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의 새로운 사회 회칙 「Fratelli tutti」
프란치스코 교황께서 아씨시의 성 프란치스코 무덤 제대에서
새회칙 「Fratelli tutti」에 서명하셨습니다.
지난 4일 프란치스코 교황의 새 회칙 「모든 형제들」 전문이 공개되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사회 회칙”이라고 부르는 이번 새 회칙은 국적, 인종, 성별과 같은 정체성을 뛰어넘어 인류를 향한 “형제애”와 그 토대가 되는 “사회적 우애”를 강조하고 있다.
「모든 형제들」는 총 287항으로 구성되어, 246항으로 구성된 「찬미받으소서」에 비해서 긴 회칙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새 회칙 집필 가운데 벌어진 코로나19 팬데믹의 영향이 형제애의 절실함을 더욱 여실히 드러냈다고 평가했다.
서로 다른 모습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이룬 인류가 일치하기 위해서는 정치, 경제 분야의 자기중심적 태도가 극복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교황은 이기주의에서 비롯되는 불평등한 경제 체제, 초국적 기업, 신자유주의, 대중주의(포퓰리즘)적 태도를 지향하는 지도자들이 인류의 형제애를 가로막는 장애물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같은 무리에 속해 있는지 따지지 말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 곁에 머물라
프란치스코 교황은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 문헌 가운데 ‘멀리 있을 때나 함께 있을 때나 이웃을 사랑하는 사람은 행복하여라’라는 내용을 두고 “이런 간단한 말로써 성 프란치스코는 물리적인 거리와 무관하게, 어디에서 태어나 어디서 살고 있는지 관계없이 모든 사람을 알아보고, 가치를 인정하며, 사랑할 수 있게 해주는 열린 형제애의 핵심을 표현했다”(1항)고 설명했다.
“하나의 인류로서, 같은 운명을 타고난 여행자로서,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의 자녀들로서, 모두 형제로서 각자 자기 신앙과 신념의 풍성함으로, 자기 자신의 목소리로 꿈을 꾸자.”(8항)
프란치스코 교황은, 강도를 맞아 길거리에 쓰러져 있던 유대인을 구해준 착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는 오늘날 사회의 여러 차별과 학대에 의해 상처받는 이들과 같다고 강조했다.
“길을 가다보면 우리도 반드시 그렇게 다친 사람을 만나기 마련이다. 오늘날에는 그렇게 다친 사람들이 많다. 길가에서 도움을 청하는 이들을 포용할 것인가 배제할 것인가의 문제는 모든 경제, 사회, 정치, 종교계의 계획을 정의한다.”(69항)
교황은 “(비유에서) 모른 채 지나친 이들에게서 간과할 수 없는 사실은 이들이 종교인이었다는 것이다. 심지어 이들은 하느님의 제사를 돕는 이들이었다. 사제와 레위인이었기 때문이다.”라며 “하느님을 믿고 숭배한다고 해서 그분의 뜻에 따라 사는 것은 아님을 보여주는 상징인 셈이다. (…) 때로 하느님을 믿지 않는다고 말하는 이들이 믿는 사람들보다 하느님의 뜻을 더 잘 실천한다는 사실은 아이러니하다”(74항)고 지적했다.
서로를 돕지 않은 종교인과, 자신을 멸시하는 민족을 도운 사마리아인의 모습에서 우리가 서로의 정체성을 넘어선 인류로서의 정체성을 습득하여 이웃에게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예수는 이 비유를 들면서 다음과 같은 질문에 답한다. ‘누가 내 이웃인가?’ 예수 시대의 사회에서 ‘이웃’이라는 말은 일반적으로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 옆집 사람을 말했다. (…) 사마리아인은 당대 일부 유대인들에게 멸시의 대상이자 불결한 존재로 취급받았고, 도움을 받아야 할 이웃에 포함되지 않았다. 유대인이었던 예수께서는 이러한 사고방식을 완전히 바꾼 셈이다. 그분께서는 우리로 하여금 누가 우리 이웃인지를 자문할 것이 아니라 우리가 서로 가까이 지낼 것을, 즉 서로의 이웃이 되라고 권고하신 것이다.”(80-81항)
자기 권력 유지하려 논란만 양산하는 대중주의 지도자들
교황은 형제애를 가로막는 극단적 정치 지도자들에 관해서 강도 높게 비판했다. 이를 두고 미국 가톨릭 매체는 도날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자이로 볼소나로 브라질 대통령, 마태오 살비니 이탈리아 전 총리 등을 겨냥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오늘날 많은 국가에서 정치 체계를 이용해 분노를 일으키고, 상황을 악화시키며, 양극화하고 있다면서 “이 때 정치는 더 이상 공동선을 위한 건전한 토론이 아니라 즉각적 결과를 추구하는 마케팅 수단일 뿐이다. 이 저열한 비방 연극 가운데 토론은 끊임없는 논란과 반대의 상황을 만드는데 악용된다”(15항)고 비판했다.
교황은 또한 일부 극단적인 성향을 보이는 지도자들을 향해 “자신의 개인적 계획과 권력 유지를 위해 정치적으로 대중문화를 이용하여 이념적인 상징을 통해 사람들을 사로잡게 될 때 지도자의 활동은 불온한 대중주의로 변질된다”며 “때로 대중 일부의 가장 저급하고 이기주의적인 성향을 부추겨 인기를 얻으려는 자도 있다”(159항)고 강하게 질타했다.
