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 와 닿은 문구

2017년

Margaret K 2017. 1. 30. 19:55




경제, 경영지 ‘오너 매거진’의 발행인 크리스 브로건은 하루에 한가지씩 불편한 일을 했다고 합니다. 

물건을 팔기 위해 인터넷에 글을 올리고, 편하지 않은 사람과 통화도 했습니다. 

이렇게 불편한 일을 하면서 그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의도적으로 편안함을 깨는 행동이 내 인생의 모든 것을 바꾸었다.”


인생은 폭풍우가 멈추기를 기다리는 것이 아닙니다

인생은 폭풍우 속에서 춤추는 법을 배우는 것입니다.


성공한 삶이란 하느님께서 나를 창조하신 바로 

그 유일무이한 모습을 실현하는 것이다(안셀름 그륀).


교육이란 알지 못하는 바를 알도록 가르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행동하지 않을 때 행동하도록 가르치는 것을 의미한다(마크 트웨인).


한 번도 실수를 해보지 않은 사람은 

한 번도 새로운 것을 시도한 적이 없는 사람이다(아인슈타인).


진정한 발견은 새로운 땅을 찾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눈으로 보는 것이다(프루스트).


지혜가 깊은 사람은 자기에게 무슨 이익이 있을까 해서, 

또는 이익이 있으므로 사랑하는 것이 아니다.

 사랑한다는 그 자체 속에 행복을 느낌으로써 사랑하는 것이다(파스칼).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은 변명은 ‘시간이 없어서’이다(토마스 에디슨).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은 일하는 사람, 

사랑하는 사람, 희망이 있는 사람이다(조지프 애디슨).


나는 행복에 이르는 길이 우리를 얽매는 ‘채움’이 아니라 

우리를 자유롭게 하는 ‘비움’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이하엘 코르트). 


스스로를 향해 너는 ‘이렇게’, ‘저렇다’ 판단의 잣대를 들이대지 마세요. 

그럴 때마다 당신이 얻는 것은 상처뿐입니다(파울로 코엘료). 


아프다는 것은 이겨내야 할 것이 아니라 지혜롭게 겪다, 보내야 하는 것이다(박연준).


역경은 당신에게 생각할 수 없는 것을 생각하게 할 용기를 준다(앤디 그로브). 


나는 살면서 단 하루도 일한 적이 없다. 모두 재미있는 놀이였을 뿐이다(토마스 에디슨).


 “Life is not about waiting for the storm to pass.

 Life is about learning to dance in the rain.


자신이 한 때 이곳에 살았음으로 해서 한 사람의 인생이라도 행복하게 만들었다면, 그는 성공한 사람이다(랠프 월드 에머슨). 


사랑은 지배하려 하는 것이 아니라 자유를 주는 것이다.- 에리히 프롬 -


열정이 없는 사람은 꼼짝하지 않고 바람을 기다리는 배와 같다(아르센 우세).


하늘은 아무런 행운도 없는 자를 태어나게 하지는 아니하며, 

땅은 아무런 쓸모도 없는 존재를 길러내지는 않는 것이다(명심보감).


삶이란 사랑하기 위해 주어진 얼마간의 자유시간이다(아베 피에르 신부).


어려울 때 우리는 가장 많이 성장한다는 것을 기억하라(조지 워싱턴).


쉬지 않고 글을 써야만 마음의 문을 열 수 있고,
자기를 발견할 수 있다.

- 중국 작가 위화 -


지금 당신이 무엇을 못 가졌는지가 아니라
당신이 가진 것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지를 생각하라.
– 어니스트 헤밍웨이 –


중국인은 '위기'를 두 글자로 씁니다. 첫 자는 위험의 의미이고 둘째는 기회의 의미입니다. 

위기 속에서는 위험을 경계해야 하지만 기회가 있음을 명심하십시오존 F. 케네디​)



두 개의 길을 놓고 어디로 가야할지 판단이 서지 않을 땐 더 많은 모험이 따르는 길을 택하라(윌리엄 슬림).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소중한 것은 보이거나 만져지지 않는다. 단지 가슴으로만 느낄 수 있다(헬렌켈러).




인생의 의미는 당신의 재능을 발견하는 것입니다. 인생의 목적은 재능을 나누는 것입니다(세익스피어).


인간의 눈은 그의 현재를 말하며, 입은 그가 앞으로 될 것을 말한다(존 골즈워드).


