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복음 묵상

2021년 9월 29일 성 미카엘, 성 가브리엘, 성 라파엘 대천사 축일

Margaret K 2021. 9. 29. 06:50

2021년 9월 29일 성 미카엘, 성 가브리엘, 성 라파엘 대천사 축일 

 

교회는 제4차 라테라노 공의회(1215년)와 제1차 바티칸 공의회(1869-1870년)에서 천사들의 존재를 신앙 교리로 선언하였다. 그러나 천사들에 대한 학자들의 여러 학설에 대해서는 유권적인 해석을 하지 않았다. 다만 미카엘, 가브리엘, 라파엘 대천사 이외의 다른 천사의 이름은 금하고 있다. 천사들의 축일도 오늘의 세 대천사 축일과 ‘수호천사 기념일’(10월 2일)을 정하여 천사 공경을 권장하고 있다. 세 대천사 이름의 뜻은 다음과 같다. 미카엘은 ‘누가 하느님과 같은가?’, 가브리엘은 ‘하느님의 권세’, 라파엘은 ‘하느님의 치유’이다.

☆☆☆

 

정말 잘 들어두어라.

너희는 하늘이 열려 있는 것과

하느님의 천사들이 하늘과 사람의 아들 사이를

오르내리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요한 1,47-51)

 

“Amen, amen, I say to you,
you will see heaven opened
and the angels of God ascending

and descending on the Son of Man.

오늘의 복음 : http://info.catholic.or.kr/missa/default.asp

오늘의 묵상

 -신우식신부-

 

예수님께서는 나타나엘의 마음속에 담긴 진실한 갈망을 보시고, 그를 참된 이스라엘 사람이라고 말씀하십니다. 필립보가 나타나엘에게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고 예언자들도 기록한 분”(요한 1,45)으로 예수님을 소개하였을 때, 나타나엘은 “나자렛에서 무슨 좋은 것이 나올 수 있겠소?”(요한 1,46)라고 퉁명스럽게 말하였습니다. 오경은 물론 라삐 문헌들을 연구하고 메시아를 갈망하던 나타나엘에게 필립보는 “와서 보시오.”(요한 1,46)라며 그를 예수님께 초대합니다. 나타나엘은 예수님과 대화에서 자신이 갈망하던 이스라엘의 구원이 예수님을 통하여 이루어짐을 고백합니다. “스승님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다니엘서 7장을 상기시키시고, 종말의 광경이 당신에게서 시작되며, 당신의 현존이 “하늘이 열리고 하느님의 천사들이 사람의 아들 위에서 오르내리는 것을 보게” 하는 구원 성취의 시작임을 알려 주십니다.
오늘은 성 미카엘, 성 가브리엘, 성 라파엘 대천사 축일입니다. 구원의 역사 안에서 대천사들은 저마다 자신의 역할에 충실함으로써 하느님의 뜻을 세상에 알려 줍니다. “천사들보다 잠깐 낮추셨다가 영광과 존귀의 관을 씌워 주신”(히브 2,7) 인간을 위하여, 주님께서는 천사들을 통하여 당신의 뜻을 알리시고 우리가 실천할 수 있도록 이끄십니다. 이는 우리가 천사들을 통하여 어떤 영적이고 신비한 체험을 기대하기를 바라시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를 마지막 날까지 참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도록 이끄시는 하느님의 배려이며, 자비로우신 마음입니다.

-조명연신부-

http://cafe.daum.net/bbadaking/GkzT

 안식년 때, 어느 본당 사제관이 아닌 일반 아파트에서 살면서 1년 동안 공부를 했습니다. 그런데 집안 살림을 도와줄 사람 없이 모든 것을 혼자 해야 하니 모르는 것투성이였지요. 식사, 빨래, 청소 등 주부의 역할이 이렇게 큰 것이었는지 이때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주부로는 초보일 수밖에 없는 제가 배워야 할 것은 너무 많았습니다. 무엇보다 쓰레기 분리수거는 너무 복잡했습니다. 재활용품, 음식물, 가구, 전자제품, 의류…. 버려야 하는 방법도 제각각이었습니다. 너무 복잡하니 짜증이 났고, ‘조금 더 간편하게 분리수거 하는 방법이 없을까?’라면서 정부 시책에 대해 비판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분리수거가 몸에 익기 시작했습니다. 불평불만 없이 오히려 이렇게 재사용할 수 있도록 해줌에 감사의 마음도 갖게 되었습니다. 알게 되니 불평불만도 사라졌습니다.

김미경 강사의 책에서 이런 글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지적인 힘이 부족하면 나의 불행을 확대해석한다. 그래서 공부해야 한다.”

이 세상 삶을 살면서 공부해야 할 것이 너무 많음을 자주 깨닫습니다. 불평불만을 하는 이유 중에 많은 부분이 알지 못해서이기 때문입니다. 이는 주님에 대해서도 그렇습니다. 주님에 대해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불평불만부터 하는 것이 아니었을까요?

나타나엘이 예수님을 만납니다. 사실 나타나엘은 나자렛 출신인 예수님에 대해 그렇게 좋은 생각을 하고 있지 않았습니다. “나자렛에서 무슨 좋은 것이 나올 수 있겠소?”라고 말할 정도로 그는 예수님을 대수롭지 않은 분 정도로만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과 대화를 통해서 그는 예수님을 조금씩 알게 되었습니다. 자신의 지난날을 아시는 분이었으며, 그분으로부터 이제 “더 큰 일을 보게 될 것이다.”라는 말씀도 듣습니다.

그는 변화됩니다. 왜냐하면 사랑 그 자체이신 예수님을 조금씩 조금씩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그는 예수님의 제자가 되어갔습니다.

우리 역시 일상 삶 안에서 예수님을 아는 데 더 집중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자신이 변화될 수 있으며, 가정과 일터 더 나아가 이 세상이 변화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결국은 예수님께서 나타나엘에게 말씀하셨던 더 큰 일을 우리 역시 보게 될 것입니다. 즉, 하늘이 열리고 하느님의 천사들이 사람의 아들 위에서 오르내리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조금씩 알아가면서 동시에 이 세상을 변화시켜 나갈 때, 그만큼 하느님 나라가 가까워지기 때문입니다.
이상하지 않아? 우리는 겉모습밖에 볼 수 없어. 거의 모든 일은 우리 내면에서 일어나는데 말이야(찰리 매커시).

