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님 말씀

성 이냐시오 기념일 프란치스코 교황 성하 미사 강론[2013년 7월 31일 수요일

Margaret K 2021. 9. 3. 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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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코 교황님의 미사 강론입니다.

http://www.vatican.va/content/francesco/en/homilies/2021.index.html

htps://www.vaticannews.va/en.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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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님 강론 날짜] 2013년 7월 31일 수요일[성 이냐시오 데 로욜라 사제 기념일]

[독서와 복음 말씀] 제1독서 : 탈출기 34,29-35

화답송 : 시편 99(98),5.6.7.9(◎ 9ㄷ 참조)

복음 : 마태오 복음13,44-46

https://maria.catholic.or.kr/mi_pr/missa/missa.asp?menu=missa&missaid=5594&gomonth=2013-07-31&missatype=DA

        * 교황님께서 강론하신 미사의 전례 말씀은 제1독서 신명기 30장 말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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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이냐시오 기념일

프란치스코 교황 성하의 강론

 

로마 예수 성당

2013년 7월 31일 수요일

 

우리가 성 이냐시오 데 로욜라 우리의 신부님을 기념하는 이 성찬식에서 우리가 들었던 전례 말씀의 빛 안에서 나는 세 가지 개념에 의해 이끌어 지는 세가지 단순한 생각을 제안하고 싶습니다. 그리스도와 교회를 중심에 두는 것. 섬기기 위해서 그분께서 우리를 차지하시도록 우리 자신을 놓아 두는 것. 그분의 눈에 그리고 우리 형제들의 눈에 겸손해 지기 위해서 우리의 부족함과 죄가 부끄럽다고 느끼는 것.

 

1. 우리 예수회 문장은 “인류의 구세주 예수”(Iesus Hominum Salvator) (IHS)의 머리글자로 만든 말을 담고 있는 모노그램입니다.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이 나에게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저희는 그것을 아주 잘 알고 있어요! 그러나 이 문장이 끊임없이 우리에게 우리가 결코 잊어서는 안 되는 실체를 상기시키고 있습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에게, 그리고 사회 전체에게. 중심이신 그리스도, 성 이냐시오가 기준점을 가리키면서 정확히는 “중심이신 예수님”이라고 부르고 싶어했던. 또한 영신 수련의 시작에서 우리도 우리의 창조주이시자 구원자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앞에 우리 자신을 놓아 둡니다 (EE,6 참조). 그리고 이것이 “중심에서 벗어나기”를 우리 제수이트들과 사회 전체에게 가져다 줍니다. “더 크신 그리스도”, “언제나 크신 하느님(Deus semper maior)”, “나의 내면보다 더 내면에 계시는 분(intimior intimo meo)”의 앞에 서기 위해서, 그분께서는 끊임없이 우리 자신으로부터 나오도록 우리를 이끄시고 우리를 “자아 사랑과 자아 추구와 자기 이익을 포기하는” 어떤 케노시스로 우리를 이끕니다(EE 189). “내 삶의 중심이 그리스도 입니까? 우리를 위한 우리 모두를 위한 질문. 나는 진실로 그리스도를 내 삶의 중심에 두고 있는가?”라는 질문은 당연하게 여겨져서는 안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중심에 있다고 생각하는 유혹이 항상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제수이트는 예수님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중심에 둘 때 그는 잘못합니다. 제1독서에서 모세는 끈덕지게 백성들에게 “주님은 너희의 생명이시다 라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그들이 주님을 사랑하고 그분의 길을 따라 걸어야 한다고 반복해서 말합니다.(신명기 30,16. 20 참조). 그리스도는 우리의 생명이십니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의 중심성은 교회의 중심성과 일치합니다. 이들은 분리될 수 없는 두 가지 초점들입니다. 나는 교회 안에서가 아니라면 교회와 함께가 아니라면 그리스도를 따를 수 없습니다. 그리고 이 경우에 또한 우리 제수이트들 – 그리고 사회 전체 –도 중심은 아닙니다, 우리는 말하자면 결과적으로 생기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 주 그리스도의 배필이며 우리의 거룩한 어머니인 교계제도 교회가 마음대로 쓸 수 있습니다(영신수련 353 참조). 교회에 뿌리내리고 기반을 둔 사람들. 이것이 예수님께서 우리가 되기를 바라시는 모습입니다. 유사하거나 고립된 길은 있을 수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탐구하는 길들, 창조적인 길들, 이것이 정말 중요합니다. 변방으로, 더 많은 변방으로 나가는 것. 이러한 이유로 창조성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러나 언제나 공동체 안에서, 교회 안에서, 우리에게 앞으로 나아갈 용기를 주는 이 소속으로. 그리스도를 섬기는 것이 이 실제의 교회를 사랑하는 것이고 교회를 아낌없이 순명의 영 안에서 섬기는 것입니다.

