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솝동화

박쥐가 똑바로 서던 날

Margaret K 2012. 2. 14. 23:09

 

 

22. 박쥐가 똑바로 서던 날

박쥐 한 마리가 먹이를 찾아 날아다니다가 그만 사냥꾼이 쏜 총에 날개를 다치고 말았어요. 안간힘을 써서 푸드덕거리며 간신히 땅에 떨어지는 것을 모면한 불쌍한 박쥐는 잎이 무성한 나무에 겨우 몸을 숨길 수 있었어요. 하지만 날개를 크게 다쳤기 때문에 더 이상 날아다닐 수가 없었어요.
사냥꾼이 돌아간 뒤에 박쥐는 나무줄기를 타고 땅으로 내려왔어요. 그런데 땅 위에 서서 보니, 세상에! 아, 글쎄 세상 모든 게 거꾸로 보이는 게 아니겠어요? 산도 들도 나무도 머리 위에 있는 게 아니라 밑에서 위로 솟아나 있었어요. 잡초도, 돌멩이도, 그리고 다른 동물들도 모두가 거꾸로 매달려 있지 않고 그와 나란히 서 있었어요.
박쥐는 너무나도 신기했어요. 날개를 다쳐서 무척 걱정했는데, 덕분에 새로운 세상을 알게 되었으니 오히려 잘 됐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얘! 토끼야! 토끼야!”
박쥐는 들에서 풀을 뜯고 있는 토끼를 발견하고는 호들갑을 떨며 쫓아갔어요.
“너 그거 아니? 글쎄 말야, 이 세상이란 게 꼭 정해진 모습이 있는 게 아닌 거 같아.”
“갑자기 무슨 소릴 하는 거야?”
토끼가 입에 든 풀을 오물오물 씹으며 어리둥절한 눈빛으로 물었어요.
박쥐는 설명했어요.
“아, 글쎄, 세상 모든 것은 거꾸로 매달려 있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더라구. 내가 어떻게 하고 있느냐에 따라 그게 바로 설 수도 있고 거꾸로 매달릴 수도 있어. 말하자면 내가 보는 시각에 따라 그 대상도 모습이 달라질 수 있다는 거지. 난 그걸 깨달은 거야.”
“도대체 무슨 소릴 하는 거니? 난 도통 하나도 알아들을 수 없다.”
토끼는 박쥐를 무시하고 다시 풀을 뜯기 시작했어요.
답답해진 박쥐는 다른 동물들을 찾아 나섰어요. 자신이 깨달은 엄청난 사실을 모든 동물들에게 알려주고 싶었어요. 하지만 말이죠, 다른 동물들도 모두가 토끼처럼 알아듣지 못하면 어떡하죠? 아무리 좋은 이야기라도 남들이 알아듣지 못하면 쓸모없는 게 아니겠어요?
곰곰이 생각하던 박쥐는 좋은 수를 생각했어요. 너무 어렵게 얘기하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왜냐하면 다른 동물들은 박쥐처럼 거꾸로 매달려 살아본 적이 없기 때문에, 박쥐와 생각하는 방식이 다를 테니까요.
그때부터 박쥐는 훨씬 알기 쉽게 이야기를 꾸몄어요.
“그러니까 말야, 이 세상은 밑에서 위로 향해 있다는 거지. 저기 저 나무들을 봐. 저기 있는 산도 보라구. 아! 그리고, 이 풀들도 봐. 모두가 밑에서 위로 솟아나 있지? 돌도 땅 위에 놓여 있고 말이지. 그치?”
박쥐가 열심히 설명하고 나자 동물들은 어이가 없다는 반응을 보였어요.
“원! 난 또 뭐 새로운 얘기라도 있는 줄 알았더니.”
다람쥐가 고개를 절레절레 젓더니 박쥐를 무시하고 포르르 달려가 버렸어요.
“다 아는 얘길 가지고 호들갑을 떤 거잖아?”
거북이는 콧방귀를 뀌며 등을 돌렸어요. 박쥐는 실망했어요. 도대체 왜들 그러지? 내 얘기가 재미가 없나? 난 무척 신기한데? 그렇게 속으로 중얼거렸어요.
그런데 그게 문제가 아니었어요. 다른 동물들이 신기하기 짝이 없는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는 건 정말 아쉬웠지만요, 뭐 얘기를 꺼내지 않으면 그만 아니겠어요?
진짜 속이 상하는 것은요, 다른 박쥐들의 태도였어요.
“야! 너 박쥐 맞아? 무슨 박쥐가 땅에 붙어 다니냐?”
“박쥐가 들쥐 흉내를 내면 안 되지. 박쥐면 박쥐답게 놀아야 하잖아?”
