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프란치스코

익명의 페루지아 전기

Margaret K 2007. 5. 8. 00:42

익명의 페루지아 전기

작은 형제회 이재성(보나벤뚜라) 수사 번역


차  례


익명의 페루지아 전기

서문                                                       

  1. 저자(著者)                                             

  2. 작품 연대                                             

머리글                                                     

제1장. 복되신 프란치스코가 하느님을 섬기기 시작함           

제2장. 복되신 프란치스코를 따른 첫 두 형제                  

제3장. 형제들이 처음에 살았던 곳, 그리고 그들의 친척들에게서 받은 학대          

제4장. 프란치스코가 형제들에게 권고하고 그들을 세상에 내보냄 

제5장. 세상에 나가서 형제들이 겪은 고통                     

제6장. 형제들의 생활과 형제들 간의 사랑                     

제7장. 그들이 로마에 감, 그리고 교황님께서 그들의 회칙을 인정하심, 그리고 설교를 할 자격을 주심 

제8장. 복되신 프란치스코가 총회의 개최를 명함, 그리고 총회에서 다루어진 안건들 

제9장. 형제들이 세계의 모든 관구로 파견됨            

제10장. 형제회에 마음이 끌리는 추기경들이 이제는 형제들을 돕고 충고하기 시작함      

제11장. 교회가 형제들을 박해자들의 손에서 보호함   

제12장. 프란치스코의 죽음과 그의 기적들과 그의 시성    

맺음말                                                    

번역을 마치고                                        



<서문>


우선 본서와 󰡔페루지아 전기󰡕(Legenda Perugia)를 혼동하지 않기를 바란다. 본서 󰡔익명의 페루지아 전기󰡕(Anonymous Perugia)는 사실 프란치스코의 생애를 다룬 작품이 아니고 작은 형제회의 초기 역사를 다룬 작품이다. 본서의 원래 이름도 “수도회의 초기 혹은 기초, 그리고 수도회의 첫 형제들이요 복되신 프란치스코의 동료들이었던 작은 형제들의 행적”(De inceptione vel fundamento ordinis et actibus illorum fratrum minorum qui fuerunt primi in religione et socii B. Francisci)으로 되어 있다. 특별히 프란치스코에게 초점이 맞추어진 것이 아니고 초기 형제회에 맞추어져 있다.


1. 저자

본서가 Lorenzo di Fonzo (OFMConv.)에 의하여 󰡔세 동료 전기󰡕의 자료가 되었음이 밝혀지기 전까지는, 모두들 본서가 󰡔세 동료 전기󰡕를 자료로 하여 필사한 것으로 여겼었다. 당시의 프란치스칸 연구가들에게는 하나의 충격이었다. 게다가 Di Fonzo가 저자까지 페루지아의 요한(1270년 사망)으로 밝힘으로써 충격은 더 컸다. 페루지아의 요한은 󰡔에지디오의 생애󰡕를 쓴 저자로서, 사실 본서의 많은 부분이 󰡔에지디오의 생애󰡕에 나오는 내용과 일치한다. 에지디오 형제가 페루지아에서 말년을 보냈고 그 곳에서 사망했음을 참작할 때 모든 학자들이 Di Fonzo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었다.

후에 Pierre Beguin이 페루지아의 요한이 에지디오 형제의 동료였음을 밝혀 냄으로써 Di Fonzo의 설(說)이 더욱 명백해졌다. 또한, 본서 안에서도 에지디오 형제와 베르나르도 형제에게서 직접 듣지 않았다면, 결코 쓸 수 없었을 내용들이 많이 나타난다.

 

2. 작품 연대

본서의 내용에서 유추해 볼 때, 작품 연대는 1240년 3월 4일(실베스텔 형제 사망일) 이후에 쓰여진 것이 확실한 것으로 여겨졌으나, Pierre Beguin은 더 구체적으로 1241년 8월 22일(그레고리오 9세의 사망일) 이전에 쓰여진 것임을 밝혀 냈다. 왜냐하면 본서에는 그레고리오 9세가 교황으로 피선된 이야기만이 등장하지 그의 사망은 언급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그러나 “세 동료”들이 쓴 프란치스코의 전기에는 교황 그레고리오 9세의 사망이 언급되고 있다). 그렇다면 본서가 시기적으로 Thomas Celano의 제2생애를 앞선다. 오히려 통설과는 달리 2첼라노가 본서를 자료로 사용하였을 뿐만 아니라, 󰡔세 동료들이 쓴 프란치스코의 전기󰡕의 43%가 본서를 가필한 것으로 밝혀졌다. 따라서 본서의 중요성이 분명히 드러났다 할 것이다. 󰡔세 동료 전기󰡕는 본서와 1첼라노를 자료로 하여 쓰여졌고, 2첼라노의 자료를 공유하고 있을 뿐이다.

따라서 본서는 책명으로 인해서 통상적으로 알려진 “익명”의 저서도 아니고, 프란치스코의 생애를 내용으로 하고 있지도 않다. 1671년에 페루지아의 콘벤투알 수도원에서 Daniel Papenbroeck에 의해서 처음으로 14세기 필사본이 발견되었고, 이를 Boallandist인 예수회의 Suyskens가 “Anonymous Perugia”로 명명함으로써 이러한 엉뚱한 이름을 지니게 되었다. 잠시 비치는 프란치스코의 생애는 그의 생애에 관한 최초의 비공식적인 작품이라고 할 수 있으며, 본서는 형제회의 최초의 역사서라 할 수 있겠다.


익명의 페루지아 전기



<형제회의 초창기와 그 발판,

그리고 수도회 안에서 복되신 프란치스코의 초기 동료들이었던 작은 형제들의 행적>



머리글


2. 무릇 거룩한 사람들이 그들의 생애와 가르침으로 주님의 종들을 하느님께 향하도록 하는데도, 주님의 종들이 그들의 생애와 가르침을 모른다면 이는 아니 되는 일이므로, 거룩한 초기 형제들의 행적을 목격했고 그들의 말씀을 듣고서 그들의 제자가 된 본인은,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고 또 독자들과 청중들에게는 어떤 틀을 마련해 주기 위해서, 주님께서 저에게 영감을 주시는 데에 따라 우리의 지극히 복되신 사부 프란치스코의 여러 행적들과, 아울러 형제회의 초창기를 살았던 형제들의 여러 행적들을 수집하여 언급하였다.



제 1 장


복되신 프란치스코가

하느님을 섬기기 시작함


3 a. 천주 강생 후 1207년 4월 16일이 지나서1)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독생 성자의 성혈로 속량하신 당신의 백성들이 당신의 계명을 저버리고 당신의 선에 배은망덕하고 있음을 보셨다. 그들은 죽어 마땅하였으나 하느님께서는 오랫동안 그들을 측은히 여기시다가, 마침내 죄인들의 죽음을 원치 않으시고 그들이 마음을 고쳐먹고 살기를 바라셨다. 이리하여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지극한 자비심을 보이시어 당신의 추수밭에 일꾼들을 보내시기를 원하셨다.

 b. 이리하여 아시시(Assisi) 고을의 프란치스코라고 불리는, 현세의 헛되고 헛된 사치에만 관심을 보이는 한 상인에게 빛을 던지셨다.


4 a. 이 날도 그는 늘 하던 대로 옷을 파는 가게에 있었다. 그가 옷을 파는 일에 정신이 팔려 있을 때에 한 가난한 사람이 나타나서 주님의 이름으로 그에게 동냥을 줄 것을 청했다. 프란치스코는 물욕과 잇속 차리기에 급급하여 이를 거절하고 그를 돌려보냈다. 그 거지가 떠나자마자 프란치스코는 거룩한 은총의 빛을 받아서, 자기의 이러한 엄청난 과오를2) 스스로 심하게 탓하며 말하였다: “그 거지가 만약에 어떤 귀족이나 힘이 있는 영주(領主)의 이름으로 청했다면 틀림없이 너는 그에게 그가 청하는 것을 베풀었을 것이다. 그런데 왕 중의 왕이시며 만물의 주인이신 분의 이름으로 그 거지가 청했으니, 그렇다면 너는 과연 얼마만큼이나 더 많이 베풀었어야 했겠느냐?”

 b. 그는 이러한 이유로 해서 그 일이 있은 후에는 누가 하느님의 이름으로 무엇을 청하면 그 청이 무슨 청이든 간에 절대로 거절치 않으리라고 마음속 깊이 다짐했다. 그리고는 바로 그 가난한 사람을 다시 불러서 동냥을 한껏 주었다.

 c. 오, 은총으로 충만하고, 많은 결실을 내는 빛을 받은 영혼이여! 오, 확고하고 성스러운 결심이여!3) 곧바로 이어서 거기에 놀랍고도 예기치 못했던 특별한 빛이 따라와 비추었도다! 이는 진정 놀라울 일도 아니니, 이사야(Isaiah) 예언자도 성령에 충만한 목소리로 부르짖었기 때문이로다: “당신께서 당신의 영을 굶주린 자들에게 부으면, 당신의 영은 시달려 온 영혼들을 흡족하게 할 것이며, 그 때에 당신의 빛이 어두움 속에서 솟아올라, 당신의 어두움이 대낮과 같을 것이다.”4) 그리고 “당신께서 굶주린 자들에게 빵을 나누어주시면, 그 때에 당신의 빛이 새벽처럼 갑자기 나타나, 당신의 의가 당신의 면전에서 앞서갈 것이다.”5)


 5 a. 얼마 후 이 복된 이에게 한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이 일을 언급도 하지 않고 넘어감은 부끄럽다 할 것이다. 어느 날 밤 그가 침대에서 잠들어 있는데 어떤 사람이6) 그의 이름을 부르며 나타나 그를 어떤 믿을 수 없을 만큼 아름답고 드넓고 화려한 궁전으로 데리고 갔다. 그 곳은 기사들의 무기들로 가득 차 있었다. 문장으로 장식된 번쩍이는 방패들이 얼기설기 네 면의 벽에 즐비하게 걸려 있었다.

 b. 그가 휘황찬란한 무기들과 아름다운 궁전이 누구의 소유인지를 묻자, 그의 안내자가 대답했다: “궁전을 포함하여 그 모든 것들이 당신의 것이며, 당신의 군대 소유이다.”

 c. 그는 잠에서 깨어나, 아직 하느님의 영을 충분히 맛들이지 못한 사람처럼, 이 꿈에 자신이 어마어마한 대제후가 될 것이라는 해석을 가하기 시작했다. 이 일을 곰곰이 생각한 끝에, 한 기사에게 이만한 왕국이 차지로 돌아온다면 기사가 되어야겠다는 결심을 하였다. 그는 호화로운 장비를 한껏 장만하고 나서, 아풀리아(Apulia)에서 사는 백작 젠틸레(Gentile)의 기사가 되려고 차비를 갖추었다.

 d. 그의 표정이 평소보다 판이하게 다르게 밝아 보이자, 누구나 이를 의아스러워 하였다. 새로운 기쁨이 도대체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지를 묻는 사람들에게 그는 이렇게 받아넘겼다: “나는 내가 장차 대제후가 될 것임을 알고 있다오.”


