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0월 2일 수호천사 기념일
수호천사는 사람을 선으로 이끌며 악으로부터 보호하는 천사다. 교회의 전승에 따르면, 주님께서는 누구에게나 천사 한 분을 정해 주시어 그를 지키고 도와주게 하신다. 하느님의 사랑이다. 다음은 수호천사에 관한 『성경』의 표현들이다. “그분께서 당신 천사들에게 명령하시어, 네 모든 길에서 너를 지키게 하시리라”(시편 91〔90〕,11). “저를 모든 불행에서 구해 주신 천사께서는 이 아이들에게 복을 내려 주소서”(창세 48,16). “너희는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업신여기지 않도록 주의하여라.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하늘에서 그들의 천사들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늘 보고 있다”(마태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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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 있는 그들의 천사들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를 항상 모시고 있다.
(마태 18,1-5.10)
For I say to you that their angels in heaven
always look upon the face of my heavenly Father."
오늘의 복음 : http://info.catholic.or.kr/missa/default.asp
오늘의 묵상
-박형순신부-
구약 성경에 등장하는 천사는 주로 하느님 백성을 불행과 어려움에서 ‘지켜 주고’ 하느님께서 마련하신 곳으로 이끌어 줍니다(창세 48,16; 탈출 23,20; 시편 91[90],11 참조). 이처럼 구약 성경은 천사들이 우리의 일상 안에서 함께하는 모습을 보여 줍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알려 주시는 천사는 어떤 모습인가요? 예수님께서는 모든 이에게 저마다 수호천사가 있으며, 그들이 하느님과 얼굴을 마주하고 있음을 알려 주십니다.
우리의 모습을 돌아봅니다. 하느님보다는 세속의 성공과 물질의 풍요를 더 높은 기준으로 삼아 하루하루를 치열하게 살아갑니다. 끊임없이 경쟁하고, 때로는 복음의 논리보다 약육강식의 법칙을 따르기도 합니다. 그런 우리에게 이웃을 생각하는 마음보다 우리 자신과 가족만을 생각하는 마음이 더 큰 것은 어쩌면 당연한지 모릅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그런 우리에게 수호천사를 보내 주셨습니다. 우리가 다치지 않도록, 힘겨워서 쓰러지지 않도록, 그리고 우리가 하느님을 잊지 않도록! 하느님께서는 당신을 잊고 살아가는 우리에게, 우리를 지켜 주고 보살펴 주는 수호천사를 보내 주셨습니다.
우리가 하느님을 잊고 지낼지라도, 우리의 수호천사는 하느님의 얼굴을 바라보며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고 하느님을 찬미합니다. 일상이 무척이나 바쁘고 힘들겠지만, 하루에 한 번이라도 하느님을 기억하고 하느님께 찬미와 감사를 드리면 어떨까요? 아무런 조건없이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수호천사를 보내 주신 것처럼, 우리도 아무 조건 없이 하느님을 찬양한다면, 하늘 나라의 수호천사들도 우리의 소리에 맞추어 함께 더욱 기쁜 마음으로 하느님을 찬미할 것입니다.

-조명연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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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어느 신부님을 찾아가 자신의 사연을 다 이야기한 후에 말했습니다.
“아무리 남편을 성당 나오게 하려고 해도 모든 방법을 써도 전혀 변화가 없는데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러자 신부님께서는 한 가지 방법을 사용하지 않았다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앞으로 남편 앞에서 주님 이야기를 많이 하기보다, 주님 앞에서 남편 이야기를 많이 하십시오.”
주님 앞에서 남편 이야기를 많이 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남편을 위한 기도를 바치는 것이었습니다. 남편에게 주님이 어떤 분인지 설명하는 것보다, 남편을 위한 기도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이었습니다.
기도의 힘은 정말로 대단합니다. 실제로 남편이 “나도 한 번 성당에 한 번 가볼까?”라면서 스스로 성당에 나갔다고 합니다. 이렇게 남을 위해 기도하는 그 자체가 수호천사의 모습이 아닐까요? 앞선 아내가 바로 남편의 수호천사가 되어서 기도해줬던 것입니다.
오늘은 수호천사 기념일입니다. 수호천사란 하느님의 명에 따라 사람을 보호하는 임무를 맡은 천사를 말하지요. 교회의 전승에 따르면, 주님께서는 누구에게나 천사를 정해 주시어 그를 지키고 도와주게 하신다고 합니다.
이 말을 듣고 ‘나의 수호천사는 누구지?’라면서 주변을 둘러보시는 분이 계실 것입니다. 그런데 이는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나는 누구의 수호천사 역할을 하고 있을까?’
자신이 받을 사랑보다 남에게 베풀 사랑에 집중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 사랑에 기초한 기도가 커다란 힘을 가져오게 됩니다.
