서 제 모습을 잃게 된 꿈은 어느 누구의 눈에도
어리석게 보이게 된다. 두 마리가 끌도록 설계된 수레는 두 마리가 힘을 합치지 않으면
끌고갈 수 없으며, 어떠한 꿈이라고 꿈이라고 할 때 한 사람이 독점할 수 없는 것이다.
꿈이란 서로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다. 그렇게 때문에 꿈을 짊어지고
가는 데는 사랑하는 사람과의 협력이 불가피한 것이며, 또한 꿈을 살려가는 데는 여행이
불가결한 것이다.


* 첫머리에 *

이탈리아의 중부, 움브리라 지방에 펼쳐진 평야는 완전히 자유롭게 그 무엇에도 구속받는
일이 없었던 한 사람의 마음의 평화를 오늘도 여전히 숨쉬고 있는 듯이 보인다.
1182년 소도시 아씨시에서 태어난 영혼의 주인 아씨시의 성 프란치스꼬는 성인으로서
시인으로서 그리고 작고 가난한 자로서 온 세계에 널리 알려져 있다. 오늘날도 움브리아의
전원풍경 속을 걷노라면 성프란치스꼬의 평화로운 혼이 마음에 스며드는 것을 느끼며
현대에 사는 우리들도 프란치스꼬와 같이 완전한 기쁨에 도달하는 일이 불가능하지는
않다는 것을 믿게 된다. 물론 대부분의 사람은 거기에 도달하기 위한 조건이 너무도 높고
손이 닿지 않는 것이라고 느낄 것이다. 프란치스꼬가 평화와 기쁨에 도달할 것은 완전한
이탈을 통해서였기 때문이다.

이 글은 그 이탈이 어떠한 것이었는가를 더듬어 가 보려는 시도이다. 이야기는
프란치스꼬의 죽음에서 시작하여 죽음으로 끝난다. 중간에 삽입된 부분은 모두 기억이며
거기서 취급되는 사건은 단편적이어서 이야기로서의 일관성은 가지고 있지 못하다.
그러므로 프란치스꼬 그분이 이 이야기들을 이어주는 끈이 되어주기를 간절히 바라게 된다.

이 글은 프란치스꼬의 전기가 아니다. 그런 종류의 책을 쓸 준비도 의도도 나에게는
없다. 나는 단지 내가 본 프란치스꼬를 그려 보고 싶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자신도
예상하지 않았던 새로운 프란치스꼬상(像)을 만났던 것이다.

끝으로 이 책을 쓰도록 권고해주신 제레미 하린튼 신부님과 집필중 끊임없이 격려해주신
로져 후자 관구장님 및 좋은 모범을 보여주심으로써 나에게 꿈을 주고 여행을 가능케
해주신 프란치스꼬의 모든 형제들에게 감사를 드리고 싶다.

--저자 머레이 버도 신부--



(1) 꿈의 여로

그는 고열에 시달리면서 누워 있었다. 타는 듯한 아픔이 등을 꿰뚫고, 마침내 오랜 시간 기다리고 기다리던 일이 시작되려 하는 것을 그는 알았다. "주여, 나의 영혼을 감옥으로부터 해방시켜 주십시오." 이날, 형제들은 아침나절에 마을 밖으로 넓게 펼쳐진 평야 한 가운데에 세운 천사의 성마리아 소성당으로 그를 실어왔던 것이다. 아씨시로부터의 가파른 언덕길을 내려가는 도중 프란치스꼬는 그곳의 나병원에서 한숨 쉬어가게 해달라고 형제들에게 부탁하여, 거기서 아씨시의 거리를 향해 최후의 축복을 주었다. 이미 그의 눈은 거의 시력을 잃어버리고 있었는데도 그는 거리의 광경이 색채가 선명한 피륙처럼 눈앞에 넓게 펼쳐지는 것을 보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아마도 육안으로써가 아니라 마음으로 보았을 것이다. 오늘, 거리의 모습은 그날과는 얼마나 달라져 있는 것일까? 벌써 여러 해가 지난 옛날이다. 그날 오랜 병상에서 겨우 일어나 아직도 떨리는 다리로 푸른 언덕을 올라가 보았지만 주위의 경치는 하나도 그의 마음을 즐겁게 하지 못하였다. 당시 그는 막 스물 두 살이 되었을 때였다. 그날은 매우 쾌청한 날씨여서 거리의 지붕들이 빨간색, 분홍색, 흰색의 깃털이불처럼 햇빛에 빛나고 있었던 것을 기억한다. 그러나 그 아름다움은 오히려 그의 마음을 침잠시킬 뿐이었다. 무겁고 암울한 기분이 마음을 사로잡았으나 그 원인이 무엇인지 스스로도 잡지 못하였고 또 알고 싶지도 않았었다. 무거운 걸음으로 언덕을 올라가는 프란치스꼬를 만나는 사람들은 저마다 병의 쾌유를 축하하는 인사말을 던졌다. 그러나 그런 인사도 그는 순수하게 받아들여지지가 않았다. 틀림없이 그들 사이에선 "베드로의 아들, 쓸모도 없는 자식이 걸어가는구나. 저 얼굴 빛을 좀 봐, 가엽게 … 다리도 부들부들 떨고 있어. 하지만 우리들이 마음쓸 일은 아니지. 우리들이 감히 쳐다볼 수 없는 유복한 생활을 하고 있고, 거기다 무엇보다 아직 젊고 전도가 양양하니까." 라는 말을 서로 주고받고 할 것이 틀임없다고 상상했던 것을 기억하고 있다. 그 무렵의 자신이 베드로 베르나르도오네의 맏아들로서 명성있고 돈 있고 사람들에게 그저없이 떠받들리고 하던 바로 그 일들 때문에 얼마나 공허한 절망감에 빠져 있었던가를 그 사람들이 알아 주었었다면 … 이미 그에게는 이같은 모든 일이 참으로 허망한 것으로 보이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러나 겨우 스물 두 살의 젊은이였던 그는 스바시오 산의 정상에 서서 거리를 내려다보았을 때 어떤 운명이 자기를 기다리고 있으며, 그 운명에 의해 자신이 이 아름다운 거리의 자랑이 될 날이 언젠가는 오리라는 것을 믿었던 것이다. 언제 어디서 그 운명을 만나게 될 것인지는 자신도 알 수 없었지만 그의 마음속 깊은 곳에선 밤낮으로 자신을 괴롭혀 온 기사(騎士)에의 꿈에 몸을 맡겨 빛나는 길을 가야 하지 않을까? 그 길에야말로 자신의 미래가 있는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했던 것이다. 머리와 가슴과 등줄기에 통증이 다시 일어났다. 프란치스꼬의 꿈은 잠시 끊어졌다. 그는 몹시 기침을 하며 한층 더 손에 힘을 주어 십자가를 꽉 잡았다. 심한 고통은 차츰 감각을 마비시키고 그는 또다시 천천히 과거의 기억 속으로 이끌어져 들어갔다… 23년 전 어느 날, 마을 가까운 언덕 위에 섰을 때 그는 이미 청춘의 환멸을 깊이 알아버렸다. 또 앓고 있는 동안에 무언지 대단히 슬픈 변화가 자신에게 일어났다는 것도 깨닫고 있었다. 따라서 만일 그 '꿈'을 꾸지 않았더라면 자신은 그 시점에서 행복해지리라는 희망을 완전히 상실하고 절망에 빠져버렸을 것이다. 스바시오 산의 정상에 서서 불과 스물 두 살로 자신의 청춘과 인생까지도 끝나버린 것이 아닐까 하고 완전히 기운을 잃고 있던 그날로부터 수주일 후 그는 바로 그 '꿈'을 꾸었다. 그리고 모든 것이 영원으로 변했다.