 6 a. 그는 어느 한 기사의 보살핌으로 차비를 마친 다음에, 말을 타고 아풀리아로 향했다.

 b. 발길을 재촉했음에도 그가 스폴레토(Spoleto)에 이르렀을 때는 밤이 되었다. 여장을 풀고 잠자리에 들었다. 비몽사몽간에 그에게 어디로 가는 길이냐고 묻는 어떤 음성이 들려 왔다. 그래서 그는 자기의 모든 취지를7) 낱낱이 밝혔다. 음성이 두 번째로 들려 왔다: “누가 더 너에게 잘 할 수 있는 능력이 있겠느냐?  주인이겠느냐 아니면 종이겠느냐?” 그가 답했다: “주인(Dominus) 이다.” “그러하다면 어찌하여 너는 종을 위하여 주인을 버리고, 머슴을 위하여 제후를 버리느냐?” 프란치스코가 물었다: “주여(Domine), 제가 무엇을 하기를 바라십니까?”  “너의 고향으로 돌아가거라” 하는 음성의 응답이 왔다. “그리고 나서 주께서 보여주시는 것을 행하여라.”

 c. 그는 하느님의 은총을 입어 갑작스럽게 딴 사람으로 변한 듯하였다.


7 a. 그는 다음날 아침이 되어 명에 따라 고향으로 발길을 돌렸다.

 b. 그는 돌아오는 길에 폴리뇨(Foligno)에서 멈추어,8) 자기가 타고 온 말과 아풀리아로 가기 위해서 채비한 옷들을 팔아치우고, 값싼 옷으로 갈아입었다.

 c. 그는 이러한 일이 있고 나서 이 과정에서 생긴 돈을 가지고 왔다. 그가 폴리뇨에서 아시시로 돌아오자마자 성 다미아노(Damianus) 성당으로 갔다. 그 곳에서 그는 베드로(Petrus)라는 이름의9) 한 가난한 거주 사제를 만나, 생활비에 보태라고 그 돈을 건네주었다. 그러나 사제는 그 돈을 받기를 거절하였다. 왜냐하면 그는 돈을 보관할 마땅한 장소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말을 듣고 나서 하느님의 사람인 프란치스코는 실로 돈을 경멸한 나머지, 성당의 창턱에다 냅다 던져 버렸다.

 d. 하느님의 영에 감도된 프란치스코는 성당이 낡아서 곧 무너져 내려 버릴 것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는 성당의 궁핍을 덜어줄 요량으로 성당의 구조를 그 돈으로 튼튼히 할 것을 제안하였고, 그 곳에서 살고 싶다고 하였다. 이윽고 하느님의 뜻에 따라 그리 되었다.


8 a. 그를 육신적으로만 사랑했던 그의 아버지가 이 소문을 듣고는 그만 그 돈이 몹시 아까운 생각이 들어, 그만 불  같은 울화가 속에서 치밀기 시작했다. 온갖 방법을 동원하여 그를 협박하면서 돈을 돌려 받아내려고 하였다.

 b. 프란치스코는 아시시 주교 앞에 출두하여 기꺼이 돈을 모두 돌려주었고, 자기가 입고 있던 옷가지들까지 돌려주었다. 프란치스코가 주교님의 외투 앞에서 벌거벗은 몸으로 서 있자, 그는 프란치스코의 알몸을 외투로 가려주었다.

 c. 이제 세상사에 자신을 텅 비운 몸이 되어, 초라하고 남루한 옷을 걸치고는 앞서 언급한 성당으로 돌아와서 그 곳에 거주하였다. 주께서는 이 가련하고 보잘것없는 사람을 풍요롭게 하셨으니, 그를 당신의 성령으로 채우셨고, 그의 입에 생명의 말씀을 넣으셨던 것이다. 이리하여 그는 사람들에게 심판과 자비, 벌과 영광을 설교하고 전하였으며, 사람들은 자신들이 망각하고 있었던 하느님의 계명들을 되뇌곤 하게 되었다. 주님은 그를 “온 세상의 대제후”로10) 만드셨다. 주님께서는 그를 통하여 온 세상에서 사람들을 모아 하나로 만드셨다.

 d. 주님은 그를 곧고 좁은 길로 인도하셨다. 왜냐하면 프란치스코가 금도 은도 돈도 그 어느 것도 소유하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주님을 다만 마음의 겸손과 가난과 단순함 안에서 따랐다.


9 a. 그는 맨발로 다녔으며 멸시받기에 적합한 옷을 입었고 싸구려 허리띠를 띠었다.

 b. 한편, 그의 아버지는 프란치스코와 마주칠 때마다 울화에 못 이겨 그를 저주했다. 그러나 이 거룩한 사람은 그 때마다 알베르토(Albertus)라는11) 가난한 노인에게 다가가, 그의 축복을 바라곤 하였다.

 c. 많은 사람들이 그를 조소하였고, 모욕적인 말들을 일삼았다. 거의 대부분이 그를 미친 사람 취급하였으나 그는 이에 개의치 않았고, 그들에게 답변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주님께서 자신에게 알려주신 일을 수행하느라고 온갖 조심을 다하여 애를 썼다. 그는 인간의 지혜에서 나온 습득된 언어 속을 거닐지 않고, 오직 성령의 활동과 힘 안에서12) 거닐었다.



제 2 장


복되신 프란치스코를 따른

첫 두 형제


10 a. 이러한 일들을 보고 또 소문으로 들어온 이 마을의 두 사람이 거룩한 은총에 이끌려 그에게 겸허하게 다가갔다. 그 중의 하나가 베르나르도(Bernardus) 형제였고, 다른 하나는 베드로(Petrus) 형제였다. 그들은 단순하게 그에게 말했다: “우리는 지금부터 당신과 함께 하기를 바라며, 당신이 하는 일을 하기를 원합니다. 그러니 우리들의 재산을 어찌해야 할 지 말해 주십시오.”  프란치스코는 그들이 옴으로써 그리고 그들의 원을 듣고는  너무도 기쁜 나머지, 그들에게 친절하게 답변하였다: “가서 주님께 여쭈어보도록 합시다.”

 b. 이리하여 그들은 마을의 한 성당으로 들어갔다. 안으로 들어가서 무릎을 꿇고 겸손하게 기도를 올렸다: “주 하느님, 영광의 성부여, 저희들이 해야 할 일을 저희들에게 내보이시기를 당신의 자비 안에서 청합니다.” 그들이 기도를 마치고서 그 곳에 서 있는 본당 사제에게 말을 하였다: “신부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보여주십시오.”


11 a. 사제가 복음서를 펼치자, 아직도 글을 잘 읽을 줄 모르는 그들이었지만, 즉시 글귀가 눈에 들어왔다: “네가 완전한 사람이 되려거든 가서 너의 재산을 다 팔아 가난한 사람에게 나누어주어라. 그러면 하늘에서 보화를 얻게 될 것이다.”13) 그들이 성서를 두 번째로 펼쳤을 때에 다음과 같은 구절을 발견하였다: “누구든지 나를 따르려는 자는 ....”14)  다시 한 번 성서를 펼치자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왔다: “길을 떠날 때 아무것도 지니지 말라.”15) 이러한 구절을 발견하고 그들은 큰 기쁨에 싸여 소리쳤다: “이것이 바로 우리들이 바랐던 바이고, 찾던 것이다.” 그리고는 그가 두 형제에게 말했다: “가서 들은 대로 주님의 권고를 실행으로 옮기십시오.”

 b. 이리하여 베르나르도 형제는 가서 자신의 모든 재산을 팔았고, 그는 부자였던 관계로 거액의 돈을 만들 수 있었다. 반면에 베드로 형제는 현세적 사물에는 가난하였지만, 천상적 사물에는 부자였다.16) 그러나 그도 역시 주님께로부터 받은 권고를 실행으로 옮겼다. 그들은 함께 마을의 가난한 사람들을 불러서 그들에게 자신들의 재물을 팔아서 만든 돈을 나누어주었다.


12 a. 그들이 이 일을 하는 동안 복되신 프란치스코가 그 자리에 있었고, 실베스텔(Silvester)이라고 하는 한 사제가 그 곳에 왔다. 프란치스코가 아직 동료들이 없었을 때에 거주했던 성 다미아노 성당을 수리할 때 이 사제로부터 얼마 가량의 돌을 산 적이 있었다.

 b. 이 사제는 돈들이 그렇게 뿌려지는 것을 보고는 슬그머니 욕심이 생겨서, 그 중에서 다만 얼마만이라도 받고 싶었던 나머지 불평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프란치스코, 당신은 저번에 나에게서 가져간 돌 값을 제 값을 쳐서 주지 않으셨습니다.” 모든 탐욕을 몰아낸 사람인 복되신 프란치스코는 이 부당한 불평을 듣고서, 베드나르도 형제에게 가서 돈이 들어 있는 베르나르도의 짧은 겉옷 주머니에 손을 넣고, 충분한 돈을 꺼내서 그 사제에게 주었다. 이어서 두 번째로 주머니에 손을 넣고, 첫 번째에 했던 그대로 돈을 꺼내서 사제에게 다시 주면서 말했다: “이제 충분히 지급되었습니까?” “충분합니다”: 그가 답하였다. 그러자 사제는 기뻐하며 자기 집으로 돌아갔다.