제자들의 “하늘 나라에서는 누가 가장 큰 사람입니까?”라는 질문에,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회개하여 어린이처럼 되지 않으면 결코 하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라고 하십니다. 어린이와 같은 순수함을 가지고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이 곧 주님께서 이 땅에 보내신 수호천사이며 하늘 나라의 큰 사람이 됩니다.


한 번도 일탈해 본 적이 없는, 말 그대로 모범적이고 원칙적으로 사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뉴스에 등장하는 죄짓는 사람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이런 범죄가 다시 발생하지 않기 위해 더 엄하게 벌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한 번은 어느 국회의원 아들의 일탈 이야기가 뉴스에 나왔습니다. 그는 이 국회의원에게 문제 있음을 주장했습니다. 가정교육도 제대로 못 시키는 사람이 어떻게 국민의 대표가 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하지만 어떤 사건을 통해 이해의 폭이 넓어질 수 있었습니다. 글쎄 외아들이 친구들과 함께 사고를 친 것입니다. 그것도 주동자로 몰려서 더 큰 벌을 받아야만 했습니다. 남에 대해 비판을 했던 사람이 이제 다른 이의 비판을 받아야만 했습니다. 비로소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누구나 죄지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남을 이해하는 방법은 그 사람과 같은 위치에 있을 때 가능합니다. 예수님도 완벽한 인간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오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완벽하게 눈높이를 맞추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떨까요? 자신은 늘 위에, 남은 늘 아래에 뒀던 것이 아닐까요?

수호천사는 마치 '공기'처럼 사랑한다
-전삼용신부-
오늘은 수호천사 기념일입니다. 저는 수호천사를 향한 기도를 하지 않아서 그런지 이 날이 되어서야 저의 수호천사를 생각하게 됩니다. 하지만 1년 동안 수호천사는 저를 위해 열심히 은총을 전달해주셨음이 분명합니다. 그러면서 수호천사의 사랑은 마치 ‘공기’와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공기는 없으면 죽습니다. 그렇다고 자신의 존재를 알아달라고 보채지도 않습니다. 가장 좋은 옷은 입은 줄도 모르게 의식하지 않고 생활할 수 있는 옷이랍니다.
수호천사는 마치 공기처럼 좋은 옷처럼, 그렇게 자신을 버린 온전한 사랑을 하는 모범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영화 제목이 ‘나를 찾아줘’(2014)란 영화가 있습니다.
모두가 부러워하는 삶을 살아가는 완벽한 부부 닉과 에이미. 그러나 결혼 5주년 기념일 아침, 에이미가 흔적도 없이 실종됩니다. 경찰은 에이미가 결혼기념일 선물로 숨겨뒀던 편지와 함께 곳곳에서 드러나는 단서들로 남편 닉을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합니다. 미디어들은 살인 용의자인 닉의 일거수일투족을 보도하고 시간이 갈수록 세상의 관심이 이 사건에 집중됩니다.
예전에 닉이 아내가 싫어져 젊은 여학생과 바람도 피우고 아내를 때린 일도 있었지만, 살인을 저지른 것은 아니었습니다. 사실 이 모든 것은 에이미가 꾸민 것이었습니다. 에이미는 하버드대를 나온 수재이고 유명한 작가입니다. 자신 같이 잘 나가는 인물이 시골뜨기인 닉과 결혼해 줬는데 무능한 데다 바람까지 피우는 남편을 보고만 있을 수 없어 남편을 살인죄로 집어넣으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에이미가 챙겨간 돈을 도둑맞게 되자 예전에 자신을 쫓아다녔던 한 남자에게 가서 숨어지내게 됩니다. 그 남자는 돈은 많았지만, 에이미를 가두어놓고는 어디도 가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이 와중에 남편 닉은 살인죄를 벗기 위해 자신이 바람피웠다는 사실을 다 TV에서 폭로하고 아내 에이미에게 사랑하니 돌아와 달라고 말합니다.
힘겹게 떠돌던 에이미는 이번엔 자기를 가둬놓던 남자를 죽여 정당방위로 꾸미고 집으로 돌아옵니다. 그리고 자기에게 집착하던 남자에게 납치되어 갔다가 집으로 돌아오기 위해 목숨을 건 영웅으로 세간에 화제가 됩니다.
하지만 남편은 이 모든 것이 아내가 꾸민 것임을 압니다. 아내가 살인까지 저지른 것을 알지만 세상이 영웅이라 믿고 있는 여인을 살인자로 내몰 수는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두려움 속에서 남의 아이를 밴 아내와 살아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아내는 말합니다.
“나는 당신에게 돌아오기 위해 살인까지 했어요. 당신은 나를 위해 무엇을 해 주었죠?”
아내는 남편이 완벽해지기를 바라는 여인이었습니다. 자신은 다른 누구보다 더 완벽하게 행복해야만 하는데 약간 수준이 모자란 시골 출신 남편이 자신의 수준을 따라오기를 바랐던 것입니다.