관계: 건강하고 총명한 삶을 오랫동안 유지하는 비밀

하버드 의대의 정신과 교수인 로버트 윌딩거 박사는 건강이 사람 사이의 관계에 어떻게 영향을 받는지를 연구해왔습니다. 그러면서 3가지 교훈을 얻었다고 말합니다.

1) 사회적 연결이 우리에게 정말 유익하고, 외로움은 건강을 해친다는 사실이다.

2) 가족, 친구, 공동체와 사회적으로 긴밀히 연결된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행복하고, 육체적으로도 건강하며, 더 오래 사는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외로움의 경험은 독성을 유발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3) 다른 사람으로부터 고립된 사람들은 덜 행복해지고, 중년기 건강이 빠르게 악화하고, 뇌 기능이 빠르게 저하되고, 외로움을 느끼지 않는 사람보다 일찍 사망하게 된다.

관계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게 하는 글이었습니다. 그러나 내게 피해를 준다면서 관계 끊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이 아닐까요? 나의 건강을 위한 유익한 관계인데도….

 천사 없는 관계는 소멸한다

-전삼용신부-

 

오늘은 세 대천사 축일입니다. 천사는 하느님과 인간을 이어주는 중개자 역할을 하는 존재입니다. 그런데 하느님께서 직접 인간과 대화하시고 친교를 맺으시면 되지 왜 천사를 만드셔서 중개하게 하셨을까요?

    그 이유는 관계를 맺는 두 당사자 간의 거리는 멀수록 좋기 때문입니다. 어떤 뜻이냐면 관계 당사자가 서로 가까워질수록 관계는 소멸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관계는 믿음 안에서 이뤄져야 하는데 너무 가까워서 하나가 되어버리면 믿음과 희망과 사랑이 의미가 없어집니다. 그러면 실상 관계는 소멸하는 것입니다. 둘이 뭉쳐서 하나가 되면 독립성과 개별성, 그리고 자유에 대한 존중이 사라집니다. 이게 사라지면 인격적인 관계가 아닙니다. 누군가를 소유하는 물건처럼 취급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일단 나의 ‘자유’가 구속당하면 그것으로 관계는 이미 소멸을 시작하게 됩니다.    

 

    남자를 자기 침대에 묶어 놓는 영화 ‘미저리’나 여자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려고 손과 발을 자르는 영화 ‘남자가 여자를 사랑할 때’와 같은 것들은 공포가 따로 없습니다. 상대가 나를 떠날 수 없게 되면 이제 상대를 나와 함께 머물게 하기 위한 어떤 노력도 할 필요가 없어집니다. 그렇게 되면 서로 간에 상대를 잡아놓기 위해 내어놓아야 하는 ‘피’, 곧 ‘희생’이 사라지기 때문에 둘의 관계는 소멸하는 것입니다.    

 

    관계를 이어주는 것은 서로의 ‘피’입니다. 이것이 상대의 자유를 존중한다는 증거가 되기 때문입니다. 왜 이런 말을 하느냐면 이 ‘피’와 같은 역할을 하는 존재가 ‘천사’이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은 인간을 당신과 머물게 하려고 당신 천사인 ‘그리스도’를 내어놓으시고 인간은 ‘선악과’를 봉헌합니다. 그리스도는 세상을 당신과 머물게 하시려고 당신 살과 피와 같은 ‘교회’를 내어놓고 이것에 반응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교회라는 천사를 통해 좋은 친교를 맺으십니다.

    모든 관계가 이렇습니다. 중간에 피와 같은 천사가 오가지 않으면 관계는 이어지지 않습니다.    

 

    사랑이 깊을수록 두 사람은 서로의 고유함을 존중해주기 때문에 하늘과 땅처럼 실제 거리는 멉니다. 절대 그 사람의 자유를 제한하지 않습니다. 이때 하늘을 나타내는 아버지와 땅을 나타내는 아드님이 그 상징입니다. 그리고 그 중간을 오가는 두 분의 피가 곧 천사들, ‘성령’을 의미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때문에 사랑은 삼위일체입니다.    

 

    그러나 인간의 사랑은 하느님을 닮지 못했습니다. 피를 흘릴 줄 모릅니다. 소유의 본성으로 태어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처음에 남자와 여자는 사귈 때 피가 덜 담긴 매개체를 이용합니다. 예를 들면 영화나 책, 음악이나 취미 등입니다. 그러다 만나서 함께 살다 보면 현실의 벽에 부딪힙니다.    

 

    일본에서 흥행한 영화 ‘꽃다발 같은 사랑을 했다’(2021)도 두 남녀의 이런 관계를 잘 표현했습니다.

    영화와 책을 좋아해서 만난 두 연인은 함께 동거합니다. 하지만 3년이 되니 현실적인 문제가 앞을 가로막습니다. 막상 필요한 것은 ‘돈’입니다. 돈은 곧 나의 희생이자 피와 같습니다. 그러나 여자는 아직 로맨스를 꿈꿉니다. 여기에서 갈등이 시작됩니다.    

 

    여자 주인공은 자신이 좋아하는 영화 일을 하기 위해 자격증까지 따서 들어간 회사를 그만둡니다. 그러자 남자는 화가 납니다. 자신도 만화를 그리는 것이 좋지만 함께 살기 위해 하기 싫은 일을 하고 있는데 여자는 여전히 이전의 즐거움을 찾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말합니다.

    “그런 애매한 곳 들어갔다가 잘 안 되면 어쩌려고?” 

 

여자는 자신의 취향을 짓밟는 남자에게 짜증을 내며 말합니다.

    “그거야 그때 가서... 맞는 말이야... 너는 업무에 책임감을 갖고 힘든 상황에서도 잘하고 있는데.”