남의 속도 모르면서 다른 박쥐들은 마구 흉을 봤어요.
박쥐는 변명했어요.
“내가 좋아서 그런 게 아니라구. 날개를 다쳐서 어쩔 수가 없단 말야.”
그러자 다른 박쥐들은 더욱 놀렸어요.
“오죽 못났으면 날개를 다치냐? 초음파는 뒀다 뭐 해? 박쥐가 날개를 다치다니, 넌 정말 박쥐 망신 다 시키고 돌아다니는구나?”
박쥐는 슬펐어요. 땅 위를 돌아다니는 동물들은 박쥐의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고, 다른 박쥐들은 흉이나 보니까 말이에요.
박쥐는 풀이 죽어 돌멩이 위에 주저앉았어요. 처음에는 그토록 신기하고 재미있던 이 새로운 삶이 싫어졌어요. 하지만 날개를 다친 박쥐는 원래 모습으로 돌아갈 수가 없었어요. 나뭇가지나 동굴 천장에 거꾸로 매달려 지내자면 먹이를 잡으러 다닐 수가 없었어요. 박쥐는 땅을 기어 다니며 벌레를 찾아야 했어요.
날이 갈수록 옛날이 그리워졌어요. 나무에 매달려 친구들과 오순도순 이야기도 나누고, 머리 밑으로 지나가는 동물들에게 말을 걸고, 재주도 부려 보이던 시절로 돌아가고 싶었어요. 가냘픈 다리로 힘겹게 돌아다니며 벌레를 잡는 생활이 무척이나 괴로웠어요.
박쥐 머릿속에는 온통 옛날 생각만이 꽉 차 있었어요. 그리움이 가슴을 가득 메웠어요. 그래서 박쥐는 다른 동물들을 만나면 옛날이야기를 늘어놓기 시작했어요.
“거꾸로 매달려서 보는 세상은 참으로 신기하단다. 머리 위에 드넓은 세상이 가득 펼쳐져 있어. 마치 끝없이 큰 도화지처럼, 저 넓은 하늘이 우리 머리를 덮고 있는 것처럼 말이지. 나무들도, 풀도, 거꾸로 자라지. 돌멩이도 바위도 모두가 거꾸로 붙어 있어. 동물들은 거꾸로 서서 머리를 우리 쪽으로 향한 채 돌아다니고 말야. 세상 모든 게 머리 위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는 거야. 머리 위에 거대한 세상이 살아서 움직인단 얘기지.”
어느새 동물들이 하나둘 모여들어 박쥐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어요. 박쥐는 깜짝 놀랐어요. 어? 참 이상하네? 내가 신기한 얘기를 들려줄 때는 모두가 무시했는데, 왜 하나도 신기하지 않은 얘기를 하면 저렇게 열심히 듣지? 영문을 모르는 박쥐는 고개를 갸웃거렸어요.
하지만 박쥐는 동물들이 어떤 이야기를 좋아하는지 알게 되었어요. 박쥐가 새로 보게 된 세상은 동물들이 관심이 없었어요. 박쥐의 옛이야기, 지난날의 이야기가 다른 동물들에게는 큰 흥미를 불러일으키는 것이었어요.
그날부터 박쥐는 동물들을 불러놓고 옛날이야기를 많이 들려줬어요. 그 자신에게는 가장 평범했고 아무런 재미도 없었던 시절의 이야기를 말이죠. 그런 얘기를 들려주면 동물들은 눈을 반짝반짝 빛내면서 귀를 기울이다가요, 이야기가 끝나면 모두가 박수갈채를 보냈어요.
이제 박쥐는 행복했어요. 원래의 삶으로 돌아가지 못한다 해도 조금도 슬플 게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어요. 자신이 처음 살던 그대로 살았다면 그런 이야기를 동물들에게 들려줄 생각도 못했을 게 아니겠어요? 거꾸로 매달려 살던 자신이 다른 동물들처럼 땅 위에 서서 세상을 바라본 뒤에야 예전에 자신이 얼마나 특별한 삶을 살았는지, 얼마나 특별한 존재였는지를 알게 되었으니 그보다 다행스러운 일이 어디 있겠어요?
그 뒤로도 박쥐는 날마다 많은 동물들에게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주며 살아갔답니다.


교훈:
1. 날개를 다쳤다고 상심하지 말자.
2. 때로는 거꾸로 보는 것이 바로 보는 것이다.
3. 우리 모두 ‘박쥐 같은’ 인간이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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