“폐쇄적인 대중주의 집단은 ‘대중’이라는 단어를 왜곡한다. 실제로 이 단어가 말하는 것은 진짜 대중이 아니다. ‘대중’은 열려있다. 즉 살아있고, 역동적이며 미래가 있는 대중은 언제나 다른 존재를 통합하는 새로운 정반합에 열려있다”(160항)
교황은 익명성이 보장되는 비대면 소통을 하는 인터넷에서 “이상한 형태의 공격성, 욕설, 학대, 비방, 언어폭력이 창궐하고, 물리적 접촉에서라면 있을 수 없는 형태로 폭주한다”(44항)며 여러 정치 인사들의 혐오 발언 등에 대해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모든 사람의 존경을 잃게 될까 말하지 못했던 것들이 오늘날에는 심지어 일부 정치 인사에 의해 직설적으로 표현되고도 벌 받지 않고 있다”(45항)고 안타까워했다.
극소수 이익만 챙기는 신자유주의, ‘낙수효과’는 “형편없는 사상”
교황은 21세기 서로의 거리는 기술발전을 통해 어느 때보다도 가까워졌지만, 이는 공동체로서가 아닌 ‘노동력’으로 계산되는 존재로서 일원화된 것이라고 지적하며 그 결과로 발생하는 인간존엄 파괴와 불평등을 비판했다.
교황은, 지역 갈등과 공동선에 대한 무관심을 이용해 세계 경제가 단일한 문화를 강요하고 있다면서 “이러한 문화는 세상을 하나로 묶어주지만, 개인과 국가를 분열시킨다”(9항)고 경고했다.
그러면서 이러한 문화가 “자신을 보호할 능력이 있는 강자의 정체성을 우선시하면서 취약하고 빈곤한 지역의 정체성을 해체시켜 이들을 더욱 유약하고 의존적인 존재로 만들어버린다. 이처럼 ‘분열 통치’하려는 초국적 기업들에 의해 정치가 약화되고 있다”(12항)고 지적했다.
인간을 존엄한 존재가 아닌 ‘쓸모’로만 판단하는 사고는 “인건비 감축이 초래하는 심각한 결과를 고려하지 않은 채 이에 집착하는 태도”를 통해 드러나고 “그 직접적 결과인 ‘실업’은 빈곤의 국경을 넓혀간다”(20항)고 지적했다. 교황은 오늘날 전 세계 수많은 내전과 분쟁의 바탕에 경제적 이익의 추구가 있다고 지적했다.
“인종, 종교적인 이유로 인한 전쟁, 폭력, 박해와 수많은 인간존엄 침해 사례는 특히 경제적인 이익에 부합하느냐에 따라 달리 인식된다. 강자에게 부합할 때는 진실인 것이 그에게 득이 되지 않을 때는 더 이상 진실이 아니게 된다.”(25항)
프란치스코 교황은 “일부 사람들은 자유시장 경제가 모든 것을 보장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러한 통제 불능의 팬데믹이 초래한 예상치 못한 타격은 소수의 이윤보다는 모든 사람, 즉 인간을 떠올리게 만들었다”(33항)고 시장만능주의의 맹신을 지적했다.
이와 관련해 일부 국가가 코로나19 백신을 독점하려는 등의 세태를 두고 “보건 위기 이후 가장 최악의 반응은 이전보다 더 소비의 열기와 이기주의적인 자기 보존에 빠지는 것”이라며 “사회가 여전히 시장의 자유와 효율성이라는 기준에 지배된다면, 형제애는 그저 또 다른 낭만적인 표현에 지나지 않게 된다”(109항)고 경고했다.
교황은 재산의 ‘사회적 기능’을 강조하면서 오늘날 불평등이 모두가 살아가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재원마저 사유재산권이라는 미명하에 소수가 독점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교황은 “초대 그리스도교 때 많은 지식인들은 생산된 재화를 어떻게 함께 사용할 것인가를 숙고하면서 보편적인 입장을 전개했다. 이로 인해 어떤 사람이 존엄하게 사는데 필요한 것이 없다면 누군가가 그것을 빼앗아 갔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 교황 그레고리오1세의 말처럼 ‘우리가 가난한 이들에게 필요한 것을 준다고 말할 때, 이는 우리가 가진 것을 준다기보다는 그들의 것을 그들에게 돌려주는 것’이다. (…) 사유재산권은 생산된 재화의 보편적 사용이라는 원칙에서 파생된 부차적인 기본권일 뿐이다”(119-120항)
특히 교황은 모든 것을 시장질서에 내맡기는 신자유주의 질서를 강하게 질타했다.
“신자유주의적 신앙 교리를 강요해봐야, 시장만으로는 모든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신자유주의는 발생하는 모든 문제에 대해 언제나 같은 해법만을 제시하는 형편없는 반복적인 사상이다. 신자유주의는 ‘낙수효과’와 ‘낙숫물’처럼 마법과 같은 개념을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유일한 수단으로 사용해 자기 복제 할뿐이다.”(168항)
교황은 “소위 말하는 낙수효과는 불평등을 흡수하지도 않고, 사회관계를 위협하는 새로운 폭력의 근간이 된다”(168항)며 개별 국가보다 초국적 기업이 더 큰 지배력을 행사하는 오늘날 “여러 국가로 이뤄진 가족이라는 개념을 구체적으로 실현하기 위해 유엔의 개혁과 더불어 국제 경제, 재정 구조 개혁이 필요하다”(173항)고 강조했다.