물론 남편은 그런 아내 밑에서 아내의 비위를 맞추며 숨죽이듯 살아왔지만, 너무 힘이 들어 결혼하자마자 바로 이혼을 생각했었습니다. 하지만 완벽을 추구하던 아내에게 이혼은 말이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다 아내에게 외도하는 모습이 들키게 되어 분노를 참을 수 없게 된 아내가 자신에게 이런 모멸감을 준 남편이 사형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모든 일을 꾸몄던 것입니다.
천사를 묵상해야 하는 날에 이런 섬뜩한 이야기를 해서 죄송스러울 따름입니다. 우리는 에이미가 천사와 완전히 반대되는 것을 사랑으로 알고 있었기에 천사의 사랑을 그 반대로 짐작할 수 있습니다.
에이미는 열등감이 강한 여자였습니다. 자기의 성공과 남편의 성공을 통해서 자존심을 채우려는 여자였습니다.
그녀가 자주 하던 놀이는 ‘나를 찾아줘’였습니다. 여기저기 단서를 남겨놓고 온종일 남편이 자기를 찾는 것에만 집중하게 만드는 놀이였습니다. 처음엔 재미가 있었지만 자기를 찾지 못하는 남편을 보며 화를 냅니다.
그녀는 자신의 존재가 소멸해 간다고 느끼기에 자기 존재를 세상과 남편을 통해 증명해내려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그것을 ‘사랑’이라고 말합니다. 자신이 세상을 더 행복하게 만들고 남편을 더 완벽하게 만든다고 여겼던 것입니다.
하지만 자신의 존재를 남에게 알아달라고 강요하는 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그냥 존재가 사라져가는 한 인간의 마지막 시도일 뿐입니다. 이런 사람은 잠시만 신경을 써주지 않으면 자신은 사랑받지 못한다고 느낍니다.
하지만 수호천사는 어떻습니까? 이미 하느님의 보호 아래 영원한 생명을 보장받았습니다. 존재가 사라질 위험이 없습니다. 그러니 자신을 알아달라고 보채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일 년 동안 내 옆에 있었지만 이런 날이 되어야 간신히 수호천사의 존재를 인식합니다. 그래도 수호천사들은 원망하지 않습니다. 이는 마치 ‘공기’와도 같은 사랑입니다.
공기는 없으면 죽습니다. 그러나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따라서 사람이 공기를 마시며 살아도 매번 공기에 감사하지 않습니다. 그렇더라도 자신을 찾아달라고, 알아달라고 안달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어차피 자신은 존재를 인정받았기 때문입니다. 태양이 있는 한, 그리고 나무가 있는 한 공기는 계속 존재할 것입니다.
인간이 사라져도 공기는 존재합니다. 그래서 인간에게 자신의 존재를 확인받을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천사는 이와 같은 사랑을 합니다. 사랑을 자기 존재를 확인하는 방식으로 이용하지 않습니다.
“그분들은 천사입니다.”
마리안느와 마가렛 수녀님에 대한 소록도 분들의 증언입니다. 그분은 어머니와도 같은 존재였다고 하고 생명의 은인이라 말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천사라고 말하는 것에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우리는 사실 천사를 본 일도 없으면서 천사를 압니다.
꽃다운 20대에 소록도를 찾아 평생을 한센인들을 위해 봉사하며 살다가 할머니가 되어 이제 봉사를 받아야 할 때 편지 한 장만 남기고 홀연히 떠나가 버렸습니다. 본인들의 삶도 중요했을 텐데 먼 이국땅에서 어쩌면 버려지다시피 한 이들을 위해 평생을 산 이들이기에 우리는 천사라 부르는 것입니다.
이들이 천사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바로 천사의 보살핌을 받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나를 보호해주는 누군가가 있을 때 그 사람은 어린이가 됩니다. 걱정이 없고 많이 웃고 즐겁습니다. 그리고 누군가를 받아주고 위로해주고 또 누군가에게 천사가 됩니다. 이미 그렇게 인정받은 이들이기에 자신들이 봉사한 이들에게 다른 보상을 바라지 않습니다. 그냥 공기처럼 있다가 사라집니다. 사랑을 한 것으로 충분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나아가야 할 수호천사와 같은 사랑의 모습입니다.

-조재형신부-
태풍의 영향으로 침수가 예상된다는 문자가 왔습니다. 신문사는 지대가 높기 때문에 큰 걱정 없이 있었습니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지하에 가보았더니 외부에서 빗물이 들어왔고, 지하실에 물이 고였습니다. 다행히 하수가 역류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새벽에 성당 미사가 있어서 갔더니 수녀님과 교우들이 나와 있었습니다. 간밤의 비바람으로 성당의 지하에도 물이 스며들었다고 합니다. 동병상련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같은 아픔을 겪은 사람들은 서로를 이해한다는 뜻입니다. 마치 하느님께서 제게 그러시는 것 같았습니다. ‘신문사만 지하에 물이 들어온 것은 아니란다. 하느님의 머무는 성전에도 물이 들어왔단다.’ 미사를 마치고 산보를 갔습니다. 여기저기 간밤의 비바람으로 차들이 멈추어서 있었습니다. 모두들 지하에 고인 물을 빼내고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신문사에 물이 들어온 것은 그나마 적은 양이었습니다. 배수가 잘 되어서 오후가 되니 물은 대부분 빠졌습니다.
