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부동 유학산 전투)
(왜관 분도 수도원에서 지난 월요일부터 피정을 하고 있다.
피정 중에 잠시 팔공산 등반을 하고, 돌아오는 길에 다부동 전투 기념관에 들렀다)
6.25 한국 전쟁 때, 마지막 남은 부산을 수호하기 위하여 백선엽 장군의 한국군과 유엔군이 대구 다부동 전투에서 북한군에 저항하여 처절하게 싸웠음을 알았다. 그러니까 내 나이 4살 때다. 아군이 10만이 전사하였고 적군이 18만이나 전사하였다고 한다. 한 전투에서 그 많은 젊은이들이 죽었다니! 지금도 전투에서 전사한 유해들을 발굴 중이라고 한다.
누군가가 희생적으로 피를 흘려야만 이 세상이 돌아가는가보다. 지금도 이 세상에서는 내가 모르는 음지에서 수많은 희생이 진행되고 있고, 그래서 나의 삶이 유지되고 있다.
“.....산에는 1사단 병사들의 시신이 쌓여 갔다. 새로 전쟁터에 투입된 신병들은 숨을 제대로 쉴 수 없었다. 시체 썩는 냄새에 그만 겁부터 집어먹고 주저앉기도 했다. 그들이 흘린 피는 계곡 아래로 내려가 물처럼 흘렀다. 시체가 산처럼 쌓이고, 그 피는 하천을 이루는 시산혈하(屍山血河)의 참혹한 정경이 나의 눈앞, 저 산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유학산은 이렇게 내 전우들의 피와 육신을 삼켰다. 그 무덥던 1950년의 여름날, 밤과 낮 구별 없이 벌어지는 전투의 현장에서 내 부하들은 죽고 또 죽었다. 그러나 내가 있던 사단, 그리고 그 예하의 각 연대에서는 사정없이 ‘고지 탈환’의 명령을 내려보낼 수밖에 없었다. 득달같이 진지로 날아오는 공격명령을 받아들고 그들은 싸움터로 향했다. 그들은 아무 말 없이 그 명령을 따랐다.”
백선엽 장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