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배은망덕’을 논하지 않는다.
뉴욕에 사는 한 노부인은 만나는 사람마다 붙잡고
자신이 얼마나 외로운지에 대해 끝없이 하소연했다.
먼저 그녀 자신이 조카와 어린아이들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이야기한다.
이를테면 조카들이 백일해와 홍역에 걸렸을 때
그녀가 얼마나 정성껏 보살펴주었는지, 조카들을 어떻게 키웠는지 등에 대해서 말이다. …
이 가련한 노부인이 갈구하는 것은
사람들의 관심과 사랑이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이 상대방에게 쏟는
애정에 대한 보답을 강요함으로써
그것을 구하려 했다.
이런 태도를 바꾸지 않는 한
그녀는 영원히 고맙다는 말을 듣거나
그녀가 베푼 사랑을 인정받지 못할 것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뒤엉켜 살아가는 이 세상에는
이야기 속의 노부인처럼
자신이 세상에서 버려져
매우 고독하다고 생각하는 이가 아주 많다.
이들이 고독할 수밖에 없는 가장 큰 이유는
자신이 예전에 베풀었던 사랑을
회수할 권리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늘 보답을 바라지만
그 바람이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에
인생이 허무하고 의미 없게 느껴지는 것이다.
가난한 가족이 있었다.
이 집안의 부모는 매년 보육원에 기부를 했다.
이들은 직접 보육원에 가본 적이 없었고,
보육원에서도 편지로 감사의 뜻을 전해왔을 뿐
직접 찾아온 적은 없었다.
이들은 자신의 선행에 대해
어떤 대가도 바란 적이 없었다.
얼마 되지는 않지만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사랑을 베풀어
몇 명의 아이들을
조금이라도 행복하게 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 충분히 기쁜 일이라고 생각했다.
타인의 배은망덕에 연연해하며
자신을 해치지 마라.
예수의 넓은 마음과 관대함을 기억하라.
예수는 몸이 마비되거나 제정신이 아닌 사람을
10여 명이나 치료하느라
하루 종일 애썼지만
그에게 고마워한 사람은
단 한 명뿐이었다.
우리가 어떻게 예수보다
더 많은 감사와 보답을 바라겠는가?
허우슈선 <케임브리지 교수들에게 듣는 인생철학 51강>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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