 

2. 어떤 길이 이 이중의 중심성을 살도록 이끌어 줍니까? 성 이냐시오의

경험이기도 하였던 성 바오로의 경험을 바라봅시다. 우리가 방금 들었던 제2독서에서 사도는 이렇게 썼습니다. 나는 그리스도의 완전함을 향해 달려갑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이미 나를 당신 것으로 차지하셨기 때문입니다”(필립피서 3, 12 참조). 바오로에게 다마스쿠스로 가는 길에서 그것이 일어났습니다. 로욜라의 이냐시오에게 가족들의 집에서, 그러나 그들은 기본적인 점에서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들은 모두 그리스도께서 그들을 당신 것으로 차지하시도록 놓아 두었습니다. 나는 예수님을 찾습니다, 나는 예수님을 섬깁니다. 왜냐하면 그분께서 먼저 나를 찾으셨기 때문이고 나를 그분께서 차지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우리 체험의 핵심입니다.

 

그러나 그분께서 먼저 가십니다, 언제나. 스페인어에서 그것을 잘 설명하는 매우 잘 표현하는 말이 있습니다. 그분께서는 언제나 “우리보다 먼저(El nos ;primerea’)”, 그분께서 우리를 “앞서 가십니다”. 언제나 그분께서 먼저이십니다. 우리가 도착할 때 그분께서 벌써 그곳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리고 여기서 나는 “둘째 주간의 왕국”에 대한 묵상을 상기시키고 싶습니다. 우리 주 그리스도, 영원하신 왕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면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부르십니다. “그러므로 나와 함께 가기를 원하는 사람은 누구나 나와 함께 일해야 한다. 이렇게 고통에서 나를 따르므로 또한 영광에서도 나를 따르게 될 것이다”(영신 수련 95). 그리스도의 차지가 되기 위해서 우리라는 전인적인 인간과 우리의 모든 노력을 이 왕께 드리기 위해서(영신 수련 96 참조). 즉 더 완벽한 섬김과 왕께 대한 더 큰 찬미를 위하여 모든 불의와 모든 학대와 모든 빈곤(영신 수련 98 참조)을 견뎌내면서 우리가 우리의 최선을 다하고자 한다는 것을 주님께 말씀 드리면서. 그러나 이 순간에 나는 시리아의 우리 형제들이 생각납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가 당신 자신의 것으로 만드시도록 하는 것은 앞에 놓여 있는 것을 향해 그리스도라는 목표를 향하여 열심히 노력하여 나아간다는 것을 언제나 의미합니다 (필리피서 3,14 참조). 그리고 그것은 또한 자기 자신에게 진실로 진심으로 이렇게 묻는 것을 의미합니다. 나는 그리스도를 위하여 무엇을 해 왔는가? 나는 그리스도를 위하여 무엇을 하고 있는가? 나는 그리스도를 위하여 무엇을 해야 하는가? (영신 수련 53 참조).

 

3. 그리고 나는 마지막 지점으로 옵니다. 복음 안에서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정녕 자기 목숨을 구하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그 사람은 목숨을 구할 것이다… 누구든지 나와 내 말을 부끄럽게 여기면”(루카 복음 9,23.26 참조) 등등. 제수이트의 부끄러움. 예수님의 초대가 결코 그분을 부끄러워하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자기 자신을 그분께 의탁하면서 온전한 헌신으로 그분을 따르고 그분을 신뢰해야 합니다. 그러나 성 이냐시오가 “첫째 주간”에 우리에게 가르쳐 준 것 같이 예수님을 바라보면서 특히 십자가에 못박히신 예수님을 바라보면서 우리가 그분께 합당하지 않다는 가장 인간적인 그리고 가장 고귀한 감정을 느낍니다. 즉 우리는 그리스도의 지혜와 우리의 무지를 바라보고 그분의 전능하심과 우리의 무력함을, 그분의 의로우심과 우리의 사악함을, 그분의 선하심과 우리의 악한 뜻을 바라봅니다(영신 수련 59 참조). 우리는 부끄러워하는 은총을 간구해야 합니다. 지속적인 그분과의 자비의 대화에서 나오는 부끄러움. 예수님 앞에서 우리가 얼굴을 붉히게 만드는 부끄러움. 나를 위해 당신 자신을 죄로 만드셨던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우리를 조율해서 일치시키는 부끄러움. 눈물을 통하여 각자의 마음을 일치시키고 “나의 주님”의 매일 매일의 “결과” 안에서 우리와 동행하는 부끄러움. 그리고 이것이 언제나 우리를 개인들로서 그리고 사회로서 겸손에 이르게 하고 이 큰 덕을 살도록 이끕니다. 하느님 나라를 건설하는 것은 우리가 아니라 언제나 우리 안에서 활동하시는 주님의 은총이라는 것을 우리가 알게 해 주는 겸손. 우리 자신이나 우리 자신의 생각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자아 전체를 그리스도와 교회를 섬기는 것에 두도록 우리를 격려하는 겸손함. 깨지기 쉽고 부당하고 부족한, 그러나 우리가 갖고 있고 소통하는 무한한 보물을 담는 질그릇들로서, (고린토 2서 4, 7 참조)

