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씨시 성 프란치스코의 신비체험 PDF file
오상선신부
관상기도로서의 묵주기도
- 요한 바오로 2세의 사도적 서한의 가르침 -
오상선(바오로) OFM
들어가면서
금년(2002년)은 교회사적으로 아주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개막된 지 40주년을 맞는 해이고, 한국 주교회의 설정 40주년이 되는 해이다. 가톨릭 교회가 온 세상과 인류를 위한 구원의 가시적 성사로 자신을 새롭게 제시한 지가 어언 40년이 되었다는 말이다. 한국 교회 또한 조직적 체계를 정식으로 갖추고 이 한국 땅의 복음화를 위해 투신을 한지도 그만한 세월이 흘렀다.
이 시점에서 우리는 우리 교회가 이러한 정체성을 어떻게 구현해 왔는지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보다 구체적으로 자문해 보아야 할 때이다. 사실 세계적 관점에서도 가톨릭교회가 세상 사람들에게 이 구원의 가시적 성사로서의 역할을 잘 드러내 주고 있다고 하기 힘들고, 우리 한국 사회에서도 정체성의 위기를 겪고 있다고 할 것이다. 세계 교회의 관점은 생략하고 한국 교회의 관점에서 이 위기를 단순하게나마 사회학적 수치로 분석해 본다면, 우리 한국 가톨릭교회는 현 시점이 역사상 가장 전성기를 누리는 때이고, 이는 다른 말로 더 이상 발전할 수 없는 위기에 봉착한 시점이라는 이야기가 된다.
이러한 위기의 때에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께서는 당신 재위 25주년을 시작하면서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도우심을 구하시면서 사도적 서한 <동정 마리아의 묵주기도>(2002.10.16)를 발표하셨다. 교황님은 2002년 11월부터 2003년 10월까지를 <묵주기도의 해>로 선포하시면서, 묵주기도를 바치는 것은 마리아와 함께 그리스도의 얼굴을 관상하는 것이라고 정의를 내린다. 이로써 교회 내외적으로 케케묵은 신심이라든가, 교회 일치 운동에 저해되는 신심이라는 비판을 일소시키면서 오늘날의 세계 평화와 가정을 위해 가장 훌륭한 기도가 될 수 있음을 가르친다. 그리고 이 묵주기도가 단순한 염경기도가 아니라 <복음의 요약>으로 그리스도를 묵상할 수 있는 가장 훌륭한 관상 기도임을 강조하면서 가톨릭 전례의 정점인 <성체성사>와 더불어 우리의 정체성에 충실할 수 있도록 도와줄 것임을 믿고 있다.
우리는 이 글에서 이 사도적 서한의 내용을 소개하고 묵주기도가 우리의 영적 성장에 기여하게 되도록 그 의미와 내용 그리고 구체적인 기도방법 등을 간략하게나마 정리해 보고자 한다.
제1장 마리아와 함께 그리스도를 관상하기
매일의 일상사와 고통 안에서 그리스도의 얼굴을 바라보고 그 신비를 인식하며, 부활하신 주님 안에서 계시된 그 거룩한 영광을 붙잡는 것은 모든 그리스도인들, 우리 각자의 임무이다. 그리스도의 얼굴을 관상한다는 것은 삼위일체적 삶의 신비를 받아들이는데 열리게 만들어 준다.
이 그리스도를 바라봄, 즉 관상의 가장 특출한 모델은 마리아이다. 왜냐하면 태중에서부터 그분을 보아왔기 때문이다. 그분을 낳으시면서 부드럽게 바라본 그 어머니로서의 눈(구유), 걱정스러워 하며 의아해하는 눈(성전에서 찾으심), 슬픔 가득한 눈(십자가상), 부활의 기쁨으로 충만한 눈(부활아침), 불타는 눈(성령강림) 등을 볼 수 있다.
마리아는 그리스도만 바라보고 사셨다. “이 모든 것을 마음에 새겨 간직하였다”(루가 2,19. 2,51). 예수에 대한 기억은 한시라도 그분을 떠난 적이 없었다. 이 기억을 회고하는 것이 바로 묵주기도이다. 성모님은 끊임없이 신자들에게 당신 아드님의 신비들을 보여주신다. 왜냐하면 이 신비들이 구원의 힘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묵주기도를 바치면서 크리스천 공동체는 마리아의 기억들과 마리아의 관상적 눈에 참여하게 된다.
