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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 / 카파도키아(Cappadocia) - 신이 내린 절경

Margaret K 2014. 8. 14. 19:49

카파도키아(Cappadocia) - 신이 내린 절경

카파도키아는 터키 중앙의 고원지대를 말한다.

기원전 6세기께 페르시아가 지배하던 때에 생긴 작은 왕국의 이름이기도 하다. 말을 키우던 '말의 땅'이란 뜻을 갖고 있다. 카파도키아의 유명세는 경이로운 자연에서 나온다. 남근 모양의 바위기둥 계곡과 거대한 지하도시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이곳에는 자연의 경이와 인간의 종교적 신념이 한데 어우러져 빚은 걸작이 숨겨져 있다.

터키 중부 아나톨리아 고원에 자리한 카파도키아는 버섯 모양의 바위들이 고원을 가득 메우고 있다. 네브쉐히르 위르굽, 괴뢰메, 우치사르 등 남한의 4분의1 크기(2만5000㎢)의 땅이 우후죽순 격으로 솟은 버섯바위들로 채워져 있다.

이 기묘한 바위들은 화산과 비바람에 의해 형성됐다.

카파도키아는 300만년 전부터 화산활동이 활발하게 일어났다. 화산이 폭발하면서 만들어진 화산재가 고원지대에 두툼하게 쌓여 응회암층을 형성했다. 이 응회암층은 단단하지 못했다. 오랜 세월 지하수와 비바람에 침식되면서 무른 부위는 깎여나가고 단단한 부분만 살아남아 지금같은 버섯이나 죽순모양의 기암군이 형성됐다.

파샤바의 세 쌍둥이 버섯바위

그러나 인간은 자연이 연출한 신기한 형상에 한 가지 기이를 더 보탰다.

버섯 모양의 바위에 굴을 파고 들어가 살았던 것이다. 이곳의 버섯바위들은 마치 골다공증에 걸린 환자의 뼈처럼 구멍이 숭숭 뚫려 있다. 이 구멍들이 모두 인간이 거주했던 흔적이다. 이런 암굴집은 기원전부터 유래가 시작되어 1950년대까지도 사람들이 이 버섯 모양의 집에서 살았다. 카파도키아가 유네스코가 정한 세계의 자연과 문화 복합유산으로 지정된 것도 이 때문이다.

카파도키아 동굴유적지 벽화

카파도키아 사람들이 암굴을 파고 살게 된 데에는 여러 가지 요인이 있다.

자연적인 요건을 따져보면 바위가 무르다는 것이 큰 이유다. 이곳의 바위는 화산재가 쌓여 만든 응회암이라 쉽게 굴을 팔 수 가 있다. 또 황량한 고원지대라 집을 짓는 데 필요한 나무를 구할 수 없는 것도 한몫을 했다.

괴뢰메와 카파도키아는 본래 같은 지역이다.

터키인들은 이 일대를 통틀어 괴뢰메라 부르는데, 옛날 이곳에 카파도키아라는 왕국이 있었기 때문에 카파도키아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곳은 아나톨리아 중부의 황량한 화산 지대로 선사시대 때부터 화산 활동이 활발하여 화산재가 많이 퇴적되었다. 그리고 그 때 형성된 응회암층이 오랜 세월 비바람에 침식되면서 버섯이나 죽순 모양의 기암이 되었다.

카파도키아(Cappadocia)는 예전의 소아시아의 중앙에 위치한 지역 이름으로서 오늘날 터키의 카파도캬(Kapadokya)에 해당된다. 아나톨리아 고원 한가운데에 자리한 카파도키아는 실크 로드가 통과하는 길목으로 대상 행렬이 근대까지 이어졌다.

대규모 기암 지대로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모양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의 불가사의한 바위들이 많다. 적갈색, 흰색, 주황색의 지층이 겹겹이 쌓여 있는데 이것은 수억년 전에 일어난 화산 폭발로 화산재와 용암이 수백 미터 높이로 쌓이고 굳어져 응회암과 용암층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영화 스타워즈의 촬영지로 쓰였을 만큼 신비한 모습을 지니고 있는 이곳은 터키 기독교의 아픈 역사의 현장이다.

