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을 따라

가난의 영성|┗심리학이탈출기를말하다/도반홍성남신부님

Margaret K 2016. 5. 27. 21:12

가난의 영성|┗심리학이탈출기를말하다

강의:도반홍성남신부님


12,15~20 
무교절 

너희는 이레 동안 누룩 없는 빵을 먹어야 한다. 
아예 첫날에 너희 집 안에서 누룩을 치워 버려라. 
첫날부터 이렛날까지 누룩 든 빵을 먹는 자는 누구든지 이스라엘에서 잘려 나갈 것이다. 

누룩 든 것은 아무것도 먹어서는 안 된다. 
너희가 사는 곳에서는 어디서나 누룩 없는 빵을 먹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누룩 없는 빵의 의미는 빵을 부풀리지 못하고 그냥 먹었다는 것은 
매우 급했다는 것과 먹는 것을 즐기는 것이 아니고 
죽지 않기 위해 먹는 비상식량의 의미가 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누룩 없는 빵의 의미는 죽지 않을 만큼만 주는 빵이다. 
즉 가난하라는 것이다. 
어른들이 옛날 음식들을 찾아 드시는 것도 가난할 때 살기위해서 먹었던 기억들을 되살리는 것이다. 

지금의 풍요로운 삶에 안주하지 말라는 것을 가르쳐 주기 위해서이다. 
가난했을 때를 생각하라는 것이다. 

누룩 없는 빵은 영성심리학에서 행복에 대한 관점으로 두 가지 역설적 의미를 갖고 있다.

행복감이 채워진다는 것은 매슬로의 위계단계에서 
먹고 입고 사는 생리적 행복감이 채워져야 
그 다음 단계인 사회적 역할, 대접, 명예 등을 다 벗어나게 되면 
그 다음으로 영적행복을 추구할 수 있다고 한다. 

행복이란 것이 위로 가려면 밑에 단계가 항아리에 물 채워지듯 채워져야 된다는 것이다. 

영적행복에 머무르는 사람은 성인이라고 얘기하는데 
그런 사람들은 모든 욕구가 사라진 것이 아니라 
욕구는 있는데 그 욕구에서 흔들리지 않는 사람이다. 

그리고 영적단계에 다다라도 올라갔다 내려가는 길이 
밑에서부터 꼭대기까지인데 반복하면서 꼭대기에서 머무르는 시간이 많은 사람이다. 

정신적 행복과 생리적 행복단계에만 왔다 갔다 하는 사람들도 있고 
생리적 행복단계에서만 맴도는 사람들도 있다. 

마리아 막달레나가 복음서에 예수님이 부활하시고 처음으로 만난 사람으로 
마리아와 함께 초대교회 때 중요한 역할을 한 사람이다. 
마리아 막달레나는 선교생활을 하다가 나중에 기도생활을 위해 세상을 피해서 들어가 
알몸으로 머리를 길러 가리고 기도만 하고 살았다는 기록이 있다고 한다. 
그런 경지는 영적행복에 몰입한 것이다. 

원주(圓柱)수도자들은 초대교회사기록에 광야의 높은 돌기둥들 위에서 내려오지를 않았다고 한다. 
제로니모성인은 1년에 한두 번 내려와 강론도 하고 대접도 받았다. 
이것을 일종의 과시가 아닌가 하는 얘기도 있지만 
이렇게 도를 닦는 것은 욕구 중에 정신적 행복단계를 채우기 위해서이다. 

그런데 세 번째 영적욕구단계에 가면 하느님과만 있고 싶어서 아예 숨어버린다고 한다. 

우리가 추구하는 행복이란 채워져야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사람은 내 마음의 결핍된 욕구가 채워져야 행복하지만 
문제는 끊임없이 채워져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으면 채워짐의 한계를 느낀다. 

생리적 욕구는 어느 단계까지는 채워짐과 행복감이 정비례하는데 
어느 한계상황에 다다르면 반대로 식상하고 질리는 현상이 나타난다. 
이럴 때는 더 좋은 것을 주는 것보다는 그 반대방향인 부족함 쪽으로 가야한다. 

이럴 때는 부족한 시간을 갖는 것이 처음의 행복감을 찾는 방법이다. 
부자청년도 예수님의 제자라는 소리를 듣고 싶었는데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을 다 내려놓지 못했던 것이다. 

인간관계의 식상함도 잠시 안 보이는 방법, 휴가 등이 있다. 
늘 있으면 고맙다는 느낌이 없다. 
아래 욕구가 채워졌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공기에 대한 고마움이 없는 것과 같다. 
없이 살아보는 부족함을 느껴보는 것이 사람의 행복감을 얻는데 중요하다. 

누룩 없는 빵을 먹는다는 것은 지금 충족된 행복감에서 늘어지려는 것을 막으려는 의미이다. 
너무 충족되어 지겨울 때 부족한 상황이 깨우침을 준다. 
불편한 삶을 살면 사람의 정신이 바른 정신 쪽으로 돌아온다. 
사람마음이 묘해서 조이면 제자리에 와 있다. 
이런 관점에서 가난의 영성이라는 말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