    “힘들다고 생각 안 해. 일이니까. 거래처 분이 뒈지라며 욕하고 침을 뱉을 때 내가 이러려고 태어났나 싶기도 하지만 그래도 힘들지 않아. 업무니까.”

    “그 거래처 사람이 정상이 아니네. 아무리 높은 사람이라 해도 이마무라 나츠코의 ‘소풍’을 읽어도 아무것도 못 느낄 거야. 그런 인간이 너에게 상처를 준다는 건….”

    “어쩌면 나도 이젠 아무것도 느끼지 못할 수 있어. ‘골든 카무이’도 7권에서 멈췄고 ‘보석의 나라’ 이야기는 기억도 안 나고 아직도 그런 걸 읽는 네가 부럽기만 해.”

 

여자는 한심한 듯이 말합니다.

    “읽으면 되잖아. 숨 좀 돌리면서 살아.”

남자도 짜증이 납니다.

    “그게 안 돼. 머리에 안 들어와! ‘퍼즐 앤 드래곤’ 외엔 하고 싶지 않아……. 어쨌거나 직장 일도 생활을 하기 위한 거잖아. 전혀 힘들지 않아. 취미를 살리니 뭐니 하는 건 내 입장에선 인생을 얕보는 거로 들려.”

    “좋아서 함께 지내는데 왜 그리 돈만 중시해?”

    “오래 함께 있고 싶으니까 하기 싫은 일도 하면서….” 

 

여자는 소리를 지릅니다.

    “난 하기 싫은 일을 하며 살긴 싫어. 즐겁게 살고 싶어.”

남자도 소리 지릅니다.

    “그럼 결혼하자! 결혼하자고. 내가 열심히 돈 벌게. 넌 돈 벌지 말고 집에 있어. 집안일 안 해도 돼. 매일 좋아하는 일만 해!”

  

여자는 한심한 듯 읖조립니다.

    “그거 프로포즈야? 지금 프로포즈 한 거야? 생각했던 거랑 완전 다르네. 휴….”

남자도 고개를 떨구며 말합니다.

    “없던 걸로 해….”    

 

    그렇게 둘은 4년의 동거를 마치고 결혼에 골인하지 못합니다. 남자는 함께 사는 것에 의를 두고 살려고 하지만 여자는 더는 아무 로맨스도 느끼지 못하는 남자와 함께 살 이유를 찾지 못합니다.

     그런데 반전이 있습니다. 헤어지자고 하고 나서 어쩔 수 없이 여자가 방을 구하는 3개월 동안 함께 사는데 이젠 서로를 구속하지 않으니 친구처럼 다시 재밌게 사는 것입니다.

     

    처음부터 상대를 구속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요? 그리고 둘의 사이를 희생의 피로 메웠으면 어땠을까요? 하지만 두 사람이 마음이 맞기는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이 때문에 삼위일체 교리가 중요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아버지는 하늘이고 아드님은 땅입니다. 서로 하늘과 땅처럼 멉니다. 이는 서로를 간섭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성령을 통하여 당신 전부를, 아드님은 십자가 죽음을 통하여 성령을 아버지께 보내십니다. 이 오가는 천사와 같은 성령님이 둘의 공간을 메워줍니다. 이렇게 영원히 시들지 않는 꽃과 같은 사랑을 하십니다. 그럼으로써 탄생하는 것이 그 자녀들인 교회입니다. 교회는 오가는 천사의 도움으로 시들지 않는 사랑을 하는 하느님 사랑을 닮은 자녀들입니다.

     

    천사의 존재는 바로 이 삼위일체 사랑의 핵심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천사 없는 관계는 소멸합니다. 자유를 보장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는 하늘이 열리고 하느님의 천사들이 사람의 아들 위에서 오르내리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조재형신부-

 

1984년 신학교 3학년 겨울 방학 때입니다친구와 함께 나환자 마을로 봉사 갔습니다여름에 다녀온 친구가 같이 가자고 하였습니다나환자 마을에는 아이들도 많았습니다저는 아이들에게 교리를 가르치고아이들과 함께 놀았습니다마을에는 공소가 있었고공소 옆에는 사택이 있었습니다본당 신부님이 오시면 머물기도 하셨고신학생들이 봉사 오면 머무는 숙소였습니다공소 옆에는 종탑이 있었습니다종을 치면 아이들이 모였습니다노래를 좋아하던 친구는 기타를 치면서 아이들에게 노래를 들려주었습니다그때 친구가 불러주었던 노래 중에 아직도 기억나는 노래가 있습니다제목은 나의 천사입니다가사는 이렇습니다. “우리들이 만나는 즐거운 일요일에우리사랑 영원하라 주님께 기도하며새소리물소리바람소리마저도우리들의 사랑을 축복하는 곳으로이 세상에 너보다 어여쁜 이 있다면/이 세상에 너보다 사랑한 이 있다면그런 말 모두다 거짓말이야어여쁜 너어여쁜 너나의 천사여” 당시에 초등학생중학생고등학생이었던 아이들의 눈망울이 생각납니다제가 천사처럼 그 아이들에게 간줄 알았는데 그 아이들이 제게는 천사였습니다.

 

욕심과 이기심이 가득한 사람은 비록 아름다운 외모와 화려한 의상을 입었어도 결코 천사는 될 수 없을 것입니다하얀 날개가 없어도화려한 의상을 입지 않았어도아름다운 외모를 갖지 않았어도 우리는 모두 천사가 될 수 있습니다. ‘하느님의 뜻을 전하면 됩니다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착한 사마리아 사람이 되면 됩니다순수한 마음으로 남을 배려하는 사람이 천사입니다배려와 나눔이 있으면 천사가 될 수 있습니다어떤 사람이 도움의 손길로 다가왔다면 어찌 천사로 기억하지 않겠습니까주위를 돌아보면 그런 사람들이 적지 않을 것입니다막연히 잊고 살지만결코 잊어서는 안 될 사람들입니다신문사에도 천사들이 찾아오십니다아프가니스탄의 어린이들을 위해서 기부금을 전해주고 가시는 분도 있습니다살아 움직이는 천사를 느끼는 순간이었습니다제가 함께하는 부르클린 한인성당에도 매주 친교를 위해 기부금을 내시는 분들이 있습니다천사는 결코 이론 속의 존재가 아닙니다늘 우리 곁에 있는 다정한 이웃입니다따뜻한 모습으로 이웃에게 다가간다면 누구나 천사가 될 수 있습니다.

