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복음 묵상

2020년 7월 27일 연중 제17주 월요일

Margaret K 2020. 7. 26. 05:02

2020 7 27일 연중 제17주 월요일 

 

하늘 나라는 겨자씨와 같다.

어떤 사람이 그것을 가져다가 자기 밭에 뿌렸다.

겨자씨는 어떤 씨앗보다도 작지만,

자라면 어떤 풀보다도 커져 나무가 되고

하늘의 새들이 와서 그 가지에 깃들인다.”
(마태 13,31-35)

 

“The Kingdom of heaven is like a mustard seed
that a person took and sowed in a field.
It is the smallest of all the seeds,
yet when full-grown it is the largest of plants.
It becomes a large bush,
and the ‘birds of the sky come

and dwell in its branches.’”

 

 오늘의 복음 : http://info.catholic.or.kr/missa/default.asp

 

오늘의 묵상

 -허규신부-

 

예수님께서는 “이 모든 것을 비유로 말씀하시고, 비유를 들지 않고는 그들에게 아무것도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왜 예수님께서는 비유로만 군중에게 말씀하셨을까요? 두 가지 생각이 듭니다. 하늘 나라는 비유가 아니면 우리가 알아들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알고 있지 못하고 상상하기 힘든 하늘 나라의 신비는 비유를 통해서만 알아들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비유를 통한 말씀은 듣는 이에 따라 다른 결과를 가져오기도 합니다. 신비는 비유에 귀 기울이고 그것을 받아들이는 이들에게 밝히 빛나고 빛이 되지만, 그것을 흘려듣는 이들에게는 여전히 감추어진 채,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남게 됩니다.

하늘 나라는 겨자씨와 같습니다. 여느 씨앗보다 작지만 어떤 풀보다도 크게 자랍니다. 하늘 나라는 겨자씨처럼 눈에 띄지 않지만, 하늘 나라를 통하여 얻는 것은 상상하기 힘든 결과입니다. 하늘 나라는 이렇게 우리 안에 있지만 사람들은 그것을 잘 알아보지 못합니다. 그리고 결실을 맺을 때 비로소 알게 될 것입니다. 겨자씨의 비유는 ‘이미’ 와 있지만 ‘아직’ 완성되지 않은 하늘 나라의 특징을 잘 드러냅니다. 감추어진 하늘 나라의 힘이자 능력입니다.

또 하늘 나라는 누룩과 같습니다. 하늘 나라는 밀가루를 부풀게 하는 누룩처럼 우리 안에서 믿기 힘든 결과를 가져옵니다. 겨자씨의 비유와 비슷하지만 이 비유는 우리를 통하여 하느님의 업적이 드러나는, 우리 안에 작용하는 하늘 나라를 말합니다. 하늘 나라는 겉으로 거창하게 보이지 않지만 신앙인들 안에서 힘이 되고, 그들을 통하여 하늘 나라가 이 세상에 와 있다는 것이 드러납니다.

 

-조명연신부-

http://cafe.daum.net/bbadaking/GkzT

 

인지 장애증, 일명 치매에 걸리신 아버지를 보며 참 많은 생각을 하게 합니다. 지금의 이 약한 모습을 이제까지 살면서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건강에 특히 관심이 많으셔서 건강에 관한 책도 쓰시고 실제로 아주 건강하셨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넘어져서 골절을 입게 되어 수술하시게 되었습니다. 그 뒤 여러 차례 수술하게 되었는데, 그 여파로 건강과 기억을 잃으신 것입니다.

‘누우면 죽는 거야’라고 말씀하시면서 주무실 때 빼고는 절대로 눕지 않으셨던 분이 이제는 계속해서 누워만 계십니다. 책 보는 것을 게을리하지 않으셨던 분이 이제는 활자로 된 것을 아예 읽지 않으십니다. 그러다 보니 안경도 쓰지 않으십니다.

코로나 19사태로 매주 미사를 할 수 없게 되었지만, 그래도 시간 날 때마다 미사를 함께 봉헌하는데, 치매로 많은 것을 잊었어도(심지어 저를 기억하지 못할 때도 있습니다) 기도문은 모두 외우신다는 것입니다.