말 뿐이 아니라, 실제로 모두 ‘동등한 인간’임을 인정해야
교황은 “전 세계 사회 체계는 여성이 남성과 정확히 같은 존엄과 권리를 가졌다는 사실을 명확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말로는 그렇다고 하지만 모든 결정과 현실은 집요하게 반대되는 메시지를 내보내고 있다.”(23항)면서 여성들이 체감하는 현실적 불평등을 지적했다.
이러한 권리 불평등이 발생하는 이유는 정치경제 체제가 실질적으로 여성, 이민자 등 시대의 약자들이 생명을 가진 같은 인간임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일부 대중주의 정치 체제와 더불어 자유시장 경제 체제 기반 하에서는 어떻게 해서든 이민자의 도래는 막아야 하는 일이 된다. (…) 이런 근거 없는 추상적인 주장 너머로 많은 생명이 파괴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37항)
오늘날 사회에서 “사람들은 이민자가 인간이 아니라고는 절대 말하지 않겠지만, 의사결정과 이들을 대하는 방식에서 다른 사람보다 쓸모없고 중요하지 않은, 인간답지 않는 존재로 간주함을 보여준다. 그리스도인이 자기 신앙보다 정치적 선택을 우선시하여 이러한 사고방식과 태도를 갖는 일은 용인할 수 없는 일이다”(39항)라고 경고했다.
교황은 인간의 근간이 되는 교육에서부터 국적, 인종, 종교 등과 관계없이 모든 인간이 평등하다는 것을 가르쳐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에 더해 이민자를 ‘소수민족’이나 ‘이방인’이 아닌 똑같은 국민으로 받아들이는 사고방식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교황은 “이민자에게 모든 사람이 사법권을 누릴 수 있는 그늘이 되어주는 권리와 의무의 평등에 기반한 ‘시민권’의 개념을 적용하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온전한 시민권’의 개념을 세워 ‘소수민족’이라는 용어의 차별적 사용을 거부해야 한다. 이러한 표현에는 고립과 열등감의 싹이 담겨있다. 즉, 적대감과 반목의 각축장이 되는 것”(131항)이라고 밝혔다.
이외에도 프란치스코 교황은 사형제 완전폐지(269항)와 ‘정당한 전쟁 거부’(258항)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우리가 생각하는 전쟁의 쓸모보다 위험이 더욱 클 것이라는 점에서 우리는 더 이상 전쟁을 해결책이라 생각할 수 없다. (…) 합리적인 기준을 옹호하며 ‘정당한 전쟁’이라는 것을 말하기는 어렵다. 더 이상 절대로 전쟁을 해서는 안 된다!”(258항)
한편, 이번 회칙의 이탈리아어 제목인 ‘Fratelli Tutti’(모든 형제들)과 관련해 영미권을 중심으로 이 제목이 여성을 배제하기 때문에 성차별적이라는 비판이 제기되면서 ‘모든 형제자매들’이라는 의미가 담긴 제목으로 번역해야 한다는 주장이 일기도 했다.
교황청 홍보부 편집국장은 이에 관해 “인류의 절반인 여성을 배제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며 제목은 남성과 여성을 모두 포함하는 것이라고 반론한 바 있다. 제목 자체가 성 프란치스코의 문헌에서 인용한 것이기에 그 형태를 유지해야 한다는 입장과 시대에 맞게 이를 고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이 대립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탈리아어에서 ‘fratelli’(단수형 fratello)는 성별이 남자인 형제를 가리키기도 하지만, 성별을 구분하지 않는 친구, 동료를 가리키기도 한다. 교황청은 결국 각국 주요 언어로 번역된 제목을 내놓지 않은 채 이탈리아어 제목 ‘프라텔리 뚜띠’(Fratelli Tutti)만을 표기했다.
이번 회칙이 발표되고 이슬람 수니파를 대표하는 인물이자 프란치스코 교황과 2019년 2월 종교간 분쟁 종식을 선언하는 문건에 함께 서명했던 알아즈하르의 대이맘 아흐메드 알타예브는 “교황의 메시지 ‘우리는 모두 형제자매’는 공동문건의 연장선이다”라고 가톨릭교회의 새 회칙 발표 소식을 환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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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애와 사회적 우애. 이는 모든 사람들과 기관들의 노력과 함께 보다 나은 세상, 보다 공정하고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 교황이 제시한 방향이다. 교황은 전쟁 금지와 무관심의 세계화를 다시 언급했다.
Isabella Piro / 번역 박수현
일상적인 관계나 사회생활, 정치 및 사회 제도 안에서 보다 공정하고 우애 넘치는 세상을 건설하고자 하는 이들에게 더 없이 위대한 이상은 무엇이며, 이를 구체적으로 실행할 수 있는 방법들은 무엇일까? 이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사회 회칙 「Fratelli tutti」가 대답하려는 질문이기도 하다. 교황은 이번 회칙을 “사회 회칙”(「Fratelli tutti」, 6항)으로 정의했다. 회칙의 제목은 아시시의 프란치스코 성인의 「권고들」(Ammonizioni)에 나온 표현을 인용한 것이다. 교황은 이번 회칙이 “모든 형제와 자매에게 (...) 복음의 향기(풍미)로 가득한 삶의 방식을 제안”(1항)하기 위함이라고 밝혔다.
