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2일 성마카리오(젊은)은수자.1월15일 성마카리오(맏이)은수자
성 마카리오(맏이) 은수자(축일:1월15일)
축일 : 1월 2일
성 마카리오(젊은) 은수자
St. MACARIUS the Younger
St. Macarius the Alexandria
Born :early 4th century at Alexandria, Egypt
Died :c.401
Patronage :confectioners, cooks, pastry chefs
알렉산드리아의 시민인 그는 과자장수를 하다가,
하느님께 봉사하려는 마음으로 꽃다운 나이에 세상을 멀리하고, 6년 동안 사막에서 고행과 관상으로 지냈다.
그의 첫 은수처는 테베이다. 그리고 373년에는 에집트 남부로 가서, 스케트와 니트리아 사막에 움막을 지었다.
그 당시의 은수자들은 각각 자기의 움막에서 독수생활을 하였다.
그는 사제로 서품되었고, 극도로 엄격한 규율을 지켰으며, 기적도 수없이 일어났다고 한다.
또 그는 마카리오(맏이)와 다른 수도자들과 함께 예루살렘의 아리아파 총주교인 루치오에 의하여
나일강의 한 섬으로 추방된 적도 있으나, 결국은 귀향이 허가되어 돌아왔다.
그는 니트리아에 있는 수도원을 위하여 회헌을 집필하였는데,
이중의 여러 규칙이 성 예로니모가 인용하고 자신의 회칙에 삽입하여 그 맥이 지금도 이어온다.(성바오로수도회홈에서)
*성 예로니모 축일:9월30일.인창동성당게시판1394번.
성 마카리오(맏이)은수자 (축일:1월15일)
옛날 아주 번화하던 이집트의 대 상업도시 알렉산드리아는 사업이나 생활의 방도를 구하기 위해 다른 나라에서 많은 사람들이 모여드는 곳이었다.
이곳에 330년경 과자 가게를 하며 살아가던 마리오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30세가 되었을 무렵(335년경?) 그리스도교를 알게 되어 열심히 연구하여 세례를 받고 나서,
하느님의 은총의 감미로움을 깨달아 장차 어떠한 일이 생긴다 하더라도 그것을 결코 잃어버리지 않을 결심으로
영혼의 위험을 피하기 위해 다른 사람들의 뒤를 따라 광야에 들어가서 기도와 고행과 노동의 생활을 하기 시작했다.
그가 처음 손수 만든 초가는 거의 몸 하나 두지도 못할 만큼 작고 좁은 것이었다.
그러나 자기의 엄한 고행 생활을 다른 이에게 알리는 것을 싫어하여 그는 넓고 밝은 초가를 만들어 방문자가 있으면 거기에서 만나보기도 했다.
마카리오는 매일 단식재를 지키고 7년동안 더운 음식물이라고는 입에 대지 않았다.
그리고 밤에는 바닥에 까는 것도 없이 맨바닥 그대로 누워 그것도 잠깐 눈을 붙일 뿐이엇다.
그는 결코 게으르지 않았다. 기도하던가 사람을 가르치는 일 외에는 반드시 수족을 움직여 자기 생활을 위해 혹은 타인을 위해 열심히 일을 했다.
가난하고 엄격한 생활 속에서도 그는 언제나 쾌활하고 친절하게 찾아오는 사람들을 극진히 대했다.
그는 자기의 고행을 숨기느라고 애썼지만 어느덧 그것은 세상에 퍼져 그의 덕을 사모하며 지도를 받고자 하는 사람들, 기도를 간청하는 사람들이 줄을 이었다.
그 중에는 천릿길도 무릅쓰고 그를 찾아어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는 모든 사람들에게 착한 마음으로 세상을 살아가길 권했다. 그로 인해 죄악의 생활에서 회개한 이가 얼마나 많았는지 모른다.
때로는 그에게 기도를 청하면 병자도 낫고 악한 버릇도 고쳐지곤 햇다.
그의 생활은 모든 사람들에게 좋은 귀감이 되었다. 그를 따라서 세속을 떠나 산속에 숨어 수도에 골몰하려는 청년들이 점차 증가했다.
그들은 마카리오 지도하에 수덕에 힘쓰며, 완덕에의 길로 나아가도록 정진했다.