(3)스뽈레또에서의 꿈

"프란치스꼬여, 주인을 섬기는 일과 종을 섬기는 일 중에 어느 편이 옳다고 생각하는가?" "물론 주인을 섬기는 일입니다." "그렇다면 어찌하여 너는 주인과 종을 뒤바꾸는 일을 하고 있는가?" "주여, 내가 무엇을 하기를 원하십니까?" "프란치스꼬여, 집으로 돌아가거라. 그리고 최초에 본 환영의 의미를 다시 잘 생각해 보도록 하여라. 너는 외관(外觀)에만 사로잡혀 있어, 참된 영광과 명성의 의미를 깨닫지 못하고 있다. 너는 기사가 되고 싶다는 자신의 희망과 그 꿈에 본 환영을 너무 성급하게 결부시켜버리고 만 것이다." 이렇게 하여 완전히 눈이 뜨인 지금, 프란치스꼬는 두려움 속에서도 자신이 지나치게 제멋대로 속단하고 달려갔던 일을 알게 되었다. 그는 자기 안에 숨어 있는, 무엇이든 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하나의 조바심으로 하여 너무 성급하게 행동해버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우선 첫째로 참을성있게 기다리면서, 지금껏 상상도 하지 못하였던 깊은 곳으로부터 들려 오는 소리를 듣기 위해 귀를 맑게 하고 마음을 깨끗하게 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자신의 영예를 원하는 조급한 마음에 신의 의지를 결부시키려고 했던 것이다. 그 때문에 충분히 '들으려고' 하지 않았던 것이다. 아씨시로 돌아올 때 길이 그의 발밑에서 흔들리는 것 같았다. 기사의 옷차림으로 혼자 거리로 돌아온 그의 모습은 마치 전세계를 향하여 커다란 목소리로 "나는 퇴각한 것이다!"라고 소리치고 있는 듯하였다. 그러나 그는 그를 스치고 지나가면서 경멸과 비웃는 눈길을 퍼붓는 농사꾼들에게는 전혀 마음을 쓰지 않았다. 오히려 그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되었다. 사실 자신은 훌륭한 군마(軍馬) 위에 올라앉아 있을 게 아니라 그 사람들처럼 걸어서 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씨시로 향한 길은 로마 시대에 건설된 프라미니안 가도(街道)였다. 일찍이 이 가도를 제국의 위세에 대한 흔들리지 않는 자신과 긍지를 지닌 로마 군단이 위풍당당하게 왕래했던 것이다. 군단은 훠링뇨 가까운 그리도우노 샘(泉)에서 잠시 휴식하면서 샘의 요정에게 용감하게 싸움에 임할 용기와 승리를 기원하곤 했다. 그 맑은 샘가를 지나가는 프란치스꼬의 마음속에선 이미 영예를 원하는 꿈은 사라지고, '싸움', '승리' 따위의 말들은 어느덧 공허한 울림밖엔 주지 않았다. 그 누군가가 프란치스꼬는 이제야말로 로마의 길로부터 결정적으로 떠나려 하고 있다고 외치는 것 같았다.



