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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코는 왜 순종생활을 강조했을까?/가톨릭 평화신문

Margaret K 2018. 1. 13. 03:44
프란치스코는 왜 순종생활을 강조했을까?
최문기신부-


▲ ‘프란치스코의 순명’, 아시시 프란치스코 대성당 천장화.




프란치스코는 형제들을 위해 작성한 회칙에서 작은 형제들의 삶을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과 발자취를 따르는 것”으로 규정한다. 즉, 형제들의 삶은 본질적으로 ‘따름’의 속성을 가지며, 따름의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 순종은 필수적인 것이 된다. 

프란치스코에게 있어서 자신과 형제들의 삶은 곧 순종 그 자체였다. 그는 자신을 삶을 마감하며 작성한 유언에서 일곱 차례에 걸쳐서 문장의 주어를 자기 자신이 아닌 “주님”으로 이야기한다. 

“주님이 나 프란치스코 형제에게 이렇게 회개생활을 시작하도록해 주셨습니다.” “주님이 친히 나를 그들에게 데리고 가셨고” “주님이 성당에 대한 크나큰 신앙심을 주셨기에,” “주님이 거룩한 로마 교회의 관습을 따라 생활하는 사제들에 대한 큰 신앙심을 주셨고” “주님이 몇몇 형제들을 나에게 주신 후 아무도 내가 해야 할 것을 나에게 보여주지 않았지만, 지극히 높으신 분께서 친히 거룩한 복음의 양식에 따라 살아야 할 것을 나에게 계시하셨습니다.” “‘주님이 당신에게 평화를 주시기를 빕니다’ 하고 우리가 해야 할 인사를 주님이 나에게 계시해 주셨습니다.”

죽음을 앞둔 프란치스코는 자신이 거쳐왔던 삶의 순간순간, 겪어왔던 모든 일들, 판단과 선택들에는 결정적으로 자기 자신을 이끌어주셨던 주님의 손길이 있었음을 고백한다. 그 순간에는 자기 자신의 판단과 결단이라고 생각했던 일들조차도 삶의 마지막 순간에 돌이켜 생각해 보니 그것은 주님의 이끄심이었음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순종생활, 주님 손길 잡는 길

그는 회칙 2장에서 형제회에 받아들여지는 것을 일컬어 ‘순종생활’에 받아들여지는 것이라고 규정한다. “지원자가 들어오면 … 시련기 1년을 마친 후, 그를 순종생활로 받아들일 것입니다. 그 이후에는 ‘쟁기를 잡고 뒤를 자꾸 돌아보는 사람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자격이 없다’고 하는 복음 말씀과 교황 성하의 명령에 따라, 다른 수도회에 들어가거나 순종생활을 떠나서 돌아다닐 수 없습니다. … 순종을 서약한 다른 형제들은 모자 달린 수도복 한 벌과 띠와 속옷을 가질 것이며….”

반면 형제들의 죄는 곧 순종생활을 떠남을 의미한다. “순종생활을 떠난 그 모든 형제들은 자신들이 저주받은 자임을 알아야 합니다.” 주님께서 이끌어주시지 않으면 아무도 그분께 갈 수 없는 것이 바로 회개의 여정이기에, 프란치스코는 먼저 그분과의 올바른 관계를 세우는 것이 가장 중요하고 우선되어야 하는 일이며, 인간이 처할 수 있는 가장 심각한 위험은 바로 나를 이끄시는 그분의 손길을 놓치는 것이라 생각했다. 

프란치스코에게 순종이 그토록 중요했던 이유는, 인간의 모든 죄의 근원이 불순종과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는 형제들에게 주는 권고에서 불순종의 죄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규정한다. 

“주님께서 아담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낙원에 있는 모든 나무’에서 ‘열매를 따 먹어도 된다. 그러나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에서는 따 먹으면 안 된다.’(창세 2,16-17) 아담이 순종을 거스르지 않았을 때까지는 죄를 짓지 않았으므로, 동산에 있었던 모든 나무에서 열매를 다 먹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자기 의지를 자기의 것으로 삼고, 자기 안에서 주님께서 말씀하시고 이루시는 선을 자랑하는 바로 그 사람은 선을 알게 하는 나무에서 열매를 따 먹는 것입니다. 결국, 악마의 꾐에 빠져 계명을 거슬렀기 때문에, 먹은 것이 그에게 악을 알게 하는 열매가 되어버렸습니다. 그래서 그런 사람은 벌 받아야 마땅합니다.”



불순종, 인간 죄의 근원

프란치스코는 창세기의 내용을 인용하며, 인간 죄의 근원을 이야기한다. 그에게 있어서 ‘죄’는 저질러진 인간 행위의 결과물이 아니라, 하느님이 아닌 자기 자신을 섬기는 것 그 자체를 의미한다. 그는 이것을 일컬어 ‘자기 의지를 자기의 것으로 삼고, 자기 안에서 주님께서 말씀하시고 이루시는 선을 자랑하는 것’이라고 부른다. 마땅히 하느님이 계셔야 할 삶의 자리에 나의 판단과 선택, 감정 등을 두고는 스스로 그것의 노예가 되어 복종하는 것이 바로 불순종이며 모든 죄의 출발점이 되는 것이다. 

인간이 이 불순종의 죄를 짓는 이유는 이 세상의 주권이 하느님의 손안에 있음을 부정하고 망각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세상 속에 살아가고 있고 세상의 주권은 하느님께 있기에 하느님과의 올바른 관계 안에서만 우리의 삶은 완전해질 수 있다. 그러나 하느님의 주권을 부정하는 이는 자기 의지에 세상의 주권을 부여하고 자기 안에서 주님께서 말씀하시고 이루시는 선을 자신의 것인 양 자랑하며 살아간다. 그리고 이러한 불순종의 결과로 하느님과 인간의 관계는 단절된다. 하느님께 대한 불신과 교만 때문에 죄를 지는 이들에게 닥칠 운명은 낙원에서 쫓겨난 아담과 하와처럼 마땅한 벌을 받는 것뿐이라고 프란치스코는 경고한다.

주님의 제자가 되려면 무엇보다도 자기 자신을 먼저 버려야만 한다. 바꾸어 말하면 주님의 제자가 된다는 것은 완전히 주님의 소유가 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한 순명을 통해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하느님의 목소리를 왜곡 없이 들을 수 있다. 

순종 생활은 인간의 자유를 제한하지 않으며 오히려 완성한다. 왜냐하면 하느님께서는 당신이 계획하신 대로 우리를 이끌어 가실 것이며 우리에게 항상 좋은 몫을 주시는 분이라는 굳은 믿음이 있는 자만이 순종의 삶을 살아갈 수 있고, 그런 사람에게는 자신의 삶에 대한 어떠한 근심이나 걱정도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순종 생활을 통해서 우리 자신은 늘 형제적 사랑 안에 머물 수 있게 되고 예수 그리스도와의 지속적이고 인격적인 만남이 가능하게 된다. 순종은 “당신 자신을 낮추시어 죽음에 이르기까지, 십자가 죽음에 이르기까지 순종하셨던” 성자 예수 그리스도의 모범을 가장 직접적으로 따르는 일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