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상이야기

기도/수사님말씀

Margaret K 2011. 7. 4. 21:17

 




 

 


 

어려움과 고통이 주님이심을 아는 사람이라면
“주님, 저를 이 어려움과 고통에서 구해주시옵소서!”하며 기도를 할까?

 

감옥에 갇혀있는 사람과 자기 집에서 안 나오고 방에 머물러 있는 사람의 무슨 차이가 있을가?
우리 모두 자유로움을 원한다. 내가 자유로우면 내 짐은 가벼워진다.
감옥이나 지기 방안에 있는 사람이나 갇혀있는 것은 같다.
구속 이란 자유의 반대이다.
만약에 감옥에 갇혀 있으면서 탈출시도나 거기에서 나오는 날을 기다리지도 않으면
구속이 없다. 자유롭다.
반대로 방에 있으면서 나갈 궁리만하면 구속이다.

desire-
원하는바가 내 안에 있다. 이것이 구속이다, 바라는 바가 내안에 있다.
외적인 환경이 구속이 아니다, 구속은 밖이 아니라 안에 있다.
여러분이 바라는 것은, ~ 내 뜻대로· 바란다.
구속 없이 살면 행복한 것이다.

나를 구속하는 것은 내 안에 정해져 있는 옳고 그름이 구속의 원인이다.
지혜로운 자는 구속의 원인을 스스로 깨달아,
내가 나를 버리고 나의 원을 없앤다.
그것을 놓으면 가볍다. 불만스러움 등 외부에서 나를 무겁게 하는 것이 아니다.
바람을 늘 없애야한다. 내 안의 나를 즉시즉시 깨달아야 된다.

50, 60
년 살면서 형성되고 고정된 잣대로 사람을 잰다.
고집 세고 놓지 않고 고정되어 있기 때문에 절대로 변화하기 싫어한다.
그리고 그렇게 말한 사람이 그대로 답습한다.

하느님을 만날 가능성이 있을가? 문제는 이것이다.

어떤 어려움이 닥쳤을 때 일단 물리치지를 말아야한다.
싫어도, 괴로워도, 몸의 떼를 밀려면 일단 들어가야 한다.

하느님을 만나기원하십니까?

안 들어가고서 버티면서, 말만 오고가는 말장난,
가슴에는 와 닿지 않고 머리로만 알고 또 발을 뺀다.
발을 빼지 않고 그 안에 들어가면 약이 되고 피와 살이 된다.

 

나를 구속하는 것은 내 안에 정해져 있는 옳고 그름이 구속의 원인이다.
지혜로운 자는 구속의 원인을 스스로 깨달아,
내가 나를 버리고 나의 원을 없앤다.
그것을 놓으면 가볍다. 불만스러움 등 외부에서 나를 무겁게 하는 것이 아니다.
바람을 늘 없애야한다. 내 안의 나를 즉시즉시 깨달아야 된다.

50, 60
년 살면서 형성되고 고정된 잣대로 사람을 잰다.
고집 세고 놓지 않고 고정되어 있기 때문에 절대로 변화하기 싫어한다.
그리고 그렇게 말한 사람이 그대로 답습한다.

하느님을 만날 가능성이 있을가? 문제는 이것이다.

어떤 어려움이 닥쳤을 때 일단 물리치지를 말아야한다.
싫어도, 괴로워도, 몸의 떼를 밀려면 일단 들어가야 한다.

하느님을 만나기원하십니까?

안 들어가고서 버티면서, 말만 오고가는 말장난,
가슴에는 와 닿지 않고 머리로만 알고 또 발을 뺀다.
발을 빼지 않고 그 안에 들어가면 약이 되고 피와 살이 된다.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11,28

예수님은 곧 십자가이고
어두움이 곧 예수님이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 그러면 너희가 안식을 얻을 것이다. 11,29

발을 안 들여 놓고 편한 것의 편안함이 있고,
발을 들여다 놓고 편한 것은 들어가서 위에서 오는 안식이다.

중요합니다.

철부지들에게는 드러내 보이시니, 아버지께 감사드립니다. 그렇습니다. 아버지! 아버지의 선하신 뜻이 이렇게 이루어졌습니다. “나의 아버지께서는 모든 것을 나에게 넘겨주셨다. 그래서 아버지 외에는 아무도 아들을 알지 못한다. 또 아들 외에는, 그리고 그 아버지를 드러내 보여 주려는 사람 외에는 아무도 아버지를 알지 못한다.” 11,25-27

~속해서 아버지, 아버지 아들, 아버지 아들.
아들체험은 어떻게 하는가?
거기에 발을 들여다 놓고, 아무것도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아이들이 할 수 있는 것이 있나 없나? 없다.
그 안에서 내가할 수 있는 것이 없다.

 

~ 나는 유한하다. 정말로 없다.
이는 나는 아무것도 벌레도 아닌 구더기, 나는 아는 것이 하나도 없다.
그 고백이 철부지라는 뜻이다.
이때, 동시적으로 하느님이 다가오신다. 성부가 오신다.
내가 성자가 됨으로서, 성자성 체험함으로써,
그래서 예수님은 정말로 하느님.
이때 성부, 하느님이 도래하신다.
~안합니다.
무엇이든지 손에서 놓았을 때,
마음에서 모든 원한을 지웠을 때...

명상;
예수님이 하느님의 아들이고 우리도 예수님과 똑같이 하나 되어서,
성부의 아들이 돼야 그 아들이 비로서만이 아버지를 체험:
그 아버지체험 하려면
내가 발을 어두움에 집어넣어야, 몸뚱이를 그 안에 집어넣어야
그리고 거기에서 나의 무성, 내가 아무것도 아님을 깨달아야
하느님이 계신다.
이것이라고 보나수사님은 말씀하십니다.
감사드립니다.~!!

 

-거울-

'관상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자동적으로  (0) 2011.07.07
오욕(五慾)  (0) 2011.07.05
빗소리  (0) 2011.07.04
초코렛 맛  (0) 2011.07.04
초원에  (0) 2011.07.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