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학기 대입 수시 접수가 한창이다. 아이들이 입시 준비로 피곤한 나는 지친 몸을 이끌고 무조건 일찍 쉬어야겠다는 생각으로 등나무 옆을 지나던 중이었다. 그곳엔 3학년 수정이가 앉아 있었다. 그냥 지나치려는 생각과 달리 내 발걸음은 어느덧 수정이를 향하고 있었다. '안녕'
내 인사 소리에 수정이도 반갑게 인사했다. '아! 안녕하세요? 선생님.' 이야기를 나누면서 수정이가 다음 날 원서 마감인 대학의 자기소개서 때문에 고민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나는 피곤했지만 수정이의 안타까움을 외면할 수 없었다. 밤늦게라도 정리해서 내게 보내면 살펴 주겠다고 하면서 수정이와 헤어지고 차에 올랐다. 차의 시동을 걸고 출발하려는데 문자메시지가 들어왔다.
'선생님은 천사예요. 정말 감사해요. 피곤하실 텐데도.... 수정 올림.'
'선생님은 천사예요.'라는 말이 나의 가슴을 쳤다. 수정이의 짧은 문자메시지를 통해서 나는 깊은 위로를 맛보고 있었다. 그러나 집에 도착한 나는 저녁식사를 하고 바로 누워 버렸다. 그동안의 피곤함이 물밀 듯 밀려왔던 것이다. 몇 시간쯤 잤을까. 비교적 잠귀가 밝은 내 귀에 문자메시지 들어오는 소리가 들려왔다. '선생님, 자기소개서 보냈거든요. 봐 주시면 감사!'
시간은 밤 10시경이었다. 내 마음 속에서는 '일어나야 한다. 수정이가 기다릴텐데' 하는 생각이 앞섰지만 몸이 마음대로 움직여지지 않았다. '조금 있다가 해야겠다' 생각하고 다시 잠이 들었다. 그리고 얼마나 지났을까. 또 문자메시지 들어오는 소리가 났다. '선생님, 아직 못 보셨나요? 기다리다 이제 자려고요.' 수정이의 문자메시지였다. 나는 화들짝 놀라 시계를 보았다. 시간은 새벽 한 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어찌나 미안하던지... 나는 이부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컴퓨터를 켜고 자기소개서를 검토했다. 기다리고 있을 수정이의 눈망울이 떠올라 잠이 다 달아나 버린 상태였다. 다 마쳤을 때 다가오는 희열이 나를 휘감고 있었다.
나를 믿는 제자들이 있어 행복하다. 내가 그 아이들에게 해 줄 수 있는 것이 다른 이들보다 한 가지 더 있어서 행복하다. 그리고 나를 천사라고 불러 주는 나의 천사들을 사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