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 성녀 축일

3월11일 복자 요한 파브리아노

Margaret K 2018. 3. 9. 20:22

3월11일 복자 요한 파브리아노♬사순절psalmus  



축일:3월11일 
복자 요한 파브리아노 
Beato Giovanni Righi da Fabriano 
Bl. JOHN RIGHI of Fabriano

(Joannes de Fabriano; Johannes Baptista Righi)
1469 at Fabriano, Ancona, Italy
- 1539 of natural causes
Beatified:1903 (cultus approved)

그는 아주 겸손한 프란치스코회 사제이지만,
그의 엄격한 생활은 사막의 교부들을 능가할 정도였다.

그는 흔히 한주간 동안 꼬박 음식없이 지냈고, 공현주일부터 부활주일까지 단식재를 지켰다.
그러나 주일과 목요일만 제외하였다.
밤 기도가 끝난 후에도 그는 밤새도록 성당에 남아 혼자 기도하였다.
그는 키가 작고 또 얼굴이 파리하였어도 추위를 아랑곳하지 않았다.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간추린 역사

작은 형제회(프란치스코회)는 1209년 아씨시의 성 프란치스코(1182~1226)에 의해 창설되었다. 
성인은 부유한 상인의 아들로 태어나 자유분방하고 야심많은 청년기를 보내던 중 
일련의 계시와 나환자와의 만남을 통해 기도와 보속의 회개 생활을 시작하였다. 

성인의 모범에 감명을 받은 젊은이들이 그를 따르기 시작했고, 날이 갈수록 형제들의 수는 많아져
결국 공동생활의 필요성에 의하여 1209년(혹은 1210년) 교황 인노첸시오 3세로부터 간단한 회칙을 구두로 인준을 받았다.

그리고 다시 1223년 회칙을 재작성하여 교황 호노리오 3세로부터 대칙서로 인준 받게 되었다.
이것이 오늘 날에도 프란치스칸 생활의 기초가 되고 있는 작은 형제들의 회칙이다. 

성인은 ’제2의 그리스도’라고 할만큼 철저히 복음적 삶에 투신하였으며, 무엇보다도 가난과 겸손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발자취를 따르려고 하였다. 

그러기에 당시의 엄격하였던 여러 수도회들과는 달리 회의 명칭을 "작은 형제회"(Ordo Fratrum Minorum)라고 하였다.
그리고 1211년에는 관상 수녀회로서 프란치스코 제2회인 "클라라회"를,
1221년에는 평신도들을 위해 제3회인 "재속 프란치스코회"를 세워 많은 형제 자매들이 대가족을 이루게 되였다.

또한 성인은 철저히 겸손의 길을 걸었으며.
1224년 라베르나 산에서 깊은 관상과 기도 끝에 오상(五傷)까지 받으신 성인의 신심은 많은 이들을 복음적 생활에로 이끌어 왔다.
지금까지 약 800여 년에 달하는 프란치스코회의 역사를 통해서 본회는 수많은 성인 성녀들을 모시게 되었다.

한편 한국 진출은 1937년 9월, 캐나다 관구 소속의 두 형제가 입국하여 대전시 목동(현재의 수련소)에 자리잡고부터 시작되었다.
그후 일제 치하의 고초와 6.25 동란으로 인하여 폐쇄되었다가 
1955년에 다시 돌아와 파괴된 수도원을 재건하고 본격적인 한국에서의 프란치스칸 생활을 전개하였다. 
1969년에는 <한국 준관구>로 승격되고. 
1987년 12윌 10일, 한국 진출 50주년을 기념하여 층본부로부터 "한국 순교 성인 관구"로 인가받아 오늘날의 발전을 이루게 되었다.
(작은형제회홈에서 www.ofm.or.kr)

*아씨시의 성 프란치스코 축일:10월4일.인창동게시판1403번, 오상축일:9월17일.1369번 


      San Damiano Crucifi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