교황은 프란치스코 성인이 “교리를 강요하기 위해 논쟁을 벌인 게 아니라 그저 하느님의 사랑을 전파”했다며 “형제적 사회라는 전망에 영감을 일으킨 아버지”(2-4항)라고 정의했다. 아울러 이번 회칙은 형제애 (fraternità)와 사회적 우애 (amicizia sociale)에 관한 보편적인 열망을 증진하는 걸 목표로 한다고 밝혔다. 교황은 인류 가족이라는 공통의 소속감에서 시작해 창조주의 자녀들인 우리가 모두 형제와 자매들이라며, 모두 같은 배를 탄 우리는 세계화되고 상호연결된 이 세계에서 오로지 함께할 때만 구원받을 수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러한 교황의 생각은 지난 2019년 2월 교황과 알아즈하르의 대이맘 아흐메드 알타예브와 공동으로 서명한 「세계 평화와 더불어 사는 삶을 위한 인간의 형제애」에 관한 공동 선언문에서 나온 것으로 (회칙에도) 여러 차례 인용됐다.
형제애는 (단순히) 말만이 아니라 (실천하는) 행동으로도 장려돼야 한다. “보다 나은 정치” 안에서 구체화된 행동들은 재정적 이익에 종속되는 게 아니라 공익을 위해 봉사하는 것으로, 모든 인간의 존엄성을 중심에 두고 모든 이에게 일자리를 보장할 수 있어야 하며 이로써 각자가 지닌 자신의 능력을 발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러한 정치는 포퓰리즘과는 거리가 멀다. 근본적인 인권이 공격받는 데 대한 해결책을 찾고, 기아와 인신매매를 완전히 제거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정치다. 아울러 교황은 평화를 증진함으로써 보다 공정한 세상에 다다를 수 있음을 강조했다. 평화란 단순히 전쟁의 부재만 뜻하는 게 아니라 모든 이가 참여하는 진정한 ‘장인 정신’을 요구한다.
진리와 연결된 평화와 화해는 “주도적”이어야 하며, 상호발전이라는 명목으로 대화를 통해 정의를 지향해야 한다. 여기서 “모든 권리를 부정”하는 전쟁에 대한 교황의 비난이 나오며, 이미 핵무기와 생화학 무기가 무고한 민간인들에게 엄청난 영향을 끼치고 있기 때문에 (전쟁을 문제 해결을 위한) 하나의 “정당한” 형태로 가정하는 것은 더 이상 생각할 수조차 없다고 말한다. 교황은 또한 “허용할 수 없는” 것으로 정의한 사형제에 강력한 거부를 표했다. 기억과 정의의 개념과 연결된 용서는 이번 회칙의 핵심 내용이다. 교황은 용서하는 것이란 잊어버리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또한 하느님의 선물인 자신의 존엄성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자기 권리의 옹호를 포기하면 안 된다고 덧붙였다. 새로운 회칙의 배경과 관련해 교황은 “이 회칙을 쓰던 중 예기치 않게 발생한” 코로나19 대유행을 언급했다. 하지만 세계적 보건 비상 사태는 “아무도 홀로 구원받지 못한다”는 사실과 우리 “모두 형제”가 된 “하나의 인류 가족으로서 꿈”을 꾸는 시대가 정말로 도래했다는 사실을 드러내는 역할을 했다(7-8항).
전지구적 문제는 “장벽의 문화”가 아닌 전지구적 행동이 필요합니다
간략한 서문과 함께 총 8장으로 구성된 이번 회칙은 교황이 설명한 바와 같이 형제애와 사회적 우애에 관한 교황의 많은 성찰을 모은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보다 넓은 맥락 안에서” 준비된 것이며, “전 세계의 많은 사람들과 단체들”이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보낸 “수많은 문서와 편지들”로 보완된 것이기도 하다(5항). 제1장 “폐쇄된 세상의 어둠”은 현시대의 수많은 왜곡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곧 △민주주의, 자유, 정의와 같은 개념의 조작과 변형 △사회와 역사에 대한 감각의 상실 △공동선에 대한 이기심과 무관심 △이익에 기반을 둔 시장 논리의 우위성과 ‘쓰고 버리는 문화’ △실업, 인종 차별, 빈곤 △권리의 불평등, 노예제, 인신매매, 여성에 대한 지배와 낙태 강요 및 장기매매와 같은 (인간 권리에 대한) 일탈 행위 등이다(10-24항). 교황은 이러한 것들을 가리켜 전지구적 행동을 요구하는 전지구적 문제들이라고 강조한다. 또한 공포와 외로움으로 길러진 범죄 조직의 확산을 선호하는 “장벽의 문화”에 대해서도 경고한다(27-28항). 더욱이 오늘날 대중매체가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주고 있는 윤리의 악화에 대해서도 언급한다(29항). 어떤 의미에서 이는, 자유란 마치 환상과 같으며 대화는 건설적이지 않는 자가당착(자기지시)적이고 고립된 가상의 세계를 만들어 내면서 타인에 대한 존중을 망가뜨리고 온갖 수치심을 없애기도 한다(42-50항).