13 a. 며칠이 지나자 그 사제는 하느님의 이끄심으로 복되신 프란치스코의 행위를 곰곰이 되새겨 보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자기 스스로에게 말했다: “내가 가련한 사람이 아닌가? 이만한 나이에 그토록 탐욕을 부리다니. 그 젊은이는 하느님의 사랑을 위해서 재물을 멸시하고 지겨워하는 터에!”

 b. 그 날 밤 그는 꿈속에서 거대한 십자가를 보았다. 그 끝은 하늘에 닿아 있었고, 그 뿌리는 복되신 프란치스코의 입에 고정되어 있었다. 그 양팔은 세상의 이 끝과 저 끝에 맞닿아 펼쳐져 있었다.

 c. 그 사제는 일어나자마자 복되신 프란치스코야말로 하느님의 참다운 벗이며, 그가 시작한 수도회는 온 세상에 널리 퍼져야 함을 확신하게 되었다. 이리하여 그는 하느님을 경외하게 되었고, 자기 집에서 회개를 하였다. 얼마 안 가서 그는 형제회에 들어왔고, 거룩한 삶을 살다가 영광되게 삶을 마쳤다.17)



제 3 장


형제들이 처음에 살았던 곳,

그리고 그들의 친척들에게서 받은 학대


14 a. 베르나르도 형제와 베드로 형제가 자신들의 재산을 처분하여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준 후에 하느님의 사람인 복되신 프란치스코가 입은 같은 옷을 입고는 그의 동료가 되었다.

 b. 그들은 몸을 운신할 곳이 없어서 길에 나앉았다. 그러다가 포르치운콜라(Portiuncula)의 성 마리아라고 하는 버려진 초라한 성당을 발견하였다. 그 곳에서 함께 머무르려고 작은 헛간을 만들었다.

 c. 팔일이 지나서 아시시 출신의 또 한 사람이 그들에게 왔다. 그의 이름은 에지디오(Egidio)였다. 그는 하느님께서 많은 은총을 내려주신 매우 경건하고 열심한 사람이었다.18) 그는 크나큰 공경심과 열심한 마음으로 무릎을 꿇고 복되신 프란치스코에게 자기를 그들의 모임에 받아줄 것을 어렵게 청하였다. 복되신 프란치스코는 이러한 청을 듣고 듣자마자 마음이 흐뭇해져서 그를 아주 기꺼이 두 손을 벌려 받아들였다. 이리하여 이 네 형제들은 밀집된 행복감과 한없는 영적 즐거움을 맛보았다.


15 a. 복되신 프란치스코는 에지디오 형제와 안코나(Ancona)의 마르키아(Marchia)로 갔고, 나머지 둘은 뒤에 남았다. 그들은 가면서 주님 안에서 크나큰 기쁨에 흥겨워하였다. 하느님의 사람인 프란치스코는 불란서 말로 가락을 뽑으며 주님을 찬미하고 찬양하면서 큰 목소리로 기뻐 용약하였다.

 b. 그들은 크나큰 보화를 찾아서 만나기나 한 듯이 기쁨 중에 있었다. 그들은 많은 것들을 포기했기 때문에 그렇게 기쁠 수 있었다. 흔히 사람들을 비탄에 빠트리는 것들을 그들은 똥으로 여기고 천시했다. 그들도 현세의 쾌락주의자들이 한없는 쓰라림과 슬픔만이 있는 쾌락의 세계에서 체험하는 아픔을 기억하고 있었다.

 c. 복되신 프란치스코가 동료인 에지디오 형제에게 말했다: “우리 형제회는 바다에 자기의 그물을 던져서 수많은 물고기를 잡다가, 어린 물고기들은 바다에 도로 놔주고 큰 물고기들만을 골라서 그릇에 담는 어부와 흡사합니다.” 에지디오 형제는 성인이 말한 이 예언에 크게 놀랐다. 왜냐하면 그는 형제들의 수가 얼마나 적은 지를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d. 하느님의 사람은 백성들에게 아직도 설교를 정식으로 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그는 마을과 동네를 지나면서 남녀 모두에게 천지의 창조주를 경외하고 사랑토록 권했고, 그들의 죄를 뉘우치라고 권했다.19) 이어서 에지디오 형제가 덧붙였다: “그는 옳은 말을 합니다; 그러니 그를 믿으십시오.”


16 a. 이들의 말을 들은 사람들이 서로 말하였다: “이들이 누구인가? 그들이 무슨 말을 하는가?” 

 b. 어떤 사람은 그들을 바보나 술주정꾼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말했다: “그들이 하는 말은 바보들이 할 수 있는 말이 아닙니다.” 그들 중의 하나가 말했다: “이 사람들은 주님과 가장 완벽하게 하나가 되어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들은 정신 이상자들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육신을 부주의하게 다루기 때문입니다. 맨발로 돌아다니며, 옷은 넝마옷을 입었고, 음식은 적게 먹습니다.” 아직은 그들을 따르려는 사람들이 없었다. 젊은 여자들은 멀리에서 다가오는 그들을 보고는 자기들도 바보가 될까 봐서 겁을 먹고 내뺐다. 비록 아직은 그들을 따르려는 사람들이 없었지만 사람들은 그들의 거룩한 생활을 보고는 아연해 하였고, 이들의 거룩한 생활은 이 형제들이 하느님의 인호(印號)를 받은 사람들임을 보여주었다.

 c. 그들은 그 지방을 돌고 나서 포르치운콜라의 성 마리아 성당으로 돌아왔다.


17 a. 며칠 뒤에 아시시 사람 세 명이 더 그들에게 왔다: 사바티노(Sabbatinus) 형제, 요한(Iohannes) 형제, 모리코 파르보(Moricus Parvus) 형제가 그들이었다. 그들은 프란치스코 형제에게 겸허하게 자기들을 그의 모임에 받아줄 것을 겸손하게 청했다. 그는 친절히 기쁜 마음으로 그들을 받아들였다.

 b. 그들이 마을로 동냥하러 다닐 때, 아무도 그들에게 무엇이라도 주려 들지를 않았다. 오히려 그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너희는 너희 재산은 팔아먹고, 이제 와서 다른 사람의 것을 먹으려 드는구나.” 이리하여 그들은 극도의 빈궁에 시달렸다. 그들의 가족과 친척들까지도 그들을 못살게 굴었다. 게다가 마을 사람들이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그들을 우둔한 얼간이들로 여기며 경멸하고 냉소하였다. 단 한 사람의 예외의 인물은 이 마을의 주교로서, 프란치스코는 자주 그에게 가서 조언을 구했다.

 c. 그들의 가족들과 친척들이 그들을 괴롭히고, 또 사람들이 그들을 조소하는 이유는 이러한 것이었다: 당시에 아무도 자기의 재산을 모두 처분하고 이 집 저 집 돌아다니며 얻어먹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d. 어느 날 프란치스코가 위에서 언급한 주교님을 뵈러 갔을 때에, 주교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제가 보기에는 여러분들이 이 세상에서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거나 지니지 않으면, 여러분들의 생활이 매우 어렵고 힘들 것 같습니다.” 하느님의 거룩한 사람이 그에게 답했다: “주교님, 만약에 저희가 재물을 소유하게 되면, 그 재물을 지키기 위해서 우리들에게 무기가 필요하게 됩니다. 재물을 소유함으로써 언쟁과 소송이 일어나게 되는 법이고, 그리되면 통상적으로 그것이 하느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데에 방해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희는 이 덧없는 세상에서 어떤 것도 소유하기를 원치 않습니다.”

 e. 이 대답이 주교님을 기쁘게 해드렸다.


 

제 4 장


프란치스코가 형제들에게 권고하고

그들을 세상에 내보냄


18 a. 성령의 은총에 이미 충만해 있던 프란치스코는 형제들에게 일어날 일들을 예언하였다. 그는 형제들을 불러서 자기 주위에 앉도록 했다. 그 곳은 포르치운콜라의 성 마리아 성당에서 가까운 숲이었고, 신공(神功)을 드리기 위해서 그들이 자주 가던 곳이었다. 그가 형제들에게 말했다: “사랑하는 형제들이여, 하느님께서 자비롭게도 우리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많은 이들의 선익과 구원을 위해서 부르신 우리의 성소를 생각합시다. 그러니 우리는 세상에 나아가 말과 모범으로 남녀 모두를 권면하여 그들의 죄를 뉘우치도록 해주고, 그들이 오랫동안 잊고 살았던 하느님의 계명들을 기억하게 합시다.”

 b. 이어서 그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어린양이여, 두려워하지 마시오.20) 오히려 주님을 믿으십시오. 서로 이렇게 말하지 마십시오: ‘우리는 무식하고 배운 것이 없는데, 우리가 어떻게 설교를 할 수 있단 말인가?’ 주님께서 당신의 제자들에게 하신 주님의 말씀을 기억하십시오: ‘말하는 것은 당신들이 아니라, 당신 안에서 말씀을 하시는 당신 성부의 영이십니다.’21) 주님께서 손수 여러분에게 영과 지혜를 주시어 사람들과 그들의 부인들에게 당신의 계명의 길과 실천을 권면하고 설교토록 하실 것입니다. 또한 여러분들은 성실하고 온유하고 관대한 사람들을 만나게 되어, 그들은 여러분과 여러분이 하는 말을 기쁘게 사랑으로 받아들일 것이나, 반면에 여러분들은 불경하고 거만하고 불성실한 사람들을 만나게 되어, 그들은 여러분과 여러분들이 하는 말을 내칠 것이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모든 일을 인내롭고 겸손되게 견딜 수 있도록 마음의 준비를 하십시오.”

 c. 형제들이 이 말을 듣고 나서 겁을 내기 시작했다. 그들이 겁을 내는 것을 보고 복되신 프란치스코가 말했다: “두려워하지 마십시오.22) 조만간 배움이 많고 현명하고 고귀한 많은 사람들이 우리에게 올 것이며 우리와 함께 할 것입니다. 그들이 나라와 백성들에게 설교를 할 것이며, 왕들과 왕자들에게 설교를 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하여 많은 사람들이 주님께로 돌아올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당신의 가족을 온 세상에 늘려 가시고 키우실 것입니다.”

 d. 그는 이 말을 하고 나서 그들에게 강복을 주었고, 그들은 떠나갔다.