카파도키아는 신앙을 지키기 위해 아랍인들로부터 도망쳐 온 기독교도의 삶의 터전이었으나 6세기 후반 이슬람 왕조의 침공을 받게 되자 신자들은 동굴이나 바위에 구멍을 뚫어 지하도시를 건설해 끝까지 신앙을 지키며 살았다. 카파도키아에는 현재 100여개의 교회가 남아 있다.

이 석굴 교회는 지상에 있는 교회와 다를 바 없는 십자 형태의 구조를 하고 있거나 둥근 천장을 가진 곳이 많다. 교회의 프레스코화는 보존 상태가 좋을뿐더러 내부의 장식이 아름답다. 출처: 한국어 위키백과

카파도키아 (옛지명) [Cappadocia]

아나톨리아 중동부를 일컫는 고대 지명.

타우루스 산맥 북쪽의 고원에 있었던 카파도키아는 로마의 동맹국이자 속국이며 나중에는 로마의 속주로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했다.

카파도키아에 대한 가장 오래된 기록은 BC 6세기의 문헌이다. 그당시 카파도키아에서는 봉건세력이 페르시아 사트라프(총독)의 지배를 받았고, 조로아스터교가 널리 퍼져 있었다. 이 지역은 로마에 점령당할 때까지 페르시아의 성격을 유지했다.

알렉산드로스 대왕은 카파도키아를 우회했지만, 페르디카스 장군이 이끄는 부대를 이 지역으로 파견했다(BC 322). 카파도키아는 BC 190년에 로마가 마그네시아에서 승리를 거둘 때까지 셀레우코스 왕조의 세력권에 포함되어 있었다.

로마가 승리한 뒤 이 지역은 BC 1세기에 폰투스 왕국과 아르메니아의 공격을 받으면서도 로마에 충성을 바쳤다. 17년에 티베리우스가 이 지역을 병합할 때까지 로마의 속국으로 남아 있었던 카파도키아는 타우루스 산맥의 전략적 통로를 장악하고 있었기 때문에 11세기까지 동로마 제국의 보루로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출처: 브리태니커

신이 내린 절경-카파도키아

'카파도키아(Cappadocia, Kapadokya)'란페르시아어 '카트파두키아'에서 유래한 말로 '좋은 말들의 땅'이라는 뜻입니다.카파도키아는 지도에 나오는 도시명이 아니고,터키(Turkey)의 수도인 앙카라(Ankara)에서 남쪽으로 300Km 가량 떨어진 곳에 위치한아나톨리아(Anatolia) 고원의 남동부 일대를 말하는데,동쪽 카이세리(Kayseri)부터 서쪽의 악사라이(Aksaray), 북쪽의 하치벡타쉬(Hacibektas),그리고 남쪽의 니그데(Nigde) 까지 매우 광할한 구역입니다.

아나톨리아 고원은 해발고도 800∼1200m인 분지형 고원으로동쪽으로 갈수록 고도가 높아져서결국 아르메니아(Armenia)고원으로 이어지는 매우 광대한 지역입니다.

카파도키아를 한마디로 표현하자면신이 만든 예술의 경지라고 극찬할 정도로 아름다운 곳입니다.이곳은 터키 최고의 관광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마치 동화 속에서나 볼 수 있음직한 버섯 모양의 기암괴석들이드넓은 계곡지대에서 세계 어디에서도 보기 힘든 장관을 연출하고 있습니다.

이 곳에서는 터키의 다른 지역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북적거리는 시장이나 양파모양의 사원들을 찾아보기는 힘듭니다.대신 원뿔을 엎어놓은 듯한 용암층 바위 속에 마련되어 있는 이 곳 사람들의 터전들을 대할 때비로소 카파도키아의 참 매력을 느낄 수 있습니다.

