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신부가 아니더라도 의술로도 많은 사람들을 도울 수 있는데 왜 꼭 신부가 되실 결심을 하셨나요?”
“한국에도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일들이 많은데 왜 그 먼 아프리카까지 가실 생각을 하셨습니까?”
내가 자주 받는 질문들이다.
7년 이상을 이런 내용의 질문을 계속 받아왔지만 지금도 시원하게 답하지 못하고 어영부영 얼버무리고 만다.
이러한 질문들을 받고 나면 돌아서 혼자 스스로에게 다시 질문을 해보지만 특별하게 딱 부러지는 답을 찾기가 힘들다.
정말 특별한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그냥 어릴 때부터 그렇게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해왔고 지금 그렇게 살고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만히 생각을 해보면 내가 그렇게 생각을 할 수 있었던 것은 크게 작게 나에게 영향을 끼친 내 주위 사람들의 아름다운 삶의 향기들 때문이 아닌가 싶다.
‘가장 보잘것없는 형제 한 사람에게 해준 것이 곧 나에게 해준 것과 같다’는 예수님의 말씀도 그랬고,
모든 것을 포기하고 아프리카 원주민들이 사는 마을로 들어가 의사로서 정신적인 지도자로서 평생을 바친 슈바이처 박사도 그랬다.
그리고 어릴 적 집 근처에 있었던 ‘소년의 집’에서 가난한 고아들을 보살피고 몸과 마음을 씻겨주던 소 신부님과 그곳 수녀님들의 헌신적인 사람의 모습도 그랬으며,
일찍이 홀로 되어 덜렁 남겨진 10남매의 교육과 뒷바라지를 위해 눈물은 뒤로한 채 평생을 희생하신 어머님의 고귀한 삶도 내 마음을 움직이게 한 아름다운 향기였다.
‘향의 종류와 세기의 정도에 차이가 있긴 하겠지만 사람은 누구나 나름대로의 향기를 지니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주위의 다른 사람들에게 어느 정도의 영향을 끼치는 자기장과 비슷한 그런 향기 말이다.
우리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그리고 의식을 하든 하지 않든 우리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많은 사람들의 이런 향기가 서로 얽혀서 알게 모르게 서로의 삶에 영향을 주고 있음에 틀림없으리라.
사람에 따라 어떤 사람은 범위가 좁고 아주 약한 파장을 만들어내지만 어떤 사람들은 파장의 힘이 강할 뿐 아니라 그 미치는 영역이 놀랍도록 크기도 하고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기도 한다.
그것이 사실이 아니라면 슈바이처의 삶이 지니고 있던 자기장의 에너지가 어떻게 백 년이 지난 지금에도 많은 사람들의 삶에 영향을 주고 있으며 또한 예수님의 사랑의 자기장이 어떻게 2천 년이 지난 지금에도 강한 힘으로 지구 전체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설명할 수 없을 것이다.
한 달 전에 수원교구에서 세 분의 신부님이 내가 사는 곳에서 90킬로미터정도 떨어진 곳에 새로운 선교 공동체를 시작하기 위해 들어오셨다. 남부 수단으로 바로 들어오는 비행기가 없어 케냐의 나이로비를 통해 들어왔는데 직접 나이로비로 마중을 나갔다. 개인적으로 잘 알지 못하는 신부님들인데도 마중을 나가는 길이 왜 그렇게 즐겁고 들뜨던지 지금 생각해도 모를 일이다. 시집간 누나를 찾아 오는 친정 동생들을 데리러 읍내로 마중 나가는 것 같은 그런 느낌이었다.
신부님들이 앞으로 겪어야 할 숱한 어려움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리고 연민의 정도 느끼게 되지만 한국에서의 편안한 사목(한국에서의 사목도 쉽지 않은 것은 알지만 다른 의미에서 편안함이다)을 마다하고 전기는 물론 전화나 텔레비전도 없고 인터넷도 없는, 지리적으로도 문화적으로도 그리고 경제적으로도 고립된 오지 중의 오지로 스스로 자원해서 온 세 분 신부님들이 그렇게 자랑스럽고 사랑스러울 수가 없었다.