제 5 장


세상에 나가서

형제들이 겪은 고통


19 a. 주님께 봉헌된 이 종들은 길을 걷든지, 성당에 당도하든지 아니면 조건이 좋든 나쁘든 길모퉁이에서까지 늘 고개를 숙이고 매우 경건하게 다음과 같이 말하며 기구를 드렸다: “오 그리스도님, 당신의 거룩하신 십자가로 세상을 구속하셨사오니, 저희는 온 세상에 있는 당신의 모든 성당에서 당신을 흠숭하며 찬양하나이다.” 그들은 주님의 처소를 보면 바로 그 곳에 주님이 계신 것을 믿고 느꼈다.

 b. 그들을 보는 사람마다 흠칫 놀래서 몸을 뒤로 뺐다: “우리는 저런 수도복을 본 적이 없다.” 형제들은 옷차림과 생활에서 다른 사람들과 달랐다. 그들은 마치 야만인들 같아 보였다. 그들은 도시나 성(城), 그리고 집에 들어갈 때마다 평화를 선포했다. 그들은 길에서나 광장 등 어디에서나, 마주치는 남녀에게 격려를 하여 하늘과 땅을 만드신 창조주를 사랑하고 경외토록 하였고, 그들이 잊었던 하느님의 계명들을 기억하고, 이어서 그 계명들을 지키려 애를 쓰라고 격려하였다.

 c. 어떤 이들은 그들의 말을 반겨 들었으나, 어떤 이들은 그와는 반대로 그들을 비웃었다. 사람들이 그들에게 연달아 질문을 던졌고, 그 많은 질문에 일일이 답하기는 그들에게 너무도 피곤스러운 일이었다. 왜냐하면 새로운 상황이 늘 새로운 질문을 낳기 때문이었다. 어떤 이는 그들에게 이렇게 물었다: “어디에서 온 사람들이요?” 그리고 어떤 이는 이렇게 물었다: “당신들은 어느 수도회에 소속되어 있습니까?” 그들은 매우 단순하게 답변하곤 했다: “저희는 아시시 출신의 회개자들입니다.” 형제들의 수도 공동체가 아직도 수도회라는 명칭을 지니지 못했던 것이다.


20 a. 그들을 보고들은 많은 이들이 그들을 부담스럽게 여겼고, 아니면 그들을 바보로 취급했다. 어떤 이는 습관적으로 이렇게 말했다: “나는 그들을 내 집 안으로 들이기가 께름칙합니다. 이유는 그들이 나의 물건들을 훔칠 것 같아서입니다.” 필연적으로 그들은 수많은 곳에서 수많은 고초를 받았다. 그래서 그들은 더욱 자주 성당의 회랑이나 집들의 처마 밑을 거처로 삼았다.

 b. 당시에 그들 중의 두 형제가 피렌체(Florentia)에 있었는데, 동네를 돌며 머무를 곳을 물색하였으나 마땅한 곳을 찾아낼 수가 없었다.23) 그러다가 그들은 처마 밑에 솥이 걸려 있는 집 한 채를 보고는 서로 얼굴을 보면서 말했다: “여기서 머무를 수도 있겠는데?” 그들은 하느님의 사랑으로 그 집 여주인에게 그 곳을 거처로 할 수 있게 해달라고 청하였다. 그 여자가 단호히 이를 거절하자 그들은 오늘밤만이라도 솥 옆에서나마 머무를 수 있게 해달라고 하였다.

 c. 그 여자도 이것은 허락했다. 그러나 그녀의 남편이 집으로 돌아와서 형제들이 처마 밑 솥 옆에 있는 것을 보고는 그녀에게 물었다: “왜 당신은 그 불량배들에게 친절을 베풀었소?” 그녀가 대답했다: “나는 그들을 집 안으로 들이는 것은 싫지만, 약간의 땔감을 제하고는 그 곳에 우리에게서 훔쳐 갈 것도 없고 해서 처마 밑 한데에 있는 것을 허락하였소.” 그 날 밤 따라 날씨가 몹시 추웠지만 그들이 의심스러웠던 나머지 형제들에게 덮을 만한 어떤 것도 빌려주지 않았다.24)

 d. 그 날 밤 형제들은 아침기도를 위해 일어나서 가까운 성당으로 갔다.


21 a. 다음날 아침 그 여자가 미사에 참례하려고 성당으로 갔다. 그녀는 그 곳에서 형제들이 겸허하게 열성적인 기구를 계속하는 것을 보았다. 그녀가 속으로 말하였다: “남편 말대로 이들이 불량배들이라면, 그들이 저토록 경건히 기구를 드리지는 못할 것이다.”

 b. 그 여자가 이러한 생각에 잠겨 있는데, 귀도(Guido)라고 하는 사람이 자기 둘레에 있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적선을 하고 있었다. 그 사람이 형제들 앞에 와서 다른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듯이 돈을 주려 하자, 그들이 돈을 거절하여 받기를 원치 않았다. 그러자 그가 형제들에게 말했다: “왜 당신들은 다른 가난한 사람들처럼 돈을 받지 않는 거요? 보건대 그들처럼 가난하고 궁핍해 보이는데?” 그들 중의 하나인 베르나르도 형제가 대답했다: “우리가 가난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가난이 다른 이들에게는 짐스럽겠지만, 우리들에게는 그렇지가 않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하느님의 은총으로 그분의 뜻을 채워드리기 위해서 가난한 자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22 a. 그러자 그 사람은 감탄해마지 않으면서 그들에게 전에 재산을 소유했었는지를 물었다. 그들은 그들이 재산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것을 하느님의 사랑으로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주었노라고 답했다.

 b. 그 부인은 형제들이 돈을 거절하는 것에 감동되어 다가와서 말했다: “그리스도인들이여, 당신들이 저의 집으로 다시 가시기를 원하신다면, 기꺼이 집 안으로 모시겠습니다.” 형제들이 겸손되게 그녀에게 대답했다: “주께서 그 뜻에 보답하시기를!” 귀도라는 사람은 형제들이 머무를 곳이 없음을 알고는 그들을 자기 집으로 데리고 가서 말했다: “이 곳이 주님께서 여러분들을 위해서 마련하신 거처입니다. 원하시는 만큼 머무십시오.” 그가 형제들을 극진히 대접하고 이 가난한 사람들의 아픔을 들어주었기에, 그들은 하느님께 감사를 드렸다. 그들은 그 곳에서 며칠을 머물렀다. 그리고 그는 형제들의 말을 듣고, 형제들의 좋은 모범을 봄으로 해서 그 후에는 가난한 이들에게 더욱 관대해졌다.


23 a. 귀도에게만은 이처럼 후하게 대접을 받았지만, 그들은 어른들에서 아이들에 이르기까지 많은 이들로부터 번번이 보잘것없이 심한 천대를 받았고, 그리고 그들은 형제들에게 주인이 종을 다루는 듯한 언사를25) 썼다. 형제들이 값싸고 천한 옷을 입었음에도26) 많은 사람들이 장난삼아 형제들에게서 옷을 벗겨갔다. 그래도 형제들은 벌거벗긴 채로 인내했다. 왜냐하면 형제들은 복음의 권고에 따라서 옷을 한 벌만 입었었기 때문이며, 그럼에도 자신들에게서 빼앗아간 옷들을 되돌려 달라고 하지를 않았다.27) 다만 그들이 동정심이 일어서 빼앗아간 옷들을 되돌려 주려고 하면, 형제들은 그제서야 반갑게 옷가지를 받아들 뿐이었다.

 b. 그들은 형제들의 머리에다 진흙을 던졌다. 그들은 형제들에게 함께 놀자며 손에 주사위를 쥐어주기도 하였다. 한 형제는 모자를 등뒤에서 잡아채인 채 마냥 끌려 다녔다. 이것만이 아니라 이와 비슷한 일들이 형제들에게 저질러졌다. 그러나 우리는 더 이상 이러한 일들을 언급하고 싶지 않다. 왜냐하면 이야기가 너무 길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형제들을 가여운 존재들로 여기고 마치 죄인이나 되는 양 혹독하고 가혹하게 다루었다. 형제들은 더욱더 배고픔과 목마름과 추위와 헐벗음에서 오는 많은 고난과 고뇌를 참아 받았다.

 c. 그들은 복되신 프란치스코로부터 받은 권고에 따라서 모든 일을 꿋꿋이 견디어 냈다. 그들은 근심하지 않았고, 혼란에 빠지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은 큰 부자가 된 듯해 보였고, 환난 안에 있으면서 찬미하고 기뻐하였으며, 그들의 박해자들을 위해서 하느님께 열심히 기도를 드렸다.28)


24 a. 이제 사람들은 형제들이 박해를 받으면서도 즐거워하는 것을 목격하였고, 주님을 위해서 이 모든 것을 인내로이 견디는 것을 보았으며, 그들이 쉬지 않고 정성된 기도에 빠져 있는 것을 보았고, 가난하고 궁핍한 사람들처럼 돈을 거절하고 돈을 지니지 않고 다니며, 서로서로 얼마만큼 사랑하는 지를 직접 보았다. 이런 일들을 통해서 형제들은 주님의 제자들로 알려지게 되었고, 많은 사람들이 주님의 사랑을 통하여 자기들의 마음이 변하는 것을 느꼈다. 그들은 형제들에게 다가와서 전에 자기들이 저지른 잘못을 용서해 달라고 청하였다. 형제들은 다음과 같이 말하면서 그들을 마음으로 받아들이며 용서하였다: “주께서 당신을 용서하시기를!” 그리고 나서 사람들은 이 때부터 형제들의 말을 잘 들었다.

 b. 어떤 이들은 자기들을 형제들의 동료로 받아줄 것을 요구했다. 이 당시에는 형제들의 수가 얼마 되지 않아서 각자 모두가 복되신 프란치스코로부터 각자가 원하는 새로운 형제들을 받아들일 권한을 위임받았으므로, 형제들은 그들 중에서 많은 사람들을 받아들였다.29) 그리고 나서 그들은 약속한 시기에 포르치운콜라의 성 마리아 성당으로 갔다.



제 6 장


형제들의 생활과

형제들 간의 사랑


25 a. 형제들은 모두 다시 서로 만나게 되자, 반가움과 영적인 기쁨에 넘치게 되어, 그 때까지 겪었던 역경과 극도의 가난을 까맣게 잊었다.

 b. 그들은 영혼의 원수인 모든 게으름을 완전히 피하려고 매일매일 기도와 손노동을 했다. 선지자가 “저는 당신께 찬미를 드리기 위해서 한밤중에 일어났다”30)라고 말한 것처럼 그들은 야밤에 일어나 낮과 똑같이 기구를 드렸다. 그들은 삼매(三昧)의 경지에서 자주 눈물을 흘리며 기구를 드리곤 했다.

 c. 그들은 서로를 깊이 사랑했다. 그들은 마치 어머니가 아들을 보살피고 다독거리듯이 서로간에 그렇게 봉사하고 사랑했다. 사랑이 그들 가운데에서 강렬하게 타올랐기 때문에, 그들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안에서뿐만 아니라 서로를 위해서, 그들의 몸을 내놓기가 쉬웠고, 또 그런 것을 요구할 수 있었던 듯했다.


