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의 샘물

Margaret K 2007. 8. 3. 03:47
 




 


예수님을 따르는 것은 자기가 사는 집을 떠나는 것이다. 집뿐만 아니라 집에서 만나는 모든 사람을 떠나는 것이다. 부모와 처자는 물론이고 심지어는 그 집에서 먹고 잠자고 일어나는 자신마저 떠나는 것이다. 집이 없어야 한다는 점에서는 들판의 여우나 하늘의 새보다도 더 철저해야 한다. “여우들도 굴이 있고 하늘의 새들도 보금자리가 있지만, 사람의 아들은 머리를 기댈 곳조차 없다.”(루카 9,58)

그런데 우리는 집을 비우지를 못한다. 더 큰 집, 더 편안한 집을 원하기 때문이다. 더 큰 집과 더 편안한 집을 원한다는 것은 더 큰 것을 향한 마음을 키우는 것이며, 더 큰 것을 향한 마음을 키운다는 것은 나에 대한 집착을 키우는 것이다. 나에 대한 집착이 강하면 모든 것을 나의 소유물로 바라보게 된다. 집에 사는 부모도 처자도 만나는 사람도 나의 소유물로 보이게 된다. 집은 더 이상 먹고 자고 일어나고 편히 쉴 수 있는 곳이 아니게 된다. 집이 소유물이 될 때 그 집에는 오로지 나를 잃는 일만이 남아 있게 된다.

집을 비울 때, 집이 소유물이 아닐 때, 집이 집일 때, 나는 집에서 편안히 쉴 수 있으며 하느님을 만나게 된다. 하느님은 내가 지은 집이 아니라 당신이 지은 집에 거처하시기 때문이다. 당신을 보기 위해 돌무화과 나무 위에 올라가 당신이 지나가기를 기다리고 있는 자캐오를 쳐다보시며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나 오늘 네 집에 머물겠다.” 그 말씀을 듣고 자캐오가 나무에서 급히 내려와 주님께 말한다. “저는 제 재산의 반을 나누어 가난한 사람에게 나누어 주렵니다.” 그러자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오늘 이 집은 구원을 얻었다.”(루카 19, 1-9) 구원은 집을 비울 때 채워진다.

성체를 영하기 전에 우리는 카파르나움의 백인대장이 예수님께 한 말을 따라 고백한다. “주님, 저는 주님을 제 집에 모실 자격이 없으니 한 말씀만 하십시오.” 주님을 모시기 위해서 우리는 집을 비워야 한다


 

-이재민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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