저 역시 시간의 흐름 속에서 언젠가는 기억을 잃어버리지 않을까요? 그러나 다 잊어버려도 제 아버지처럼 주님만은 꼭 기억하고 있기를 기도합니다. 이를 위해 주님을 더 많이 만나고 대화를 나누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장차 갈 곳인 하늘나라는 너무나도 중요합니다. 그 나라는 우리의 상상을 뛰어넘는 곳이지만, 많이 사람이 그렇게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곳에 가기에는 아직도 많은 시간이 남은 것처럼 생각하면서 자신과 상관없는 나라처럼 여기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 함께하시는 하늘나라는 상상 속의 나라도 아니고, 먼 훗날에 들어갈 나라도 아닙니다. 지금부터 들어갈 준비를 해야 하고, 실제로 지금의 삶에서 느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우리가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비유를 들어 말씀하십니다. 겨자씨처럼, 또 누룩처럼, 시작은 미미하고 보잘것없는 양상으로 나타나지만, 그 결말은 놀랍도록 위대한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 비유 말씀을 통해서 우리는 하느님과의 관계를 다시금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지금의 별것 아니라고 생각했던 것이 나중에는 나의 삶 전체에 해당하는 큰일이 될 수 있음을 떠올리면서,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하느님과의 관계를 잘 유지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다른 것은 다 잃어버려도 하느님과의 기억은 절대로 잃어버리지 않기를 기도합니다.

슬픔에 빠지는 경험도 어쩌면 당신 인생에 더없이 소중한 기회일지 모릅니다(아카마쓰 에이스케).



책을 빨리 읽는 방법.


1년에 300권 이상의 책을 읽는다고 말하면 대부분 “속독을 하시는군요.”라고 말씀하십니다. 제가 하는 일의 양을 생각하면 이렇게 책을 읽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속독을 하지 않습니다. 또 대충 보는 것이 아니라, 최대한 정독을 하려고 노력합니다. 그런데도 남들보다 책을 읽는 속도가 빠른 이유는 무엇일까요?

사실 책 읽는 속도가 느리다는 것은 책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어휘력이 좋고 문맥을 이해하는 힘이 있으면 책 읽는 속도가 자연스럽게 빨라집니다. 그렇지 않으면 오랫동안 읽어도 무슨 내용인지 알 수 없게 됩니다.

초등학생이 보는 책을 며칠 동안 끙끙대며 읽는 사람은 없습니다. 마치 속독법을 익힌 사람처럼 빠르게 읽습니다. 어휘와 문맥을 이해하기 때문입니다.

책 읽는 법을 떠올리며, 주님도 그렇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주님을 이해할 수 없다고 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기도를 오래 해도 도저히 모르겠다고 하십니다. 주님을 받아들이는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님을 알기 위한 노력을 더욱더 기울여야 합니다.

 

늙는 것이 아니라 익어간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전삼용신부-

 

인생은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익어가는 것입니다. 익으면 성공한 인생을 산 것입니다. 익는다는 말은 내 안의 어떠한 가치를 향하여 꾸준히 나아간다는 뜻입니다. 그 가치란 하늘 나라의 행복입니다. 우리는 누구나 행복해지고 싶습니다. 그러나 그 행복에 조건을 붙이기 때문에 지금의 행복을 잃습니다. 익어간다는 것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행복을 잃지 않을 수 있는 능력이 향상한다는 뜻입니다. 현 코로나 시대에 죽음 앞에서도, 가장 큰 고통 속에서도 행복을 잃지 않는 이들이 있습니다. 바로 자신 안에 ‘사랑’을 성숙시킨 이들입니다.


      지난달 멕시코에서는 한 손자가 코로나19에 걸려 쓰러진 할머니에게 필사적으로 인공호흡을 하는 사진이 화제가 됐습니다. 현지 매체에 따르면 이 손자는 코로나19에 걸린 할머니를 모시고 멕시코시티에 있는 병원에 가는 길이었습니다. 그런데 할머니가 병원 주차장에서 갑자기 의식을 잃었고, 손자는 곧바로 할머니에게 인공호흡을 시도했습니다.


