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 성녀 축일

1월26일 성 디도 주교

Margaret K 2018. 1. 15. 21:20

1월26일 성 디도 주교♬Be Still My Soul  



축일:1월26일 
성 디모테오와 성 디도 주교
Saints Timothy and Titus


디모테오와 디도는 사도 바울로의 제자요 협력자들이었다.
디모테오는 에페소 교회를 지도했고, 디도는 크레타 교회를 지도했다.
성 바울로는 그들에게 사목 서간을 써 보냈는데
그 서간들은 성직자와 신자들을 지도하는 데 있어서 유익한 많은 권고들을 담고 있다.



디도서는 어떤 책인가요?

디도는 누구인가요? 
디도는 이방계 그리스도인으로서 사도 바오로를 도와 복음선교에 협력한 사람입니다.
사도 바오로와 바르나바의 동반자로 예루살렘에 방문했을 때에 유다계 그리스도인들로부터 할례 요청을 집요하게 받지만,사도 바오로가 이 요청을 막아주죠(갈라 2,1-10).
고린토 교회 신도들이 바오로의 가르침을 배격한다는 소문을 듣고는 그 진상을 조사하기 위해, 바오로보다 앞서 고린토를 방문하여(2고린 2,13)
자세한 사정을 사도 바오로에게 보고하는 역할(2고린 7,13-14)도 맡아 했답니다.
그렇지만 디도서에 나오는 ‘디도’의 모습은 사도 바오로의 유능한 심복이라기보다는, 모든 문제에 대해서 바오로의 가르침을 받아야 되는 것으로 묘사되어 있어서
이 둘이 동일 인물인지에 대해서는 의문의 여지가 있어요.

누가 썼나요? 
디도서 첫머리에 “나 바울로가 이 편지를 씁니다”(디도 1,1)로 되어 있어, 초대교회로부터 오랫동안 사도 바오로가 직접 썼으리라고 생각해 왔어요.
그러나 바오로의 다른 편지들에 비해 신학적 용어나 어휘 등이 많이 다른 것으로 보아, 바오로를 따르는 후대의 사람이 썼을 것으로 보아요.

언제 쓰여졌나요?
디도서는 디모테오 전후서와 마찬가지로 그 안에 실린 교회 제도가 초대교회와 다른 것으로 보아, 사도 바오로가 죽은 후 한 세대 이상이 지난 다음에 생겨났을 거에요.
디모테오 전후서는 디도서보다는 교회의 직제에 대해서 보다 광범위하게 다루고 있으므로, 디도서가 사목서간 중에서는 가장 먼저 쓰여졌을 것으로 추정되어요.
이냐시오가 117년경에 보낸 편지에는 감독과 장로가 명확하게 구분되어 있는데, 디도서에는 혼용되고 있는 것으로 보아 대략 100년경에 집필되었을 거에요.

왜 썼나요?
그리스도교가 퍼져 나가던 1세기 말엽은 개척교회와 다를 바 없는 상태였어요.
교회를 조직하는 일에서부터 교회 구성원을 격려하고 교회의 정통 가르침을 전수하며,이단자를 배척하는 일에 이르기까지 사목자들이 해야 할 일이 산적해 있었죠.
이에 신설된 교회를 맡아 사목하는 이들이 이러한 갖가지 문제를 어떻게 풀어나가야 하는지 일러주고자 해요.

어떤 내용이 실려 있나요?(디도 1,1-3,15)
바오로는 무슨 일을 하기 위해서 하느님으로 부터 사도로 임명되었습니까?(디도 1,1)
디도서는 3장밖에 안되어요. 그 안에서 사목자로서 디도가 그레데섬에서 해야 할 일들을 상세히 일러주고 있지요.
흠잡힐 데 없는 사람을 원로로 임명하고 교회가 가르치는 진실된 말씀을 굳게 지키는 사람을 감독자로 임명할 것을 당부합니다.
누구를 헐뜯거나 싸움질을 하지 말고 온순한 사람이 되어서 모든 사람을 온유하게 대하도록 신자들을 가르칠 것을 촉구하고 있어요.