묵주기도는 단순한 염경기도가 아니다. 완전히 관상적 기도이다. 이 관상적 차원이 없으면 묵주기도는 아무 의미가 없는 기도이다. 바오로 6세는 이렇게 이미 지적한 바가 있다: “관상없는 묵주기도는 영혼 없는 육체입니다. 그렇게 바치면 형식적인 기계적 반복이 될 위험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로부터 엄한 질책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너희는 기도할 때에 이방인들처럼 빈말을 되풀이하지 말아라. 그들은 말을 많이 해야만 하느님께서 들어 주시는 줄 안다’”(마태 6,7) 묵주기도의 염경적 성격 때문에 리듬이 필요는 하지만 중요한 것은 주님과 가장 가까이 계셨던 성모님의 눈으로 주님의 생애의 신비를 묵상하는 데 도움을 주기 위한 것이다.
마리아의 관상은 무엇보다도 기억하는 것이다. 기념한다는 것. “전례는 교회활동의 정점”(전례 10). 크리스천들은 공동기도에로 초대받았을 뿐만 아니라 성부께 비밀리에 홀로 기도하여야 한다. 사도는 “끊임없이 기도해야 한다”(1테살 5,17)고 가르치는데, 묵주기도는 이러한 점에서 “쉼없는 기도”의 전형이다. 그리스도와 교회의 행위인 전례가 탁월한 구원적 행위라면, 마리아와 더불어 그리스도를 관상하는 묵주기도 또한 구원적 관상이다.
그리스도는 최고의 스승이시다. 그분의 가르침을 배우는 것만이 아니라 그분을 배워야 한다는 의미이다. 마리아보다 이점에서 우리에게 더 잘 가르쳐 줄 수 있는 선생은 없다. 마리아와 하나가 되어 묵주기도의 장면들을 묵상하는 것은 그녀로부터 그리스도를 읽고, 그분의 비밀을 발견하며, 그분의 메시지를 이해하는 법을 배우는 수단이다. 우리가 주님의 생애의 신비를 하나하나 묵상할 때, 겸손되이 질문하고 마침내 신앙으로 순종하도록 우리를 초대한다. “주님의 종이오니, 그대로 제게 이루어지소서”(루가 1,38).
크리스천 영성은 그 제자들로 하여금 스승과 얼마나 비슷하게 되도록 한다는 데서 다른 영성과 구별된다. 세례를 통해 포도나무이신 그리스도의 가지가 되고, 그리스도 신비체의 지체가 된다. 이렇게 시작된 하나됨은 그리스도의 마음을 끊임없이 간직하게 됨으로써 더욱 성장하게 된다. “여러분은 그리스도 예수께서 지니셨던 마음을 여러분의 마음으로 간직하십시오.”(필립 2,5). 다시 말해 그리스도를 옷입는 것이다(로마 13,14; 갈라 3,27). 로사리오의 영적 여정은 마리아와 함께 그리스도의 얼굴을 끊임없이 바라보는 것으로 우리로 하여금 그리스도와의 친교에 있어 하나가 되도록 이끌어가 준다. 마리아는 그리스도의 어머니요 교회의 어머니로서 그리스도 신비체의 자녀들을 계속 낳아주고 있고 전구하심으로 마리아는 교회의 어머니성의 완벽한 이콘이 된다. 묵주기도에는 예수의 삶과 마리아의 삶이 잘 결합되어 나타나고 있다. 마리아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를 위해서만 사신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구하라 받을 것이다, 찾으라, 얻으리라, 두드리라, 열릴 것이다”고 초대하신다. 이 기도의 효과의 기본은 하느님의 선하심이지만 그리스도 자신의 중재와 우리를 위해 대신 간구해 주시는 성령의 도우심 덕분이다. 이 그리스도와 성령의 도우심을 유발시키는데 마리아의 모성적 중재가 있다. 예수님이 우리의 길이시라면, 마리아는 그 길을 우리에게 보여주시는 분이시다. 가나의 혼인잔치는 중요한 예이다. 묵주기도는 묵상인 동시에 청원이다. 하느님의 어머니께 끊임없이 전구를 간청하는 것은 그분의 모성적 전구가 당신 아드님을 움직여서 많은 은총의 선물들을 얻게 해주신다는 확신에서부터이다.
묵주기도는 선포와 지속적인 인식의 길이다. 그리스도의 신비가 크리스천 경험의 여러 차원에서 거듭 제시되고 있기 때문이다. 묵주기도를 공동으로 바치는 것은 의미있는 교리공부의 기회가 된다. 이런 방식으로 성모님은 그리스도를 계속 선포하시게 된다. 묵주기도의 역사는 교회가 이단의 어려움을 겪고 있을 때 탄생했음을 보여준다. 복음선포자의 무기이다.