      코로나19 바이러스는 호흡기로 전염되기 때문에 인공호흡은 감염 위험이 큰 행동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망설임 없이 할머니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런데도 그의 할머니는 결국 코로나19로 인해 숨을 거둔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지난 4월 미국에서는 코로나19에 걸린 노부부가 병원으로 떠나기 전 찍은 사진 한 장이 화제가 됐습니다. 현지 매체의 보도에 따르면 이 사진의 주인공은 조셉 델리스(88)와 욜란다 델리스(83)입니다. 조셉과 욜란다는 40년 전 브루클린의 한 볼링장에서 만나 데이트를 시작했고, 10년의 연애 끝에 지난 1992년 결혼했습니다.


      두 사람은 행복한 결혼 생활을 이어갔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욜란다는 관절이 나빠져 계단을 오르지 못할 정도로 몸이 약해졌고, 알츠하이머 진단까지 받으며 자신의 이름조차 기억하지 못하게 됐지만, 그들은 여전히 함께하며 서로를 아꼈습니다.


      그러던 중 이들 부부가 두 사람 모두 코로나19에 걸리며 비극이 찾아왔습니다. 부부는 병원에 가기 전 서로의 마지막을 직감하며 작별의 키스를 나누고 사진을 찍었습니다. 이들은 며칠 후 함께 세상을 떠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팔레스티나에서는 코로나19에 걸린 어머니를 보기 위해 매일 밤 병원 벽을 기어오른 아들 자하드 알스와이티(30)씨도 있습니다. 그의 어머니는 몇 주 전 기침 등의 증상으로 병원을 찾았다가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았습니다. 어머니는 이미 백혈병으로 몸이 쇠약해져 있는 상태였고, 병원 측은 생존 확률이 극히 낮다는 진단을 내렸습니다. 몸이 좋지 않았던 어머니는 입원하게 됐고, 감염 위험으로 면회는 금지됐습니다. 그러자 알스와이티는 매일 밤 병원 건물의 배수관을 타고 올라 창문 너머로 어머니를 지켜봤고, 어머니가 잠들고 나서야 집으로 돌아가는 생활을 반복했습니다.


      이 같은 사연은 병원 근처를 지나던 사람이 그의 모습을 찍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리면서 알려졌습니다. 그러나 코로나19 바이러스는 지난 16일 끝내 그에게서 어머니를 빼앗아 갔습니다. 어머니는 그날도 창 너머에 있는 아들의 얼굴을 본 뒤 숨을 거둔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어머니는 죽음 앞에서도 아들의 사랑을 느끼며 불행하다 느끼지만은 않았을 것입니다.

[참조: ‘코로나로 생명은 잃었지만 ... ’, 박수현 기자, 머니투데이, 2020.7.25]

 

      하늘 나라는 겨자씨와 같습니다. 행복은 마치 작은 겨자씨처럼 우리 안에 뿌려져 큰 나무가 됩니다. 그 행복을 추구한 이들은 자신도 모르게 다른 이들을 행복하게 해 주는 사람이 됩니다. 그의 곁에 머무는 사람들이 그 사랑을 받기 때문입니다. 늙는 것이 아니라 익어가야 하는 이유는 익은 것의 씨가 또 열매를 맺게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내가 행복하지 않다면 익은 사람이 아니기에 누구의 마음에도 행복을 줄 수 없습니다. 남을 행복하게 하고 싶다면 자신 먼저 행복해야 합니다. 그래야 내 행복의 나무 밑에 새들이 와서 쉴 수 있습니다.

 

      일본 최고 납세자 ‘사이토 히토리’씨도 인생의 가장 중요한 목표는 ‘행복’이라 말했습니다. 행복해지고 싶어야 내 삶의 밭에서 행복해질 수 있는 보물을 발견합니다. 그래야 그 행복을 잡기 위해 모든 에너지를 다 쏟을 수 있습니다. 그는 무엇보다 마음 상태가 어떤지에 집중합니다.


      “나는 이따금 마음이 고통스러울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는 ‘마음의 균형이 깨졌구나!’라고 생각하고, 그 균형을 깨뜨린 원인이 어떤 욕심인지 생각해봅니다. 그러면 ‘아, 나한테 이런 욕심이 있었구나!’하는 깨달음을 얻게 되면서 마음이 편안해집니다.”