26 a. 어느 날 두 형제가 길을 걸었다. 그들은 자신들에게 돌을 던지는 어처구니없는 사람을 만나게 되었다. 한 형제가 다른 형제에게 돌이 겨냥되는 것을 보고는 급히 자기가 그 돌을 가로막았다. 서로간의 사랑이 깊었기 때문에 차라리 그 형제보다는 자기가 돌을 맞기를 바랐던 것이다. 그들은 흔하게 이와 같은 일들을 하였다.

 b. 형제들은 겸손과 사랑으로 견고하게 다져져 있어서, 마치 그가 자신의 스승인 양 서로 상대방을 공경하였다. 직책이나 아니면 받은 능력 때문에 다른 형제들 위에 있을 수밖에 없는 형제들은 오히려 다른 형제들에게 더욱 겸손했고 다른 이들보다 더 초라해 보였다.

 c. 그들은 모두 자신들을 순종에 온전히 내맡겼다: 입에서 명령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그들의 발은 걸을 준비가 되어 있었으며, 그들의 손은 일을 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명을 받은 것은 그것이 어떤 일이건 간에 그것을 주님의 뜻으로 여겼다. 그러므로 그들이 무슨 일을 수행하기란 달콤하고도 쉬웠다.

 d. 심판을 받지 않기 위해서 사려 있게 자신들을 심판하였고, 그들은 그렇게 육신적 사욕을 눌러갔다.

27 a. 어느 형제가 어쩌다 말을 실수해서 그 말이 다른 형제를 괴롭혔을 경우에는, 그는 너무도 양심의 가책이 되어 자기의 잘못을 고백하기 전까지는 안절부절을 못했다. 그렇게 되면 땅에 엎드려 비록 그 형제가 그럴 뜻이 없어도 그 형제의 발을 자신의 입에 넣도록 하였다. 만약에 그 형제가 이를 거절하면, 그 때에는 만약에 상처를 주는 말을 한 형제가 장상일 경우, 수하 형제에게 순종으로 자신의 입에 발을 넣으라고 했다. 이것도 안되면 자기보다 더 높은 장상에게 말해서 그렇게 명을 내리도록 했다. 그들은 그들 사이에 있는 원한을 제거하고 서로간의 완벽한 사랑을 늘 유지하기 위하여 이렇게 하였다. 이렇게 그들은 여러 악행을 그에 적합한 덕행으로 막았다.

 b. 그들은 책이나 수도복 등 무엇이든지 가진 것을 나누었다. 초기의 사도들의 교회 안에서 있었던 것처럼 아무도 어떤 물건을 자기 소유라고 하지 않았다.31)

 c. 비록 그들에게는 극단적인 가난만이 팽배해 있었지만, 그래도 그들은 언제나 관대했고, 하느님의 사랑 때문에 요구하는 누구에게나 자신들이 얻어온 동냥을 자유롭게 나누었다.


28 a. 그들이 길을 걸을 때에, 가난한 사람들이 그들에게 구걸을 해와도 그들에게 줄 것이 아무것도 없으면 자신들의 옷을 잘라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곤 했다. 어느 형제는 모자를 수도복에서 잘라서까지 가난한 거지에게 떼어 주었다. 어떤 형제는 옷소매까지 잘라서 주어버렸다. 형제들은 그러고서도 복음의 말씀을 실천하기 위해서 수도복의 어느 한 귀퉁이를 잘라내서 주었다: “청하는 누구에게나 주십시오.”32)

 b. 어느 날 한 가난한 사람이 형제들이 거처하던 포르치운콜라의 천사들의 성 마리아 성당으로 와서 그들에게 동냥을 청했다. 그 곳에 어느 한 형제가 세속에 있을 때 입던 외투 하나가 있었다.33) 복되신 프란치스코가 그 형제에게 그 옷을 가난한 사람에게 주라고 하였다. 그는 지체하지 않고 기쁜 마음으로 그렇게 했다. 그러자 그 형제가 자신의 옷을 그 가난한 이에게 주는 행위에 들어 있는 공경과 열심 때문에, 그 동냥이 하늘에 가납되어, 그 형제는 새로운 영에 휩싸였다.


29 a. 세속의 부자들이 형제들에게 오면, 형제들은 그들을 기쁘고 반갑게 맞이했다. 형제들은 그들을 나쁜 길에서 돌아오도록 했으며, 회개할 것을 권고했다.

 b. 당시에 형제들은 친척들과의 친교와 친분을 피하고 예언자의 말씀을 실천하기 위해서 장상에게 자기들을 고향에 가지 않도록 하게 해달라고 강하게 청하곤 했다: “나는 나의 친척들에게 나그네 되었고, 나의 어머니의 형제들에게는 이방인이 되었네.”34)

 c. 그들은 영원한 것을 제하고는 부를 탐하지 않았기에, 가난 안에서 대단히 즐거워하였다. 그들은 금도 은도 절대로 지니지 않았고, 비록 현세의 모든 부(富)를 멸시하였지만, 그 중에서도 특히 돈을 발로 뭉개버렸다.


30 a. 형제들이 포르치운콜라의 성 마리아 성당에서 살고 있던 어느 날, 몇몇 사람들이 성당 안으로 들어왔다. 그들은 형제들에게 알리지 않고 약간의 돈을 제대에 놓았다. 형제들 중의 하나가 성당에 들어오다가 눈에 뜨인 그 돈을 집어서 창문턱에다 올려놓았다. 다른 한 형제가 첫 번째 형제가 돈을 올려놓은 창문턱에서 돈을 발견하고는, 이를 프란치스코에게 보고했다.

 b. 복되신 프란치스코가 이 말을 듣고 나서 어느 형제가 그 돈을 그 곳에 올려놓았는지 조사했다. 어떤 형제인지가 밝혀지자 프란치스코가 그 형제를 불러다 놓고 물었다: “형제는 왜 이런 짓을 했습니까? 형제는 내가 형제들이 돈을 쓰지 않는 것만 아니라 돈에 손을 대기조차 않기를 바란다는 사실을 모르십니까?” 그 형제는 이 말을 듣고,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리며 자기의 잘못을 고백하고 보속을 청했다. 성인은 그에게 돈을 입으로 물어서 성당 밖으로 내가고, 그리고 나서 당나귀 똥을 보면 입으로 물어온 것을 그 위에다 놓으라고 명하였다. 그 형제는 정성껏 이 명을 수행했다. 이에 프란치스코가 형제들에게 권고하기를 어디에서든지 돈을 우연히 발견하면 그 돈을 경멸하고 눈도 주지 말라고 하였다.

 c. 그들을 방해할 만한 것이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에 그들은 끊임없이 큰 희락(喜樂)에 젖어 있었다. 그들은 세상과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하느님과의 일치는 더더욱 가까웠다. 이들은 오솔길로 들어서서 지름길로 갔으며 그 울퉁불퉁한 것을 골랐다. 그들은 바위들을 부수었고, 가시밭길을 걸었으며, 그리하여 자기들의 후속자인 우리에게 길을 터 주었다.



제 7 장


그들이 로마에 감,

그리고 교황님께서 그들의 회칙을 인정하심,

그리고 설교를 할 자격을 주심


31 a. 복되신 프란치스코는 구세주의 은총으로 형제들의 수와 덕망이 자라는 것을 보자 그들에게 말했다: “형제들이여, 저는 주님께서 우리를 큰  공동체가 되게 하려 하심을 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어머니이신 로마 교회로 가서 교황님께 주님께서 우리를 통해서 하고 계시는 일을 보고합시다. 그렇게 해서 그분의 인정과 위임을 받아 우리가 이미 시작한 일을 계속하도록 합시다.” 모든 형제들이 그가 한 말에 동의하였다. 그래서 그는 12명의 형제를 데리고 로마로 향했다.

 b. 그들이 걷는 중에 프란치스코가 말했다: “우리 중에서 한 명을 우리의 안내자로 선출하여, 그를 우리를 위한 예수 그리스도의 대리자로 앉힙시다. 우리는 그가 택하는 길이면 아무 길이나 갈 것이며, 그가 결정하는 때에 어느 때든지 야숙할 장소를 물색할 것입니다.” 그들은 복되신 프란치스코가 최초로 받아들인 형제인 베르나르도 형제를 뽑았고, 그들은 프란치스코의 제안대로 하였다.

 c. 그들은 주님의 말씀에 대하여 대화를 나누면서 설레는 마음으로 길을 재촉하였다. 그들은 하느님의 찬미와 영광과 영혼에 보탬이 되는 말 외에는 말하려 하지 않았고, 그들의 영혼에 유익한 말만을 하였으며, 기도에 전념하였다. 주께서 음식과 거처를 필요할 때마다 장만해 주셨다.


32 a. 그들이 로마에 도착해서 당시에 로마에 체류 중이던 아시시 주교를 만났다. 주교는 그들을 보자 한없이 기쁜 마음으로 그들을 환대했다.

 b. 아시시의 주교는 추기경들 중의 한 분이신 성 바오로의 요한 주교를35) 잘 알고 있었는데, 이분은 선하시고 열심하신 분이셨으며, 주님의 종들을 무척이나 사랑하는 분이셨다. 복되신 프란치스코와 그 형제들의 계획과 생활에 대해서 자세히 말한 주교가 바로 이 주교였다. 그들에 관한 말을 듣고 나서 추기경은 복되신 프란치스코와 그 형제들을 만나보기를 간절히 원했었다. 추기경은 그들이 로마에 있다는 말을 듣고 사람을 보내어 그들을 오도록 했다. 그들을 만나자 추기경은 열광적인 사랑으로 환대했다.


33 a. 그들이 추기경과 함께 지낸 것은 불과 며칠에 지나지 않았지만, 추기경은 그들에 관해서 들었던 모든 것이 그들의 행위에서 그대로 표출되는 것을 볼 수 있었고, 따라서 그는 그들을 깊은 애정으로 사랑하게 되었다. 그가 복되신 프란치스코에게 말했다: “저를 위해서 기도해 주십시오.  그리고 지금 이 시간부터 저를 형제들 중의 하나로 여겨 주시기 바랍니다. 그러니 모두가 여기에 온 이유를 말해주십시오.” 그러자 복되신 프란치스코는 듣기를 원하는 추기경에게 그의 모든 계획을 열어 보였고, 그것을 교황님께 말씀드리고 싶다고 했다. 교황님의 인정과 위임을 받고서 지금까지 해온 일을 계속하겠노라고 했다. 추기경이 답했다: “제가 여러분의 교황청 보호자 추기경이 되고자 합니다.”

 b. 이리하여 추기경은 교황청으로 가서 교황 인노첸시오 3세께 아뢰었다: “저는 거룩한 복음의 양식대로 살기를 바라고, 또 복음적 완덕을 준수하기를 바라는 가장 완전한 사람을 보았습니다. 확신하건대, 우리 주께서는 이 사람을 통해서 온 세상에 주님의 온 교회를 쇄신하기를 바라고 계십니다.” 이 말을 듣고 교황님은 매우 놀라시어, 추기경에게 말씀하셨다: “그를 나에게로 데려 오십시오.”