사랑은 다리를 놓습니다... 착한 사마리아인의 모범
이번 회칙은 수많은 어두운 그림자와 관련해 희망의 선구자 ‘착한 사마리아인’의 빛나는 모범으로 응답한다. 제2장은 바로 이러한 “길 위의 낯선 사람(이방인)”을 다루고 있다. 교황은 우리가 고통에 등을 돌리고 약자와 취약한 자를 돌보는 데 “문맹”인 병든 사회에 살고 있지만(64-65항), 착한 사마리아인이 우리에게 보여준 것처럼 편견과 개인적 관심, 역사나 문화의 장벽을 넘어 다른 사람들의 이웃이 되도록 초대받았다고 강조한다(81항). 사실 우리 모두는 쓰러지거나 고통받는 사람들을 포옹하고 통합하며 도와주는 사회를 만드는 데 공동의 책임이 있다(77항). 사랑은 다리를 놓으며, 우리는 “사랑을 위해 창조된 이들” (88항) 이라고 교황은 힘주어 말한다. 특히 교황은 배제된 모든 이의 얼굴에서 그리스도를 알아보라고 그리스도인들에게 권고한다(85항). “보편적인 차원”(83항)을 따르는 사랑하는 역량의 원리는 제3장 “열린 세상의 구상과 창출”에서 다룬다. 이 장에서 교황은 우리에게 (각자가 가진) “존재의 성장”(88항)을 다른 사람 안에서 발견하기 위해 “자기 바깥으로” 나가야 한다고 권고하고 있다. 이를 위해서는, “보편적인 친교”(95항)로 향하게 만드는 사랑의 역동성에 따라 이웃에게 우리 마음을 열어야 한다. 회칙은 기본적으로 인간 삶의 영적 위상이 “언제나 첫 번째 자리를 차지하는” 사랑으로 정의된다며, 이것이 이기심과는 거리가 먼 삶, 곧 타인의 삶을 위해 최선을 다하도록 우리를 이끈다고 설명한다 (92-93항).
권리에는 국경이 없습니다. 국제 관계의 윤리가 필요합니다
형제적 사회는 “근본적 개인주의”라는 “바이러스”(105항)를 물리치고 모든 이가 최선을 다할 수 있도록 대화를 위해 교육을 장려하는 사회가 될 것이다. 이는 가정 보호와 “기본적이고 필수적인 교육 임무”에 대한 존중에서 시작한다(114항). 특히 이러한 사회를 실현하기 위해 두 가지 ‘도구’가 존재한다. 하나는 타인의 선을 구체적으로 바라는 자비(112항)이며, 다른 하나는 취약한 이들을 돌보는 연대(성)이다. 이러한 것들은 가난과 불평등과 투쟁하며, 이념이 아닌 인간을 섬김으로써 드러난다(115항). 존엄하게 살 권리는 그 누구에게도 거부될 수 있는 게 아니라고 교황은 재차 단언했다. 또한 권리에는 국경이 없기 때문에 어느 곳에서 태어나든 아무도 배제되면 안 된다고 재확인하고 있다(121항). 이러한 관점에서 교황은 또한 “국제 관계의 윤리”(126항)를 고려하라고 요구한다. 이는 모든 국가가 외국인에게 속하기 때문이며, 이러한 까닭에 한 나라의 재화가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과 다른 지역에서 온 사람들을 거부해선 안 된다고 밝힌다. 따라서 사유재산에 대한 천부적 권리는 창조된 지상 재화의 보편적 목적 원칙에 종속된다(120항). 회칙은 또한 외채 문제를 구체적으로 언급하고 있다. 외채를 상환해야 한다는 원칙은 침해하지 않으면서도, 최빈국의 성장과 생존은 훼손하지 말아야 한다는 소망을 내비치고 있다(126항).
이민들, 장기계획을 위한 ‘글로벌거버넌스’
이민에 대한 주제는 제2장의 일부와 제4장 전체에서 다루고 있다. 제4장은 “온 세상을 향한 열린 마음”이라는 주제로 전쟁, 박해, 자연재해, 부도덕한 인신매매 등을 이유로 태어난 곳에서 떠나야 했던 이들의 “찢어진 삶”(37항)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이주민들은 환대받고 보호받고 증진되고 통합돼야 한다. 교황은 출생지 국가에서 존엄하게 살 수 있는 구체적인 기회들을 만들어 불필요한 이주를 피해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동시에 다른 곳에서도 보다 나은 삶을 추구할 권리를 존중받아야 한다. 도착지(수용) 국가에서의 올바른 균형은 시민의 권리 보호와 이주민에 대한 환대 및 지원을 보장하는 가운데 생겨날 것이다(38-40항). 교황은 특히 “심각한 인도주의적 위기”를 피해 떠나온 사람들을 위해 몇 가지 “필수적인 답변”을 제시했다. 곧 △비자 발급의 증대 및 단순화 △인도주의적 통로의 개방 △거주, 보안 및 필수 서비스의 보장 △직업 및 교육의 기회 제공 △가족 구성원들이 다시 만날 수 있도록 장려하기 △미성년자 보호 △종교 자유 보장 및 사회적 통합 촉진 등이다. 아울러 교황은 사회에서 “소수자”(129-131항)라는 용어의 차별적 사용을 거부하면서 “온전한 시민권”이라는 개념을 확립하도록 초대했다. 회칙에 따르면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글로벌거버넌스, 곧 이주를 위한 국제 협력이다. 이는 무상의 원칙을 기반으로 모든 민족의 연대 발전이라는 이름으로 (이민 및 이주 문제라는) 단일 비상사태를 넘어(132항) 장기 계획을 실행하는 것이다. 이러한 방식으로 우리는 각 나라를 “인류 가족” (139-141항)으로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아울러 교황은 우리가 서로 다른 것은 모든 이를 위한 선물이자 풍요로움을 뜻하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각자의 다름이 서로의 성장 가능성을 나타내기 때문이다(133-135항). 건전한 문화는 자기 자신을 포기하지 않으면서 다른 사람들에게 마음을 열어 진정한 무엇을 내어줄 줄 아는 환대하는 문화다. 다면체처럼 전체는 각기 다른 개별 부분으로 이뤄져 있지만 각각의 가치는 존중된다고 교황은 덧붙였다(145-146항).