      그리고 행복해지는 비결을 이렇게 말합니다.

“중졸 학력에 돈도 없었던 내가 부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신을 믿고 신이 기뻐하는 일을 했기 때문입니다. 나는 신이 싫어하는 일은 절대로 하지 않았습니다.”(「세상의 이치를 말하다」, 사이토 히토리)

 

      신이 좋아하는 일은 사랑입니다. 그리고 사랑이 행복하게 합니다. 그것을 키워가는 것이 인성의 성숙입니다. 행복의 씨앗은 마치 누룩처럼 우리를 완전히 변하게 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매 순간 고통스러우면서도 행복할 줄 압니다. 그런 사람이 하늘 나라에 합당한 사람이 됩니다. 중요한 것은 사랑의 씨앗을 받아 그 사랑 때문에 매 순간 행복할 줄 아는 능력을 키우는 것입니다. 한 번에 익는 열매는 없습니다. 매일을 사랑으로 행복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가는 연습의 장으로 삼아야 합니다. 익은 사람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행복할 수 있고 타인도 행복하게 해 줄 수 있습니다. 마지막 때 늙은 것이 아니라 익었다면 성공한 인생을 산 것입니다.

 

-조재형신부-

 

지난 6월 25일입니다. 6.25 한국 전쟁 70년을 기억하는 행사가 있었습니다이날 행사에는 147명의 6.25 참전 용사의 유해가 한국으로 돌아왔습니다북한에서 미군의 유해가 발굴되었고그 중에 한국군의 유해도 함께 있었다고 합니다미국으로 갔던 한국군의 유해는 7000킬로미터를 돌아 한국전쟁 70년을 기억하는 날에 한국으로 돌아 왔습니다조국을 위해서 목숨을 바친 전사자 중에 12만 명은 아직 돌아오지 못했다고 합니다그날 행사에서 대통령은 마지막 한명이 돌아오는 날까지 전사자들을 기억하겠다고 이야기하였습니다조국이 이렇게 기억한다면 하느님께서는 더더욱 우리를 기억하시리라 믿습니다우리가 어디에 있는지우리가 무엇을 하던지우리가 어느 순간에 있던지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기억하시고기다려 주십니다그것이 조국의 사랑이고그것이 하느님의 사랑입니다.

 

지금은 100세가 넘으신 할머니께서는 아직도 철 대문을 사용한다고 합니다. 70년 전에 전쟁으로 나갔던 아들이 아직 돌아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아들이 대문을 알아보고 찾아올 거라는 믿음을 가지고 계십니다다른 자식들은 대문을 바꾸자고 이야기했습니다이사를 가자고 이야기했습니다그 말이 합리적일 수 있습니다그러나 어머니는 녹이 슨 철 대문을 바꾸지 않고 그냥 달아 놓았습니다사랑은 합리적이지 않습니다사랑은 그런 겁니다말도 되지 않는 일이지만 사랑은 맹목적입니다하느님의 아들이 사람이 되신 것도 사랑 때문입니다하느님의 아들이 십자가를 지신 것도 사랑 때문입니다하느님께서 사랑하는 아들 예수님의 십자가를 허락하신 것도 합리적이지 않습니다사랑 때문에 그렇게 하신 겁니다코로나19가 사라진다면 그것은 백신과 치료제의 개발일 수 있습니다그러나 코로나19가 사라지는 진정한 이유는 의료진의 헌신과 노력서로에 대한 배려와 나눔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겨자씨와 누룩의 이야기를 하셨습니다겨자씨는 아주 작습니다그러나 자라면 커다란 나무가 되고하늘의 새들이 와서 그 가지에 깃든다고 합니다하느님의 풍성한 사랑과 자비가 드러나는 곳이 하느님 나라입니다누룩은 아주 작은 양이지만 맛있는 빵을 만들어냅니다많은 사람이 생명의 양식으로 삼습니다더 이상의 눈물과 고통이 없는 새 하늘과 새 땅이 하느님의 나라입니다우리 신앙인들이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그것은 겨자씨를 땅에 심는 것입니다누룩을 반죽에 넣은 것입니다그것은 70년이 넘었어도 전사자들의 유해를 발굴하고송환하는 조국의 사랑입니다그것은 70년이 넘었어도 아들이 돌아오길 기다리며 철 대문을 바꾸지 않는 어머니의 사랑입니다정하상 바오로김대건 안드레아이태석 요한 신부님이 걸어간 길입니다모든 예언자와 순교자들이 걸어간 길입니다.