(10)성다미아노 성당

가까운 시일 안에 하나의 시험을 치러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른바, 그가 두려워하면서도 또한 우러러보고 있던 것에의 입문식이었다. 그는 이 새로운 감정이 오래 계속되지 않을까 보아 겁을 먹고 있었다. 과거에 몇 번이나 감정의 부침을 체험해 왔었고 새로운 흥분에 대해서도 그다지 신용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앞서의 꿈에 관해서는 정서라든가 기분이라고는 할 수 없는 차라리 하나의 확신 혹은 신념에 가까운 그 무엇을 느끼고 있었다. 어느 날 그는 이런 일들을 생각하면서 작고 낡아빠진 성다미아노 성당으로 가고 있었다. 성당 앞에 이른 그는 한 순간 주저하다가 곧 용기를 내어 안으로 들어갔다. 제대 위에는 비잔틴 양식의 커다란 십자가가 걸려 있었다. 내부로부터의 힘에 끌리듯 그는 무릎을 꿇고 열심히 기도하기 시작했다. "주 예수여, 당신은 저에게 무슨 일을 시키려 하십니까? 지금까지 저는 스뽈레또의 꿈을 생각하며 그때 저에게 말씀하시던 분이 진정 당신이었는지 아니면 기사가 되기 위해 받으려 했던 불의 세례에 대한 저의 열광에서 비롯된 것에 불과한지 줄곧 질문해 왔습니다. 주여, 그 꿈은 저를 몹시 괴롭히고 있습니다. 도대체 그것은 무엇이었습니까? 어찌하여 그같은 꿈과 말씀을 저에게 내려주셨습니까? 주여, 저는 대체 누구입니까?" 프란치스꼬는 돌바닥에서 머리를 쳐들고 뚫어질 듯이 그리스도의 눈을 들여다보았다. 그 눈은 살아 있는 듯한 깊이를 지니고 있었다. 갑자기 그리스도의 얼굴 전체가 움직인 것처럼 생각되어 프란치스꼬는 무서움을 느꼈다. 그 순간 어딘가 먼곳에서부터 울려오는 듯한 맑고 낭랑한 목소리가 프란치스꼬의 마음을 꿰뚫었다. 틀림없이 십자가에서부터 들려오는 목소리였다. "프란치스꼬, 가서 쓰러져가는 나의 교회를 다시 일으키시오." 프란치스꼬는 환희에 떨었다. 그는 다시 그 목소리가 들려오지 않을까 하여 주의깊게 귀를 기울이며 십자가 위의 얼굴을 뚫어지게 지켜보고 있었다. 그러나 거기엔 이미 아무런 움직임도 보이지 않았고 그 이상의 말씀을 하실 것같은 조짐도 없었다. 프란치스꼬는 오랫 동안 꼼짝도 하지 않고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그처럼 분명한 요청을 받은 일에 대하여 거듭거듭 뜨겁게 감사를 드린 그는 즉시 성당의 보수공사에 착수했다. 프란치스꼬의 뇌리에는 그리스도의 요구가 실제로 황폐한 건물의 보수 이상의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전연 떠오르지 않았다. 때문에 그는 당장에 성다미아노로부터 달려나와 무너져가는 성당을 수리하기 위해 돌을 모아들이는 일에 착수했다. 그는 우선 성다미아노부터 손을 대기 시작했다. 거의 열광적이라고 할만치 그는 모든 정신, 모든 힘을 이 새로운 일에 기울였다. 그 꿈과 목소리에 대한 우직할 정도의 온순이야말로 프란치스꼬의 전생애를 통해 볼 수 있는 그리스도 복음에의 전면적이고도 철저한 봉사생활을 일관해 온 커다란 특징이라고 하겠다.




해방된 사람

굽비오로 통하는 그 꼬불꼬불한 산길. 성우발도 산상의 작은 거리 굽비오. 아씨시와 비슷한 그 거리를 몇 번 찾아간 여행의 추억은 언제나 그립게 가슴에 되살아난다. 더욱이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되었을 때 흔연히 받아준 친구 프레데릭을 생각하면 그리움은 한층 더 간절해지는 것이었다. 아버지를 저버린 1207년 4월, 프란치스꼬는 농사군이 입는 작업복 차림으로 굽비오를 향해 가고 있었다. 울창한 숲으로 덮인 산길을 지나는 굽비오를 향한 나그네길은 프란치스꼬에게 있어서 낙원을 소요하던 아담의 최초의 산책과도 비슷한 것이었다. 4월의 하늘은 맑게 개어 있고 태양은 밝게 빛나고 있었다. 계곡에는 아직 눈이 남아 있었고 대기는 차고 상쾌하였다. 프란치스꼬의 마음은 참으로 자유로왔다. 긴 병을 치른 후의 상심을 안고 아씨시의 언덕을 헤매던 무렵과는 아주 다른, 마치 전세계가 자신의 것이기나 한 것처럼 생각되었다. 사람이라면 누구든 매어달려 벗어나지 못하는 '내 몸의 안전'을 포기함으로써 자연은 낙원으로 바뀌어진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전연 생각지 못하였던 것이기에 그 놀라움이 기쁨을 한층 큰 것으로 만들어주었다. 즐거울 때면 언제나 하듯이 프란치스꼬는 마음에 넘쳐 흐르는 기쁨을 프로방스 음유시인의 노래에 실어서 부르기 시작하였다. 산꼭대기를 지나 바르파브리가를 향해 내리막 길에 들어 섰을 때 프란치스꼬는 등뒤에서 나뭇잎 스치는 소리를 들었다. 커다란 목청으로 노래하면서 뒤를 돌아본 프란치스꼬는 산적의 두목과 정면으로 얼굴을 마주치고 말았다. 두목과 주위에 둘러서 있던 졸개들은 프란치스꼬보다 더 놀라고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프란치스꼬가 계속하여 "나는 위대한 임금을 예언하러 왔다." 라고 노래를 불렀을 때는 분명 간담이 써늘했을 것이다. 그때의 산적 두목의 얼굴이 떠오를 때마다 프란치스꼬는 웃음을 터뜨리지 않을 수 없다. 두목은 어깨를 움츠리고 둘째 손가락으로 자기 머리를 가리키며 뱅글뱅글 작은 동그라미를 그려 보였다. "아무래도 이 사내 돌았지." 졸개들은 일제히 와하, 웃음을 터뜨리고 프란치스꼬도 함께 웃음이 터져버렸다. 그러나 다음 순간 졸개들에게 붙잡힌 그는 눈이 쌓인 바위틈으로 던져지고 말았다. 까마득하게 높은 곳에서 산적들은 모자를 휘두르며 큰소리로 놀려대다가 사라졌다. 프란치스꼬는 무진 애를 써서 간신히 눈 속에서 기어나왔다. 그러는 동안에도 노래는 그치지 않았고, 그는 산적들 이상으로 그 일이 재미있었다. 그는 옷의 눈을 털고 다시 산길을 걷기 시작하였다. 굽비오에 있는 친구들은 자기를 만나면 얼마나 놀랄까? 이야깃거리가 산처럼 쌓여 있다. 지금 자신이 경험하고 있는 이 해방감을 조금이라도 전해주고 싶다. 친구들에게 들려주기 전에 이 감정이 사라져버려서는 안된다는 생각이 들자 자연히 굽비오로 향하는 발걸음도 빨라졌다. "프란치스꼬인가? 그렇구나, 프란치스꼬!" 산길을 내려오는 모습을 발견한 친구는 걸음걸이로 프란치스꼬를 알기는 하였지만 그가 입고 있는 옷차림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프란치스꼬, 도대체 그 옷차림이 뭔가?" "옷이 아니야, 프레데릭. 이것은 내 새로운 생활, 새로운 자유지." 팔짱을 끼고 프레데릭의 집을 향해 걸으면서 프란치스꼬는 자초지종을 털어놓고 이야기했다. 프레데릭이 매일 동굴까지 따라와 그가 기도하는 동안 밖에서 기다려주었던 그 아씨시에서의 나날, 그 뒤에 일어났던 모든 일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동안 프레데릭의 눈시울은 젖어갔다. 그것을 본 프란치스꼬는 이 친구는 자기를 이해하여 준다는 것을 알았다. 친구의 집에 머무른 기간은 극히 짧았다. 그것은 프란치스꼬가 굽비오의 나환자들과 함께 살 것을 굳이 고집했기 때문이다. 그 짧은 동안 프레데릭은 은둔자풍의 옷과 허리끈과 샌들을 프란치스꼬에게 마련해주었다. 그것은 프란치스꼬 생존시에는 물론 그 후에도 오랜 동안 작은 형제회의 수도복이 되었던 것이고, 이 호의에 대하여 프란치스꼬는 언제까지나 감사하는 마음을 잊지 않았다. 새로운 복장을 한 프란치스꼬는 아침이 되면 프레데릭의 집을 나와 나환자들이 있는 곳으로 가서 그들의 상처를 씻어주거나 여러 가지 신변의 일을 거들어주면서 지냈다. 프란치스꼬는 그 무렵의 목가적인 나날과 거기서 맛보았던 마음의 기쁨을 잊을 수가 없었다. 프레데릭과 그가 살고 있는 작은 마을에 대한 특별한 애정도 그의 마음속에서 사라진 적이 없었다.