 

오늘은 성 미카엘성 가브리엘성 라파엘 대천사 축일입니다미카엘은 누가 하느님 같으랴?’라는 뜻입니다가브리엘은 하느님의 사람영웅이라는 뜻입니다라파엘은 하느님께서 고쳐 주셨다.’라는 뜻입니다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을 충실히 하는 사람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는 사람아픈 이들의 친구가 되어주는 사람은 모두 천사가 될 수 있습니다부모님께서는 형제들의 생일에 맞추어서 세례명을 정해 주셨습니다큰 형은 9월에 태어나서 미카엘작은 형은 12월에 태어나서 사도 요한동생 수녀님은 10월에 태어나서 프란치스카입니다저는 5월에 태어났는데 9월이 축일인 가브리엘로 정해 주셨습니다태어난 달의 축일은 아니지만 저는 저의 세례명을 참 좋아합니다어릴 때는 가별이라고 불렀습니다가브리엘 천사는 마리아에게 나타나서 하느님의 뜻을 전하였습니다요셉에게 나타나서도 하느님의 뜻을 전하였습니다마리아는 이 몸은 주님의 종이오니 그대로 제게 이루어지소서.’라고 응답하였습니다남모르게 파혼하려고 했던 요셉은 하느님의 뜻을 따라서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였습니다.

 

저에게 대천사 가브리엘로 세례명을 정해 주신 부모님께 감사드립니다저도 가브리엘 천사처럼 하느님의 뜻을 전하는 삶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우리들 모두가 말과 행동으로 천사와 같은 삶을 살면 좋겠습니다. 

 훌륭한 설교자는 하느님의 천사들과 같습니다!

 -양승국신부-

 

예수님께서 가끔씩 사용하시는 특유의 화법이 있습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당신의 말씀이 정녕 참되다는 것을 힘주어 강조하실 때 사용하십니다. 이는 히브리식 어법으로 뒤에 따라오는 문장의 내용을 ‘확실히 약속한다.’는 의미입니다. 

 

따라서 뒤에 따라오는 말씀은 200퍼센트 확실히 이루어질 말씀이라는 의미입니다. 약속되고 반드시 이루어질 말씀의 내용이 놀랍습니다. “너희는 하늘이 열리고 하느님의 천사들이 사람의 아들 위에서 오르내리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요한복음 1장 51절)

  

하느님의 아드님 예수 그리스도 위에는 천상의 시종들, 즉 하느님의 천사들이 오르내렸습니다. 예를 들면 예수님께서 탄생하실 무렵 천사들이 바쁘게 움직였습니다.

  

“그 고장에는 들에 살면서 밤에도 양떼를 지키는 목자들ㅎ 있었다. 그런데 주님의 천사가 다가오고 주님의 영광이 그 목자들의 둘레를 비추었다.”(루카복음 2장 8절)

  

예수님께서 공생활을 시작하시기 전 40일간의 광야 피정 중에 천사들이 함께 했습니다. 

 

“그러자 악마는 그분을 떠나가고, 천사들이 다가와 그분의 시중을 들었다.”(마태오 복음 4장 11절)

 

뿐만 아니라 성모님께서 아기 예수님을 잉태하실 무렵, 이집트로 피난가 계시던 때 요셉에게 천사가 나타납니다. 예수님께서 골고타 언덕 위 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 그리고 부활과 승천 때도 그분 주변에 천사들이 오르내렸습니다.

  

천사들이 그분 뒤에서 오르락내리락한다는 표현은 천사들이 자신들의 합당한 주인께 지극한 사랑을 다하여 섬기고 시중든다는 말입니다. 

 

아우구스티누스 교부의 말에 따르면 훌륭한 설교자는 하느님의 천사들과 같습니다. 그들은 천사들처럼 언제나 사람의 아들 주변에 머물며, 그분을 위해 봉사하고, 섬기고 시중을 들기 때문입니다.

  

비단 설교자뿐만 아니겠지요. 또 다른 예수 그리스도이신 가난한 이웃들 주변에서 머물며, 그들에게 사심 없고 헌신적인 봉사를 계속하는 형제자매들 역시 하느님의 천사와 같습니다.

 하느님의 뜻을 전해주는 천사

 -반영억신부-

 

천사는 하느님의 구원사업을 지속적으로 전달하고 도와주는 심부름꾼입니다. 우리 인간을 위해서 파견된 일꾼입니다. 히브리서1장 14절에는 “천사들은 모두 하느님을 시중드는 영으로써, 구원을 상속받게 될 이들에게 봉사하도록 파견되는 이들이 아닙니까?” 하고 적고 있습니다. 천사란 말은 그들의 정체나 본성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지닌 직무와 사명을 뜻하고 있습니다. 천사들은 하느님을 찬양하면서 우주를 다스리는 하느님의 일에 협조하는 존재들입니다. 그렇다면 하느님의 심부름꾼이 될 때 우리도 천사가 될 수 있습니다.

 

구약성경에서의 아브라함은 길손을 대접하다 천사를 만나는 축복을 얻었습니다(창세18장), 다니엘은 가브리엘 천사를 통해 기도 응답의 소식을 전달받았습니다(다니8,17). 토비트는 라파엘 대천사를 통해 눈을 뜨는 기적의 축복을 누렸습니다(토비11,4-13). 구약에서 천사론이 전개되는데 하느님의 아들, 거룩한 자, 수호자 등으로 묘사되고 있으며, 하느님의 피조물이요, 순수한 영적존재로 나타납니다.