정치, 사랑의 가장 소중한 형태
제5장의 주제는 “보다 나은 정치”다. 정치는 사랑의 가장 소중한 형태 가운데 하나로 나타난다. 이는 정치가 공동선(180항)을 위해 봉사하고, 토론과 대화를 가능케 하는 열린 범주인 사람들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160항). 이는 어떤 의미에서 교황이 말하는 (진정한 의미의) 포퓰리즘인데, ‘민족(백성, 인민, 국민)’이라는 개념의 정당성을 무시하고 이를 이용하기 위해 합의를 유도하는 한편 인기에 영합하고자 이기심을 조장하는 ‘포퓰리즘’과는 대조된다(159항). 하지만 보다 나은 정치는 “사회 생활의 필수불가결한 차원”인 노동을 보호하고 모든 이가 자신의 능력을 개발할 기회를 갖도록 한다(162항). 교황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가장 큰 도움이 되는 것이란 단지 일시적인 구제책인 돈이 아니라 그들에게 일자리를 마련해줌으로써 각자가 노동을 통해 품위 있는 삶을 살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진정한 빈곤퇴치 정책은 단순히 빈곤층을 억제하거나 무해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연대성과 보조성의 관점에서 그들을 장려하는 것이다(187항). 더욱이 정치의 임무는 다음과 같은 사회적 배제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 기본적인 인권을 공격하는 모든 것에 대한 해결책을 찾는 것이다. 사회적 배제는 △장기와 인체 조직의 불법 매매, 무기 및 마약 밀매 △성 착취 △노예 노동 △테러리즘과 조직 범죄 등을 가리킨다. 교황은 “인간의 수치심의 원천”인 인신매매와 굶주림을 영구적으로 제거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아울러 식량은 “양도할 수 없는 권리”이기 때문에 굶주림은 “범죄”라고 설명한다(188-189항).
시장만으론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없습니다... 유엔 개혁 필요
교황은 우리가 필요로 하는 정치가 부패와 비효율, 악의적인 권력 남용 및 법률에 대한 존중 부족에 대항해 ‘아니오’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177항). 이어 “시장 자체로는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며, 인간의 존엄성을 중시하고 금융의 지배를 받지 않는 정치의 필요성을 역설한다. 금융 투기로 야기된 “대혼란”이 이를 방증한다(168항). 따라서 대중운동은 이러한 의미에서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대중운동은 진정한 “사회적 시인(詩人)”과 “도덕적 에너지의 급류”로서, 더 큰 조화를 위해 사회·정치·경제적 참여에 개입해야 한다. 교황은 이러한 방식으로 가난한 사람들을 “향한” 정책에서 (진정으로)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그리고 “그들을 위한” 정책으로 옮겨가는 것이 가능하다고 단언한다(169항). 회칙에서 제시된 또 다른 희망은 유엔의 개혁에 관한 것이다. 개별 국가의 힘을 무력화하는 경제적 차원의 우세함 앞에서, 실제로 유엔의 임무는 공동선, 빈곤의 퇴치 그리고 인권 보호를 위해 일하는 “국가들을 구성원으로 하는 가족” 개념에 실체를 부여하는 것이다. 회칙에 따르면 유엔은 “협상, 주선 및 중재”에 대해 끊임없이 힘의 법칙보다 법의 힘을 장려하는 동시에 가장 약한 국가도 더 잘 보호할 수 있는 다자간 합의를 장려해야 한다고 언급하고 있다(173-175항).
친절함의 기적
제6장 “대화와 사회적 우애”에서는 삶의 개념을 모든 이, 곧 세상의 변방에 있는 사람들과 원주민들을 포함한 모든 이의 “만남의 예술”로 표현하고 있다. “모든 사람에게서 무엇인가를 배울 수 있으며, 그 누구도 쓸모 없는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215항). 실제로 진정한 대화는 우리가 상대방의 관점과 정당한 이익 그리고 무엇보다도 인간 존엄성이라는 진리를 존중하게 해준다. 아울러 회칙은 상대주의가 해결책이 아니라는 점을 밝히고 있다. 왜냐하면 내재된 악을 금지하는 보편적인 원칙과 윤리적 규범이 없다면 법은 자의적인 강요가 되기 때문이다(206항). 이러한 관점에서 언론의 특별한 역할은 인간의 약점을 남용하거나 우리의 최악의 상황을 끄집어 내지 말아야 한다. 언론은 오히려 인류 가족에 대한 친밀감과 의미를 촉진하면서, 관대한 만남과 약자에 가까이 다가가도록 방향을 잡아줘야 한다(205항). 특히 주목해야 할 것은 우리가 회복해야 할 태도인 “친절한 기적”에 대한 교황의 언급이다. 왜냐하면 친절은 “어둠 속의 별”이자 현대에 만연한 “잔혹, 불안, 절박함으로부터의 해방”이기 때문이다. 친절한 사람은 건강한 공존을 이루고 분노로 무너진 다리 앞에서 새로운 길을 열어 줄 수 있기 때문이라고 교황은 설명한다(222-224항).