프란치스꼬의 신비적 혼인

그리스도에게 마음을 빼앗기기 전의 프란치스꼬에게는 사랑에 대하여 말하는 것이 아주 쉬웠다. 그러나 주께 마음을 빼앗긴 이래로 그와 그리스도 사이는 신성한 사랑으로 맺어져, 다른 모든 것에의 사랑도 이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으로 흡수되어 버리는 것 같았다. 이제는 미사에서 복음의 낭독을 듣는 것은 주께서 직접 그를 향하여 말씀하시는 것을 듣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한마디 한마디가 사랑의 말씀이었다. 프란치스꼬는 그 말씀을 하나하나 듣는 대로 다 삼켜버렸다. 그리고 그것을 자기 안에 완전히 동화시키려고 노력하였다. 그는 말씀과 하나가 되기를 원했다. 하느님 말씀을 글자 그대로 자기의 것으로 만들고 싶었다. 하느님 말씀은 하느님으로부터의 부르심과 다름이 없었다. 예수는 말씀이시고 사람이 되심으로써 그 사랑의 말씀이 육화되신 것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수는 말씀이시다. 때문에 프란치스꼬는 복음서의 낭독을 듣고 있을 때 예수 자신이 귀로 들어오시는 것을 느낀다. 그리고 주께선 당신의 현존에 의하여 프란치스꼬의 전존재를 채워 가시는 것이었다. 귀로부터 들어오신 말씀은 그의 안에서 육화되시는 것이었다. 그 예수께서 내놓은 요구는 쉬운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것은 사랑하기 때문에 하시는 요구이므로 과중하면 과중할수록 예수께서 그것을 요구해주셨다고 하는 기쁨이 커지는 종류의 것이었다. 그것은 세상의 연인들이 서로 교환하는 선물과는 비교할 수 없는 커다란 특권이었다. 프란치스꼬는 예수와 함께 있는 기쁨을 햇빛으로 몸을 감듯이 전신에 감고 있었다. 만일 주께서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으셨다면 그는 분명 수(數)에도 끼지 못하는 자가 느끼는 그 무시된 쓸쓸함을 느꼈을 것이다. 마치 국가의 이익을 지키기 위한 원정에서 제외되어 고아와 과부의 수발이나 들며 집지키는 일이나 하명받은 기사처럼. 예수의 요구가 과중한 것이었기에 그는 자기가 사랑을 받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 요구 가운데 최대의 것은 복음서를 통하여 말씀하시고 있는 예수 당신을 위하여 모든 것을 버리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버리면 버릴수록 그는 풍족해지는 것이다. 예수님이 버릴 것을 요구하는 것은 마치도 그것을 프란치스꼬에게 선물로 되돌려주는 기쁨을 얻기 위한 것처럼 보였는데 프란치스꼬가 주께 바친 것은 주께서 반드시 그의 손에 돌려주셨기 때문이다. 둘은 서로 더 많은 것을 상대방에게 주기 위해 끝도 없는 자기 포기를 다투어 하였다. 둘은 서로 이해하고, 이 세상의 남녀의 결합이 그에 미칠 수 없을 만큼 깊이 일체를 이루었다. 이것이야말로 프란치스꼬가 원한 사랑의 모습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독신생활은 그에게 있어서 결코 불모라는 개념이 될 수 없었다. 우선 첫째 교회 안에서의 어떤 역할을 완수하기 위해 독신을 지킨다는 식의 생각이 그의 머리 속에 전혀 없었다. 그것은 좀더 적극적으로 하느님 나라를 위해 스스로 선택한 동정( 童貞)이라고나 할까. 결혼을 포기하는 것으로서 인간적으로 위축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한층 더 많은 사람을 사랑할 수 있게 되는 것이었다. 프란치스꼬는 정결을 완전한 모습에까지 개화시켰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가정보다 훨씬 더 넓은 세계로 옮겨간 것이다. 더욱이 프란치스꼬는 철저하게 그리스도와 자기를 일체화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리스도와 같은 정결한 생활 이외의 방법은 생각할 수도 없었다. 프란치스꼬에게는 예수의 정결이 자기에 대한 전면적인 사랑을 가능하게 한 것처럼 생각되었고 또 그 반대의 경우도 성립되는 것처럼 생각되었다. 프란치스꼬 생애에 나타나는 역설, 즉 예수에 대한 배타적인 사랑이 모든 사람에게 향하는 사랑을 가능하게 했다고 할 수 있다. 그가 일단 포기한 인간에의 사랑이 폭포수처럼 그의 가슴에 다시 되돌려져서 모든 사람에 대한 사랑의 봉사를 가능하게 했던 것이다. 프란치스꼬의 영혼 속에는 끊임없이 신선하고 맑은 사랑의 샘물이 부어지고 그것이 그의 마음에서부터 타인에 대한 관심, 애정, 봉사가 되어 흘러나왔다. 예수의 살아 있는 생수(生水)가 그의 것이 되고 그것에 의해 그는 모든 피조물을 향해 부어지는 사심없는 사랑의 샘이 될 수 있었다.