지난 8월입니다. 20년간 아프가니스탄에 있던 미군이 철수하기로 하였습니다. 미국은 탈레반과 협상하였고, 탈레반은 철수하는 미군에게 협조하기로 하였습니다. 미국이 철수하면서 다른 나라들도 현지에 있던 자국민들을 철수 하였습니다. 한국은 철수하는 과정에서 한국에 협조하였던 아프가니스탄의 협조자들의 의견을 물었습니다. 대부분의 협조자들은 고향을 떠나서 한국으로 가고 싶다고 하였습니다. 탈레반에게 받을 불이익을 걱정했기 때문입니다. 그런 과정에서 한국의 외교관들은 꼭 다시 오겠다고 약속했고, 한국으로 오기로 했던 협조자들 모두를 무사히 한국으로 데려올 수 있었습니다. 이번 철수 작전의 이름은 ‘미러클(Miracle)'이었다고 합니다. 위험하기도 했고, 어렵기도 했기 때문입니다. 철저한 보안과 완벽한 소통으로 모두를 데리고 올 수 있었다고 합니다. 한국 정부는 이 사람들을 난민이 아닌 한국을 도와준 특별기여자 신분으로 대하였습니다.
이분들의 직업은 대부분 의사, 약사, 간호사, 행정요원들이었다고 합니다. 한국은 아프가니스탄 바그람에서 병원을 운영했고, 이 사람들이 그 병원에서 함께 일했기 때문입니다. 한국에서의 격리가 끝나면 한국에서 일 하고 싶다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한국정부도 특별기여자인 이분들에게 법적, 행정적 도움을 줄 예정이라고 합니다. 이분들이 머무는 숙소가 진천에 있었습니다. 진천의 주민들도 적극 환영하였다고 합니다. 낯선 땅에서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지내는 사람들에게 한국 정부, 한국의 외교관, 진천 주민은 천사의 모습으로 보였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중에 가장 가난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가장 아픈 사람에게 해 준 것이, 가장 굶주린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종교가 달라도, 피부색이 달라도, 언어가 달라도 지금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손을 내미는 것이 예수님의 가르침입니다. 바로 그런 사람들이 지금 아픈 사람의 이웃이 되어주는 것입니다.
그레고리오 성인은 ‘천사는 본성이 다른 것이 아니라, 직무와 직책에 따라서 구분되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하느님의 뜻을 전하는 사람이라면, 하느님의 권세를 드러내는 사람이라면, 하느님의 일을 하는 사람이라면 모두가 천사가 되는 것입니다. 오늘 내가 전하는 따뜻한 말과 친절은 고통 중에 있는 이웃에게, 절망 중에 있는 친구에게 위로와 힘을 줄 것입니다. 수호천사는 눈에 보이지 않는 모습으로 우리를 위해 기도하지만, 우리는 눈에 보이는 모습으로 기도 할 수 있고,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바로 그런 우리들의 모습이 수호천사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 너희는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업신여기지 않도록 주의하여라.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하늘에서 그들의 천사들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늘 보고 있다.”

하느님께서 보내주신 수호천사들의 보호아래 있는 동안에야 아무것도 두려워 할 것이 없습니다!
-양승국신부-
혹시 주변에 이런 분 한분 있는가요? 나보다 더 나를 더 끔찍이 여기고 사랑하는 사람. 나를 위해서라면 불속에라도 뛰어들 수 있는 사람. 나를 위해서라면 뭐든 다 할 수 있는 사람. 세상 모든 사람들이 다 등을 돌린다할지라도 절대 나를 떠나지 않는 사람. 나를 위해서라면 새벽 세시에도 달려와 줄 수 있는 사람.
곰곰이 생각해보니 우리는 그런 사람, 즉 살아있는 수호천사로 인해 고통과 시련의 골짜기를 그럭저럭 지나갈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어쩌면 주변에 단 한 사람이라도 그런 사람이 있는 사람은 성공한 인생을 살고 있다고 보면 확실합니다. 혹시라도 그런 사람이 없다면,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해서든 그런 사람 하나 정도 만들어두는 것이 필요합니다.
