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년 전 미국의 뉴욕현대미술관에서 '빈센트 반 고흐의 우편집배원, 조셉 룰랭 초상화' 전이 열렸다. 겨우 7점의 초상화들로 특별전을 연 것을 보면 고흐와 룰랭의 인연이 남달랐음을 짐작케 한다.
파리에서 활동하던 고흐는 1888년 아를로 내려갔다. 그� 우편집배원이던 조셉 룰랭은 고흐에게 동생 테오의 편지와 세상의 소식을 전해 준 유일한 사람이었다. 또 호탕하면서도 마음이 따뜻했던 그는 가난해서 모델을 구하지 못하는 고흐를 위해 아내, 아이들과 함꼐 초상화 모델이 돼 주곤 했다. 고흐는 룰랭 가족을 만나면서 진정으로 따뜻하고 행복한 가정을 경험했다. 그래서인지 아이들이나 부인의 초상화에는 고흐 특유의 소용돌이, 약동하는 붓 터치가 없고 녹색, 연두색, 노란색 등 부드러움이 느껴지는 색이 화면을 채우고 있다.
무엇보다 룰랭 부부는 고흐가 고갱과의 다툼 끝에 귀를 잘랐을 때 그를 정신병원에 데려가 진료받게 하고 입원한 동안 돌봐 주었다. 퇴원 이후엔 아침 식사를 들고 고흐의 작업실을 찾아가 함께 먹으며 고흐가 다시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격려했다.
그러나 그 행복은 오래가지 못했다. 룰랭이 마르세이유로 전근가게 되면서 그들은 헤어져야 했다. 여전히 편지를 주고받았지만 얼굴을 볼 수는 없었다. 만약 룰랭 가족이 평생 고흐의 이웃에 살았다면 고흐가 자살하는 불행은 일어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한편으로는 늘 세상으로부터 버려졌다는 소외감에 시달리던 그가 잠시 마음의 위안을 얻었던 친구를 이 세상에서 만났다는 것에 감사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