 

무거운 물건을 그냥 들어 올리는 것은 힘든 일입니다하지만 지렛대가 있으면 쉽게 들어 올릴 수 있습니다그래서 아르키메데스라는 서양의 학자는 나에게 지렛대만 있으면 지구도 들어 올릴 수 있다.’라고 말을 했습니다많은 봉사 단체들은 교회를 위한 지렛대와 같은 일을 하고 있습니다그분들의 수고와 봉사는 교회에 활력을 주고 있습니다그분들이 바로 예수님의 발이 되고 있으며예수님의 손이 되고 있습니다새롭게 시작되는 한 주간의 첫 날입니다나의 가족나의 직장나의 이웃들에게 사랑의 지렛대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나의 희생과 나눔이 누룩이 되어 내가 살아가는 공동체에 하느님의 사랑이 풍성한 결실을 맺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하늘나라는 겨자씨와 같다어떤 사람이 그것을 가져다가 자기 밭에 뿌렸다겨자씨는 어떤 씨앗보다도 작지만자라면 어떤 풀보다도 커져 나무가 되고 하늘의 새들이 와서 그 가지에 깃들인다.” 

 

-조욱현신부-

 

복음: 마태 13,31-35: 겨자씨와 누룩의 비유

예수님께서는 하늘 나라를 모든 씨앗 중에서 가장 작지만 매우 매운 맛을 가진 겨자씨에 비유하신다. 이 씨앗은 밭에 뿌려지면, 즉 비옥한 땅에 떨어지면 자라서 어떤 풀보다도 커진다고 한다. 복음이라고 하는 씨앗은 다른 씨들에 비해 무척 작다. 그러나 이 씨앗이 믿는 사람이건, 세상이건 뿌려지면, 평범한 식물이 아니라는 것이 드러난다. 그것은 나무로 자라나 믿는 이들을 상징하는 하늘의 새들이 와서 그 가지에 깃들일 것이라고 한다.

“겨자씨는 어떤 씨앗보다도 작지만, 자라면 어떤 풀보다도 커져 나무가 되고 하늘의 새들이 와서 그 가지에 깃들인다.”(32절) 예수님의 제자들은 누구보다 나약하고 보잘것없는 사람들이었지만 그들 안에 있던 위대한 능력, 즉 그리스도의 권능, 성령에 힘입어 복음의 씨앗이 자라났고, 세상의 모든 곳으로 퍼져 나갔다. 사도들은 세상에 그늘을 드리우는 가지이다. 이 가지에 다른 민족들이 생명을 희망하며 그 가지에 깃들이는 것이다.

겨자씨는 어떤 씨앗보다 작다고 한다. 제자들이 주님께 “저희에게 믿음을 더해 주십시오.”(루카 17,5)라고 말씀드렸을 때, 예수님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겨자씨 한 알만 한 믿음이라도 있으면, 이 산더러 ‘여기서 저리로 옮겨 가라.’ 하더라도 그대로 옮겨갈 것이다.”(마태 17,20)라고 하신다. 이에 더하여 사도 바오로는 더 놀라운 일에 비유한다. “산을 옮길 수 있는 큰 믿음이 있다 하여도 나에게 사랑이 없으면 나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1코린 13,2)라고.

“하늘 나라는 누룩과 같다. 어떤 여자가 그것을 가져다가 밀가루 서 말 속에 집어넣었더니, 마침내 온통 부풀어 올랐다.”(33절). 누룩은 반죽 속으로 없어지는 것 같지만 죽지 않고, 반죽 전체를 자기와 같은 성질로 변화시킨다. 밀가루 서 말에 골고루 섞인 이 누룩은 모든 것을 하나로 만든다. 누룩이 많은 양의 반죽을 발효시켜 부풀게 하듯이 우리들의 삶도 누룩의 역할을 하여 온 세상을 변화시킬 것이다. 사도들은 군중과 섞였을 때, 달아나지 않았다는 것이 중요하다.