평화의 장인, 용서의 중요성
제7장 “새로운 만남의 길을 걷다”는 평화의 가치와 증진을 말한다. 교황은 평화가 진리와 정의 그리고 자비와 연관돼 있다고 강조한다. 평화는 복수의 욕망과는 거리가 먼 “주도성”을 지니며, 동시에 타인을 향한 봉사와 화해, 서로를 위한 상호발전을 추구하는 사회 건설을 목표로 한다고 설명한다(227-229항). 교황은 사회에 있는 모든 이가 “(마치) 집에 있는” 느낌을 받아야 한다고 언급한다. 이러한 까닭에, 평화는 모든 이를 포함하고 그 안에서 모두가 (전문적인) 제 역할을 하는 “(장인) 예술”과 같다. 평화의 임무는 중단되지 않으며 끝이 존재하지 않는 일이다. 따라서 모든 행동의 중심에 인간과 인간 존엄성 그리고 공동선을 두는 것이 필요하다(230-232항). 용서는 평화와 관련이 있다. 회칙은 우리 모두가 예외 없이 모든 이를 사랑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다만 억압자를 사랑하는 것은 그의 변화를 돕고 다른 이웃을 계속 억압하지 못하게 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설명한다. 아울러 불의에 고통받는 사람들은 하느님의 선물인 자신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권리를 강력하게 수호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241-242항). 아울러 용서는 처벌하지 않는 것을 뜻하는 게 아니라 정의와 기억을 의미한다. 왜냐하면 용서는 잊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악의 파괴적인 힘과 복수에 대한 열망을 포기하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 더불어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원폭과 쇼아(Shoah, 홀로코스트), 박해 및 인종학살 등 “공포”를 절대 잊지 말아야 한다고 언급한다. 교황은 우리를 마비시키지 않고 집단적 양심의 불꽃을 계속 살리기 위해서는 이러한 것들을 항상 기억해야 한다고 권고한다. 또한 용서와 형제애를 택한 사람들의 선을 기억하는 것도 그만큼 중요하다고 강조한다(246-252항).
인류의 실패인 전쟁, 두 번 다시는 없어야
제7장의 일부는 전쟁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교황은 전쟁이란 (단순히) “과거의 유령”이 아니라 “끊임없는 위협”이라고 말한다. 동시에 전쟁은 “모든 권리의 부정”이며, “정치와 인류의 실패”이고, 악의 “심연”과 “악의 세력에 대한 수치스러운 항복”이라고 강조한다. 아울러 핵과 생화학 무기가 수많은 무고한 민간인들에게 피해를 끼치는 가운데 우리는 과거처럼 “정당한 전쟁”(bellum iustum) 논리를 더 이상 생각할 수 없으며 “더 이상 전쟁은 안된다!”고 강력하게 규탄해야 한다. 온갖 분쟁이 상호연결돼 있기 때문에 실제로 현재 “지역적으로 치르고 있는 제3차 세계대전”[“산발적인 제3차 세계대전(una terza guerra mondiale a pezzi)”]을 경험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핵무기의 완전한 제거는 “윤리적이고 인도적인 의무”라고 회칙은 밝히고 있다. 교황은 오히려 군비에 투자하는 돈으로 기아 퇴치를 위한 세계 기금을 설립할 것을 제안한다(255-262항).
용납할 수 없는 사형제, 전세계적으로 폐지돼야
교황은 사형제에 관한 분명한 입장을 표명한다. “사형은 용납할 수 없으며 전세계적으로 폐지돼야 합니다.” “심지어 살인자도 개인의 존엄성을 잃지 않습니다. 하느님께서 그 보증이십니다.” 교황은 이에 관해 두 가지 권고를 언급한다. “처벌을 복수로 보지 마십시오. 오히려 치유와 범죄자 사회적응(사회통합) 과정의 일부로 바라봐야 합니다.” “수감자들의 인간 존엄성을 존중하면서 교도소의 상태를 개선하십시오. 종신형 역시 ‘숨겨진 사형제’입니다”(263-269항). 더불어 교황은 태어나지 않은 아기들과 가난한 이들, 장애인들, 노인들처럼 오늘날 “희생해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인류의 특정 부류에 속하는 이들”의 “생명의 거룩함”(283항)을 존중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기본적 인권인 종교의 자유 보장
제8장이자 마지막 장에서 교황은 “세상에서 형제애에 봉사하는 종교”를 언급한다. 폭력은 종교적 신념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왜곡에 근거한다. 따라서 테러 행위와 같은 “끔찍한” 행위는 종교에 의한 것이 아니라 종교 경전에 대한 잘못된 해석과 더불어 기아, 빈곤, 불의, 억압 등과 연계된 정치 때문이라고 밝히고 있다. 테러리즘은 세계 안보와 평화를 침해하는 국제 범죄이기 때문에 돈이나 무기 및 언론보도를 통해서도 지원해서는 안 되며, 그 자체로 비난받아야 마땅하다(282-283항). 동시에 교황은 종교 간 평화의 여정이 가능하다고 강조하며, 모든 믿는 이들에게 기본적인 인권인 종교의 자유를 보장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279항). 회칙은 특히 교회의 역할을 성찰하고 있다. 교회는 선교를 사적인 영역으로 제한하지 않음을 확인하며, 비록 교회가 사회의 변방에 머물지 않고 정치에 관여하지는 않더라도 정치적 존재의 차원은 포기하지 않는다고 명시하고 있다. 복음의 원칙에 따라 공동선에 대한 관심과 온전한 인간 발전에 대한 우려는 사실 인류에 관한 것이며, 더불어 인간에 관한 모든 것은 교회의 관심사라는 점을 밝힌다(276-278항). 마지막으로, 종교 지도자들이 평화를 구축하는 데 자신을 바치는 “진정한 중재자”로서의 역할을 상기하면서, 교황은 지난 2019년 2월 4일, 아부다비에서 알아즈하르의 대이맘 아흐메드 알타예브와 함께 서명한 「세계 평화와 더불어 사는 삶을 위한 인간의 형제애」에 관한 공동 선언문을 인용한다. 이 종교 간 대화의 이정표에서 교황은 ‘인간의 형제애’라는 이름으로, 대화를 우리의 방법으로, 공동협력을 우리의 행동으로, 상호이해를 방법론과 기준으로 채택해야 한다고 호소한다(285항).