34 a. 다음날 추기경은 그를 교황님 앞으로 안내했다. 복되신 프란치스코는, 앞서 추기경에게 한 것처럼, 자기의 모든 거룩한 의향을 교황님께 숨김없이 열어 보였다.

 b. 교황님께서 응답하셨다: “수도회를 만들 의향이면서 이 세상에서 아무것도 소유할 뜻이 없다면 여러분의 생활은 힘겹고 어려울 것입니다. 필요한 것을 어디에서 충당하시겠습니까?” 복되신 프란치스코가 대답했다: “교황님, 저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그분은 우리들에게 천국의 생활과 영광을 약속하셨기에, 이 세상에서 우리에게 물질적 필요성이 생길 때, 그분은 우리에게서 육신에 필요한 것들을 거두지 않으실 것입니다.” 교황님께서 응답하셨다: “아들이여, 그대의 말이 사실입니다. 그렇지만 인간의 천성은 약해서 한 가지에 항구하지를 못합니다.36) 그러나 가서 주님께 무엇이 그대들의 영혼에 더 좋고 더 유익한 지를 여러분께 보여 주십사고 진심으로 기도하십시오. 그리고 나서 돌아와 저에게 보고하십시오. 그러면 그것을 허락하겠습니다.”


35 a. 프란치스코가 기도에 몰입하였다. 그가 순수한 마음으로 주님께 기구를 드리자, 주님께서는 당신의 형언할 수 없는 자비로 프란치스코에게 교황님께서 요구하시는 것을 보여주셨다. 그가 기도에 잠겨 있는 동안 그의 온 마음이 주님께 드높여져서, 주님의 말씀이 그의 마음속으로 들어왔다. 주님께서는 그에게 비유로 말씀하셨다: “어느 왕국에 몹시 가난했지만 아름다운 처녀 하나가 살았다. 왕은 그녀의 매력에 끌려 그녀에게서 많은 아들을 봤다. 어느 날 그 여인은 홀로 생각하기 시작했다: ‘나는 이렇게 아들들이 많지만 재산이 없다. 애들의 장래를 위해서 가난한 내가 무엇을 해야 한단 말인가?’ 그녀가 마음으로 이러한 궁리를 했지만, 이러한 염려들이 그대로 그녀의 얼굴에 슬픔으로 나타났다. 왕이 나타나 그녀에게 말했다: ‘무슨 일입니까? 당신의 얼굴에 근심이 역력하고 슬퍼 보이니 말입니다.’ 이래서 그녀는 그녀가 염려했던 바를 모두 왕께 설명 드렸다. 왕이 대답했다: ‘당신의 극단의 가난을 걱정하지 마시고, 또한 태어난 아들들과 앞으로 태어날 아들들도 염려하지 마시오.  내가 내 집에 고용된 수많은 고용인들도 배불리 먹이는데, 내 어찌 나의 아들들을 굶어 죽게 하겠는가? 오히려 다른 사람들보다 더 배불리 먹일 것이니라.’”

 b. 하느님의 사람인 프란치스코는 즉시 그 가난한 부인이 자기 형상임을 깨달았다. 그 결과로 하느님의 사람은 그 이후로 가장 거룩한 가난을 지킬 그의 결심을 굳혔다.

36 a. 그는 일어나자마자 교황님께 달려가서 주께서 자신에게 계시해주신 것을 낱낱이 보고 드렸다.

 b. 이 설명을 듣고 나서 교황님께서는 주께서 당신의 뜻을 이러한 단순한 사람에게 내보이심에 심히 놀랐다. 그는 프란치스코가 인간적 지혜에 의해서가 아닌 “성령의 활동과 힘 안에서”37) 움직이고 있음을 깨달으셨다.

 c. 복되신 프란치스코는 고개를 숙여 교황님께 순종과 존경을 겸손하고 정성되게 약속했다. 교황님의 뜻에 따라 형제들도 이와 비슷하게 복되신 프란치스코에게 순종과 존경을 약속했다. 왜냐하면 아직 그들이 그 때까지 순종 서원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d. 교황님께서는 프란치스코와 그의 형제들, 지금 있는 형제들과 앞으로 들어올 형제들을 위해서 회칙에 동의하셨다. 그리고 프란치스코에게 성령의 은총이 이끄는 대로 어디에서나 설교를 할 수 있는 허락을 주셨다. 다른 형제들도 복되신 프란치스코로부터 설교할 직책을 받기만 한다면 설교할 수 있다고 허락하셨다.

 e. 그 때부터 복되신 프란치스코는 주님의 성령께서 이끄시는 대로 도시와 마을을 돌면서 사람들에게 설교하기 시작했다. 주께서 그의 입안에 단호하면서도 달콤하고 지극한 위로가 되는 말씀들을 넣어주셔서, 그의 말을 듣는 청중들은 쉽게 자리를 뜰 수가 없었다.

 f. 앞서 언급한 바 있는 추기경이 형제에게 바치는 자기 헌신의 뜻으로38) 열두 명의 모든 형제들에게 머리를 동그랗게 깎아주어 삭발례를 시켰다.39)

 g. 그 후 복되신 프란치스코는 총회를 성령강림절과 9월에 있는 미카엘 대천사 축일, 이렇게 일 년에 두 번 개최할 것을 명하였다.



제 8 장 


복되신 프란치스코가 총회의 개최를 명함,

그리고 총회에서 다루어진 안건들


37 a. 모든 형제들은 성신 강림절에 총회를 위해서 성 마리아 성당으로 모여들었다. 그들은 총회에서 어떻게 하면 회칙을 더 완전하게 지킬 수 있는지에 관해서 토론을 벌였다. 그들은 형제들을 각 관구에 파견하면서 사람들에게 설교하는 직책을 부여하였고, 또 어떤 형제들은 각 관구에 위임하였다.40)

 b. 프란치스코는 먼저 주님과 상의를 한 후, 적절한 시기에 형제들에게 권고와 징계와 지침을 주었다. 그러나 그들에게 준 말이 무슨 말이든지 간에 그가 먼저 조용히 애정을 가지고 행동으로 그것들을 보여주었다.

 c. 그는 거룩한 교회의 고위 성직자들과 사제들을 공경하였고, 연장자들을 존경하였고, 귀족들과 부자들을 영예롭게 여겼다. 그는 누구보다도 가난한 이들을 깊이 사랑했고, 그들과 아픔을 느꼈다. 한마디로 그는 자기 자신을 모든 이들의 밑에 두었다.

 d. 그는 모든 형제들보다 높은 자리에 있었지만, 함께 살고 있는 형제 하나를 원장과 주인으로  모셨다. 모든 교만의 기회를 자기에게서 없애기 위해서 겸허하고 열성적으로 그에게 순종했다. 이 성인은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머리를 땅에 닿을 정도로 숙였다. 이러한 이유로 해서 주님께서는 그를 주님의 성인들과 뽑힌 이들 가운데에서도 들어 높이셨다.

 e. 그는 형제들에게 지키기로 약속한 거룩한 복음과 회칙을 성실하게 지키도록 권고했다: 특히 교회의 성무(聖務)와 서품에 존경심을 보이라 했고, 미사에 열심히 참석하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정중하고 열성적으로 흠숭하고, 지극히 거룩하고 경건한 성사를 집행하는 사제들을 각별히 존경하기를 바랐다. 그래서 형제들은 어디서나 사제들을 만나면 그들에게 고개를 숙여 절을 하고, 그들의 손에 친구하기를 바랐다. 게다가 그들이 말을 탄 사제들을 만나면 고개를 숙여야 함은 물론이고, 그들의 사제로서의 권위를 존경해서 그들의 손만이 아니라 그들이 탄 말의 발굽에도 친구하기를 바랐다.


38 a. 그는, 회칙에 그대로 쓰여 있듯이, 어떤 사람도 판단하거나 무시하지 말고, 호화롭게 먹고 마시고 입는 사람들까지도 판단하거나 무시하지 말라고 하였다. “그들의 주님이 우리의 주님이고, 우리를 부르신 분이 그들을 부르실 수 있으며, 우리를 용서하시기로 하신 분이 그들도 또한 용서하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b. 그는 습관적으로 말했다: “나는 그러한 사람들을 형제와 주인으로 존경하고 싶습니다. 그들은 나의 형제들입니다. 왜냐하면 우리 모두는 한 창조주로부터 지음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나의 주인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우리에게 육신에 필요한 것을 장만해 줌으로써 우리가 회개 생활을 하도록 도와주는 주인들이기 때문입니다.” 이어서 그는 말했다: “사람들 가운데에서의 형제들의 삶은 남들이 형제들을 보고 형제들의 말을 들을 적마다 하늘의 아버지께 영광과 찬미를 드리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c. 그의 크나큰 소원은 자기와 형제들이 실천을 함으로써 그 실천이 주님께 찬미가 되도록 하는 것이었다. 그가 형제들에게 말했다: “형제들이 말로 평화를 전할 때에는 형제들의 마음에 한층 더 그러한 평화가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해서 어떤 사람도 여러분들로 해서 분노하지 않고 또 불미스러운 이야기가 생기지 않도록 합시다. 오히려 그들을 여러분의 온화한 모습으로 평화와 자비와 화목으로 이끌도록 하십시오.  왜냐하면 바로 이것 때문에 우리가 불리움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상처를 입은 사람들을 낫게 하고, 삐뚤어진 사람을 고치고, 길을 잃은 사람들을 데려오라는 부름을 받았다. 우리 눈에 악마의 자녀로 보이는 많은 사람들이 오히려 그리스도의 제자가 될 것입니다.”