교황과 거지

우리들의 혼이 생각지도 않은 때에,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자기와 너무 닮은 혼을 만난다는 사실은 참으로 인생의 경이로운 일 중의 하나라고 할 수밖에 없다. 프란치스꼬는 교황 인노첸시오 3세와의 회견 때 바로 그러한 체험을 가게 되었다. 그 뛰어난 인물도 광신적 색채를 띤 일에 대해서는 프란치스꼬와 마찬가지로 철저한 불신감을 갖고 있었다. 첫 번째 알현에서 이미 프란치스꼬는 교황의 날카롭게 꿰뚫어보는 듯한 시선의 배후에 생동하고 있는 마음을 알 수 있었다. 교황의 눈길은 프란치스꼬의 어두운 마음 구석구석을 꿰뚫는 빛의 화살과 같았다. 그러나 알현이 끝났을 때 교황이 생각하고 있는 일이 어떤 것인지 프란치스꼬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모든 것이 미결인 채 프란치스꼬는 교황의 앞을 떠났다. 후에 교황이 프란치스꼬에게 이야기한 바에 의하면 그날 밤 그는 꿈을 꾸었다. 꿈속에서 교회의 어머니라고 할 수 있는 라떼란의 성요한 성당이 눈앞에서 한쪽으로 기울기 시작하더니 땅 위에 쓰러져갔다. 성당이 거의 땅에 무너져내리는 순간 한 작은 거지가 어둠 속에서 뛰어나와 쓰러져가는 건물을 자신의 어깨로 받쳤다. 겨우 안심하는 순간 잠을 깼다. 너무나 생생한 꿈에 두려움을 느끼면서도 교황은 그 거지가 바로 낮에 만났던 아씨시의 빈자 프란치스꼬임을 분명히 알았다. 이미 말한 것처럼 교황은 꿈같은 것은 전혀 신용하지 않는 성격이었지만 이번의 꿈만은 거스르기 어려운 힘을 느꼈다. 그는 프란치스꼬와 형제들을 다음날 다시 불렀다. 프란치스꼬가 교황 인노첸시오 안에서 자기와 같은 마음을 발견한 것은 그 알현 때였다. 교황의 온 인격이 어린이와 같이 단순하면서도 진지함과 성실함 속에서 빛나고 있었다. 그는 프란치스꼬가 구걸을 하기 위해 만난 사람들과는 달리 정면으로 프란치스꼬의 눈을 주시하였다. 프란치스꼬는 그 솔직성과 천진함을 평생 잊지 못하였다. 인노첸시오( 천진함)라는 이름은 기실 얼마나 그에게 적합한 이름이었던가. 프란치스꼬가 긴 시간을 두고 신중하게 꿈이야기를 설명하여가는 동안 교황의 눈이 젖기 시작했다. 그 눈은 프란치스꼬에 대한 사랑을 말하고 있었다. 그 순간 프란치스꼬는 그 꿈이 바로 하느님으로부터 온 것임을 알았다. 동시에 엄격하지만 부드러운 마음을 가진 교황이 그 꿈을 하느님 교회의 계시로 받아들여줄 것도 알았다. 인노첸시오는 사실 그 이상의 일을 했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프란치스꼬를 끌어안았다. 프란치스꼬는 호화로운 옷에 싸여 있는 마음으로부터 자기와 똑같은 가난에 부서진 마음의 고동을 들었다. 그 마음은 할 수만 있다면 교황의 지위를 벗어나 그리스도를 위해 거지의 무리 속에 들어갈 것을 원하고 있었다. 프란치스꼬는 울음을 터뜨렸다. 꿈이 사실이었음을 확인했을 뿐만 아니라 그의 부드러운 포옹이, 언제나 기대하면서 결국은 얻을 수 없었던 아버지의 포옹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때부터 프란치스꼬에게 교황은 손에 닿는 그리스도 대리 이상의 것이 되었다. 한번 잃어버렸지만 백배로 돌려받은 아버지라고 했으면 좋을까. 인노첸시오 교황에게 있어서도 프란치스꼬는 잃어버렸다가 백배로 돌려받은 아들이었다. 추기경들은 알현실 한가운데에서 거침없이 연출된 이 감동적인 장면에 어리둥절하여 바라보고 있었다. 너무도 멜로드라마같은 정경에 눈살을 찌푸리는 사람도 있었지만 그중에는 그 장면의 의미를 이해하고 눈시울을 적시는 이도 있었다. 인노첸시오 교황은 겸허한 태도로 간결하게 이렇게 선언했다. "작은 형제들이여, 하느님과 더불어 사십시오. 주께서 당신께 나타내주시는 바를 따라 구원을 널리 펴십시오. 그리고 전능하신 하느님께서 당신들의 친구 수를 더욱 늘려주시거든 다시 이곳으로 돌아오십시오. 당신들에게 더욱 큰 은혜를 내리리다." 더욱 큰 은혜, 교황의 팔에 안겨 느낀 것은 진실이었다. 프란치스꼬는 다시 아버지의 집에 받아들여져 새로운 영적 재산의 주인이 된 것이다. 그날 이후 인노첸시오와 프란치스꼬는 아버지와 아들로서 지냈다. 그리고 프란치스꼬는 교황 인노첼시오를 언제나 작은 형제의 한 사람으로 생각했다.


