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생각

미수(米壽)의 88 살의 현역… 김동길 박사

Margaret K 2016. 1. 19. 20:41


미수(米壽)의 88 살의 현역… 김동길 박사

"법정서 15년 선고받자 다들 항소하라 했지만'몇 년 깎아달라'는 항소를 자존심 때문에 포기했다" "나 스스로 반성을 한다 '실력보다 높이 평가받다'고좀 더 정직하게 살았으면 내가 좀 더 떳떳할 텐데" 얼마 전 김동길 박사가 미수(米壽·88세)를 맞았다.

생일날에도 그는 자신의 인터넷
 홈페이지(프리덤 워치)에 글을 올렸다.
'아무도 부럽지 않다'는 제목으로 자신의 삶을 돌아보면서, '적화통일을 꿈꾸는 정신박약아들은 나를 죽이고 싶어 하겠지만 그놈들에게 맞아 죽으면 요를 깔고 누워서 앓다 죽는 것보다 나에게는 큰 영광이 될 것입니다'

라는 결의도 적어놓았다

 

김동길 박사는죽는 시간까지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주장을 하며 
살 것이라고 말했다. 
이 글은 그가 인터넷 홈페이지에 올린 2711번째 글이다.인터넷 글쓰기는 2008년 이명박 대통령에게 '훈수'하기 위해 시작했다. 하지만MB 측에서 반응이 없었다. 그는 '이제 당신한테 안 쓰고 그냥 쓴다'며 지금껏 써오고 있다."청계천 복원·서울 버스노선 개편 등을 보면서 건설업자이지만 큰 기대를 걸었는데, 막상 대통령이 되니 아닌 거요.

그이(이명박)가 자유민주주의의 큰 깃발을 들고 나왔으면…."

어느새 그는 해방공간 정국(政局)과 프랑스혁명 등을 예로 들며 
자유민주주의에 대해 강연하고 있었다. 이렇게 인터뷰가 시작됐다. 그는 나비넥타이를 맨 재킷 차림에 단추를 여미고 있었다. 거실 겸 서재는 책들과 다양한

잡동사니로 꽉 차 있었다. 오래된 형광등의 불빛이 깜빡깜빡 흔들렸다.

"1947
년부터 줄곧 살았던 집입니다. 식민지 시절 영단주택

(일종의 국민주택)이었는데 1970년대에 2층 집으로 개조한 거죠.

원래 아버님이 누님(김옥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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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의로 사준 건데, 내가 미국 유학 가 있는 동안 누님이 내 명의로 바꾸어놓았어요. 그이가 독특해요. 아버님이 내게 물려준 땅은 결혼한 여동생에게 주라고 했어요. 그 말에 나도 여부가 없었지요. 그 땅에는 여동생이 집 짓고 살고 있어요."

누님은 동생(김동길)을 어떻게 봤습니까?
"
존중했지요. 이 집에서 결혼 안 한 남매 둘이서 같이 살았어요."
연애는 하면서 결혼을 안 했는데, 지금에 와서는 어떻습니까? 
"
우리 어머니도 대단했어요. 내가 독자(獨子)라서 후손을 봐야 하는데,

어머니가 '네 인생은 네가 알아서 해라'고 했어요. 그래서 자유인(自由人)이 될 수 있었지요. 결혼했다면 가족 걱정 하느라 이런 삶을 살 수 없었을 거요. 혹시라도 요다음에 태어나도 이렇게 살 겁니다."

박사님은 평생 가만히 계시지 못하는 분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죽는 시간까지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주장을 하며 살 겁니다. 
싸우면 싸우고 감옥에 가면 감옥에 가고. 늙고 병들어서 요를 깔고 앓다 죽는 거보다 나아요."

발언하는 것에 대해 겁이 없다고 해야 할까요. 박정희 정권 시절에 '내가 대통령이 된다면 부모도 섬기지도 않던 
놈들이 청와대에 가서 아부하며 각하 각하 하는 것들을 모두 잡아다가 서해의 무인도에 보내 아첨도라 하겠다'라는 글도 썼지요?

"
홍사용(洪思容) 시인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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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왕이로소이다'고 썼는데, '내가 대통령이 된다면'이라는 말도 못 합니까. 그 칼럼을 동아일보에 보냈는데 그쪽에서 못 실었어요.

