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님 말씀

2020년 6월 14일 주일[지극히 거룩하신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

Margaret K 2020. 6. 20. 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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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코 교황님의 미사 강론입니다.

http://w2.vatican.va/content/francesco/en/homilies/2020.index.html 

https://www.vaticannews.va/en.html

[독서와 복음 말씀] 제1독서 : 신명기 8,2-3.14ㄴ-16ㄱ

                           화답송 : 시편 147(146─147),12-13.14-15.19-20ㄱㄴ(◎ 12ㄱ)

                           제2독서 : 코린토 1서 10,16-17

                           복음 : 요한 복음 6,51-58

http://maria.catholic.or.kr/mi_pr/missa/missa.asp?menu=missa&missaid=11743&gomonth=2020-06-14&missatype=DA

 

지극히 거룩하신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    

프란치스코 교황 성하의 강론

2020년 6월 14일 주일

 

“너희를 인도하신 모든 길을 기억하여라.” (신명기 8,2). 오늘의 성경 말씀은모세의 명령으로 시작됩니다. 즉, 기억하여라! 그리고 바로 그 뒤에 이렇게 반복하여 말합니다. “주 너희 하느님을 잊지 않도록 하여라”(신명기 8,14). 성경은 우리가 하느님을 잘 잊는 우리의 망각을 극복하도록 우리에게 주어진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이것을 극복하는 것은 얼마나 중요합니까! 시편의 한 구절이 이렇게 가르쳐 줍니다. “저는 주님의 업적을 생각합니다. 예전의 당신 기적을 생각합니다”(시편 77, 11). 그러나 또한 저 모든 기적들. 주님께서 우리 자신의 삶 속에서 행해 오셨던 것입니다.

 

우리가 받은 좋은 것들을 기억하는 것이 꼭 필요합니다. 우리가 그것을 기억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 낯선 사람, 존재를 “지나가는 사람”입니다. 기억이 없다면 우리는 우리에게 양분을 주어 기르는 흙에서 우리 자신의 뿌리를 뽑아 내는 것이고 바람 속의 이파리들처럼 우리 자신이 휩쓸려 가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기억한다면 우리는 가장 강력한 유대 관계에 우리 자신을 새롭게 다시 묶습니다. 우리는 살아 있는 역사의 부분을 느끼고 한 백성의 살아 있는 체험을 느낍니다. 기억은 개인적인 어떤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를 하느님과 일치시키[고 다른 사람들과 일치시키는 통로입니다. 이것이 성경 안에서 주님에 대한 기억이 세대를 거쳐 전해져야 했던 이유입니다. 우리가 아름다운 구절에서 읽은 대로 선조들은 그들의 자손들에게 그 이야기를 해 주도록 명령 받습니다. “뒷날, 너희 아들이 너희에게, ‘주 우리 하느님께서 부모님께 명령하신 법령과 규정과 법규들이 왜 있습니까?’ 하고 물으면, 너희는 너희 아들에게 이렇게 말해 주어야 한다. ‘우리는 이집트에서 (…) 종이었다.(종의 역사 전체를 생각해 보십시오!) (…) 주님께서는 우리가 보는 앞에서 (…) 표징들과 기적들을 내리셨다(신명기 6,20-22) 당신은 당신의 아들에게 이 기억을 물려 줄 것입니다.

 