 

나는 언제나 제수이트의 황혼을 묵상하는 것을 좋아해 왔습니다. 제수이트가 삶의 끝에 가까워지고 있을 때 그가 저물어 가고 있을 때를 묵상하는 것을 좋아해 왔습니다. 그리고 언제나 생각이 나는 이 제수이트의 두 가지 모습. 한 가지 고전적인 모습은 중국을 바라보고 있는 성 프란치스코 하비에르(St Francis Xavier)의 모습. 예술은 그렇게 종종 이 죽음, 하비에르의 끝을 묘사해 왔습니다. Pemán의 아름다운 작품 안에서 그렇게 문학이 되었습니다. 마지막에 아무것도 없이 그저 주님 앞에서. 이것을 생각하는 것이 나에게 좋습니다. 다른 황혼, 다른 모습은 아루페 신부(Fr Arrupe)의 모습입니다. 난민 수용소에서 있었던 그의 마지막 대화 속에서, 그 난민 수용소에서 그는 우리에게 말했습니다. 그가 말하고는 했던 것은 “나는 마치 내 마지막 공연인 듯이 이렇게 말하겠습니다. 기도하십시오.” 기도, 예수님과의 일치. 이 말을 하면서 그는 로마로 가는 비행기를 탔고 도착하자 마자 그토록 오래 그리고 그토록 모범적인 그의 삶의 황혼으로 이끄는 뇌졸증이 일어났습니다. 두 개의 황혼, 두 가지 모습, 두 가지 모두를 바라보고 그것으로 돌아가는 것은 우리 모두에게 유익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 자신의 죽음이 그들의 죽음을 닮는 은총을 간청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형제님들, 당신 태중에 그리스도를 모시고 첫발을 내디딜 때 교회와 동행하시는 우리의 성모님께 돌아갑시다. 성모님께서 우리를 항상 도이시어 우리 삶과 우리 봉사의 중심에 그리스도와 그분의 교회를 두게 하소서. 성모님께서는 당신 아드님의 가장 완벽한 첫 제자가 되신 분께서는 우리를 도우시어 모든 상황에서 그분을 따르고 그분을 섬기기 위해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당신 자신의 것으로 삼으시도록 하게 하소서. 천사의 아룀에 깊은 겸손으로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루카 복음 1,38)라고 응답하신 성모님께서는 우리에게 맡겨진 보물 앞에서 우리 자신의 부당함을 우리가 부끄러워할 줄 알게 하소서. 그것이 또한 우리가 하느님 앞에 설 때에 겸손함을 느낄 수 있게 하게 소서. 그리고 우리가 우리 주 하느님의 더 큰 영광을 위하여 -ad maiorem Dei gloriam-을 위하여 겸손으로 모든 것을 하도록 우리에게 계속 가르쳐주는 성 이냐시오와 모든 제수이트 성인들의 아버지다운 전구가 우리의 여정에 동행하도록 하게 하소서.

 

           (번역 2021. 9. 2. 목요일 15:46)

 

* 이 강론 번역의 참고 서적 : 로욜라의 성 이냐시오 영신 수련(정한채 번역, 도서 출판 이냐시오 영성 연구소)

 

강론영어원문 -> https://www.vatican.va/content/francesco/en/homilies/2013/documents/papa-francesco_20130731_omelia-sant-ignazio.html

강론이탈리아어원문-> https://www.vatican.va/content/francesco/it/homilies/2013/documents/papa-francesco_20130731_omelia-sant-ignazio.html

 

 

<소리로 전하는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심쿵 미사 강론>

1. 마리아 사랑넷 https://m.mariasarang.net/bbs/bbs.asp?index=bbs_sermon_pope (->신앙생활->교황님 미사 강론)

2. 팟빵 http://www.podbbang.com/ch/1771273(->교황님의 심쿵 미사 강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