모든 사람은 경탄할만한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모든 것이 내가 하기 나름이다'라고 끊임없이 자신에게 말하는 법을 배우라

(앙드레 지드)..

누가 지혜로운가? 모든 사람으로부터 배우는 사람이다. 

누가 강한가? 자신의 욕망을 절제하는 사람이다. 

누가 부자인가? 자신의 몫에 만족하는 사람이다. 

누가 존경받을 만한가? 자신의 동료들을 존경하는 사람이다. 



위대한 인물에게는 목표가 있고,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소망이 있을 뿐이다(워싱턴 어빙).




인간을 타락으로 이끄는 악마는 자신을 싫어하는 마음이다(괴테).



거북이는 처음부터 토끼를 이기기 위해 그와 경주한 것이 아니었다. 더더욱 거북이는 평소 느린 것이 콤플렉스로 생각해 본적도 없었기에, 그에겐 패배라는 개념뿐만 아니라 승리는 더더욱 관심 밖의 영역이었다. 다만 그는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그저 최선을 다해 자신의 길만 나아갔기에 경쟁에서 자유로운 영혼이 되어 어찌 보면 그는 영원한 1등(Only one)이었을지 모르겠다. - 경포호수 피러한-


근심이 아직 오지도 않았는데 지금의 기쁨이 날아가 버리는구나.


 ‘어제 내린 비 때문에 오늘 옷을 적시지 말고내일 내릴 비 때문에 오늘 우산을 펴지 말라


 미국의 토크쇼 여왕 오프라 윈프리 그녀는 어린 시절에 가난, 인종차별, 성폭행 등을 통해 큰 아픔을 겪었습니다.

그러나 타임지 선정 3년 연속 21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로 뽑힐 정도로 어린 시절의 아픔에 영향을 받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했던 말 몇 가지 
“삶을 이끄는 것은 당신 자신이다.”

 “나는 실패를 믿지 않는다. 과정을 즐겼다면 그것은 실패가 아니다.”,

 “설사 과거가 불행했더라도 그것에 사로잡히지 말고 최선의 인생을 살아가세요.”



다른 사람들에게 잘 보이려 하는 것이 높아지려고 하는 것이고

이미 높아져 잘 보일 필요가 없는 사람은 낮아집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타인들의 가치를 알려주는 섬기는 사람이 되라고 부르셨습니다.

“누구든지 자신을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이다.”

-전삼용신부 복음 묵상 중에서


눈 덮인 길을 걸을 때면

발걸음을 함부로 하지 마십시오.

오늘 당신이 걸어가는 그 길이

뒷사람에게는 이정표가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踏雪野中去 不須胡亂行 今日我行跡 遂作後人程)



개인적으로 상담하는 것은 그냥 이야기를 듣는 것이 아니고 진심을 다해 듣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것을 위해 때론 나의 보기 싫은 내면도 들여다 보아야 한다. 그리고 그 아픔과 대면하고 다룰 수 있을 때 거기서 나 뿐만 아니라 나에게 이야기하는 사람도 변화는 시작된다고 믿는다. ‘사람을 잘 본다’고 표현하기 보단 ‘내 마음을 잘 본다’라고 늘 이야기 할 수 있길 바란다. <조탁현 카운슬러>


-인생은 ‘사랑의 학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하십시오. 


사랑은 만병통치약이고 사랑 결핍은 만병의 근원입니다


“사랑하라, 그리고 네가 하고 싶은 것을 하라(Dilige et fac quod vis)”



세상 사람은 다 걸어다니는 거울이에요. 

스스로 자신의 모습을 비춰보기란 어려운 일인데, 

상대라는 거울을 통해 내 모습을 돌아볼 수 있는 거지요(정복).


법정 스님은 자신 안에 꽃이 있어야 꽃의 아름다움을 볼 수 있다고 했습니다.

우리 안에 진실함이 있어야 진리를 알아볼 수 있는 것입니다.


선택에 대한 아름다운 시를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시는 어린이와 같은 순수한 마음이 있어야 쓸 수 있는 것입니다.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 나는 나에게

물어볼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 나는 나에게

사람들을 사랑했느냐고 물을 것입니다.

그때 가벼운 마음으로 말할 수 있도록

나는 지금 많은 사람들을 사랑하겠습니다.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 나는 나에게

열심히 살았느냐고 물을 것입니다.