수백만년전 활화산이었던 예르지예스산(3917m)에서 용암이 분출 되면서이곳의 지형이 형성 되었고,오랜 세월 동안 풍화, 침식 작용을 일으켜부드럽고 쉽게 깎이는 응회암지대로 바뀌게 되었습니다.이 지역에 살던 사람들은 이러한 바위를 깎고 동굴을 만들어 주거공간을 마련하여 생활하였습니다.

이러한 동굴 주거공간은 많은 잇점을 가지고 있었는데,우선 그리 많은 힘을 들이지 않아도쉽게 공간을 마련할 수 있었다는데 첫번째 잇점이 있었고,여름에는 더위로부터, 그리고 겨울에는 한파로부터충분한 보호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또한, 적들에게 쉽게 노출되지 않고입구가 높은 곳에 있어서 적들이 쉽게 침입하지 못하게 하였습니다.그래서 초기 기독교의 박해기에는종교의 탄압을 피해 많은 사람들이 숨어들었고하나의 도시를 형성하게 되었습니다.

그 중 네브세히르(Nevsehir),윌굽(Urgup),우치사르(Uchisar) 등의 지역에서는높은 언덕에 성을 중심으로 바위를 파내어 주거 단지를 만들었고,괴레메(Goreme)와젤베(Zelve) 지역에서는버섯바위 안을 파서 집을 만들어 생활하였습니다.그리고, 데린구유(Derinkuyu)에서는지하동굴을 연결하여 거대한 지하도시를 만들어 생활하였습니다.

카파도키아의 거주민들은 자신들의 거주지 이외에도교회와 지성소, 사원들도 만들어냈습니다.오늘날까지도 카파도키아에는 600개가 넘는 교회들이 보존되어 있고,이중 최고 오래된 것은 7세기경의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또한 이들 교회를 장식하고 있는 그림들은비잔틴 예술의 보고라해도 과언이 아닐만큼 중요한 유산입니다.

괴레메 (Goreme)

카파도키아 관광의 중심으로이 일대가 전부 자연이 만들어낸 경이로움의 극치라고 할 수 있습니다.이 마을에서 지내는 것만으로도 카파도키아를 다 본듯한 느낌이 들 정도라고 합니다.또한 카파도키아의 인근 다른 도시로의 이동이 매우 용이하여카파도키아 투어의 시발점이 되는데,우치사르 정도는 가뿐히 걸어 갈수 있을 정도라고 합니다.

괴레메의 전경

괴레메의 전경

괴레메의 전경

괴레메의 전경

괴레메의 전경

괴레메의 전경

괴레메의 전경

괴레메 야외 박물관 (Goreme Open-air Museum)

괴레메 벨리중 가장 인기있는 곳으로거주가들이 바위를 깍아 만든 교회에는11~12세기 경 의 프레스코화가 아직도 많이 남아 있고식당, 무덤 등 볼 것이 많은 곳입니다.

박물관을 둘러보거나프레스코화가 아름다운 수도원이나 박물관 주변을 걸으며하루를 보내는 건 환상적인 일이 될 것입니다.수도원들 중에는11세기 초에 지어진 6층 규모의 수도원(Maidens Monastery)을 시작으로성 바실 교회(St. Basil church),프레스코화가 인상적인 사과 교회(Apple church),성 바바라 교회(St. Barbara church),뱀 교회(Snake church),샌들교회(Sandle church) 등이 밀집되어 있습니다.

괴레메 야외박물관

괴레메 야외박물관 입구

괴레메의 동굴의 대표적 교회들

1. 샌들 교회

(Sandal Church)12세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며 계곡의 북쪽 끝에 있습니다.문 안쪽 바닥에 있는 발자국 때문에 'Sandal' Church 이름지어졌다고 합니다.내부에는 유다의 배신에 관한 그림 등성서에 기록되어 있는 사건들이 그려져 있습니다.