크렛치오의 성탄

누군가를 사랑하고 싶다. 누군가를 보살펴주고 싶다고 하는 소원이 마음을 꽉 사로잡고 떠나지 않았던 것이 그와 같은 방법으로 성탄을 축하할 생각을 하게 된 원인이다. 새로운 방법으로 주의 성탄을 축하하자! 제단 앞에는 살아 있는 소와 당나귀를 끌고 오자. 성탄의 미사성제를 위한 빵과 포도주를 준비하고 동물들도 함께 다시 한번 주의 성탄을 축하할 수 있도록 하자. 성탄 때에 사람들의 마음속에 기억되는 것은 어린 그리스도이다. 프란치스꼬는 하느님이 갓난아기의 모습으로 이 세상에 오셔서 사람들에게 그 시중을 맡겼다는 것에 감동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성탄이야말로 최대의 축제이다. 그날에 주께서는 우리들 한사람 한사람의 뼈의 뼈, 살의 살이 되어주셨기 때문이다. 갓난아기의 모습으로 나타나신 주님께 우리들은 두려움없이 가까이 다가갈 수가 있다. 아기를 얼려서 웃는 것을 보기 위해 어떠한 바보스러운 것도 예사롭게 할 수가 있다. 어린아기는 우리들을 다만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주기 때문에 어떤 겉치레도 자랑도 필요없다. 얼리고 달래는 일거일동에 소리를 지르며 기뻐해주실 것이다. 보살펴주고 기쁘게 해주려고 애쓰며 사랑할 수 있는 대상 - 아무 힘이 없는 갓난아기의 모습을 한 하느님이시다. 한 조각 빵 속에 몸을 감춘 하느님이시다. 하느님은 자신의 손으로 만들어낸 피조물에게 뭐라고 할 수 없는 깊은 신뢰를 더해주셨다. 즉 성탄에 있어서도, 미사성제에 있어서도 우리들이 어른이 될 것을 요청하고 계신다. 하느님께서 자신을 우리들에게 맡기려는 때문이다. 만약 우리들이 이것을 눈치채기만 한다면 우리들은 자신 밖으로 성장해 갈 수가 있는 것이고 그때 우리들에게는 하느님의 시중을 들 책임이 맡겨진다. 땅을 파고 피조물을 지배할 뿐만 아니라 그때야말로 하느님의 시중을 들 임무가 사람들의 손에 맡겨진 것이다. 크렛치오에서의 미사 때, 프란치스꼬의 강한 사랑의 대답이 나타났다. 예수님은 베들레헴에 갓 태어난 갓난아기의 모습으로, 차가운 바위 위에서 사랑스럽게 웃고 계셨다. 프란치스꼬는 부드럽게 아기를 안아올려 가슴에 껴안았다. 아기의 몸은 따스하고 보드라왔다. 프란치스꼬의 정결은 지금, 가슴에 안고 있는 아기로 하여 더욱 풍요한 것으로 변했다. 그 아기는 하느님 바로 자신이었다. 누군가를 사랑하고 싶고 누군가를 보살피고 싶다고 소원하는 사람에게는 하느님은 우리와 역할을 바꾸어서 그 사람의 손에 자기 자신을 맡기시는 것이다. 미사에 모여든 크렛치오 농부들은 하느님의 아버지가 된 프란치스꼬를 보았다. 아기는 또 그들의 아기이기도 했다. 형제들의 은둔처에서 골짜기 하나를 지나야 하는 마을로부터 모여든 농부들은 한밤중이 되어 돌아가게 될 것에 대비하여 모두 손에는 횃불을 들고 왔었다. 그러나 제단 위에서 살아 계신 아기 모습의 하느님을 본 그들의 마음은 활활 타올라 돌아가는 밤길에서 횃불이 필요없을 정도였다. 이 농부들도 프란치스꼬의 기쁨의 씨앗이었다. 크렛치오 마을의 소박한 농부들 - 그들은 모두 어린아이처럼 순수했다. 하느님은 이때에도 '작은 자'에게 자신의 모습을 나타내신 것이다. 누군가를 사랑하고 싶다는 생각, 그것은 크렛치오의 성탄에서 채워졌다. 프란치스꼬는 온 세계의 외롭고 쓸쓸한 사람들을 위해서 기도했다. 그들 한사람 한사람에게 하느님이 몸을 맡기심으로써 말씀을 내리고 계시는 것을 제발 모든 이가 이해해 주기를…. 하느님은 죄를 빼고는 모든 면에서 우리들과 똑같은 모습이 되셨다. 그래서 가까이 다가가는 사람에게는 누구에게라도 자기를 만지거나 안아올리거나 하는 것을 용서해주신다. 누군가를 사랑하고 싶다. 누군가에게 접촉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해주는 크렛치오와 그리고 사람이 되신 이 하느님…. 프란치스꼬는 새로운 마음으로 크렛치오를 떠났다. 형제들은 이 새로운 축하방식을 받아들여주겠지. 그리고 이 이야기는 크렛치오 사람들의 입으로부터 가까운 마을로 전해져서 마침내 이탈리아 전토에, 어쩌면 전세계로 퍼져 가겠지. 그리고 언젠가는 모든 사람들이 성탄 구유를 들여다보았을 때 자기에게도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 보살펴 드릴 수 있는 존엄하신 분이 계신다는 것을 알게 될 날이 오겠지. 그때 사람들은 사랑에 대해서 새롭게 배우게 될 것이다.