나중에 책에 끼워넣었는데 금서(禁書)가 됐어요. 몇 번 남산(중앙정보부)에 붙잡혀간 적 있지만 그런 건 별거 아니고…. 유신헌법(1972)이 만들어지면서 여기에 반대할 자유가 없다는 거요. 계엄포고령과 긴급조치가 나왔어요. 내가 민주주의를 배웠는데 가만있겠어요. 겁 없이 말하는 거요. 그걸로 감옥을 산 게1974년이었어요."

당시 '민청학련 사건'의 배후 지원 혐의로 15년을 구형받았지요?
"
배후는 무슨 배후요, 정권에서 다 조작한 거지. 검찰에서 구형한 
15년을 법정에서 그대로 선고했어요.다들 항소하라 했지만, 항소라는 게 '몇 년 깎아달라'는 거 아닙니까. 자존심 때문에 포기했어요. 내가 무엇으로 싸우느냐, 정신력으로 맨주먹으로 싸우는 겁니다.15년 썩는 거 겁 안 났어요. 오랜 세월 버티려면 잘 먹어야겠다 싶어 수감 첫날부터 콩밥과 시래깃국을 잘 먹었어요."

김동길 박사(왼쪽)

그 사건에 대한 국내외 여론이 악화되자 10개월 만에 형집행정지로 석방됐지요?"글쎄 나가라고 하더구먼요. 출감한 지 얼마 안 돼 박정희 정권에 몹시 비판적인 프레이저 미 하원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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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방한해 미 대사관에서 리셉션이 있었어요. 프레이저 의원이 '미국이 어떻게 하면 한국 민주화를 돕겠는가?'고 묻자, 야당 정치인들이 '스팽크 힘(spank him·박정희 엉덩이를 걷어 차 달라)'이라고 답했어요. 내 차례가 됐을 때 '미국이 한국 민주화에 도울 게 없다. 민주화는 우리가 한다. 매도 우리가 맞고 감옥에도 가고 해야 달성된다'고 답변했어요."

인상적인 답변이군요. 
박 대통령이 알았다면 박사님을 감옥에 넣은 걸 미안해했을 텐데…."이틀 뒤 미 대사관 인사가 청와대에서 박 대통령을 만나 그 얘기를 전했어요.또 이런 일도 있었어요.


지미 카터가 대통령 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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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 나와 미군 철수를 하겠다고 했어요. 조야에서 벌벌 떨었지요.

내가 조선일보에 '미국이 자기 군대를 데려간다는데 다 데려가라.

우리 사십대도 낡은 총을 닦아 조국을 지키겠다'고 썼어요.

 

그 칼럼을 읽은 박 대통령이 차지철 경호실장에게 '애국하는

교수 아니냐'고 했대요.

차지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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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서울시장에게 전화를 걸어 '김 교수 잘해드려라'고 했고, 서울시장이 내게 점심을 대접했어요. 참 묘한 시대였어요."

박정희에 대해 어떤 평가를 갖고 있습니까?
"유신체제가 잘못된 것이 많지만 다 인정하듯이 그이(박정희) 경제 건설을 했어요. 그때는 그게 급선무였으니까. 우리의 가장 문제는 덮어놓고 인물을 치는 겁니다. 이승만(李承晩)도 역사의 자리가 그것밖에 안 됩니까.

해방정국에서 국민 여론의 75%는 사회주의를 하자고 했어요. 바깥세상을 알았던 이승만이 시장경제에 바탕을 둔 자유민주주의를 한 겁니다. 그런 국내 여건에서 자유민주주의 정부를 세운 겁니다. 독재자라는 한 면만 보면 안 됩니다.역사적 판단은 공정해야지요."

박정희 시절 '내가 대통령이 된다면'이라고 글을 썼던 것처럼,
1991
년 그런 야망을 갖고 정치판에 들어갔지요?"내가 대통령이 될 만한 사람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어요.그때 정주영 회장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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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가 썩으니 나라가 어렵다.돈은 내가 벌어놓았으니 당()을 한번 해보자'며 의형제를 맺자는 문서를 갖고왔어요. 그러면서 '김 교수를 대통령 후보로 모시겠다'고 했어요. 내 입으로 한 게 아니라…."