 

신약성경에서는 예수님의 탄생을 알리고(루카1,28), 요셉의 꿈에 나타난 분도(마태1,20) 가브리엘 천사입니다. 루가2장14절에 보면 예수그리스도의 탄생 때 천사들이“하느님께 영광”이라고 찬미의 노래를 불렀습니다. 천사는 꿈에 나타나 마리아가 이집트로 피난할 것도 알려주고(마태12,13), 예수님께서 광야에서 유혹을 받으실 때 천사들이 그분의 시중을 들었습니다(마르1,13). 또한 흰옷을 입고 부활을 알려주었으며(마르16,5), 심판 때에는 그리스도를 옹위하여 나타날 것(묵시22,6).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교회는 성경의 가르침에 따라 하느님께서 천사들을 창조하셨다고 가르치며 천사들이 영적인 실체라고 가르칩니다(1차 바티칸 공의회). 그리고 선한 천사들이 하느님을 찬미하고 하느님께 봉사한다는 생각은 성경에서 나온 사상입니다. 그리고 천사들은 사람들의 구원을 위해 이바지한다는 것은 성경과 교회 정통 가르침에 근거한 교회의 신앙입니다.

 

각 사람에게는 수호천사가 있습니다. 우선 길을 인도하고 돌보는 존재로서 사람과 동행하는 천사입니다. “주께서 너를 두고 천사들을 명하여, 너 가는 길마다 지키게 하셨으니, 행여 너 돌부리에 발을 다칠세라 천사들이 손으로 너를 떠받고 가리라”(시편91,11). 마태복음은 “너희는 이 보잘 것 없는 사람들 가운데 누구 하나라도 업신여기는 일이 없도록 조심하여라. 하늘에 있는 그들의 천사들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를 항상 모시고 있다는 것을 알아두어라”(마태18,10).하고 각자에게 배속된 천사를 언급합니다.

 

결국, 천사는 우리에게 하느님의 뜻을 전해주는 역할을 해왔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천사에 대한 의식이 많이 약해졌습니다. 왜냐하면, 지금은 하느님의 말씀인 성경을 통해서 하느님의 뜻을 우리에게 전해주기 때문입니다. 천사들을 통해서 그리고 예언자와 율법학자들을 통해서 하느님의 뜻이 알려졌지만, 이제는 성경을 통해서 그리고 성직자나 수도자, 교리교사를 통해 예수님의 계시 진리가 좀 더 쉽게 전달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천사의 존재가 없다.’는 것은 아닙니다. 분명 천사는 존재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너희는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업신여기지 않도록 주의하여라.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하늘에서 그들의 천사들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늘 보고 있다”(마태18,10). 성 바실리오는 말합니다. “모든 신자 곁에는 그들을 생명으로 인도하는 보호자이자 목자인 천사가 있습니다.” 각 사람을 수호하는 천사들이 있지만, 이제는 하느님의 뜻을 사는 내가 천사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내가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고, 이웃에게도 하느님의 뜻을 전하는 하느님의 심부름꾼이 되어야 합니다. 천사를 찾을 것이 아니라 내가 천사가 되는 기쁨을 누리시길 바랍니다. 우리는 누군가의 손길을 통해 이미 천사를 만났습니다. 이제 누군가의 천사가 되어주어야 할 때입니다. "아무리 우리 눈에 부족하게 보인다 해도, 지금 우리의 일상이 천상의 영광과 기쁨을 만날 자리입니다." 미룰 수 없는 사랑에 눈뜨기를 희망하며 더 큰 사랑으로 사랑합니다.

@@

미카엘은 ‘누가 하느님과 견줄 수 있느냐?'는 뜻을 지니고 있으며 만군의 주님 사령관으로 악마를 물리치는 대천사 입니다.

가브리엘은 ‘하느님의 영웅’, ‘하느님의 권세’라는 뜻을 지녔습니다.

라파엘은 ‘하느님의 치유자’, ‘ 하느님께서 고쳐 주셨다’라는 의미입니다. @@ 축일을 맞이한 모든 분들께 축하의 인사를 드립니다.

 ♠ 천  

 -송영진신부-

 

미카엘 대천사는 마귀들과 싸우는 장군입니다.

“그때에 하늘에서 전쟁이 벌어졌습니다. 미카엘과 그의 천사들이

용과 싸운 것입니다. 용과 그의 부하들도 맞서 싸웠지만 당해내지 못하여,

하늘에는 더 이상 그들을 위한 자리가 없었습니다(묵시 12,7-8).”

미카엘 대천사가 마귀들과 싸우는 것은,

하느님께 반역하는 마귀들을 처벌하기 위한 일이기도 하고,

인간들을 보호하기 위한 일이기도 합니다.

“그때에 네 백성의 보호자 미카엘 대제후 천사가 나서리라(다니 12,1).”

 

가브리엘 대천사는 ‘기쁜 소식’을 전해 주는 천사입니다.

“천사가 그에게 대답하였다. ‘나는 하느님을 모시는 가브리엘인데,

너에게 이야기하여 이 기쁜 소식을 전하라고 파견되었다.’(루카 1,19)”

“여섯째 달에 하느님께서는 가브리엘 천사를 갈릴래아 지방 나자렛이라는

고을로 보내시어, 다윗 집안의 요셉이라는 사람과 약혼한 처녀를

찾아가게 하셨다. 그 처녀의 이름은 마리아였다(루카 1,26-27).”

 

가브리엘 대천사는 ‘하느님의 뜻’을 설명해 주는 일을 하기도 합니다.

“그때에 나는 울라이강 위에서 사람의 목소리를 들었는데, 이렇게 부르며

말하는 것이었다. ‘가브리엘아, 저 사람이 환시를 깨닫게 해 주어라.’

그러자 가브리엘이 내가 서 있는 곳으로 다가왔다. 그가 다가오는 것을 본

나는 깜짝 놀라 엎드렸다. 그가 나에게 말하였다.

‘사람의 아들아, 깨달아라. 환시는 종말의 때에 관한 것이다.’(다니 8,16-17)”

“...... 지난번 환시에서 본 가브리엘이라는 이가

저녁 예물을 바칠 때에 빨리 날아서 나에게 다가왔다.