그때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도록

나는 지금 맞이하고 있는 하루하루를 최선을 다하며 살겠습니다.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 나는 나에게

사람들에게 상처를 준 일이 없었냐고 물을 것입니다.

그때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도록

사람들에게 상처 주는 말과 행동을 하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 나는 나에게

삶이 아름다웠느냐고 물을 것입니다.

그때 기쁘게 대답할 수 있도록

내 삶의 날들을 기쁨으로 아름답게 가꾸어 가야겠습니다.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 나는 나에게

어떤 열매를 얼마만큼 맺었느냐고 물을 것입니다.

내 마음 밭에 좋은 생각의 씨를 뿌려

좋은 말과 좋은 행동의 열매를 부지런히 키워야 하겠습니다.”


내가 만나는 모든 사람은 어떤 점에서든 배울 수 있는 스승이다(랠프 왈드 에머슨).
배우려는 마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절대로 상대방이 틀렸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틀린 것이 아니라 다를 뿐이기 때문에 이 역시 배울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상상 속의 청중에 집중하지 마십시오.

심리학자 데이비드 엘킨드의 연구 중에 청소년기의 특징적인 현상으로 ‘상상 속의 청중’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자기의 행동을 언제나 다른 사람들이 지켜보고 있다고 생각하는 개념이지요. 예를 들어서, 13세의 남자 아이가 아무도 모르는 작은 실수를 했습니다. 그런데 이 아이는 자신이 한 실수를 두고 전교생이 쑤군거린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 생각이 계속해서 자신의 머리를 떠나지 않자 도저히 학교에 갈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일주일이나 결석을 하게 되지요. 또한 친구들이 자신을 보고서 평가할 것이라는 생각에 아침마다 지금 당장 무대에 올라가는 배우처럼 거울 앞에서 오랜 시간을 꾸미는 십대 소녀도 있습니다. 

이런 행동을 하는 것은 세상 사람들이 자기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본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단순히 청소년기의 특징적인 현상일 뿐일까요? 아닙니다. 이 시기를 거쳐 온 사람은 어느 정도 여전히 가지고 있을 수밖에 없는 현상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늘 다른 사람의 시선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이지요. 

이렇게 다른 사람의 시선에 자유롭지 못한 사람들이 과연 행복할 수 있을까요? 그럴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겸손에 대한 말씀을 자주 하셨고 또 스스로도 모범을 보여주셨습니다. 다른 사람의 시선에 신경을 쓴다는 것은 그만큼 인정받겠다는 마음이 강한 것이고, 그래서 겸손의 마음을 가지면 가질수록 다른 사람의 시선에서 벗어날 수가 있습니다. 그 결과 행복이 멀리에 있지 않음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의 시선보다 주님의 시선을 생각해보았으면 합니다. 인정받으려는 마음보다 인정하려는 마음을 가지면 어떨까요? 사랑받으려는 마음보다는 사랑하는 마음을 갖는다면 분명히 또 다른 기쁨을 얻게 될 것입니다.  
-조명언신부님 글 중에서-

주님께서는 모든 것은 하나로 만들 수 있는 힘이 있으셨지만 
서로 다른 다양성을 인정해 주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평화입니다

사람이 진정으로 겸손한지를 알아내는 방법은 바로 
다른 사람들을 끊임없이 관찰하고 
또 그 사람들이 하는 말에 귀를 기울이는가를 보면 된다고 합니다.

말을 듣지 않는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나는 맞고 너는 틀리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내가 기준이기 때문에 여기에 겸손함이란 존재하지 않게 됩니다.

눈물을 모르는 눈으로는 진리를 보지 못하며 
아픔을 겪지 않은 마음으로는 사람을 모른다.
(쇼펜하우어) 

당신은 왜 인생이 행복하기만 하고 전혀 힘들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행복할 때보다 힘들 때가 더 많은 것이 인생입니다. 
중요한 건 힘들 때도 자신의 인생입니다. 
힘들 때를 더 사랑해야 행복해집니다.

죽는 순간 우리는 우리가 얼마나 많은 일을 했는가가 아니라, 
그 일에 얼마나 많은 사랑을 쏟았는가에 따라 심판받게 된다고 합니다. 