굽비오의 이리 - 현대인을 위한 동화

프란치스꼬는 숲을 좋아했다. 프란치스꼬가 숲을, 집주위의 자연을 좋아한 것은 단순한 정서적인 느낌이 아니라 거기에는 온갖 것이 - 선도 악도 위험도 피난처도 폭력도 평화도 - 있었기 때문이다. 그가 굽비오의 이리 이야기를 들었을 때 마을사람들이 처해 있는 위험을 알았다. 그도 사나운 이리를 단순한 개(犬)라고 생각하는 따위의 감상가는 아니었다. 굽비오의 이리 이야기를 듣고 프란치스꼬가 제일 먼저 느낀 것은 이리에 대한 동정심이었다. 그 이리가 드러낸 심한 기갈이나 안정되지 못한 가운데 뭔가를 찾아 헤매는 마음, 사납게 이빨을 세우고 달려들려는 충동 등은 자연계의 모든 것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들 모두의 마음속에 있는 야생의 광폭성을 나타내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프란치스꼬가 이리에게서 본 것은 먹이를 좇는 맹수의 모습보다는 사냥당하는 불쌍한 모습이었다. 모든 사람이 이리를 싫어하고 무서워하고 있다. 싫어하고 무서워함을 당하는 이리의 눈 속에는 몰리어 가는 자의 공포가 서려 있다. 또한 자신에게 상처를 주고 소외시키는 모든 것에 보복하기 위해서 손에 닿는 대로 무엇이든지 먹어치우려는 분노와 적의가 가득차 있다. 이리도 인간과 마찬가지다. 상대방을 무서워하고 배척할 때 상대방은 정말 무섭게 되고 마는 것이다. 굽비오의 이리가 떼를 지어 나타난 것이 아니라 단 한 마리라는 것이 한층 더 프란치스꼬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무리로부터도 고립되어 단신으로 싸워야 하는 고독한 몸인 것이다. 프란치스꼬는 고독 속에서 분노와 공포에 사로잡힌 이리의 모습에서 에덴의 동쪽으로 추방당한 카인의 모습을 보는 듯했다. 아무래도 굽비오까지 가서 광폭한 이리를 만나야 할 것 같았다. 그리고 반드시 마음이 서로 통할 수 있는 길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만약 이리가 프란치스꼬의 찬탄의 기분을 알아채고 하느님의 손으로 만드신 성난 생명으로서의 이리를 받아들여 인정하려고 하는 사람이 적어도 한 사람은 있다는 것을 알게만 해준다면 아마도 서로의 마음을 통하게 하는 일도 가능할 것이다. 이리에게도 외톨이로 어두운 숲속이나 마을을 이리저리 방황하기보다는 모험이라든가 사람에게 도움을 주어 사람들과 한편이 되는 쪽이 훨씬 좋을 것이다.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는 편이 사람들이 무서워 피하는 것보다 훨씬 즐거울 것에 틀림없다. 프란치스꼬는 다시 굽비오를 향해 갔다. 굽비오 마을은 온통 이리의 이야기로 떠들썩했다. 그 소문을 듣는 사람이면 누구나 격분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었다. 프란치스꼬는 진심으로 이리가 인간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것을 다행스럽게 생각했다. 그가 지금까지의 생활을 바꾸려고 하던 개심의 초기에 자신의 수염이나 의복, 남루한 모습에 대한 사람들의 조소나 조롱이 얼마나 상처를 입혔으며 비참한 생각에 빠지게 했던가 하는 기억이 아직까지도 생생하게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는 지금 자기의 마음이 공포에 떨고 있는 마을 사람들에게 보다 이리 편에 훨씬 가까이 있다는 것을 확실하게 느낄 수 있었다. 프란치스꼬는 이리에 대한 소문이 더 이상 사람들의 공포나 분노를 크게 하기 전에 뭔가 남의 눈을 끌 수 있는 일을 해 보일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먼저 마을의 광장에 나서서 모여든 사람들을 향해 '창조된 모든 것을 사랑하도록'이라는 제목으로 예수님의 가르침을 설교햇다. 그리고 이야기 도중에 슬그머니 "아까 마을에 들어오는 길에 이리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는데, 이리가 종종 마을에 침입해 들어와서 아이들을 죽인다는 이야기가 참말인가요?" 하고 말을 걸어 보았다. 그러자 마을 사람들은 서로 다투어 그 소문이 맞다는 것을 주장하기 시작했다. 프란치스꼬는 "그렇다면 그 이리가 있는 곳을 아는 분이 계십니까? 내가 그 이리와 만나서 사랑은 무서움을 없앤다는 것을 실제로 증명해 보이고 싶습니다만..." 하고 물었다. 그리고 다음 순간 대단한 말을 했구나 하는 생각으로 곧 후회했다. 마을 사람들도 깜짝 놀랐다. 경솔한 젊은이들은 거리낌 없이 웃어대었다. 그러나 프란치스꼬는 이러한 반응에 익숙해 있었다. 사람들이 제마음대로 실컷 지껄이고 나서 잠잠해질 때까지 그는 말없이 기다리고 있었다. 드디어 사람들이 조용해졌을 때 뚱뚱하고 키가 작은 여자가 앞으로 나와서 황소처럼 우람하고 억센 몸집의 남자 발밑에 칵 침을 뱉고 나서는 말했다. "제가 이리가 있는 곳까지 안내하겠습니다." 이번에는 웃는 사람이 없었다. 몸집이 큰 사내는 분노로 얼굴이 새빨개 졌다. 