그렇게 와서 나에게 말하였다. ‘다니엘아, 내가 너를 깨닫게 해 주려고

이렇게 나왔다. 네가 간청하기 시작할 때에 이미 말씀이 내렸는데,

그것을 일러 주려고 내가 왔다. 네가 총애를 받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 말씀에 주의를 기울여서

환상의 뜻을 깨닫도록 하여라.’(다니 9,21-23)”

 

라파엘 대천사가 하는 일은 수호천사들이 하는 일과 비슷한데,

사람들이 바치는 기도를 하느님께 전해 드리고,

하느님의 은총을 사람들에게 전달해 주는 일을 합니다.

“자 이제 보라, 너와 사라가 기도할 때에 너희의 기도를

영광스러운 주님 앞으로 전해 드린 이가 바로 나다.

네가 죽은 이들을 묻어 줄 때에도 그러하였다. 그리고 네가 주저하지 않고

잔치 음식을 놓아둔 채 일어나 가서 죽은 이를 매장해 줄 때,

너를 시험하도록 파견된 자도 나였다. 또 하느님께서는 나를

파견하시어 너와 네 며느리 사라를 고쳐 주게 하셨다.

나는 영광스러운 주님 앞에서 대기하고 또 그분 앞으로 들어가는

일곱 천사 가운데 하나인 라파엘이다(토빗 12,12-15).”

“내가 너희와 함께 있었는데, 그것은 내 호의가 아니라 하느님의 뜻에 따라

그렇게 한 것이다. 그러니 날마다 그분을 찬미하고 찬송하여라(토빗 12,18).”

 

천사들이 하는 일에 대해서,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할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왜, 사람들을 직접 상대하시지 않고, 굳이 천사들에게

일을 시키실까? 하느님과 사람들 사이에 천사들이 있는 이유가 무엇일까?”

이 질문의 답으로 생각할 수 있는 말이 탈출기에 나옵니다.

“그들이 모세에게 말하였다. ‘우리에게는 당신이 말해 주십시오.

우리가 듣겠습니다. 하느님께서 직접 우리에게 말씀하시지 않도록 해 주십시오.

그랬다가는 우리가 죽습니다.’(탈출 20,19)”

지극히 거룩하신 하느님을 지상의 인간들이 직접 뵙는 것은

너무나도 두려운 일입니다.

 

하느님을 직접 뵈었다고 기록되어 있는 모세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모세가 아뢰었다. ‘당신의 영광을 보여 주십시오.’ 그러자 주님께서 대답하셨다.

‘나는 나의 모든 선을 네 앞으로 지나가게 하고, 네 앞에서 ′야훼‵ 라는 이름을

선포하겠다. 나는 내가 자비를 베풀려는 이에게 자비를 베풀고, 동정을 베풀려는

이에게 동정을 베푼다.’ 그리고 다시 말씀하셨다. ‘그러나 내 얼굴을

보지는 못한다. 나를 본 사람은 아무도 살 수 없다.’(탈출 33,18-20)”

따라서 하느님께서 직접 인간들을 상대하시지 않고 천사들을 보내시는 것은,

인간들에 대한 배려라고 생각됩니다.

하느님을 직접 뵙는 것을 두려워하는 인간들의 입장을 배려하셔서

천사들을 보내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느님 나라에 들어간 사람들은

하느님을 직접 뵙는 행복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묵시 22,4).>

 

그런데 천사들이 하는 일은 사실상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이고,

천사들이 하는 말은 사실상 하느님께서 하시는 말씀입니다.

라파엘 대천사의 “그것은 내 호의가 아니라 하느님의 뜻에 따라

그렇게 한 것이다(토빗 12,18).” 라는 말은, 천사들이 하는 일의

성격을 잘 나타냅니다.

천사들은 ‘하느님의 뜻’을 그대로 집행하는 심부름꾼들입니다.

(한 치의 오차도 있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대천사 축일을 지내는 것은,

단순히 천사들이 하는 일을 기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천사들을 보내서 우리를 보살피시는 하느님을 찬미하고 찬양하기 위한 것입니다.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천사들의 이야기를 읽다보면,

우리와 상관없는 옛날이야기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동화나 신화 같은 느낌이 들 때도 있는데,

하느님께서는 ‘한처음’부터 세상 끝날까지 단 한 순간도 멈추지 않고

천사들을 통해서 우리를 보살피고 계신다는 것이 우리의 믿음입니다.

하느님을 믿는다면, 하느님의 심부름꾼인 천사들의 존재도 믿어야 합니다.

<신앙생활을 하는 과정에서 하느님 체험을 하는 것과

천사의 도움을 체험하는 것은 사실상 같은 체험을 하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는 모르는 사이에 수없이 많은 천사의 도움을 받으면서 살고 있습니다.

자기가 바라는 그것을 얻는 것만이 천사의 도움인 것은 아닙니다.

하느님은 우리가 바라는 것보다 더 좋은 것(가장 좋은 것)을 주시는 분입니다.>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어야 할 신앙인으로서,

우리는 모두 다른 사람을 위해서 천사가 되어 주어야 합니다.

“너희의 빛이 사람들 앞을 비추어, 그들이 너희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를 찬양하게 하여라(마태 5,16).”

(천사들의 주 임무는 하느님을 찬양하는 것,

그리고 하느님을 찬양하도록 사람들을 인도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세상의 빛으로서 사는 것’과 ‘천사의 일을 하는 것’은 다르지 않습니다.)

 복음: 요한 1,47-51: 하늘의 천사들이 하늘과 사람의 아들 사이를 오르내리는.

 -조욱현신부-

 

천사는 하느님의 사자들이며 하느님으로부터 나오는 능력들이며 하느님을 섬기는 영적인 존재들이다(히브 1,14). 성서는 자주 이들을 인간의 모습으로 표현하고 있으며, 성경에 나오는 천사들에 관한 이야기는 모두가 하느님께서 갖가지 모양으로 우리에게 관심을 가지고 계시다는 진리를 내포하고 있다.