<새김과 나눔>
사도 바오로는 남에게 절실히 필요한 것을 채워주는 사람이 되라고 권유합니다. 내게 필요한 것을 채워준 은인들에 대해서 함께 이야기를 나누어 보세요.(가톨릭홈에서)





축일:1월26일 
성 디도 주교 
St. Titus, E 
San Tito Vescovo
Died :c.96 at Goryna, Crete
Canonized:Pre-Congregation


성 디도는 성 바오로에 의하여 개종한 후, 그의 비서가 되어 예루살렘 회의에 참석하였다. 
바오로는 그를 코린토로 파견하여 오류를 시정케 하면서 예루살렘의 가난한 신자들을 위한 헌금을 모금하게 하였다.
그후 그는 바오로에 의하여 크레타의 주교로 축성되어 바오로의 사업을 이어나갔다. 그후 그는 달마시아를 방문한 뒤 크레타로 돌아와서 운명한듯 보인다.
그는 법률가 제나가 쓴 "디도 행전"에 잘 묘사되어 있다. 그가 바오로로부터 받은 편지의 주요 내용은
영적인 권고를 비롯하여 착한 목자가 지녀야 할 자질 및 크레타 신자들에게도 엄격한 규율이 필요하다는 것 등이다.(성바오로수도회홈에서)

그는 그리스인으로 안티오키아에서 태어났다. 디도는 바울로와 가까운 친구이자 제자였으며 동료 선교사이기도 했다.
디도는 바울로와 훌륭한 친구이자 행정가이며 평화의 전파자였다.
바울로가 고린토인들에게 보낸 둘째 편지에서 디도와 그의 우정이 얼마나 깊은 것이었으며 얼마나 큰 동료의식으로 복음을 설교했는지 알 수 있다.
바울로가 고린토 교회와 문제가 생겼을 때에도 디도는 그의 ’준엄한 편지’를 가지고 갔다.
디도는 불리한 입장에 있었지만 문제를 원만하게 해결하는 데 성공했다.
바울로는 디도가 돌아온 것만으로도 위로를 받았다.
디도서를 보면 디도가 그레타섬에 있는 그리스도교 공동체에서 교회를 조직하고
악습을 개선하고 장로들을 임명하는 책임을 맡고 있는 관리인이었음을 알 수 있다.



성 디도는 성 디모테오와 같이 성 바오로 사도에 의해 개종한 후 가장 사랑받던 제자 중의 한 사람이엇다. 
그는 모든일에 지혜로웠고 그의 활약은 참으로 뛰어났다.
그의 생애에 대해서는 성 바오로의 서간에 기록되어 있는 것 외에 알려진 것이 없지만 그것은 극히 중요한 자료가 된다.

성 디도는 그리스인인데 그의 출생지는 명백치 않다. 성서에 그에 대한 기사는 안티오키아에 있을때부터 시작했다.
그는 앞서 말한 대로 성 바오로의 감화로 개종했다. 바오로 사도가 그를 "공통된 신앙에서의 나의 친아들"이라고 부른 점으로 보더라도 짐작할 수 있다.

51년 성 바오로는 디도와 다른 사람을 데리고 예루살렘으로 올라갔는데, 그때 거기서는 중대한 문제에 대한 회의가 있었다.
그 당시 그리스도교 신자들 중에는 이전 유다교를 믿던 사람도 적지 않았으므로 그들은 그리스도교에 개종한 후도 구약의 율법을 지켜야 된다고 믿고 있었다.
그런데 한편에서는 이교에서 개종한 그리스도교 신자들도 많이 있었으므로 그들도 구약의 율법을 지켜야 되느냐 안 되느냐가 큰 문제가 되었다.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는 지킬 필요가 없다는 편으로서 지금까지 이교도 출신의 신자들에게도 그와 같이 가르쳐 왔는데 이제 와서 여러 의견이 나왔지만
성 베드로는 마침내 교황의 무류지권(無謬之權)으로 개종자는 유다의 율법을 지킬 필요가 없다고 단정했다.
그 결과는 디도에게도 중요했다. 그 이유는 그도 전에는 이교도였던 연고이다. 

디도는 그 후 다시 안티오키아에 돌아가서 성 바오로가 두 번째의 전도 여행을 떠나 
프리기아 및 갈라디아를 지나 아테네, 고린토의 방면에 갔을동안 그곳에 체류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리스도를 믿는 자’라는 뜻으로 크리스찬이라고 칭한 것은 아티오키아의 신자가 처음이었다.
아티오키아의 교회는 성 바오로가 안 계시는 동안 신앙의 기초를 견고히 하고 신자의 수를 증가시켰다. 이것은 디도의 활동이 절대적 역할을 한 셈이다.
그 이유는 성 바오로는 그러한 결과를 보고 경건하고 열심히, 또한 지혜로운 자에게만 맡길 수 있는 고린토 교회의 주교라는 직분을 그에게 위탁했기 때문이다.