오늘 수호천사 축일입니다. 깊이 생각해보니 우리 가족 구성원 서로 서로는, 우리 공동체 구성원 서로서로는 바로 그런 수호천사 역할을 하라고 하느님이 맺어주신 인연이라고 저는 확신합니다. 이 팍팍하고 힘겨운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바로 그런 살아있는 수호천사가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언젠가 지나온 길을 돌아보며 나 혼자 걸어왔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무도 동반해주지 않는 외로운 길을 쓸쓸히 걸어왔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최근 그게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고 있습니다. 삶의 한 구비 한 구비 가만히 돌아보니 그 누군가의 소리 없는 배려 속에 지금까지 살아왔더군요.
생의 한 순간 한 순간을 되짚어보니 그 누군가의 열렬한 기도로 뒷받침되어 있더군요. 지나온 나날들 나 혼자 힘으로 버텨왔다고 생각했었는데 전혀 그렇지 않았습니다. 누군가가 늘 제 등 뒤에서 저를 받쳐주고 있었습니다. 그는 바로 하느님께서 제게 붙여주신 수호천사였습니다. 뒤돌아본 제 나날들, 그 어느 순간도 수호천사가 함께 하지 않은 걸음이 없었습니다.
주님께서는 당신의 천사들에게 명령을 내리셔서 제가 가는 길목마다 지키게 하셨습니다. 죽음의 세력이 달려들 때면 어느새 주님의 천사들이 달려와 제 앞을 막아주었습니다. 사는 게 너무 고달파 주저앉고 싶을 때 마다 든든하고 따뜻한 천사의 손길을 보내주셨습니다. 행여 돌부리에 넘어질세라 주님의 천사들이 저를 떠 받들어 주었습니다.
교회의 가르침에 따르면 수호천사는 우리 각자의 구원과 영원한 생명을 위해 하느님께서 우리 각자에 보내시어 짝을 맺어주신 영적 존재입니다.
본질상 나약하고 부서지기 쉬운 존재인 우리들, 유혹 앞에서 심하게 흔들리는 우리들을 위해 하느님께서 보내신 선물이자 친구가 수호천사입니다. 그들은 우리 일생 내내 우리와 함께 걸어갈 동반자이자 수호자입니다.
늘 우리 지척에서 생생하게 현존합니다. 우리와 함께 길을 같이 걸어왔고, 앞으로도 같이 걸어갈 것입니다. 우리가 하느님 품에 영원히 안기는 순간까지 우리의 영적 도우미로 살아갈 고마운 존재입니다.
성 베르나르도 아빠스의 가르침에 따르면 수호천사는 이런 존재입니다. “하느님 앞에, 험난한 세파 앞에 우리는 언제나 어린이와 같은 존재들입니다. 우리 앞에 가로놓인 길은 매우 멀고 또 먼 것만이 아니라 위험하기까지 하지만, 하느님께서 보내주신 수호천사들의 보호아래 있는 동안에야 아무것도 두려워 할 것이 없습니다. 수호천사들은 충실하고 슬기로우며 능력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두려워할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 우리는 다만 그들을 뒤따르고 그들에게 매달리며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보호 밑에 머물도록 합시다.”

누가 가장 큰 사람인가?
-반영억신부-
“천사”라는 말은 어떤 존재의 본성이 아니라 기능을 가리키는 명칭입니다. “하느님의 심부름꾼”입니다. 천사는“모두 구원을 상속받을 사람들에게 봉사하도록 파견된 시중드는 영들”(히브1,14)입니다. 그리스도의 협조자들이 된 인간을 보호합니다(마태18,10). 그들은 하느님께 성도들의 기도를 전달하고, 의인들의 영혼을 천국으로 인도합니다(루카16,22). 그리고 자기들의 지휘자인 미카엘과 더불어 교회를 보호하기 위하여 태초부터 사탄과의 사움을 계속합니다(묵시12,1-9). 모든 천사들은 그리스도께 복종함으로써 하느님의 계획안에서 하나의 자리를 차지합니다. 우리를 보호하는 천사가 있어서 감사합니다. 특별히 각 개인의 인생여정을 지켜 주고 보살펴 주는 역할을 하도록 지정하신 영적존재를 수호천사라고 합니다. 수호천사가 있어서 행복합니다.