 

미카엘 천사는 구약과 신약에서 각각 두 번 언급되었는데 “누가 하느님과 같은가?”라는 뜻을 지닌다. 미카엘 천사는 주로 천상 군대의 장수, 악에 대한 수호자, 임종자의 수호자로 등장한다. 가브리엘은 “하느님의 힘”이란 뜻이며 다니엘이 본 환시와 예언을 설명해준 대천사이며, 즈카르야와 마리아에게 각각 탄생을 알린 하느님의 사자이다. 그리고 라파엘은 “하느님의 치유”라는 뜻이며, 토비아를 위해 파견된 천사이며, 시각장애인들의 수호천사로 공경을 받고 있다.

 

이 천사들이 하느님을 섬기는 영적 존재들임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진정 하느님께 감사드려야 하는 것은, 그들 천사까지도 인간을 위하여 창조하셨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천사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 우리는 하느님께서 우리를 위한 사랑이 얼마나 큰지 알 수 있다.

 

이제 더욱 인간을 위하시는 하느님의 사랑을 더욱 깊이 느낄 수 있는 은혜를 구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도 그러한 사랑을 우리 안에 담을 수 있도록 노력하여야 할 것이다. 이제 천사가 하느님과 인간 사이를 오가며 하느님의 뜻과 사랑을 전하는 존재라면, 이제 우리도 다른 사람에게 하느님께로부터 사랑과 그분의 뜻을 전할 수 있는 천사의 모습을 가진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오늘 복음의 나타나엘이 예수님으로부터 “보라, 저 사람이야말로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다. 저 사람은 거짓이 없다.”(47절) 하셨다. 항상 하느님의 말씀을 묵상하며 그 말씀을 실현하려 노력하였던 나타나엘은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라고 칭찬을 들었듯이 우리 자신이 진정한 하느님의 자녀가 지녀야 할 자세를 갖는다면, 진정한 그리스도인으로서의 모습을 갖춘다면, 우리도 참으로 하느님의 사람, 하느님 자녀의 모습을 가지게 될 것이며 오늘의 이 복음 말씀을 올바로 사는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우리의 모습이 진정 다른 사람들에게 천사의 모습으로 드러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그것은 하느님의 말씀, 복음을 깊이 실천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자격이다.

 

우리의 삶 속에서 나의 천사가 되어 내 삶을 바꾸어준 사람은 누구인가? 우리는 모두 많은 천사의 도움과 기도로 귀중한 신앙을 갖게 되었고, 오늘 이같이 살게 되었다. 그렇다면 한편 나는 누구의 천사가 되어 그 사람의 삶에 축복이 되고 있는가? 이 세상에서 우리가 누군가를 위해 선물이 되어줄 수 있다면 우리도 천사가 될 수 있지 않겠는가? 이 천사의 역할은 계속 나로부터 이어져 퍼져나갈 수 있게 될 것이다. 이러한 삶을 통하여 진정으로 하느님께 찬미와 영광을 드려야 한다.

 -오상선신부-

 

대천사 축일인 오늘, 미사의 말씀 안에서 우리는 천사가 어떤 존재인지 감지합니다.

"너희는 하늘이 열리고 하느님의 천사들이 사람의 아들 위에서 오르내리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요한 1,51)
천사는 하느님과 사람을 잇는 메신저입니다. 당신의 뜻을 사람에게 전달하라고 하느님께서 뽑아 파견하신 존재가 천사지요.

창세기에 등장하는 선조 야곱도 형 에사우를 피해 달아나던 길에 천사가 하늘까지 닿은 층계를 오르내리는 꿈을 꾸고는 하느님의 현존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천사는 하느님께서 우리를 지켜보시며 염려하고 도와주신다는 표지입니다.

"그분을 시중드는 이가 백만이요, 그분을 모시고 선 이가 억만이었다."(다니 7,10)
다니엘 예언자는 장엄하고 영광스러운 천상 옥좌와 마치 대관식과 같은 장면을 환시로 봅니다. 옥좌에 앉으신 분, 옥좌에서 강물처럼 뿜어 나오는 불길, 그리고 그분을 둘러싼 이들, 통치권과 영광과 나라가 주어진 사람의 아들... 인간이 상상할 수 있고 표현할 수 있는 최대치의 엄위롭고 영화로운 장면이 펼쳐지고 있지요.

천사는 하느님 곁에서 시중들며 그분을 모시는 존재들입니다. 하지만 전제주의 국가의 군주와 노예들 간의 관계를 떠올리면 곤란합니다. 천사들은 사랑 때문에 하느님 곁에 머무르며 그분을 모시는 존재들이니까요.

"주님을 찬미하여라, 주님의 모든 천사들아. 그분 말씀에 귀 기울이고 그분 말씀을 따르는 힘센 용사들아."(입당송)
"주님을 찬미하여라. 주님의 모든 군대들아, 그분 뜻을 따르는 모든 신하들아."(복음 환호송)
   
천사들은 그분께서 원하시면 그분의 목소리가 되어 세상에 그분의 뜻을 전합니다. 그러려면 먼저 그분 말씀에 귀 기울여야 하지요. 또 그분 말씀을 따르기 위해서 때로는 힘센 용사의 역할도 마다하지 않습니다. 성경에는 주님 군대의 용사로서 그분의 뜻을 이룬 천사들이 등장하지요.

"주님, 제 마음 다하여 당신을 찬미하나이다. 천사들 앞에서 찬미 노래 부르나이다."(영성체송)
천사는 우리가 어떻게 하느님과 더 친밀한 존재가 될 수 있는지  보여 줍니다. 우리는 천사를 통해 하느님의 현존과 그분의 뜻을 알아듣고, 비록 여전히 지상 순례 여정 안에 있어도 천사들처럼 주님 곁에 머물러 그분을 섬기고 모실 수 있습니다. 그리고 천사들과 한 목소리로 그분께 찬미와 영광과 감사를 드리지요. 지상의 우리와 천상의 천사들이 함께 올려드리는 찬미의 하모니가 얼마나 아름다울런지요! 