고린토라는 곳은 성 바오로가 손수 전교하고 교회를 설립한 곳이었다. 그러나 그는 오랫동안 그곳에 머물러 있지 못했다.
그러므로 고린토 교회의 신자들은 신앙으로 뭉치지 못하고 가장 수치스러운 죄까지 공공연하게 범했다.
성 바오로는 이러한 슬픈소식을 듣고 스스로 그곳으로 가려고 생각했지만 그때는 마침 두번 째의 전도여행을 마치고 세 번째의 전도 여행의 준비중에 있었으므로
도저히 여가가 없었으므로 다음은 그의 제자인 디모테오와 에라스토를 파견했지만 그들의 활동도 그 교회를 구출하지 못했다.

그러던 중에 고린토에서 약간 안심할 만한 보고가 들어왔다.
그러므로 성 바오로는 될 수 있으면 후에 자신이 가 보려고 생각했지만 즉각 어떤 인망 높은 이를 보낼 필요를 느끼고 디도를 선택해 보내기로 했다.

처음에 디도는 책임의 중대함을 생각하고 주저했지만, 성 바오로가 이웃을 사랑하는 덕을 가르쳐 예루살렘이나 아카이아에 있어서 곤란을 당하고 있는 형제들을 위해 
기부를 모을 것을 의뢰했으므로 그는 마침내 승낙을 하고 즉시 동반자를 데리고 출발했다. 성 바오로는 트로아스에서 그와 다시 만나려고 했으나
그가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에 마케도니아에까지 가서 디도를 만나 기쁜 소식을 듣게 되엇다. 디도는 모든 일을 현명히 처리한 것이다.

이 두 사람은 종종 같이 여행하며 크레타 섬에도 갔다. 그리고 그곳에 몇 군데의 교회를 세우고 디도가 주교로서 머물렀다.
성 바오로는 안심하고 그 지방을 떠났지만, 결코 사랑하는 제자를 잊지 않고 2년 후에 디도에게 한 통의 서간을 보냈다.
현재의 성서 안에 있는 디도서가 바로 이 서간이다. 그 서간 중에서 성 바오로는 주교로서의 생활 및 임무에 대해서 훈계하고 지도했으며
한 번 더 사랑하는 제자를 만나고 싶어서 그를 키프로스로 불러 거기서 한 겨울을 같이 지냈다.

다음해 그는 디도를 달마디아로 파견하고 전교하도록 했으나 그것도 잠깐 동안이엇고 오래지 않아 디도는 크레타로 다시 돌아와 그 섬 및 부근의 작은 섬에서
널리 복음을 전하는 것에 즐겨했다. 실로 그는 사도 성 바오로의 제자로서의 적합한 경건하고, 열심하며, 영리함으로 유익한 인물이었고,
또한 극히 희생심이 많은 사람이었다. 그의 강론과 깨끗한 행동은 얼마나 사람들을 선으로 인도했는지 모른다.
그가 승천한 때는 94세라는 고령이었다.(대구대교구홈에서)



[성서의 인물]믿음의 동행자, 문제의 해결사 디도-허영업신부(평화신문 647 호)

사도 바오로에게는 여러 명의 협조자들이 있었는데 그 중의 하나가 디도였다. 디도는 그리스 사람으로 사도 바오로를 만나 그리스도교로 개종한 사람이었다.
디도는 사도 바오로가 바르나바와 함께 예루살렘 회의에 참석할 정도로 신임이 두터웠던 인물이다. 사도 바오로의 전교활동에는 항상 그가 동행했다.
디도는 믿음직스럽고 충실한 사람이었지만 무엇보다도 신심 깊은 신자였다.
사도 바오로가 디도를 가리켜 “같은 믿음의 생활을 하는 진실 된 아들”이라고 소개할 정도였다.
디도는 사도 바오로의 손발처럼 든든한 협조자일뿐 아니라 영적인 부자지간이었던 것 같다. 사도 바오로가 생각할 때 디도는 그리스도교 신앙인의 모범으로 여겼던 것 같다.
사도 바오로가 이방인들에 대한 선교상황을 예루살렘교회에 알리려 할 때 모델로 디도를 데리고 갔을 정도였다.

사도 바오로의 충실한 두 제자는 디모테오와 디도였다. 디모테오는 어머니가 유다인이었지만, 디도는 순 그리스인으로 개종한 제자였다.
디도는 디모테오 보다는 더 나이가 많았고 성격과 수완에 있어서도 디모테오 보다 원숙한 듯하다. 고린토 교회의 사태 수습을 위해 디모테오를 보냈으나 해결하지 못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디도가 파견되어 사태 수습을 한 것을 보면 디도는 지혜와 정치적 수완도 있었던 인물로 보인다.