제2장 그리스도의 신비들 - 그분 어머니의 신비들
묵주기도는 <복음의 요약>이다. 그런데 현재의 세 가지 신비에 대한 묵상은 아직 미완성된 복음의 요약이다. 환희의 신비가 그리스도의 탄생과 육화 그리고 유년시절에 대한 신비를 그리고 있다면, 고통의 신비는 예수님의 생애의 마지막 순간들을, 그리고 영광의 신비는 부활 승천 이후의 신비를 노래하고 있다. 따라서 예수님의 공생활 부분에 대한 묵상이 빠져 있다. 그래서 이 부분에 대한 묵상을 위해 <빛의 신비>를 추가할 것을 제안한다. 이 세례와 수난 사이의 그리스도의 공생활 동안의 신비들이 추가됨으로써 묵주기도는 그야말로 복음의 요약이라고 할 수 있게 된다.
따라서 이 <빛의 신비>는 환희의 신비 다음에 들어가야 그리스도의 전 생애에 대한 묵상이 이루어진다.
1) 예수께서 요르단 강에서 세례를 받으심을 묵상합시다.
세례를 통해 물에 잠기심으로 우리를 위해 무죄하신 이가 죄인이 되신다.(2고린 5,21 참조). 하늘이 열리고 성부께서는 나의 사랑하는 아들이라고 증언하신다(마태 3,17 병행). 그리고 성령께서 비둘기 형상으로 그분에게 내려오신다.
2) 예수께서 가나의 혼인 잔치 때에 당신을 드러내심을 묵상합시다.
그리스도께서 물을 포도주로 변화시키신다. 마리아의 전구로 제자들의 마음을 신앙에로 열리게 한다.
3) 예수께서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심을 묵상합시다.
예수님께서 하느님나라가 다가왔음을 선포하신다. 회개를 요청하신다. 겸손하게 신뢰심을 갖고 당신에게 찾아오는 이들에게 죄를 사하신다.- 화해의 성사를 통해 계속하신다.
4) 예수께서 거룩하게 변모하심을 묵상합시다.
빛의 신비의 절정은 타볼 산에서의 영광스러운 변모이다. “그의 말을 들어라”(루가 9,35)가 메시지이다. 즉, 부활의 기쁨을 누리기 위해 그리고 성령을 통한 변화된 삶을 살기 위해 그분과 함께 수난의 고뇌에 참여할 준비를 하라는 것이다.
5) 예수께서 성체성사를 제정하심을 묵상합시다.
그리스도는 당신 몸과 피를 음식으로 내어주신다. 이로써 당신의 인류에 대한 끝없는 사랑을 드러내신다. 당신 자신을 희생제물로 드림으로써 구원을 이루신다.
가나의 혼인잔치를 제외하고 다른 네 신비에서 마리아는 뒤에 숨어 계신다. 마리아는 예수님의 복음 선포 때 한두 번 옆에 계셨기는 하다(마르 3,31-5; 요한 2,12). 최후만찬과 성체성사 제정 시에 함께 계셨다는 언급은 없다. 어쨌든 가나의 혼인잔치는 여러 신비에서도 마리아는 뒤에서 숨은 역할을 했으리라는 짐작을 하게 한다. 마리아는 모든 시대의 교회에게 “그가 시키는 대로 하여라”(요한 2,5)는 권고를 준다.
이 다섯 신비는 그리스도의 인격 안에서 지금, 여기서 현존하게 된 하느님 나라의 계시인 것이다.
제3장 나에게 있어 사는 것은 그리스도이다.
<묵주기도를 바치는 방법>
1. 각 신비의 선포
장면을 연다. 우리의 마음과 정신을 그 때의 그 사건과 장면으로 인도하는 역할
2. 하느님의 말씀을 들음
하느님께서 말씀하시도록 우리의 마음을 여는 것
장엄 전례 시에는 짧은 해설까지 포함하면 좋을 듯
3. 침묵
들음과 묵상은 침묵으로 양육된다. 이 신비에 집중할 수 있도록 준비시킴
4. 주의기도
이렇게 말씀을 듣고 이제 신비에 집중하게 된 후에 우리의 마음을 성부께로 들어 높이는 것이 필요하다. 각 신비마다 예수께서는 우리를 성부께로 인도하신다.
5. 성모송 10번
주의 기도가 예수님의 기도라면, 성모송은 성모님의 기도이다.