제자들이 예수님께 ‘하늘나라에서 누가 가장 큰 사람이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어린이 하나를 불러 세워 “너희가 회개하여 어린이처럼 되지 않으면 하늘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누구든지 이 어린이처럼 자신을 낮추는 이가 하늘나라에서 가장 큰사람이다”하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늘나라의 주인공은 어린이가 아니라 어린이같이 된 사람입니다. 어린이가 지닌 가장 큰 특성은 의존성입니다. 어린이는 어리면 어릴수록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특별히 부모의 품에 있어야 합니다. 부모가 주는 것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아이처럼 하느님께서 주시는 것을 그대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하늘나라에서 큰 사람은 하느님께 온전히 의탁하는 사람입니다. 그 무엇에 앞서 하느님의 품에 안겨 있는 사람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많이 가진 사람, 높은 지위에 있고, 권력을 가진 사람을 높은 사람이라고 하지만 하늘나라에서는 가진 것이 없는 사람이 위대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너에게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다. 가서 가진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사람에게 나누어 주어라. 그러면 하늘에서 보화를 얻게 될 것이다”(마르10,21). “나를 따르려고 제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부모나 자식이나 토지를 버린 사람은 백배의 상을 받을 것이며, 또 영원한 생명을 얻을 것이다”(마태19,27)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결국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생각, 관념, 틀, 명예욕, 지배욕, 물질에 대한 애착을 버리고 주님께로 향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말씀입니다. 하늘나라의 주인이 어린이가 아니라 ‘회개하여 어린같이 된 사람’이라는 의미가 바로 이것입니다. 다른 무엇에도 흔들리지 않고 주님께만 의지하는 사람은 복됩니다. 워즈워드는 ‘어린이를 어른의 아버지’라고 말했습니다. 어린이의 솔직함과 겸손, 단순함, 신뢰, 특별히 의존성 안에서 한수 배우시기 바랍니다. 키가 커서 큰사람이 아니라 주님을 차지해서 큰 사람 되시기 바랍니다. 미룰 수 없는 사랑에 눈뜨기를 희망하며 더 큰 사랑으로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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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은 사람을 든 사람, 난 사람, 된 사람으로 구별해 봅니다.
든 사람은 배운 것이 많아서 학식이 뛰어난 사람입니다. 당해 분야에서 보다 많이 알고 있다는 것이다!
난 사람은 이름이 알려져서 누구나 아는 사람입니다.
당해 실무 분야에서 뛰어나게 실무처리 능력이 있다는 것이다!
된 사람은 이름이 알려지지 않아도 배운 것이 없어도 인간으로서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사람입니다.
꼼수 보다는 원칙을 살아갑니다. 곧 하늘을 두려워하는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주님 앞에서 큰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요?

복음: 마태 18,1-5.10: 어린이처럼 자신을 낮추라
-조욱현신부-
오늘 교회는 수호천사 기념일을 지내고 있다. 수호천사는 하느님의 뜻에 따라 각 사람에게 파견되어 그를 악으로부터 보호해주고 선을 행하도록 이끌어주는 사명이 있는 천사이다. 예수께서는 그러므로 아무도 업신여기는 일이 없도록 하라고 하시는 것이다. “너희는 이 보잘것없는 사람들 가운데 누구 하나라도 업신여기는 일이 없도록 조심하여라. 하늘에 있는 그들의 천사들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를 항상 모시고 있다는 것을 알아두어라”(10절).
제자들은 예수님께 “하늘나라에서는 누가 가장 위대합니까?”(1절) 라고 묻는다. 이 ‘하늘나라’가 하느님의 통치가 이루어지는 교회를 말하는 것이냐, 아니면 어린이들처럼 처신할 때 장차 들어갈 수 있는 하느님의 나라인지는 굳이 구분할 필요는 없다. 둘 다 해당하는 것이다. 이때 예수께서는 어린이 하나를 불러 그들 가운데 세우시고는, 제자들처럼 자신을 높이지 말고 어린이들처럼 자신을 낮추어야만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고 하신다. 오직 일정한 자격을 갖춘 사람만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는 말씀이다. 하늘나라에 들어가기 위해 겸손을 촉구하신다. “하늘나라에서 가장 위대한 사람은 자신을 낮추어 이 어린이와 같이 되는 사람이다”(4절).
예수께서는 사회로부터 버림받고 소외된 자들을 예수님의 처신과 명령, 즉 ‘예수님의 이름으로’(5절) 불쌍한 어린이, 도움이 필요한 고아 같은 어린이를 받아들이고 사랑하는 것이 바로 주님을 받아들이고 사랑하는 것이라고 하신다. 예수께서 우리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한 선행이 바로 당신 자신에게 베푼 선행으로 간주하신 ‘최후의 심판 담화’(마태 25,31-46)를 연상케 한다. 물론 이 구절이 앞의 내용, 즉 겸손과는 별로 상관이 없는 것 같아도 마태오는 여기에 수록하고 있다. 아마 그것은 이러한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받아들이고 사랑하는 것도 자기 자신을 그만큼 낮추지 못하면 진정한 사랑을 줄 수 없으므로 여기에 수록하고 있을 것이다.
“이 보잘것없는 사람들”(10절)은 마르코 복음에서는 주님을 가까이 따르던 제자들이었다. 그러나 여기서는 마태오 교회의 미천한 교우들을 가리킨다. 그들의 그리스도 신앙을 무너뜨려서도 안 되고 그들을 업신여겨서도 안 된다. 왜냐하면, 바로 그러한 사람들을 염려하는 천사들이(토비 5,6-7.22; 사도 12,15)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를 항상 모시고 있기”(10절) 때문이다. 이 천사들은 하느님 가까이서 시중드는 매우 높은 천사들이다.