39 a. 반면에 그는 자신들의 육신에 과도한 고행을 가하는 형제들을 나무랐다. 당시에 형제들은 몸에서 나오는 모든 충동을 억누르려고 과하게 밤샘을 하고 단식을 하고 육신적 고행을 하였기 때문이었다. 몸에 너무 심하게 고통을 가한 나머지, 마치 자신들을 증오하는 것처럼 보였다. 이것을 듣고 본 프란치스코는 그들을 나무랐고, 위에서 언급한 바처럼, 그들에게 그리 못하도록 명을 내렸다. 그는 구세주의 은총과 지혜로 채워져 있어서 그의 권고는 사랑에서 나왔고, 그의 질책은 선(善)에서 나왔으며, 그의 명(命)은 온화함에서 나왔다.

 b. 총회에 모이는 형제들 중에 아무도 세속 일을 이야기하려는 형제가 없었고, 오히려 그들은 한결같이 거룩한 교부들의 삶을 이야기했고, 아니면 형제들의 거룩함을 말했으며, 어떻게 하면 우리 주의 은총을 더 잘 받을 수 있을까 하는 이야기만을 했다.

 c. 총회에 참석한 어떤 형제들이 육적이거나 세속적이거나 아니면 여타의 어떤 유혹에 빠지게 되면, 이러한 형제들은 복되신 프란치스코의 감미롭고 뜨거운 말을 듣거나 그를 직접 보기만 해도 유혹이 멈췄다. 그는 그들을 동정한 나머지 진정 판정관으로서 말하지 않았고, 자녀들을 대하는 아버지로서 그리고 환자들을 대하는 의사로서 말함으로써 으뜸 사도 베드로의 말이 이루어졌다: “누가 아플 때 내가 어찌 아니 아플 수 있습니까? 누가 넘어졌을 때 내가 어찌 아무렇지도 않을 수 있습니까?”41)



 제 9 장


 형제들이 세계의

모든 관구로 파견됨


40 a. 총회가 끝나자 그는 참석한 모든 형제들에게 강복을 주었고, 각 형제들에게 그들이 가야 할 관구를 정해주었다. 하느님의 영을 가진 형제나 설교에 적합한 언변을 가진 형제에게는 그 형제가 성직 형제이건 평형제이건 관계없이 누구에게나 설교할 수 있는 허락과 순종을 내렸다. 그들은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매우 큰 기쁨과 행복 속에서 그의 강복을 받았다. 성무일도서를 제외하고는 아무것도 지니지 않은 채 길을 떠나, 순례자들이나 나그네들처럼 세상으로 들어갔다.

 b. 그들은 사제를 만날 때나, 부자를 만날 때나 가난한 사람을 만날 때나, 복되신 프란치스코의 가르침에 따라, 머리를 숙여 공손히 인사를 하여 그들에게 존경심을 보였다.

 c. 그들은 날이 저물어 거처를 찾아야 할 경우에는 평신도들에게 가기보다는 즐겨 사제들에게 갔다.


41 a. 만일 사제들의 집에서 묵을 수 없게 될 경우에는, 형제들은 영적이며 하느님을 경외할 줄 아는 사람들의 집에 묵도록 하였고, 아니면 그들의 도움으로 더욱 적합한 숙소를 구할 수가 있었다. 그 후로도 주님께서는 도시나 마을에 사는 이렇게 하느님을 두려워할 줄 아는 사람들에게 형제들을 위해서 거처를 마련해 주도록 계시하실 때까지 이 일은 계속되었다. 후에는 형제들이 도시나 마을에 자기들이 거처할 집을 지었다.

 b. 하느님께서는 형제들이 많은 청중들의 가슴에 깊이 파고드는 날카로운 말을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형제들에게 그 때그 때 필요한 말씀과 영을 주셨고, 특별히 이러한 말은 노인들보다는 젊은이들의 가슴을 파고들었다. 젊은이들이 부모를 떠났고, 자기들이 소유한 모든 재물을 떠났으며, 거룩한 수도회의 옷을 입고 형제들을 따랐다. 당시에는 특별히 이 수도회 안에 복음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는 주님의 말씀이 충만했다: “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아라. 평화가 아니라 칼을 주러 왔다. 나는 아들은 아버지와 맞서고 딸은 어머니와 맞서게 하려고 왔다.”42)  형제들은 자기들이 받아들인 지원자들에게 수도복을 입히기 위해서 복되신 프란치스코에게 데리고 갔다.

 c. 이렇게 많은 여인들, 즉 많은 처녀들과 과부들도 형제들의 설교에 마음이 뉘우쳐져서, 그들에게 와서 물었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당신의 형제회에 들어갈 수가 없으니 말입니다. 그러니 어떻게 하면 우리들의 영혼을 구할 수 있는지 말해주십시오.” 그 응답으로 형제들은 각 마을에 이 여인들이 회개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봉쇄 수녀원을 만들었다. 이들을 위해서 형제 중의 하나가 방문하고 순시하는 직책에 임명되었다.

 d. 이와 비슷하게  결혼한 남자들도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자기들을 버리지 못하게 하는 부인들이 있습니다. 그러니 어떤 생활을 택해야 더 안전한 지를 우리에게 가르쳐 주십시오.” 이렇게 해서 형제들은 그들을 묶어서 회개회라고 하는 모임을 만들었고 교황님께 인준을 받았다.



제 10 장


형제회에 마음이 끌리는 추기경들이

이제는 형제들을 돕고 충고하기 시작함


42 a. 공경하올 스승인 성 바오로의 요한 추기경은 자주 복되신 프란치스코를 아끼며 충고를 아끼지 않았다. 그리고 추기경은 다른 모든 추기경들에게 복되신 프란치스코와 그 형제들이 이루어 가는 좋은 점과 성업을 칭찬하였다. 모든 추기경들이 그의 말을 듣고는 깊이 감동되어 형제들을 사랑하였다. 추기경들마다 몇몇 형제들을 자기들 거처에 데리고 있기를 바랐다. 특별히 형제들에게 일을 시켜서 봉사를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형제들에 대한 그들의 크나큰 헌신과 사랑 때문이었다.

 b. 어느 날 복되신 프란치스코가 교황청에 왔을 때, 추기경들마다 그에게 형제들을 보내줄 것을 요구했다. 그래서 그는 그들의 제안을 황송하게 받아들였다.

 c. 거룩한 형제들을 사랑했던 위에서 언급한 요한 추기경은 서거하였고, 지금은 안식을 누리고 있다.43)


43 a. 그분의 서거 후, 주께서는 추기경들 중에서 오스띠아(Ostia)의 주교인 우골리노(Ugolino) 추기경의 마음을 움직이셨다. 그는 복되신 프란치스코와 형제들을 실로 뜨겁게 사랑했고, 친구로서가 아니라 아버지로서, 아니 아버지 이상으로 사랑을 보였다. 추기경의 고매한 인품을 들어 알고 있던 프란치스코가 그분께 다가갔다. 추기경이 그를 보자 그를 반갑게 맞이했다. 그리고 말했다: “형제들에게 저를 바칩니다. 형제들이 원하는 만큼 형제들을 충고하고 돕고 보호하겠습니다. 여러분의 기도 중에 저를 기억해 주십시오.”

 b. 그러자 복되신 프란치스코는 이 추기경의 마음을 움직이시어 추기경으로 하여금 충고와 도움과 그리고 보호를 하게 하신 지존하신 분께 감사를 드렸다. 그가 추기경에게 말했다: “추기경님, 기쁜 마음으로 추기경님을 나의 모든 형제들의 아버지요 보호자로 모시겠습니다. 그리고 모든 형제들에게 당신을 위해서 주님께 기도 드리라고 당부하겠습니다.” 그리고 나서 그는 추기경에게 성령 강림절에 열리는 형제들의 총회에 참석하도록 청했다. 추기경이 이를 받아들였고, 그 후로는 해마다 참석했다.

 c. 그가 총회에 올 때마다 총회에 모인  모든 형제들이 행렬을 지어 걸어서 그를 마중 나갔다. 형제들이 나오면 추기경은 그들을 지극하게 여겼던 관계로 말에서 내려 형제들과 함께 성당까지 걸어서 갔다. 그리고는 형제들에게 강론을 하고 미사를 집전했으며, 복되신 프란치스코는 복음을 낭독했다.



제 11 장


교회가 형제들을

박해자들의 손에서 보호함


44 a. 형제회가 시작된 지 십일 년이 지나니, 형제들의 수효가 늘어났고, 봉사자들이 선출되었으며, 많은 수의 형제들이 카톨릭 신앙을 받드는 거의 모든 나라의 방방곡곡에  파견되었다.

 b. 어떤 지방에서는 형제들을 받아들이기는 하였으나, 형제들이 집을 짓고 자리를 잡는 일은 허락지 않았다. 어떤 지방에서는 추방을 당했다. 사람들은 형제들이 전통적인 그리스도교인이 아닐까 두려웠던 것인데, 이러한 일은 형제들이 아직 교황님으로부터 회칙을 인준받지 못한데서 기인하는 일들이었다. 단지 구두로만 허락을 받았던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형제들은 성직자들이나 평신도들로부터 많은 시련을 받아야만 했고, 도둑들에게 옷을 벗기우기도 했으며, 그리고는 크나큰 쓰라림과 실망을 가슴에 안은 채 복되신 프란치스코에게 돌아왔다. 이러한 일들이 형제들에게 일어난 곳은 헝가리(Ungaria)와 독일(Alamania) 등 여러 지방에서였다.

 c. 형제들은 이러한 사실들을 오스띠아의 추기경께 보고하였다. 그러자 그는 복되신 프란치스코를 불러서 그와 함께 호노리오(Honorio) 교황님께 갔다. 그 때는 이미 인노첸시오(Innocentio) 교황께서는 타계하신 후였기 때문이다. 추기경이 프란치스코로 하여금 프란치스코 손수 다른 회칙을 쓰게 하였고, 그것을 추기경이 인준하였으며, 교황님의 봉인으로 교황이 보호하겠다는 약속이 첨가되었다.

 d. 인준받은 회칙에서 그는 총회와 총회 사이의 기간을 늘렸는데, 이는 아주 멀리 떨어진 지방에서 사는 형제들이 오가는 수고를 덜기 위한 것이었다.