성모송의 첫 번째 부분은 가브리엘 천사(“은총이 가득하신 마리아여, 기뻐하소서”)와 엘리사벳(“주님께서 함께 계시니 여인 중에 복되시며, 태중의 아들 예수님 또한 복되시나이다”)이 성모님에게 하시는 말씀이다. 이는 나자렛의 처녀를 통해 성취된 신비에 대한 흠숭적 관상이다. 이 말들은 하늘과 땅의 경탄을 말해주는 표현들이다. 하느님께서 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기뻐하셨듯이, 마리아 사건을 통해서도 당신의 경탄과 기쁨을 표현하신다. 우리는 10번의 성모송을 바치면서 하느님의 기쁨을 공유하는 것이다.
성모송의 무게 중심은 그 후반부와 결합되는 “예수”라는 이름이다. “태중의 아들 예수님 또한 복되시나이다.” 보통 급하게 바치다 보면 이 중심을 간과하기 쉽다. 그리스도의 신비와 결합되는 부분인데 말이다. 이는 예수의 이름과 그 신비를 강조하는 것이다. 때문에 어떤 데서는 예수라는 이름을 두꺼운 글자로 강조하기도 한다.
마리아의 예수님과의 관계 안에서 특전적인 위치 때문에 “천주의 성모 마리아”(Theotokos)를 부른다. <하느님의 어머니>라는 뜻이다. 모성적 전구- 우리 삶과 특히 죽음의 때-를 청한다.
6. 영광송
삼위일체의 신비에 참여하는 것이 크리스천 관상의 목표이다. 그리스도는 성령 안에서 우리를 성부께로 이끄시는 길이시기 때문이다. 우리의 이 여정 동안 우리는 끊임없이 삼위일체의 신비와 만나게 된다. 삼위일체께 영광을 돌려드리는 것이 관상의 최고점이다. 공적인 바침에 있어서는 노래로 부르는 것이 좋다.
각 단을 끝맺으면서 영광송을 노래하며 “우리가 여기에 머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루가 9,33)하는 마음을 표현해야 한다.
7. 짧은 마침기도
지방마다 관습이 다르다. 각 신비에 맞는 결실의 기도가 되면 좋겠다.
8. 시작과 마침
지방마다 다르다. 시편 70편으로 시작하는 곳도 있다. “하느님 저를 구하소서, 주님 어서 오사 저를 도우소서.” 사도신경으로 시작하기도. 교황의 지향대로 마침 - 묵주기도의 교회적 차원을 드러내 준다.
9. 시간 배정
매일 20단 바치면 가장 좋다. 순서는 환희의 신비, 빛의 신비, 고통의 신비, 영광의 신비 순으로 바쳐야 <복음의 요약>이 된다. 그러나 그렇지 못하다면 요일에 따른 각 신비의 봉헌을 바치되 토요일은 전통적인 성모신심의 날이기에 성모님의 신비가 가장 잘 드러나는 환희의 신비를 바치고, 빛의 신비는 전통적인 성체의 날인 목요일에 바치도록 제안한다. 따라서 요일 배정을 다음과 같이 하면 되겠다.
- 월요일, 토요일 - 환희의 신비(토요일은 전통적인 성모신심의 날)
- 화요일과 금요일 - 고통의 신비
- 수요일과 일요일 - 영광의 신비
- 목요일 - 빛의 신비(성체의 날)
마치면서
복되신 동정마리아의 묵주기도는 우리를 하느님께로 연결해 주는 달콤한 사슬이며, 평화를 위한 강력한 도구이다. 묵주기도는 그 특성상 평화를 위한 기도이며, 또한 가정을 위한 기도이다. 부모를 위한 기도이고 자녀들을 위한 기도이다. 함께 기도하는 가정은 함께 머물게 된다. 이 복음의 요약인 묵주기도에 대해 신뢰심을 갖고 다시 묵주를 들어 달라는 것이 교황님의 간절한 요청이다. 특히 성모님의 학교에서 그리스도의 얼굴을 관상하도록 특별한 방법으로 불리움 받은 수도자들에게 부탁하고, 모든 신자들에게 성서의 빛 안에서, 전례와 조화를 이루며, 우리의 일상 삶 가운데서 묵주기도의 가치를 재발견하기를 호소하고,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전구하심을 청한다.
영적인 위기를 겪고 있는 이 세상과 교회, 평화를 갈구하지만 아직도 요원하기만 한 세상과 가정, 이를 위해 교황님은 묵주를 다시 손에 잡으라고 하신다. 그리고 묵주를 그냥 염경기도, 형식화된 기도가 아니라 복음의 진수요 요약으로 마리아와 함께 그리스도의 모습을 관상하는 기도가 되도록 하라고 당부하신다. 영적인 위기와 세상과 가정의 평화를 구축하기 위한 해법은 어떻게 보면 아주 단순한 데서 찾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