"그분 말씀에 귀 기울이고 그분 말씀을 따르는 힘센 용사들아."
세속과 재물과 관계에 치여 허덕허덕 살아가면서도 천사들처럼 주님과 가까울 수 있는 방법이 곧 말씀과 동행하는 삶입니다. 바로 여러분과 제가 매일 하고 있는 거룩한 일이지요. 부족하나마 있는 힘껏 듣고 읽고 묵상하고 실천하는 말씀이 나날이 우리를 천사처럼 변화시켜 주실 것입니다.

하느님은 그렇게 변모된 우리를 누군가를 위해 천사처럼 쓰실지도 모릅니다. 당신 뜻을 담아 누군가에게 파견하시고 그를 위해 당신의 사랑이 되어 주라고요. 천상의 천사들과 성인들, 이 지상의 모든 피조물은 모두 하느님과의 사랑을 위해 존재하고 살아갑니다.

우리가 주님께 더욱 가까이 나아가 그분과 일치하고, 주님 향한 찬미와 감사를 잊지 않는 영혼으로 살아가도록 대천사들의 전구를 청합니다.

성 미카엘, 성 가브리엘, 성 라파엘,
저희를 위하여 빌어 주소서. 아멘.   

천사인 벗님을 축복합니다.

  하느님을 대신하여 

 -김찬선신부-

 

몇 년 전 프란치스코 교황이 지은 <악마는 존재한다>는 책이 나왔을 때

같이 공부하면 좋겠다는 분들의 요청이 있어서 공부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교황께서 이런 책을 지으신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많은 신자가 그리고 신학을 많이 배운 사람일수록 악마의 존재를 부정하고, 

사제들조차 악마의 존재를 부정하는 이가 있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이 책에서 교황은 악마는 존재를 이렇게 풀이합니다.

"악마와 모든 마귀는 하느님께서 본래 선하게 창조하셨지만 그들 스스로

악하게 되었다. 이 천사는 타락했고 자유로운 선택으로 하느님과 하느님 

나라를 철저하게 그리고 결정적으로 거부한 다른 창조된 영들이

그 불행한 발자취를 따랐습니다."

 

인간이 선하게 창조되었지만 자유로운 선택으로 죄를 짓고 악하게 되고

타락한 것처럼 악마도 본래 선하게 창조되었지만 자유로운 선택으로

악하게 되고 타락한 천사가 악마라는 얘기이고 그러기에 천사든 악마든

우리 인간 말고도 영적인 존재가 있다는 것이 이 믿을 교리의 본질입니다.

 

그런데 이 천사와 악마는 하느님께서 창조하셨기에 하느님과 무관하지

않을뿐더러 우리 인간하고도 무관하지 않은데 천사든 악마든 하느님과

우리 인간 사이를 오가며 어떤 역할을 하는 존재라고 오늘 복음이

얘기하듯 교황도 얘기합니다.

 

"사탄은 하느님을 거슬러 예수 그리스도 안의 하느님 나라를 증오하면서

세상에서 활동한다. 이러한 활동은 인간과 세계의 역사를 알차고도 부드럽게 

주관하시는 하느님의 섭리가 허락하신 일이다. 이러한 악마의 활동에 대한

하느님의 허락은 하나의 커다란 신비이지만, '하느님을 사랑하는 이들에게는

모든 것이 함께 작용하여 선을 이룬다는 것을 우리는 안다.'"

 

악마 곧 악의 영들이 세상에서 이렇게 활동하는 것처럼

천사 곧 착한 영들도 세상에서 이들과 반대되는 활동을 하는데

천사들 중에서도 대표적인 역할을 하는 존재들을 대천사라고 하는 것입니다.

 

우선 전투의 주보이신 미카엘 대천사가 있습니다.

악마의 역할은 앞서 교황님이 말씀하셨듯이 하느님 나라를 파괴하는 것인데

곧 하느님을 거부하는 자신들을 따르도록 인간을 유혹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미카엘 대천사의 역할은 이런 악마와 싸우고

악마의 유혹과 싸우도록 우리를 돕는 겁니다.

 

앞서 신부들조차 악마의 존재를 부정한다고 했는데 그러니 마귀에 시달리는 

신자가 엄연히 있어도 그들은 그것을 그저 정신병의 하나로 치부하며

정신과 의사에게 맡기고 자신은 목자로서 악마와 싸우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 축일을 지내는 이유는 신부는 말할 것도 없고 신자라면

미카엘 대천사의 도움으로 그리고 우리가 미카엘 대천사가 되어

자신을 위해서나 악마에 시달리는 이웃을 위해 싸우기 위함이 아닙니까?

 

다음으로 가브리엘 대천사는 악마가 하느님의 말씀을 오도하고 불순종하게 

하는 존재인 데 반해 마리아께 주님의 말씀을 전했듯이 우리에게 하느님의

말씀을 전함으로써 우리를 진리에로 인도하고 순종케 하는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 축일을 옳게 지낸다면

우리 또한 하느님의 말씀을 듣지도 전하지도 않는 악마가 아니라,

또 다른 사람을 오도하고 불순종하게 하는 악마가 아니라

또 다른 가브리엘 천사로서 말씀의 전달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라파엘 대천사는 우리를 어려움에 처하게 하고 존재를 파괴하는 

악마와 달리 토빗기에서처럼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돕는 존재요

길 잃은 자들을 목적지까지 안전하게 인도하는 존재지요.

 

그러고 보니 대천사의 역할은 주님께서 이 세상에서 하신 그 모든 것이며

주님께서 하신 그 모든 역할을 나누어 수행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에게 하느님은 천사의 모습으로 나타나셨는데 이처럼 대천사들은

우리에게 나타나 주님을 대신하고 대표하는 존재들이 아닐까 묵상하며

우리도 이런 천사들이 되어야 함을 묵상하는 오늘입니다.

 

 

지난 매일복음 묵상 글 보기 : 

 2020년 9월 29일 성 미카엘, 성 가브리엘, 성 라파엘 대천사 축일

 

오늘의 성인 : 

http://maria.catholic.or.kr/sa_ho/saint.asp

프란치스칸 성인들 : https://www.roman-catholic-saints.com/franciscan-calendar.html 

   

 

되새기고 싶은 글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