45 a. 거기에다가 회칙에도 기록되어 있듯이 복되신 프란치스코는 교황님께 이 수도회를 지도하고 보호하고 시정할 추기경 한 분을 주십사 하는 청을 드렸다. 이에 교황님께서는 위에서 언급한 바 있는 오스띠아의 주교를 형제들에게 주셨다.

 b. 오스띠아의 주교는 교황님으로부터 이 임명을 받고 나서 형제들을 옹호하기 위하여 손을 쓰기 시작하였고, 형제들이 부당한 대우를 받았던 지역의 많은 고위 성직자들에게 서한을 띄웠다. 그는 고위 성직자들에게 형제들을 거스르지 말 뿐만 아니라, 그들은 교회가 인정하는 훌륭하고 열심한 사람들이므로, 오히려 그들의 교구에서 설교하고 거주할 수 있도록 돕고 아낌없는 충고를 해줄 것을 요구했다. 여러 추기경들에 의해서 이와 비슷한 내용의 편지들이 같은 목적으로 발송되었다.

 c. 다음 총회에서 복되신 프란치스코는 지방 봉사자들에게 새 형제들을 임의로 수도회에 받아들일 수 있는 권한을 부여했고, 형제들은 그들의 관구로 돌아갔다. 그들은 우리가 이미 언급한 추기경으로부터 확인된 회칙과 서한을 가지고 갔다. 고위 성직자들은 교황님으로부터 인준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오스띠아의 추기경과 다른 추기경에 의하여 승인된 회칙을 보자, 형제들에게 자기들 교구에서 집 짓고 살면서 사람들에게 설교할 수 있는 허락을 내렸다.

 d. 이렇게 해서 형제들은 어려움이 컸던 교구에 거주하면서 설교를 하였고, 많은 사람들이 형제들의 겸허하고 정직한 생활을 알게 되었고, 또 그들의 매우 부드러운 말들을 듣게 되었다. 이리하여 그들은 형제들에게 모여들어 형제회의 거룩한 수도복을 받았다.

 e. 복되신 프란치스코는 형제들에 대한 오스띠아 주교의 신뢰와 애정을 보고서, 그분을 가장 경모(敬慕)했다. 프란치스코가 이 주교에게 서한을 띄울 때마다 이렇게 말하곤 했다: “그리스도 안에서 온 세상의 공경하올 아버지 추기경님께.”

 f. 불과 몇 년 후에 이 오스띠아 주교가 복되신 프란치스코의 예언에 따라 그레고리오(Gregorius) 9세라는 이름으로 교황으로 피선되었다.



제 12 장


프란치스코의 죽음과

그의 기적들과 그의 시성식


46 a. 복되신 프란치스코가 복음적 완덕을 이룬 지 20년이 지나서, 자비로우신 하느님께서는 그에게 무거운 짐을 내려놓도록 하셨다. 그는 지금까지 수많은 밤샘과 기도와 단식, 애원과 설교와 여행, 그리고 책임감과 이웃에 대한 연민으로 수고로운 삶을 살았다. 참으로 그는 그의 온 마음을 창조주이신 하느님께 바쳤고, 그는 그의 마음을 다 바치고, 그의 영혼을 다 바쳐 전력을 기울여 그분을 사랑했다. 그는 하느님을 그의 마음에 모셨고, 그분을 그의 입술로 찬미하였으며, 그분을 그의 행동으로 영예롭게 하였다. 그는 하느님의 이름만 들어도 이렇게 말하곤 했다: “하늘과 땅은 이 이름에 고개를 숙일진저.”

 b. 주 하느님께서는 프란치스코에게 지니셨던 당신의 사랑을 내보이려 하셨다. 이리하여 주님께서는  당신의 가장 사랑하는 아드님의 오상(五傷)을 그의 손과 발과 옆구리에 박아주셨다. 그리고 하느님의 종인 프란치스코가 그분의 집으로 돌아가기를 갈망하였고, 그분의 영광의 자리에 거하기를 열망했기에 주님께서 그를 당신께 부르셨다. 이리하여 그는 영광스럽게 주님께로 돌아갔다.

 c. 그의 죽음 후에 사람들 사이에서 많은 징조와 기적들이 나타났고, 이리하여 주님께서 당신의 종을 통해서 자비롭게도 드러내 보이셨던 것들을 끝끝내 믿지 않으려 했던 많은 사람의 마음이 누그러졌다. 이제서야 그들은 이렇게 말한다: “바보였던 우리는 그의 삶을 미친 짓으로 생각했고, 그의 죽음을 영예롭지 못한 것으로 생각했었다. 이제 보니 그는 하느님의 자녀들 중의 하나였고, 성인들의 반열에 들어 있었다.”


47 a. 성인이 살아 있을 동안 그를 사랑했던 공경하올 주인이시자 아버지이신 그레고리오 교황께서 그가 죽은 후에도 그를 영예롭게 하셨다. 추기경들과 함께 성인이 묻힌 장소에 오시어 그를 성인들의 반열에 올려놓으셨다.

 b. 이 시성식의 여파로 수많은 지체 높은 귀족들이 부인들과 아들들과 딸들을 데리고 모든 가족이 가진 것을 다 버리고 함께 하느님께 돌아왔다. 부인들과 딸들은 봉쇄 수녀원으로 들어갔다. 남편들과 아들들은 작은 형제들의 옷을 입었다.

 c. 이리하여 프란치스코가 형제들에게 한 예언이 이루어졌다: “조만간 현명하고 배움이 많고 고귀한 많은 사람들이 우리에게 올 것이며 우리와 함께 할 것이다.”



맺음말


48. 지극히 사랑하는 형제들이여, 제가 형제들에게 간곡히 청합니다. 우리가 우리의 친애하는 사제 형제들과 평형제들을 염려해서 여기 써 내려온 것들을 애써 묵상하고 바르게 이해하여 실천하도록 힘쓰십시오. 그리하여 우리 모두 천국에서 만나도록 합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그 곳으로 이끄시기를 빕니다.




번역을 마치고


창 밖에는 안개가 자욱하여 바로 눈앞의 몇 그루 나뭇가지들만 보인다. 그분은 알 수 없는 안개다. 그 안개가 이렇게 나를 사로잡을 수가 없다.

번역본은 Lorenzo Di Fonzo, OFM Conv. 형제의 1972년 라틴어 비판본을 사용하였다.

 


1995년 10월 11일 저녁 6시 55분


Canterbury에서



------------------

각주

1) 그러므로 프란치스코의 회개 날짜는 1208년 4월 16일이 되는 셈이다(3a번).

2) “magna rusticitas(엄청난 과오)”; 당시의 기사도 정신에 심히 어긋나는 행위다(4a번).

3) “O firmum et sanctum propositum(오, 확고하고 성스러운 결심이여)”는 “오, 확고하고 성스러운 제안이여”로 번역할 수 있다(4c번).

4) 이사 58,10 (4c번)

5) 이사 58,7 (4c번)

6) “speciosae amoenitatis(어떤 사람이)”는 2Cel 6에는 “speciosa sponsa(아름다운 부인)”으로 나온다(5a번).

7) “totum suum propositum”을 “자기의 모든 취지를”이라고 번역했다(6b번).

8) 이 부분에서 Latin text의 해석상의 문제가 있다. Di Fonzo는 주장하기를 프란치스코가 먼저 아시시에 갔고, 그 후에 Foligno로 가서 옷들을 팔았다는 해석이고, 불어 판을 번역한 Beguin이 나 이태리 판을 번역한 Gamboso는 그와 의견을 달리하여 “아시시로 돌아오는 길에” 옷들을 팔았다는 해석이다. 본 번역은 후자들의 의견을 따랐다(7b번).

9) 사제의 이름까지 구체적으로 밝혀지기는 여기뿐이다(7c번).

10) 창세 17,4 (8c번)

11) 가난한 노인의 이름까지 구체적으로 밝혀지기는 여기뿐이다(9b번).

12) 참조: 1고린 2,4 (9c번)

13) 마태 19,21 (11a번)

14) 마태 16,24 (11a번)

15) 루가 9,3 (11a번)

16) 여기에서 말하는 바 그대로 베르나르도와 베드로가 동시에 입회했다면, 프란치스코의 두 번째 동료가 베드로라는 설은 고려해 봐야 할 것이다. 첫 번째 동료로 봐야 한다. 더구나 그는 프란치스코의 첫 번째 대리자였었고, 1221년 3월 10일에 사망했다(11b번).

17) 실베스텔 형제는 1240년 3월 4일에 사망했다(13c번).

18) 에지디오 형제는 본서가 쓰여지기 전에 사망했을 것이다(14c번).

19) 인준 받지 않은 회칙 21장에서와 마찬가지로, 여기에서도 초기의 프란치스코의 회개 설교를 잘 볼 수 있다(15d번).

20) 루가 11,32 (18b번)

21) 마태 10,20 (18b번)

22) 마르 16,6 (18c번)

23) 베르나르도 형제다(참조: 베르나르도 형제의 생애 n.3) (20b번)

24) 이것으로 짐작하건대, 형제들의 최초의 파견은 1208년 가을로 여겨진다(20c번)

25) “주인이 종을 다루는 듯한”이라는 말은 인준 받은 회칙 10장에서도 그대로 찾아볼 수 있다(23a번).

26) 인준받지 않은 회칙 1장, 인준받은 회칙 14장 참조(23a번).

27) 루가 6,29. 인준받지 않은 회칙 14장 참조(23a번).

28) 마태 5,44 인준받은 회칙 10장 참조(23c번).

29) “plurimi(많은 사람들을)”을 벌써 초기 여섯 형제의 파견에서 받아들였다는 말인가? 아니면 저자의 오기(誤記)인가? 저자의 오기일 가능성이 크다. 1Cel 30 참조(24b번).

30) 시편 118,62 (25b번)

31) 사도행전 4,32 참조 (27b번).

32) 루가6,30. 에지디오 형제로 여겨진다. 제2생애 4번 참조(28a번).

33) 에지디오 형제다. 1208년 4월 23일 입회한 바로 그날 자기의 외투를 주었다(28b번).

34) 시편 68,9 (29b번)

35) 분도회의 성 바오로 요한 추기경이다. 형제회의 첫 번째 보호자 추기경이다(32b번).

36) 교황으로 피선되기 전에, 인노첸시오 3세는 “De miseria humanae conditionis(인간 조건의 비참성)”이라는 저서를 출판해서 대단한 호응을 얻었었다(34b번).

37) 1고린 2,4. 본서 9번 참조(36b번).

38) Jordan di Giano의 연대기 17번 참조. 프란치스코를 단순히 “형제”라고만 호칭한다(36f번).

39) 머리를 동그랗게 깎는 tonsura의 본래의 취지가 여기서는 다르게 나타난다. 여기서는 마치 형제들이 설교할 수 있는 허락을 얻는데 도움이 되어준 추기경의 친절의 표시로 묘사되고 있는데, 형제들의 성직이나 설교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어보인다. 그러나 형제들이 성직에 올랐을 때 머리를 동그랗게 깎은 것만은 확실하며(세 동료들이 쓴 프란치스코의 전기 52번 참조), 대전기 3장 10에는 평형제가 설교할 허락을 받고서 작은 테를 하였다. 이는 사제 형제와 구분하기 위해서였는데, 사제 형제들은 큰 테를 하였다. 그러나 프란치스코는 끝까지 작은 테를 고집하였다(2Cel 193번)(36f번).

40) 인준받지 않은 회칙 4장 참조. 관구장이 형제들의 직책을 임명하는 권한이 초기 형제회에도 있었다(37a번).

41) 2고린 11,29 (39c번)

42) 마태 10,34-35 (41b번)

43) 제4차 라테라노 공의회가 열리기 수개월 전인 1215년 여름에 사망했다(42c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