사랑으로 해결할 수 없는 것들을 나열해 보십시오. 
당신은 아무것도 쓰지 못한 텅 빈 공간만을 발견할 것입니다
(앨런 코헨)

욥이 하느님 앞에서 정당함을 주장할 때 
자신이 어둠이고 그분만이 빛이심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주님을 만나면 그분의 말씀만이 진리이고 빛임을 더 절실하게 깨닫게 됩니다. 
그런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들만 주님께서는 친히 당신 자신의 본 모습을 보여주십니다. 
배가 등대의 불빛을 보았다면 그곳을 향하지 않을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는 참 빛을 본 사람들입니까? 그렇다면 그분의 말씀을 잘 따를 것이고, 십자가의 길로 가고 있을 것입니다. 십자가의 길은 나를 죽이고 이웃을 그 생명으로 살리는 삶입니다.
주님의 거룩한 변모 축일에-전삼용신부-


천상병 시인의 귀천이란 시중에서,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왔더라고 말하리라

존 헨리 뉴먼의 기도문(성 마더 데레사 수녀님께서 좋아하셨던 기도문)

사랑하는 주님,

제가 가는 곳마다 당신 향기를 퍼뜨리도록 도와주소서. 

제 영혼에 당신 영과 생명이 흘러넘치게 하소서. 

저의 삶 전부가 오직 당신의 찬란한 빛이 되도록 저의 온 존재에 속속들이 스며드소서. 

저를 통해 빛을 비추시고 저를 만나는 이들은 누구나 제 영혼 안에서 당신 현존을 느끼도록 제 안에 머무소서. 

오 주님, 

그들이 눈을 들어볼 때 더 이상 제가 아니라 오로지 당신만을 보게 하소서. 

저와 함께 머무시면 저는 당신처럼 환해지리다. 

저는 다른 이들에게 빛이 될 만큼 환해지리다. 

주님, 

그 빛은 오로지 당신한테서 나오며 제 빛은 조금도 없나이다. 

저를 통해 다른 이들에게 빛을 주시는 분은 당신입니다. 

당신께서 저를 둘러싼 이들에게 빛을 주심으로써 가장 큰 사명을 주시는 것처럼 당신을 찬미하게 하소서. 

설교하지 않고 당신을 전하게 하소서. 

말이 아니라 모범으로, 전염시키는 힘으로, 제가 하는 일에 공감하는 영향력으로, 당신을 향한 제 사랑의 명백한 충만함으로 

당신을 보여주게 하소서.  

8/4/2017

삶이 끝날 때, 우리는 사랑으로 심판받게 될 것입니다(십자가의 성 요한).


 은총을 받고 못 받고는, 바로 그것을 은총으로 받아들이는 우리 마음가짐에 달린 것입니다. 



자기를 만드신 분과 다투는 자

-전삼용신부-

 

25살 때 하느님께서 저에게 사제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뜻을 비치셨습니다.

하느님의 부르심을 의심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분의 뜻에 동의할 수 없었습니다.

 

불러주시려면 빨리 불러주시지 대학 다니느라고 많은 돈과 시간을 소비했고

결혼도 하고 싶은데 사제가 되라니 거부감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기도드렸습니다.

 

“하느님,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제가 하나 사제가 되는 것보다 제가 결혼해서 자녀를 많이 낳아서

사제와 수도자가 더 많이 생기는 것이 당신께 더 이익이지 않습니까?”

 

지금 생각하면 말도 안 되는 것이었지만 당시는 제가

하느님의 생각을 바꿀 수 있을 것이라 여겼던 것 같습니다.

 

우리는 살아가다보면 이렇게 자신의 처지를 알지 못하고

하느님께 조언을 드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느님 저를 더 잘 살게 해 주셔야 제가 봉헌을 더 해 드릴 게 아닙니까?

하느님 저보다는 다른 능력 있는 사람이 봉사하는 것이 더 좋지 않습니까?

 

우리 남편이 잘 돼야 제가 봉사를 더 열심히 할 것 아니겠습니까?

내가 이렇게 희생과 봉사를 했으면 더 낫게 대우해 주셔야 하는 거 아닙니까?

우리를 이렇게 대해서는 안 됩니다.’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말합니다.

 

“아, 인간이여! 하느님께 말대답을 하는 그대는 정녕 누구인가?

작품이 제작자에게 ‘나를 왜 이렇게 만들었소?’ 하고 말할 수 있습니까?”(로마 9,20)

 

그렇습니다.

내가 주님께 ‘이래야 한다, 저래야 한다.’라고 말하는 것은

그분을 주님으로가 아니라 종으로 생각하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자신의 처지가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인 것입니다.