그러나 문제가 있습니다. 그 일련의 기억의 전달이 중단되면 어떻게 할까요? 그리고 우리가 그것을 또한 경험하지 않아 왔다면 어떻게 우리가 그저 들은 것을 기억할 수 있겠습니까? 하느님께서는 그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알고 계십니다, 그분께서는 우리의 기억이 얼마나 약한지 알고 계십니다, 그리고 그분께서는 놀라운 어떤 일을 해 오셨습니다. 그분께서 우리에게 기념 제사를 남겨 주셨습니다. 그분께서는 우리에게 단지 말씀만을 남겨 주시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들은 것을 잊기는 쉽기 때문입니다. 그분께서는 우리에게 그저 성경만을 남겨 주지 않으셨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읽은 것을 잊기는 쉽기 때문입니다. 그분께서는 우리에게 그저 표징들만을 남겨 주지 않으셨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우리가 본 것조차 잊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분께서는 우리에게 양식을 주셨습니다. 우리가 실제로 맛본 어떤 것을 잊기는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분께서는 당신이 정말로 현존하시고 살아계시고 참된, 당신 사랑의 그 모든 맛을 갖고 있는 빵을 우리에게 남겨 주셨습니다. 그분을 받아 모시면서 우리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분께서는 주님이시다. 그분께서 우리를 기억하신다!” 그것이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시는 이유입니다. “너희는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고린토 1서 11,24). 행하여라! 성체 성사는 단순히 한 추억의 행위가 아닙니다. 그것은 실제입니다. 주님의 파스카가 우리를 위해 다시 한번 만들어집니다. 미사 안에서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이 우리 앞에서 일어납니다.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 나를 기억하기 위해서 하나의 공동체로서 한 백성으로서 모여서 성체를 기념하여라. 우리는 성체 없이 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성체가 하느님의 기억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우리의 상처 입은 기억을 치유합니다.

 

성체는 먼저 우리의 고아가 된 기억을 낫게 하십니다. 우리는 심각한 고아의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성체는 고아가 된 기억을 치유합니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애정의 결핍과 그들에게 사랑을 주어야 하는 사람들이 그대신 그들의 마음을 고아로 만들어 버린 쓰디 쓴 실망으로 새겨진 기억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돌아가서 과거를 바꾸고 싶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하느님께서는 위대한 사랑 즉 당신 자신의 사랑을 우리의 기억 안에 놓아 두심으로 이 상처들을 낫게 하실 수 있습니다. 성체는 우리에게 아버지의 진실하신 사랑을 가져다 줍니다. 성체가 우리의 고아가 된 감각을 낫게 합니다. 그것이 예수님의 사랑을 줍니다. 그것이 무덤을 끝에서 시작으로 바꾸고 그리고 같은 방식으로 우리의 삶을 바꿀 수 있습니다. 그것이 우리의 마음을 성령님의 위로하시는 사랑으로 채웁니다. 그분께서는 우리를 결코 홀로 두지 않으시고 언제나 우리의 상처를 낫게 하십니다.

 

성체를 통해서 주님께서는 또한 우리의 부정적인 기억을 낫게 하십니다. 너무나 자주 우리의 마음에 스며드는 부정성. 주님께서는 이 부정적인 기억을 치유하십니다, 이것이 잘못되어 온 것들을 그리고 우리가 쓸모 없다는 슬픈 생각, 우리는 오로지 잘못만 하고 우리 자신이 바로 잘못이라는 슬픈 생각과 함께 우리를 버려 두는 것들을 표면으로 끌어 올립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그렇지 않다고 말씀해 주시려고 오십니다. 그분께서는 우리와 가까워지고 싶어하십니다. 우리가 그분을 받아 보실 때마다 그분께서는 우리에게 우리는 소중하다고, 우리는 그분께서 당신 잔치에 초대하신 손님이라고, 당신께서 함께 만찬을 들고 싶은 친구라고 알려 주십니다. 그리고 단지 그분께서 자비롭기 때문만이 아니라 그분께서 정말로 우리와 사랑에 빠져 있으시기 때문입니다. 그분께서 우리 그대로의 아름다움과 선함을 바라보시고 사랑하십니다. 주님께서는 악과 죄가 우리를 정의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계십니다. 그것들은 병이고 전염병입니다. 그리고 그분께서 성체로 그것들을 치유하시려고 오십니다. 성체는 우리의 부정적인 기억에 대한 항체를 갖고 있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우리는 슬픔에 면역력이 생깁니다. 우리는 언제나 우리의 실패들과 고민들과 집에서 직장에서의 문제들과 우리의 실현되지 못한 꿈들을 기억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들의 무게가 우리를 으스러뜨리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당신의 사랑으로 우리를 격려해 주시면서 훨씬 더 깊이 현존하시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성체의 힘입니다. 성체는 우리를 부정성이 아니라 하느님을 전하여 주는 사람, 기쁨을 가져다 주는 사람으로 변화시킵니다. 미사에 가는 우리는 이렇게 물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세상에 가져다 주는 것은 무엇일까? 우리의 슬픔과 비통함일까 아니면 주님의 기쁨일까? 우리가 계속 불평하고 비판하고 우리 자신에 대해서 후회스럽게 느끼면서 성체를 받아 모시는가? 이것은 어떤 것도 더 좋아지게 만들지 못합니다, 반면 주님의 기쁨은 삶을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성체는 우리의 닫혀 있는 기억을 치유합니다. 우리가 내면에 계속 갖고 있는 상처들은 단지 우리 자신에게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도 문제들을 만듭니다. 그것들은 우리를 두려워하고 의심하게 만듭니다. 우리는 닫혀 있는 것으로 시작해서 결국 냉소적이고 무관심하게 됩니다. 우리의 상처들은 우리를 냉담함과 오만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반응하도록 만듭니다. 우리가 이런 식으로 상황을 통제할 수 있다는 환상 속에서. 그러나 그것은 정말로 환상입니다. 왜냐하면 오로지 사랑만이 뿌리에서 두려움을 낫게 하고 우리를 가두는 자기 중심성에서 우리를 해방시키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예수님께서는 하시는 것입니다. 그분께서는 부드럽게 우리에게 다가오십니다. 무장해제시키는 성체의 소박함 안에서. 그분께서는 우리의 이기주의의 껍질을 부수어 열기 위해서 쪼개어진 빵으로 오십니다. 그분께서는 우리에게 오로지 우리 자신의 마음을 열어서만 우리의 마음이 우리의 내면적인 장벽으로부터 마음의 마비로부터 해방될 수 있다고 가르쳐 주시려고 당신 자신을 내어 주십니다.