복자 샤를 드 푸코 “보편적 형제”
이 회칙은 마틴 루터 킹과 데스몬드 투투, 마하트마 간디 그리고 무엇보다도 “보편적 형제”가 되기 위해 가장 버림받은 사람들과 동일시되는 게 무엇을 뜻하는지 모든 이의 귀감이 된 복자 샤를 드 푸코를 기억하며 마무리한다(286-287항). 회칙의 말미는 두 개의 기도가 자리잡고 있다. “형제의 정신”이 인간의 마음에 깃들 수 있도록 “창조주께” 바치는 기도와 “그리스도인의 교회일치 기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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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 프란치스코 성인의 무덤 제대서 새 회칙 「Fratelli tutti」 서명
프란치스코 교황은 10월 3일 오후 아시시에서 미사를 거행하고 자신의 세 번째 회칙을 인준했다. 또한 교황청 국무원 국무부가 문서 준비작업을 마친 것에 감사 인사를 전했다. 교황은 미사 거행에 앞서 스펠로의 관상수도원과 성녀 글라라의 최초 수도원인 글라라 관상수도원에 잠시 들렀다.
Debora Donnini / 번역 이정숙
이곳은 명상을 위한 작은 장소지만 매년 세계 모든 곳에서 수천 명의 사람들이 방문한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대성전 지하 성당에서 미사를 거행했고, 프란치스코 성인의 무덤 제대에서 자신의 세 번째 교황 회칙 「Fratelli tutti」에 서명했다. 이 새로운 회칙은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상처받은 인류에게 희망을 자극하고 또 회복하기 위한 필수가치인 형제애(fraternità)와 사회적 우애(amicizia sociale)에 관한 것이다. 10월 4일 반포될 교황 회칙 「Fratelli tutti」의 제목은 프란치스코 성인이 쓴 말씀에서 따왔다. 서명 직후 참가자들의 박수가 이어졌다.
교황청 국무원 국무부에 감사인사
교황은 (미사) 강론을 하지 않았다. 기도, 침묵, 소박함이 전부였던 이번 방문은 보건상황으로 인해 교황의 뜻에 따라 신자들의 참여 없이 진행됐다. 전례는 10월 4일 교회가 경축하는 프란치스코 성인 축일 전례로 거행됐다. 교황은 서명하기 전 회칙의 작성과 번역 작업을 한 교황청 국무원 국무부에 감사 인사를 전했다.
“저는 이제 교황 훈화들과 번역의 (작업) 책임을 맡은 교황청 국무부의 파올로 브라이다(Paolo Braida) 몬시뇰이 (프란치스코 성인의) 무덤 제대로 가져오는 회칙에 서명할 것입니다. 저는 오늘 모든 것을 총괄한 브라이다 몬시뇰이 이곳에 참석하여, 저에게 회칙을 가져오기를 원했습니다. 두 명의 번역자들도 몬시뇰과 함께 왔습니다. 안토니오(Antonio) 신부님은 포르투갈어 번역자입니다. 스페인어를 포르투갈어로 번역했습니다. 그리고 크루즈(Cruz) 신부님은 스페인 사람으로 스페인어 원문을 번역한 다른 번역본들을 검토했습니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회칙의) 작성과 번역 작업을 한 교황청 국무원 국무부 모두에게 제 감사 인사를 표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스펠로와 아시시의 관상 수녀들 방문
교황은 아시시로 가는 여정에서 스펠로의 발레글로리아 수도원에 들렀다. 프란치스코 성인의 도시(아시시)에 도착한 다음에는 글라라회 수도자들에게 인사를 하려고 글라라 성녀의 최초 수도원에서 잠시 머물렀다. 이어 교황은 1230년부터 프란치스코 성인의 유해를 보존하고 있는 대성전에 도착해 아시시의 프란치스코회 수도원(Sacro Convento) 관구 봉사자 마우로 감베티(Mauro Gambetti) 신부의 환영을 받았다. 성 프란치스코 대성전과 아시시의 산타 마리아 델리 안젤리 대성전 교황 대리 아고스티노 발리니(Agostino Vallini) 추기경, 아시시대교구장 도메니코 소렌티노(Domenico Sorrentino) 대주교와 함께 20여 명의 수도자들과 몇명의 수녀들이 미사에 참례했다. 교황이 아시시를 방문한 것은 이번이 네 번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