2. 암흑 교회(Dark Church)

프레스코화로 가득찬 이 교회는 계곡 깊숙한 곳에 위치해 있으며 11세기 수도원 형태로 지어져 있습니다.최근 복구 공사에 비용을 많이 들여서인지터키 자국민 들에게 조차도 비싼 입장료로 받고 있다고 합니다.그래서 아주 관심이 많은 사람을 제외하고는 거의 발길을 돌리는 곳입니다.그러나, 깊숙한 곳에 위치한 탓에 빛이 많이 들지 않아서'Dark Church'라고 이름지었으며,11세기 비잔틴 미술의 걸작품으로 인정받고 있는 벽화들이 매우 잘 보전되어 있습니다.네 명의 후원자들을 그린 그림이 있습니다.

암흑 교회내의 프레스코 벽화

3. 뱀 교회(Snake Church)

둥근 천장에 11세기 프레스코화가 남아있는데성 바실, 성 도마, 성 오노우프리우스, 성 데 오도르가 뱀과 싸우는 장면과콘스탄티누스 대제와 그의 어머니 헬레나의 그림이 있습니다.낮은 천정과 긴 예배당이 있고예수의 그림과 교회를 세운 사람의 초상이 있습니다.

4. 사과 교회(Apple Church)

12세기에 지어진 매우 중요한 교회중 하나로잘 그려진 프레스코화가 인상적인 곳입니다.규모가 작은 편으로 일대의 교회중 늦은 시기에 지어졌고십자가 형태로 지어졌습니다.바위속에 돔모양의 천정과 네 개의 기둥이 만들어져 있습니다.최후의 만찬, 십자가 처형, 천사 등을 그린 벽화의 일부가 남아있는데그림속의 가브리엘 천사가 사과를 들고 있다고 해서'Apple Church'라고 이름 지어졌다고 합니다.

괴레메 야외 박물관 - 엘마르 키리세(Elmali Kilise)

5. 버클 교회(Buckle church)

괴레메 박물관 가기 전 왼쪽편에 위치하고 있는 교회입니다.예수의 어린시절부터 그의 일생을 담은 프레스코화가 유명합니다.계단을 따라 지하로 내려가면성자들의 무덤이었던 홈과 기도를 드린 채플(chapel)이 있습니다.10세기 후반에 지어졌으며 이 일대 교회중 규모가 매우 큰 편에 속합니다.

윌굽 (Urgup)

고대 마을 윌굽도 멋진 자연환경을 가지고 있는 도시입니다.괴레메에서 7km 떨어진 곳에 있으며 지금은 사람이 살지 않지만바위 언덕의 집들이 예전의 생활상을 느끼게 해줍니다.마을 언덕 정상(Temenni Hilltop)에 올라가 내려다보면관광지로 변모해가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토가르 주변은 카페, 여행사, 펜션으로 둘러싸여 있어오래된 집들과 묘한 조화를 이룹니다.언덕을 오르다보면 꼬마 가이드들이 정상 아래의 동굴로 안내를 하는데약간의 팁이 필요합니다.어두운 동굴을 촛불 하나에 의존하고 가는데,옷과 머리는 지저분해지겠지만 묘한 탐험의 맛을 즐길 수 있습니다.그러한 동굴들이 끝도 없이 다른 마을 까지 연결된다니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윌굽의 특이한 버섯바위들

윌굽의 전경

윌굽의 주거 동굴들

네브세히르 (Nevsehir)(Nev = new, sehir = city)

새로운 도시라는 뜻의 네브세히르는 카파도키아 관광을 위한 주요 교통요지입니다.이곳 관광 안내소 앞에는지하도시나 윌굽, 아바노스(Avanos) 등 타 도시로 가는 미니버스가 즐비하게 늘어서 있고,쇼핑 센터와 저렴한 호텔들이 즐비합니다.언덕을 따라 올라가면 성(citadel)이 있는데 이곳에서 바라보는 전경이 매우 멋있습니다.

네브세히르 전경

네브세히르 동굴주거지역

네브세히르 동굴내무

젤베 (Zelve)

젤베 역시 괴레메 야외 박물관과 비슷한 모양새로초기 기독교인들이 로마와 아랍 정복자들로부터피신처로 이용하여 왔다고 합니다.