솔직히 한판 해보고 싶은 마음이 왜 없었겠습니까?"

그때는 나만 한 대중 인기를 가진 사람이 없었어요.

물론 후보로 나왔다면 정치판을 흔들었겠지요."

대통령 후보 자리를 정주영 회장에게 양보했지요?
"총선에서 국민당(정주영이 만든 당) 30석 이상 이기고 나니 주위에서 정 회장을 부추겼어요. 'CNN이 조사했는데 회장님이 압도적으로 된다'는 식으로 말이죠. 어느 날 정 회장이 찾아와 '결혼해서 가정을 가져라. 내가 200억원을 대주겠다'고 하는 걸 '이 나이에 결혼 안 한다' 답했어요. 며칠 뒤 '김 교수는 젊으니 나중에 기회가 있다. 이번에는 내가 나간다'고 하는 거예요. 이게 뭡니까.그때 이런 내용을 공개했으면 나는 살지요."

정치판에 들어가면서 그전까지 쌓은 명망을 잃어버리게 됐지요?
"그 안에서 당하고 배운 게 많아요. 정치판에 안 들어갔으면 김수환 추기경처럼 대접을 받았을 텐데 하는데, 그건 모르는 소리예요. 정치에 안 들어가도 나는 그런 인물이 되기 어려워요."

존경받는 지성인이었는데, 
그 뒤로는 '이게 뭡니까?'라는 말이 패러디되는 등 TV 예능 프로의 인물처럼 됐어요."그건 개그맨이 그렇게 만든 거고. 정치의 실패자는 맞아요. 정치판에 4년 있었어요. 돌아와서는 내 일을 시작했어요. 계속 강연을 다녔고."

보수단체 집회의 강연자로도 자주 나서더군요.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스스로 감옥에 가든지 자살하라' 발언으로 시끄러웠지요?"나는 노무현 집권 시 한 번도 '대통령'이라고 한 적이 없어요.

이런 내 의견은 내 의견대로 있는 겁니다. 내게 공감하는 사람도 상당수 있어요. 그때 발언은 자살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대통령을 지낸 사람이 자살한 것은 정말 잘못된 거죠. 그런 그를 성인(聖人)처럼 떠받드는 풍조도 잘못됐고.최 선생은 그의 자살에 대해 어떤 입장입니까?"

안타까운 일입니다.

 

"그건 어중간한 말이잖아요.나는 일국의 대통령을 지낸 사람이 그럴 수 없다고 보죠."

이제 박사님 말을 경청하는 숫자가 과거보다 많이 줄었지요?.
"그 숫자는 안 세어봤으니…. 나 스스로 '실력보다 높이 평가받고 살아왔다'는 반성을 합니다.많은 사람 앞에서 강연하고 가르치고 글 쓰는 위치에 설 줄 알았다면 내가 좀 더 정직하게 살았으면 좀 더 떳떳할 텐데….이 자리에서 다 털어놓지는 못하지만, 내가 좀 더 진실하게 살 길이 있었어요."

우리 사회에도 이념과 정파를 떠나 '
저분의 말씀이면 일단 들어볼 만하다'는 원로가 있었으면 합니다.

"그런 사람이 존재할 수 없는 사회라는 걸 인식해야지요. 누가 어떻게 보고 생각하든, 나는 자유인으로 살아왔어요. 고집불통이고요. 원로로 대접받기를 원하지 않아요."

자신과 다른 생각과 입장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려는 노력도 필요하지 않겠습니까?"내가 평소 듣지 못한 한마디를 최 선생에게 들었습니다. 하지만 내 기력이 있는 동안 자유민주주의를 위한 주장을 멈추지 않을 겁니다. 불의(不義)를 보고 말 안 하면 용기가 없는 거지요"

대담을 시작한 지 2시간이 훨씬 넘었지만 그는 열정적으로 얘기했다.

기억력도 정확했다. 간혹 영시(英詩)까지 낭송했다. 그를 통해 100세 인생을 느끼게 됐다. 그처럼 사는 것이 현대 노인의 모델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순간 그가 한마디 덧붙였다."나는 죽으면 연세대병원에 시신을 기증하기로 해놓았습니다. 내 장례식을 절대 치르지 말도록 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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