누룩은 반죽 속에 넣어지면 자기는 반죽 속에 녹아들어가 반죽 전체를 변화시킨다. 그 누룩이 많은 양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적은 양이라도 반죽을 부풀게 한다는 사실이다. 우리도 다른 사람들에게 가까이 가 그들과 하나가 될 때, 그들을 하느님의 자녀로 변화시킬 것이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우리는 하느님의 자녀로서 이겨낼 것이다. 밀가루 서 말이란 서로 갈라진 인간들을 의미하며, 복음으로 말미암아 하나가 된다. 그러므로 예수님 안에는 “유다인도 그리스인도 없다.”(갈라 3,28)는 것이다.

겨자씨와 누룩의 기능이란 비록 지금은 잘 보이지 않을 만큼 하찮은 것으로 보이지만, 시간이 지나면 더욱더 작용하여 결국 커다란 위력을 드러내리라는 것이다. 우리의 역할이 눈에 띄지 않고 아주 작은 것으로 보일지라도 우리가 하느님 앞에 올바로 서 있기만 하면, 우리 주위는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우리가 세상에 살지만, 우리를 통해서 세상이 변화될 수 있음을 알고 항상 깨어있도록 하여야 할 것이다.

 

하늘 나라는 겨자씨와 같다.(마태 13, 31)

-한상우신부-

최고의 기쁨은
성장하는
기쁨입니다.

성장하는
인격의
나라입니다.

그 무엇도
함부로
속단할 수
없습니다.

그 안에는
믿음이 있고
생명이 있습니다.

하늘 나라는
서로에게서
가능성을 만나는
나라입니다.

불가능과
가능 사이에
믿음의
하늘 나라가
있습니다.

하늘 나라는
결코 서두르지
않습니다.

천천히 조금씩
성장하는
나라입니다.

겨자씨는
겨자나무가
되어가는 여정에
충실합니다.

작은 것을
거쳐야
큰 것이 됩니다.

작은 겨자씨처럼
작은 실천에서
우리는 성장합니다.

겨자씨는
하느님 앞에서
자신이 아주
작다는 것을
정직하게
인정합니다.

작지만 내어주는
삶에서 세상은
조금씩
성장합니다.

하늘 나라는
작지만
아는 것을
실천하는
가능성의
나라입니다.

 

-오상선신부-

 

오늘 미사의 말씀은 하늘 나라가 확장되는 조건을 알려 주십니다.

"하늘 나라는 겨자씨와 같다. 어떤 사람이 그것을 가져다가 자기 밭에 뿌렸다"(마태 13,31).

겨자씨는 아주 작은 씨앗이지만 자라면 새들이 깃들일 정도의 크기가 된다고 합니다. 그런데 겨자씨가 그렇게 성장하려면 우선 밭에 뿌려져야 하지요.

흙과 수분과 양분이 겨자씨를 감싸고 품습니다. 씨는 제 몸에 침투하는 낯선 힘들을 받아들여 서서히 제 형체를 잃고 썩어가지요. 거기서 비로소 싹이 움트고 뿌리도 나옵니다. 흙을 딛고 하늘을 향해 줄기를 밀어올릴 태세를 갖추는 것이지요.

"하늘 나라는 누룩과 같다. 어떤 여자가 그것을 가져다가 밀가루 서 말 속에 집어넣었더니"(마태 13,33).

누룩은 물질을 발효시켜 부풀게 합니다. 밀가루처럼 적당한 재료와 수분, 온도를 만나면 훨씬 부드럽고 풍성한 음식으로 변모시키지요.

예수님께서 하늘 나라를 비유하신 겨자씨와 누룩은 성장과 확대, 변모와 기여라는 특징을 지닙니다. 한눈에도 작고 보잘것없는 물질이지만 적합한 환경과 만나면 제법 영향력을 미치는 존재로 탈바꿈합니다. 씨가 흙에, 누룩이 밀가루에 뒤섞여 하나가 될 때 일어나는 작지만 의미있는 기적들일 겁니다.