 

주님께서는 빵의 소박함 안에서 당신 자신을 주시면서 또한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우리가 생각하지만 우리의 내면을 공허하게 만드는 무수한 환상을 쫓는 것에 우리의 인생을 허비하지 말라고 우리를 초대하십니다. 성체는 물질적인 것들에 대한 우리의 배고픔을 채워주고 봉사하고 싶은 우리의 열망에 불을 밝힙니다. 그것은 우리의 안락하고 게으른 삶의 방식으로부터 우리를 들어 올리고 성체는 우리가 먹여지기 위한 입 뿐만 아니라 다른 이들을 먹이려고 돕기 위해 쓰여지는 그분의 손이라는 것을 우리에게 일깨워 줍니다. 특히 양식과 존엄성에 굶주린 사람들, 일이 없는 사람들 그리고 고군분투하며 사는 사람들을 돌보는 것은 시급합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빵이 실질적인 것처럼 실질적인 방법으로 이 일을 해야 합니다. 진정한 연대의 유대 관계처럼 진정한 친교가 필요합니다. 성체 안에서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가까이 오십니다. 우리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외면하지 맙시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거룩한 미사의 우리 봉헌을 계속합시다. 우리의 기억을 낫게 하시는 기념 제사. 절대로 잊지 맙시다. 미사는 기억, 마음의 기억을 치유하는 기념 제사입니다. 미사는 교회와 우리의 삶 모두에서 제일 첫째여야 하는 보물입니다. 그리고 또한 성체 조배를 재발견합시다. 성체 조배가 우리 내면 안에서 미사의 작용을 지속시킵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많은 좋은 일을 해 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우리를 내면에서 치유하기 때문입니다. 특히 우리의 가난함이 너무나 큰 지금 그러합니다.

 

(최종 번역 날짜와 시간 2020. 6. 19. 22:58)

 

강론영어원문 -> http://w2.vatican.va/content/francesco/en/homilies/2020/documents/papa-francesco_20200614_omelia-corpusdomini.html

강론 미사동영상 -> http://w2.vatican.va/content/francesco/en/events/event.dir.html/content/vaticanevents/en/2020/6/14/messa-corpusdomini.html

 

 

<소리로 전하는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심쿵 미사 강론>

1. 마리아 사랑넷 https://www.mariasarang.net/ (->신앙생활->교황님 미사 강론)

2. 팟빵 http://www.podbbang.com/ch/1771273(->교황님의 심쿵 미사 강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