등에 업고 춤이라도 추고 싶은 심정이었다고나 할까. 같은 지역 출신도 아니고 그렇다고 같은 곳에서 신학을 공부한 것도 아닌데 왜 그렇게 반갑고 가깝게 느껴지던지... 모든 것을 주어도 아깝지가 않을 것 같았다. 열흘 동안 나이로비에서 같이 하숙하며 필요한 것들을 준비 하면서 피가 물보다 진하다지만 물보다 진하다는 그 피보다 더욱 진한 또다른 그 무엇이 분명히 존재 한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가 있었다.
하느님 나라에서의 관계, 아무런 이해타산 없이 서로 좀 더 도와주지 못해 안달하는 그런 관계, 하느님이 보시기에 너무 사랑스러워 은총을 듬뿍 주시지 않고는 배기지 못하는 그런 관계가 피보다 진한 그 무엇이 아니겠는가. 우주를 덮고 있는 예수님의 거대한 자기장 아래서 보다 가난한 이웃들을 돕기 위해 서로 조화롭게 꿈틀거리는 비슷한 주파수의 세 분의 신부님들과 나의 향기 자기장들이 피보다 진한 관계의 비결이 아닌가 생각된다.
3년 전 수원교구의 최덕기 주교님께서 누추한 이곳 수단을 직접 찾아오셨다.
어떤 신문에 올린 수단에 관한 나의 글을 읽고 마침 사순절이기도 해서 이곳 형제 자매들을 위해 모금까지 해서 직접 오신 것이었다.
지금까지 한 번도 직접 뵌 적이 없었지만 흙 길 활주로에 내리는 주교님을 본 순간 아주 오랜만에 만나는 아버지, 그것도 아들을 만나기 위해 산 넘고 물 건너는 험한 길을 마다치 않고 찾아오신 자상한 아버지를 만나는 것과 같은 감동이 가슴으로부터 흘러 넘쳤다.
주교님과 포옹을 하는데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폐암 검사를 위해 조직을 떼어 놓고 바로 아프리카로 오셨는데 수단에 일주일 계시는 동안 조직 검사가 폐암으로 판정되었고 한국으로 돌아가시자마자 항암치료를 시작하셨다 한다.
수단에 계시는 동안 심리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많이 힘드셨을 텐데 내색하지 않고 험한 돌밭 길로 지프를 타고 이 마을 저 마을을 둘러보시며 비참하고 가난한 이곳 사람들이 불쌍해 마음 아파하셨다.
주교님은 한국으로 돌아가시면서 이곳에 꼭 신부님들을 보내겠노라고 약속을 하셨고 약속대로 보내주신 신부님들이 바로 한 달 전에 온 세 분의 신부님들이니 우리의 이 관계가 어찌 피보다 더 진하지 않을 수 있으랴! 주교님의 향기가, 그리고 새로 오신 세 분 신부님들의 아름다운 향기가 자기장과 같은 에너지로 퍼져 다른 공간과 다른 시간 속의 사람들의 마음에 새로운 예수님의 사랑의 자기장을 심어 새로운 삶을 만들어 놓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내 삶의 향기는 어떤 향기일까? 얼마나 강한 자기장을 지닌 향기일까?
내 스스로가 맡을 수도 없고 그 세기도 알 수 없지만 그 향기에 대해 내 스스로가 책임을 져야 하지 않나 생각하게 된다.
우리의 삶에 향기를 만들어야 한다.
후각만 자극을 하는 향기가 아닌 사람들의 존재에 그리고 그들의 삶의 원소적 배열에 새로운 변화를 일으키게 하는 자석 같은 향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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