제1독서에서 주님은 유다 백성을 아마포 띠로 빗대어 꾸짖으십니다.

"아마포 띠를 사 허리에 두르고 물에 담그지 마라"(예레 13,1).
"바위 틈새에 숨겨 두어라"(예레 13,4).
"띠를 가져오너라"(예레 13,6).

주님께서 아마포로 만든 띠를 특정해, 세 차례에 걸쳐 아주 구체적으로 예레미야에게 지시하십니다. 아마포는 매우 값비싼 직물로 귀하게 취급되는 재료입니다. 띠는 옷깃을 여미는 도구로 사람의 허리에 붙어 있을 때 제 역할을 하지요. 짝을 잃고 굴러다니는 띠는 아무렇게나 쓰이기야 하겠지만 잘 어울리는 옷에 붙어 있을 때처럼 제 가치를 발휘하긴 어렵겠지요.

"나도 유다의 교만과 예루살렘의 큰 교만을 그처럼 썩혀 버리겠다"(예레 13,9).

사람 허리에 둘렀다가 강가 바위 틈새 흙에 묻혔던 띠는 곧 상하고 맙니다. 아마라는 직물이 아주 순수한 고급 천연재료라 더 쉽게 상하기도 했겠지요. 그처럼 "썩어서 아무짝에도 쓸모없게"(예레 13,7) 된 아마포는 하느님을 떠나 우상숭배에 몸을 맡긴 유다 백성의 가까운 미래가 될 것입니다.

아마포 띠가 사람 허리에 둘러져 있을 때는 기능적으로도 심미적으로도 충분히 제 역할을 합니다. 우리가 주님께 꼭 붙어 있을 때도 마찬가지지요. 만일 아마포 띠가 따로 분리되어 얼토당토 않은 곳에 있게 되면 가치도 떨어질 뿐만 아니라 꼭 있어야 되는지 존립 여부까지 불투명해지고 말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당신 백성에게 곁에 있으라고 하시는 이유는 
"그들이 당신 백성이 되어 명성과 칭송과 영광을 얻게 하려"(예레 13,11 참조)는 것입니다. 당신을 위해서 아니라 오로지 백성을 위해서인 것이지요. 그런 줄도 모르고 일탈을 꿈꾸는 백성이 주님은 얼마나 안타까우실까요.

우리는 이미 영혼에 하늘 나라를 품은 겨자씨나 누룩과 같은 존재입니다. 씨가 땅에 묻히듯, 누룩이 밀가루를 만나듯, 우리가 주님 옆구리에 딱 붙어 있을 때 하늘 나라의 생장 조건이 갖춰지는 것입니다. 주님을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를 위해서입니다. 우리가 주님과 함께면 하늘 나라를 이루지만 우상에 한눈 팔려 주님에게서 떨어져 나가면 썩은 아마포 띠처럼 가련한 신세가 되고 말겠지요.

주님의 신부인 우리의 정체성은 우리가 주님 곁에 머무를 때 지켜지고 발휘됩니다. 우리가 품은 하늘 나라의 씨앗이 모든 피조물이 깃들 큰 나무로 성장하는 길도 여기에 있지요.

사랑하는 벗님! 우리는 이미 하늘 나라를 품고 있습니다. 주님은 이 씨앗이 더 넓고 크고 깊게 확장되어 이 세상 곳곳에 하늘 나라가 완성되길 바라시지요. 그러니 우리, 주님 허리에 꼭 붙어 있읍시다. 절대 그분을 떠나지 말고 그분과 한몸처럼 살아갑시다. 그분과 함께 살아가는 우리가 곧 하늘 나라입니다.

 

지난 매일복음 묵상 글 보기 : 

2018년 7월 30일 연중 제17주 월요일

 

오늘의 성인 : http://maria.catholic.or.kr/sa_ho/saint.asp  

프란치스칸 성인들 : https://www.roman-catholic-saints.com/franciscan-calendar.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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