이 천사들은 보잘것없는 이들을 위해 하느님의 도움을 청하기도 하고 그들을 업신여기는 자들을 하느님께 고발하기도 하는 자들이다. 우리 자신을 우리 스스로 낮추어 겸손한 자세를 가지고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있도록 하고, 또한 우리가 우리 형제를 업신여김으로써 또한 그들을 창조하신 하느님까지 멸시하는 결과를 초래해서는 안 될 것이다. 눈에 보이는 인간은 바로 보이는 하느님이라는 것을 생각하고 받아들이고 사랑할 수 있도록 살아야 한다.

"그들의 천사들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늘 보고 있다."(마태 18, 10)
-한상우신부-
빨갛게
감이
익어간다.
진정한
수호천사는
가까운
우리 삶의
자리에 있다.
지금껏 무언가
중요한 것들을
여전히 놓치고
사는 우리들이다.
더 없이 중요한
것이 하느님
사랑임을
다시금
가르쳐준다.
우리 자녀들을
살리시듯
구원하시고
보호하여
주시는
우리의
하느님이시다.
하느님의 기도는
수호천사로
우리와 늘
함께 하신다.
언제 어디서든
우리를 지켜주는
믿음의 천사
감동의 천사를
우리들에게
주셨다.
불안과 초조를
확신과 의지로
바꾸어 주며
하느님을
향하도록
우리를
이끌어준다.
은총을
베풀어주시는
하느님을
매순간
뜨겁게
만나게된다.
더더욱 중요하고
값진 것이
우리들 삶에서
무엇인가를
만나게된다.
누군가를
하느님께로
이끌고
사랑으로
지켜내는 일이
이토록
아름다울 수
있음을
수호 천사를
통하여
보게된다.
남몰래 흘린
눈물이 아니라
우리의
수호 천사와
함께 흘린
뜨거운 눈물임을
알게된다.
하느님
사랑 안에서
사랑의
수호천사와
함께 살아가는
우리들 삶이다.
우리의
관계 또한
누군가에게
고마운
수호천사이길
진심으로
기도드린다.
사랑은 이렇듯
친밀하고
구체적이다.

-오상선신부-
오늘 미사의 말씀은 우리에게 위안을 주십니다.
"하늘에서 그들의 천사들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늘 보고 있다."(마태 18,10)
지상 순례길을 걷는 우리 각자에게 주님께서 수호천사를 정해 주셨다고 교회는 가르칩니다. 감각적으로 알아차릴 수 없어도 우리는 언제나 저마다의 수호천사의 보호와 도움을 받으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하늘 나라에서 누가 가장 큰 사람인지' 묻는 제자들에게 어린이처럼 자신을 낮추는 이가 가장 큰 사람이라고 답하십니다. 어린이는 꼭 나이가 어린 사람을 한정하기보다 세상 사람들이 하찮게 여기는 작고 보잘것 없고 가난한 이들을 대변합니다.
그런데 인간적 눈으로 볼 때 아무리 힘 없고 볼품 없어 보이는 이라도 자기 편이 있답니다. 게다가 그 편은 하늘에서 아버지와 얼굴을 마주하며 그를 더 안전하고 선하게 아버지께로 이끌어 주기 위해 애를 쓰고 있지요. 바로 수호천사입니다.
"너희는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업신여기지 않도록 주의하여라."(마태 18,10)
지상에 있는 우리와 하늘에 계신 아버지를 긴밀히 연결해 주는 존재가 바로 수호천사일 겁니다. 모든 이가 당연히 존중받아 마땅한 이유는 우리가 하느님의 모상으로 지어졌기 때문인데, 예수님은 그에 더하여, 각자의 자기 편이 하늘의 아버지 곁에서 우리를 든든히 지켜 주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제1독서에서 주님은 당신이 보내실 천사와 긴밀히 움직이십니다.
"그는 내 이름을 지니고 있다."(탈출 23,21)
주님은 천사에게 당신의 이름을 담아서 보내십니다. 파견되는 존재는 파견하신 분의 뜻에 온전히 동화되고 순종하여 말하고 움직입니다. 자신이 지니고 온 그 이름의 영광과 무게, 가치를 모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너희가 그의 말을 잘 들어 내가 일러 준 것을 모두 실행하면, 나는 너희 원수들을 나의 원수로 삼고, 너희의 적들을 나의 적으로 삼겠다."(탈출 23,22)
우리가 천사의 말을 잘 들으면 하느님도 그 천사가 했듯이 우리 편이 되어 주신다고 하십니다. 천사를 통해 전해진 주님의 뜻에 잘 따르기만 하면 우리는 천군만마 정도는 비길 수 없는 우리 편을 이제와 항상 영원히, 지상에서와 같이 하늘에서도 갖게 되는 겁니다.