마카리오는 그들을 더욱 잘 지도하고 또한 그들에게 매주일 미사 참여 의무를 이행케 하기 위해서는
사제가 되어야 한다는 교회 장상의 의견에 따라 겸손되이 순명하는 마음으로 신품 성사를 받았다.
그는 참으로 겸손했다. 그것은 다른 은수자 모두를 자기보다 훌륭한 사람으로 생각한 것만 보더라도 알 수 있을 것이다.
이에 대해서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다.
어느 수사가 아직 자신에게 불만을 품고 더욱 덕행을 닦기 위해 어느 날 수도원 원장을 찾아가서 그의 지도를 구했다.
그러나 마카리오에게는 어느 점으로 보든지 충고할 결점이 없었다.
그러므로 그는 "당신은 저의 지도를 받을 필요가 없이 덕이 높습니다"하고 그대로 돌려 보낼 수 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그는 완덕의 절정에 도달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처럼 더욱 다른 사람들의 권면을 받으려고 했으니 이 얼마나 위해한 겸손가였는가!
그 후에도 그는 더욱 분발하여 거룩한 자가 되려고 힘썼다. 그러나 그에게도 시련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여러 가지의 유혹도 있었지만, 하느님의 도우심으로 모두 이겨 나갔다.
어떤 때 그는 광야를 떠나 세속에 돌아가서 병자들의 간호 사업 같은 것에 헌신하는 것이 더 좋은일이 아닐까 하고 오랫동안 번민한 때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그리스도께 대한 사랑을 위해 계속 이 초가(草家)에 머물자’ 하고 스스로 용기를 내어 끝가지 그 결심을 변경시키지 않았다.
그의 제자 중에도 그와 같은 고민을 하고 있었던 이가 있었으나 마카리오는 그에게도 세속에 돌아가지 않도록 했다.
마카리오에 있어서 다른 시련은 신앙을 위한 박해였다.
즉 그 시대에는 아리우스파(派)의 이단인 널리 퍼져있었으나, 그는 많은 사람들을 권면하여 굳게 그리스도교의 신앙을 지키게 할 뿐 아니라,
배교자까지도 많이 회개시켰으므로 아리우스파 교도들은 그를 독사와 같이 미워하며 그를 멀고 먼 벽지(僻地)로 귀양을 보냈다.
그러나 그는 조금도 슬퍼하는 기색없이 그리스도의 사랑으로써 그 박해를 감수하고
도리어 그런 환경을 이용하여 벽지에 주님의 복음을 전한 결과 많은 개종자가 생겼다고 한다.
그러던 중에 그는 기회를 얻어 전에 살던 광야에 있는 초가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리고 전후 합하여 약 60년을 광야에서 지낸 후 394년?에 세상을 떠났다. 그때 그는 거의 95세의 고령이었다.(대구대교구홈에서)
축일:1월 15일
성 마카리오(맏이) 은수자
St.Macarius the Elder
St.MACARIUS of Egypt
San Macario il Grande Abate di Scete
Born: c.300 at Upper Egypt
Died: 390
에집트 출신인 그는 젊어서 가축을 돌보고 지냈으나,
하느님의 부르심을 인식하여 세속을 등지고 조그마한 움막에 혼자 살면서 매트를 만들며 기도생활에만 전념하였다.
그러한 그에게 어느 부인을 폭행했다는 누명이 씌어지자 길거리를 끌려나가 매를 맞는 등 온갖 수모를 당하였다.
이 모든 것을 끝까지 인내한 뒤에 혐의가 풀렸다.
이리하여 그는 30세 때에 스케트 사막으로 들어가 은수생활을 시작했고, 사제로 서품되었다.
그의 생활은 극히 엄격하였으니, 한 주일에 한번의 식사만 했고, 일부러 갈증을 느끼기 위해 물을 마시지도 않았다.
그는 항상 간단한 몇마디로 제자들을 가르쳤고, 거의 항상 침묵 속에서 지냈다 :
"기도할 때에 많은 말을 하지 말라. 다만, 주님, 제게 자비를 베푸시고, 인도해 주소서 하는 말만 마음으로 되풀이하여라."
한 때 그의 제자인 젊은 마카리오와 함께 그는 나일강의 어느 섬으로 추방된 적이 있지만, 결국은 돌아올 수 있었다.
그는 스케트 사막에세만 60년을 살다가 운명하였는데, 사막에 살은 최초의 은수자로 공경받는다.
♬1.Puer Natus Est Nobis-베네딕도수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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