바오로는 이사야서를 인용하며 이렇게 말합니다.

 

“누가 주님의 생각을 안 적이 있습니까?

아니면 누가 그분의 조언자가 된 적이 있습니까?

아니면 누가 그분께 무엇을 드린 적이 있어 그분의 보답을 받을 일이 있겠습니까?”

(로마 11,34-35)


그렇습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무언가 보답해 주어야 한다고 착각하지 말아야합니다.

발에 밟히는 진흙으로 좋은 그릇을 만들어 주었으면 감사해야 할 일이지

자신들에게 더 무언가를 해 주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마지막 날엔 하느님께 많은 보상을 기대하고 있다가 꼴찌가 되는 이들이 많을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자신에게 무언가 더 해 주어야 한다고 믿는 이들은

하늘 나라에서 꼴찌 자리를 차지하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께 부자 젊은이가 찾아왔습니다.

예수님은 그에게 재산을 모두 가난한 사람에게 팔고 당신을 따를 것을 권하십니다.

그러나 그 청년은 예수님의 말씀을 따를 수 없었습니다.

 

그때 그분의 제자들이 “보시다시피 저희는 모든 것을 버리고 스승님을 따랐습니다.

그러니 저희는 무엇을 받겠습니까?”라고 묻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백배의 보상도 약속하시지만, 이런 비유를 들어주시며

첫째가 꼴찌가 되고 꼴찌가 첫째가 되는 이들이 많을 것이라고 하십니다.

 

그 비유란 바로 ‘선한 포도밭 주인의 비유’입니다.

포도밭 주인이 일꾼들을 사서 쓰려고 아침에 집을 나섰습니다.

그래서 한 데나리온으로 약속하고 일꾼들을 포도밭으로 보냈습니다.

 

아홉시에 나가보니 아직도 일거리를 찾지 못한 사람들이 있어

그들도 자신의 밭에 가서 일을 하라고 합니다.

 

열두 시, 오후 세시, 오수 다섯 시쯤에도 나가서 그렇게 합니다.

일을 다 마치고 한 시간 일한 사람부터 일당을 한 데나리온씩 줍니다.

 

가장 일찍부터 나와 일을 많이 한 이들은 자신들은 조금 더 주겠거니 생각했지만

한 시간밖에 일을 하지 않은 사람들과 똑같이 한 데나리온밖에 주지 않습니다.

이에 불만이 생긴 그들은 투덜거립니다.

그때 주인이 이렇게 말합니다.

 

“당신 품삯이나 받아서 돌아가시오.

나는 맨 나중에 온 이 사람에게도 당신에게처럼 품삯을 주고 싶소.

내 것을 가지고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없다는 말이오?”

 

‘이처럼 꼴찌가 첫째 되고 첫째가 꼴찌가 될 것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결국 꼴찌가 되는 이들은 누구이겠습니까?

하느님의 섭리에 불만을 갖는 이들인 것입니다.

또 내가 무슨 봉사를 한다고 해서 그것에 대한 당연한 보상이 주어져야 한다고 믿는 이들입니다.

일을 시켜주면 감사해야 하는데 그것에 합당하게 대해 달라고 강요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들은 일을 하더라도 칭찬을 받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자신들이 주인이나 된 양 주인의 생각에 토를 달았기 때문입니다.

 

아무 조건 없이 순종할 수 있는 사람이 하느님 나라에서는 가장 큰 사람인 것입니다.

봉사를 하면서도 결코 내가 하는 것에 대해 보상을 바라지 맙시다.


그저 할 일을 하였을 뿐이라고 고백합시다.

 

하느님께서 나에게 무언가를 해 주어야 할 필요는 없으신 분이십니다.

나는 그저 그분 손에 있는 진흙에 불과한 것입니다. 

 

7/31/17

-교황님은 죽음을 어떻게 준비하나요?-

“저는 단순히 묵상을 통해 준비합니다. 저는 항상 반복적으로 마지막에 가까워지고 있음을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를 위해 준비하고, 특히 침착한 태도를 유지하려고 노력합니다. 중요한 것은 제가 죽음을 표상하는 것이 아니라 삶 전체가 그분과의 만남을 향해 나아간다는 것을 제 스스로 의식하며 사는 것입니다.”



자신의 마음을 읽는 법을 알 때, 다른 사람의 마음에 있는 지혜를 얻을 것이다(드니 디드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