프란치스꼬가 앞으로 나와서 몸집이 작은 여자에게 마치 백작부인에게라도 하듯이 깎듯이 인사를 하자 상대방도 고지식하게 고개를 숙여 답례를 했다. 그리고 나서 두 사람은 사람들이 붐비는 가운데를 헤치고 성우발도의 성당으로 가는 산길을 향해 마을을 나섰다. 그때쯤에는 마을 사람들도 평정을 되찾고 있었다. 여자들이 두 사람의 뒤를 따르고, 아내와 딸들 앞에서 체면을 잃은 남자들도 화를 내면서도 할 수 없이 그 뒤를 따랐다. 이탈리아 사람답게 금방 화가 풀린 그들은 이번에는 자기들이 지은 행렬에 완전히 흥분하기 시작했다. 마침내 수많은 사람들이 순례에라도 나선 듯한 모습들로 가고 있어 프란치스꼬도 만족스러웠다. 그러나 이리와 만나고 싶다는 따위의 말을 해버린 일은 역시 경솔하지 않았나 하고 후회스러운 마음도 들었다. 불안을 달래기 위해서 프란치스꼬는 언제나 그랬듯이 노래를 불렀다. 사람들도 곧 그의 노래를 따라 불러 마침내 행진곡의 대합창을 이루었다. 드디어 구부러진 모퉁이 길에 다다르자 여자는 약 5백 미터전방의 커다란 바위를 가리키며 자랑스러운 듯이 말했다. "저 아랩니다." 그녀는 지금 프란치스꼬의 곁에 가장 가까이 있다는 자기의 지위를 누구에게도 빼앗길 수 없다는 듯이 프란치스꼬 쪽으로 바짝 더 기대섰다. 프란치스꼬는, 마을 사람들 전부와 맞서서라도 감연히 자신을 지켜 싸워내고 그러고도 거기에 대해서 한마디의 감사도 받으려 할 것 같지 않는 그 여자가 대단한 인물로 보였고 또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이러한 터무니없는 행위에서 얻은 영예를 반드시 그녀와 나누어 가지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는 아무쪼록 자기와 함께 동굴까지 가 주도록 그녀에게 부탁했다. 눈 한 번 깜빡하지 않고 승낙한 그녀는 한 손으로 치맛자락을 걷어붙이고는 광장에서 그 꼴을 보고 웃는 있는 남자들을 향해 조롱하듯이 손을 흔들어 보이고는 함께 동굴을 향해 걸어 나갔다. 뒤에 남은 마을 사람들은 어께를 움츠리기도 하고 머리칼을 쥐어뜯기도 하면서 어쩔 수 없다는 듯이 그대로 서 있었다. 예의 몸집이 큰 사내는 재빨리 자기 패거리와 노름을 벌여 들판은 갑자기 도박장이 되어버렸다. 그 사이 두 사람은 바위에 가까이 다가갔다. 그런데 뜻밖에도 등뒤에서 낮게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놀라서 뒤돌아 본 프란치스꼬의 눈에 당장 덤벼들 듯이 공격자세를 취하고 있는 이리의 모습이 들어왔다. 프란치스꼬는 옴짝달싹 못하고 무서움에 떨고 서 있는 여자를 바라보고는 다시 이리쪽으로 시선을 돌리며 가슴에 성호를 그었다. 그리고는 크게 한번 숨을 들이쉬고서 이리가 있는 쪽으로 나가기 시작했다. 이리도 느릿느릿 걷더니 이윽고 딱 멈추어 섰다. 프란치스꼬는 계속 걸어 나갔다. 이리는 입에서 거품을 내뿜으며 위협하듯이 계속 낮게 으르렁대었다. 멀리서 지켜보는 사람들도 지금은 고개조차 움직이지 않았다. 프란치스꼬는 이리한테서 몇 미터 되지 않는 가까운 곳까지 다가가자 멈춰 서서 이 절박한 상황 속에서 할 수 있는 가장 부드러운 눈으로 조용히 이리를 응시했다. 이리의 눈에는 분노가 불처럼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땅 위에 침을 흘리면서 턱을 움직이고 있는 이리와 마주보고 있는 프란치스꼬도 지금은 미동도 하지 않는다. 지긋이 선 채로 평온한 눈길로 이리를 응시하고 있다. "형제 이리여!" 낮고 조용한, 꾸밈없는 목소리로 불렀다. 이리는 이 부름에 답하듯이 으르렁대던 소리를 그쳤다. 그리고 프란치스꼬와 그의 뒤에서 입을 벌리고 두 손을 빌 듯이 감싸쥔 채로 얼어붙은 것처럼 꼼짝 못하고 서 있는 여자 쪽을 흘겨보고 있었다. 프란치스꼬는 말을 계속했다. "형제 이리여! 우리의 형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부탁하러 왔다. 마을 사람들은 네가 마을에 내려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다. 보아라, 이렇게 마을 사람들이 함께 와 있지 않느냐. 너같이 강한 자가 굽비오 마을을 지켜준다면 얼마나 마음 든든한지 모른다. 그 대신 마을 사람들은 너를 소중하게 생각해서 살 곳도 마련하겠다고 한다. 어떤가? 약속의 표시로 악수하지 않겠나?" 말을 마치자 프란치스꼬는 이리 쪽으로 손을 내밀었다. 이리는 훨씬 안정된 모습이기는 했으나 아직 몸은 움직이지 않고 핏발 선 커다란 눈으로 마을 사람들이 있는 쪽을 건너다 보았다. 그리고 천천히 프란치스꼬가 있는 쪽으로 다가가서 프란치스꼬의 따뜻하고 튼튼한 손에 앞발을 올려 놓았다. 그와 이리는 오랜 동안 그 자세로 있었으나 그 사이 서로간에 어떠한 말을 주고받았는가에 대해선 프란치스꼬는 일생 동안 누구한테도 말하지 않았다. 드디어 손을 놓은 프란치스꼬는 몸을 구부려 이리의 목을 껴안았다. 그리고 이 새롭게 맺어진 형제와 용감한 시골 여자는 놀란 나머지 입도 열지 못하고 있는 군중의 선두에 서서 굽비오 마을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