주님께서 우리 편이시고, 천사들도 우리 편이라면, 이 세상에서 아무리 작고 가난한 변두리 인생이어도 부족한 게 무어랍니까! 타인의 작음은 물론 자신의 작음도 문제가 되지 않는 세상이라면 조금 더 가지고 조금 더 올라가고 조금 더 힘 있다고 자랑할 일이 뭐 있겠습니까! 함부로 갑질하고 으스대며 업신여기는 자만 더 추레해질 뿐이지요.
사랑하는 벗님! 삶이 힘겹고 지칠 때는 나의 수호천사도 내 편, 그 천사와 얼굴을 마주하고 나를 위해 고심하고 염려하시는 하늘의 아버지도 내 편이시라는 사실에서 용기와 위로를 얻으시길 기원합니다. 우리를 보호하는 수호천사와 함께 주님께 찬미와 감사를 드리며 힘 내어 순례 여정을 걸어갑시다. 하느님을 든든한 빽으로 두신 벗님을 축복합니다.
개인적으로 사랑하시고, 총체적으로 사랑하시는 주님 ◎
-김찬선신부-
“하늘에서 그들의 천사들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늘 보고 있다.”
오늘의 수호천사 축일과 며칠 전의 대천사 축일은 어떻게 다른가요?
그야말로 대천사, 큰 천사와 소천사, 작은 천사의 차이인가요?
며칠 전 대천사 축일을 지냈는데
오늘 수호천사의 축일을 또 다시 지내고, 굳이 지내는 뜻은 무엇일까요?
제 생각에 하느님의 인격적이고 개인적인 사랑을 기리기 위함일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느님은 우리 모두를 보편적, 공통적으로 사랑하시지만
도매금으로만 사랑하시지 않고 소매금으로도 사랑하신다는 거지요.
이는 마치 하느님께서 우리 모두의 아버지이고,
하느님께서 우리 모두를 창조하시고, 보호하시고, 인도해주시지만
우리 각자에게 육신의 아버지와 어머니를 주시어
이 부모를 통해 우리를 창조하시고, 보호하시고, 인도해주시는 것처럼
나만의 천사를 보내시어 나를 그렇게 소중히 지켜주신다는 뜻일 겁니다.
이는 또 이런 의미도 있을 것 같습니다.
하느님의 빛은 우리 모두를 비추지만 우리가 그 빛 속을 거닐지 않고,
개인의 어떤 이유로 어둠을 걸을 때 나만을 비추는 전조등과 같으며,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길로서 우리를 하느님께 잘 인도하시지만
우리가 그 길을 잘 따라가지 않거나 못할 때 나만의 천사를 보내시어
무리에서 이탈한 나를 하느님께로 다시 인도하게 하심과 같을 겁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빛 속을 잘 거닐면 어둠이 없을 것이고
길이신 주님의 인도를 잘 따르기만 한다면 길 잃고 방황치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수호천사도 필요 없고, 굳이 수호천사를 보내실 이유가 없을 겁니다.
그래서 오늘 탈출기의 주님은 “보라, 내가 너희 앞에 천사를 보내어,
길에서 너희를 지키고 내가 마련한 곳으로 너희를 데려가게 하겠다.”
이렇게 말씀하신 다음 이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그 앞에서 조심하고 그의 말을 들어라.
그가 너희 죄를 용서하지 않으리니, 그를 거역하지 마라.”
그렇습니다.
우리는 정말 말을 잘 듣지 않습니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고 하시며
당신을 잘 따르라는 주님의 말씀도 잘 듣지 않고
주님을 잘 따르라는 수호천사의 말도 잘 듣지 않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주변에 수호천사가 많습니다.
길을 잘못 갈 때 길을 알려주는 사람도 수호천사고,
알려주었음에도 계속 그 길을 갈 때 나무라는 이도 수호천사며,
가다가 힘들고 지칠 때 같이 가자 격려하는 이도 수호천사지요.
그런데 우리는 어떤 때 이들이 바로 나의 수호천사인지 모르고
그들을 함부로 대하고, 그들의 인도를 따르지 않음으로써
은혜를 원수로 갚곤 합니다.
그렇습니다.
주님께서는 총력적으로 우리를 하느님께로 인도하십니다.
인도하는 수호천사,
나무라는 수호천사,
격려하는 수호천사,
모두를 동원하여 우리를 온갖 어려움에서 지켜주시고 인도하십니다.
그러니 우리는 오늘 그들의 말을 잘 듣고 인도를 잘 받아야겠습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사랑하시고, 총체적으로 사랑하시는 주님께 감사드려야겠습니다.

지난 매일복음 묵상 글 보기 :
오늘의 성인 :
http://maria.catholic.or.kr/sa_ho/saint.asp
프란치스칸 성인들 : https://www.roman-catholic-saints.com/franciscan-calendar.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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