그런데 디도는 디모테오처럼 바오로의 서신에서 송신자로 이름이 함께 연명된 일이 없고, 사도 행전에도 디도의 행적이 나타나지 않는다.
그의 이름은 고린토 후서 등 몇 편의 서간에서 잠시 소개될 뿐이다. 이처럼 철저하게 사도 바오로의 그림자처럼 그의 활동에 함께 하고 있다는 증거이다.

디도의 가장 현저한 활동은 뭐니뭐니 해도 고린토 교회의 문제 해결에서였다. 고린토 교회의 분열은 바오로의 큰 관심사였다.
교회가 여러 파로 분열되어 있다는 것은 교회의 붕괴로 이어질 가장 나쁜 조짐이었다.
바오로는 처음에 디모테오를 보내면서 그를 정중히 대접해 줄 것을 신신당부했다. 그런데 디모테오의 활동은 별다른 성과가 없었다.

그 후 고린토 교회의 사정은 더 악화되었고, 바오로에 적대적인 유다인들이 득세하여 그들은 거만해져서 교회를 혼란에 빠뜨렸다.
이런 사정을 수습하기 위해 바오로는 급히 고린토를 방문하였으나 결국 이 여행은 실패로 돌아갔다.
그 후 고린토 교회는 더 혼란해지고 바오로는 모욕을 받고 에페소로 돌아오게 되었다.
마침내 바오로는 디도를 고린토에 다시 보내어 계속 사태 수습에 노력하게 하였다. 또한 가난한 삶들을 위한 헌금 모금 사업도 벌이도록 지시하였다.

“이보게 디도, 고린토 대부분의 교인들은 믿음이나 언변, 그리고 지식이나 열성이 따를 수 없는 훌륭한 신자들이요. 그들을 잘 사목 해 주시오.
분열된 교회를 하나로 만들어 주고 은혜로운 헌금 모금사업도 차질 없이 추진해 주시오.”
“알았습니다. 분부대로 열심히 하겠습니다.”

바오로는 마케도니아에서 디도를 만나 고린토 교회의 사태 수습이 되었다는 기쁜 소식을 들었다.
또한 구제 사업을 위한 헌금 모금도 성공적이었음을 알고 몹시 기쁘고 만족했다. 바오로는 기쁨에 넘쳤고 만족했다.

드디어 바오로가 고린토에 세 번째로 도착했을 때에는 여러 난제가 쉽게 해결되고 바오로는 다음의 계획인 로마전교를 준비할 수 있었다.
바오로는 교우들 앞에서 디도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디도는 나의 참 아들이요, 친구이며, 믿음의 동반자입니다. 디도는 여러분이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맞아준 것에 대해 신자 여러분에게도 큰 애정을 품고 있습니다.”

바오로가 전도여행을 하면서 디도는 그레데 섬에 남겨두어 사목을 담당하게 하였다. 디도가 할 일은 교회를 돌보며 원로를 임명하게 하는 일이었다.
그리고 자신은 계속 여행하면서 디도에게 서간을 보내어 사목의 지침을 내려주었다. 

“디도! 내가 그대를 그레데 섬에 홀로 남겨둔 것은 내가 다하지 못한 사업을 완결 지으려는 것이오. 훌륭한 원로들을 뽑아주어 교회가 자립할 수 있게 해주오.
그리고 그레데 사람들 중에 악명 높은 자들이 많소. 그들은 더러운 이익을 위해 못된 것을 가르치는 자들이오.
그대는 그들을 꾸짖어주고 건전한 교리에 부합하는 것만을 가르치시오.”

그레데 섬은 지중해 상에 있는 섬인데 상당한 수의 교회가 있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바오로는 디도에게 원로의 임명과 이단의 경계 등을 지시하고, 교회 각계 각층에 대한 교훈과 사회일반에 관한 교훈 등 상세하게 편지를 썼다.

바오로가 디도를 그레데 섬에 홀로 남겨두고 중대한 임무를 부탁하고 있는 것은 디도에 대한 절대적인 신임이 없이는 불가능했다.
디도는 바오로가 힘들어하는 일을 담대하게 처리할 수 있는 가장 믿을만한 제자였던 것이다.
그래도 바오로는 어떤 의미에서 참 행복했던 사람이었다. 어려운 문제의 해결사인 디도 같은 제자가 있었으니까.



♬Be Still My Soul-The St Philips Boy’s Choi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