도자기 마을로 유명한 아바노스를 지나 약 3Km 떨어진 곳에 젤베가 있다. 카파도키아에서 가장 아름답고 다양한 수도원들을 볼 수 있으며, 특히 파샤바 지역이 백미로 꼽힌다. 이곳의 바위속 동굴 수도원들은 높이가 15-20M로 각기 다른 세 개의 꼭대기들이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이곳 교회와 수도원들은 대개 성상파괴주의가 성행하던 8-9 세기경에 지어졌으며, 동굴은 그 당시 은신처로 이용되었다. 다른 도시와 마찬가지로 이슬람과 크리스트교가 함께 살았던 흔적을 엿볼 수 있다. 회교사원의 첨탑과 상당히 유사한 구조물이 아직까지 보존이 잘 되어 있다.

종교 문제가 끝난 이후에는 터키인들이 그들의 정착을 위해 집으로 사용되었지만 이마저도 오랜 풍상을 견디지 못하고 침식이 되어 결국 1950년 이후로는 거주자가 없고 전체가 박물관으로 되어 있다.

젤베의 암굴들

젤베 야외 박물관 (Zelve Open-air Museum)

괴레메 야외 박물관에 이은 또 하나의 야외 박물관인데괴레메와는 사뭇 다른 맛을 느낄수 있습니다.벽화로 장식된 교회가 많지는 않지만인디아나 존스가 된 것 같은 그런 짜릿함을 느낄 수 있는 곳입니다.좁은 통로로 위험스럽게 연결되어 있는 동굴들을 자유스럽게 돌아 다닐 수 있고이 쪽 입구에서 다른 쪽편 길로 나오는 미로도 경험 할 수 있습니다.

계단의 경사가 심해 조금 위험하고어두운 미로를 들어갈 경우에는 플레시가 필요하기도 합니다.50여년 전인 1952년까지도이곳에서 생활하는 주민들이 있었으나붕괴 위험이 있어서 현재는 신젤베(Yeni Zelve)로 불리는 Aktepe로 이주하였고,계단등을 설치하여 관광객에게 개방하고 있습니다.

이곳에도 많은 교회가 있는데흥미로운 포도송이 벽화가 흥미로운 포도 교회 (Grape church)도 있고생선 그림이 인상적인 있는 생선 교회(fish church) 등이 있습니다.생선 그림은 기독교가 전파되기 전에는카파도키아 종교의 의식적인 상징이었으나기독교가 전파된 후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상징이 되었습니다.젤베는 처음으로 수도원이 생긴 곳이고9~13세기 기독교도들의 종교의 중심지였다고 합니다.

젤베 야외 박물관

파샤바(Pasabag, Valley of the Faity Chimneys)계곡

버섯 바위로 유명한 곳으로카파도키아 중에서도 작품들이 모여 있는 곳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그 중 한 바위에 세 개의 버섯이 있다하여 유명해진 세 쌍둥이 버섯바위 등카메라 셔터를 누르는 것 만으로도 아름 다운 작품 사진이 나올 것 같은 곳입니다.지금은 포도원이 있으며윗쪽만 파서 은친처 및 교회로 사용한 바위가 많은데침략자들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입구를 높은 곳에 만든 것이라고 합니다.

파샤바의 버섯 바위들

파샤바의 버섯바위들

파샤바의 세 쌍둥이 버섯바위

파샤바의 낙타바위

파샤바의 주거 동굴

챠브신 (Cavsin)

괴레메에서 아바노스로 가는 도로를 따라 3km 정도 가다보면아름다운 벌집 모양의 언덕이 오른쪽으로 보이는데 이곳이 챠브신입니다.언덕을 따라 올라가면 지금은 폐허로 변했지만 옛 교회터가 남아있습니다.안전시설이 잘 되어 있지 않아 생각보다 위험합니다.아래서 올려다 보는것과 올라가서 내려다 보는것은 천지 차이로한번쯤은 올라가 봄직합니다.이 언덕에서 산을 타고 하이킹 하는것이 인기코스인데,로즈벨리(Rose Vellay)까지 연결되어 있어선셋을 보기 위해 걸어가는 이가 많다고 합니다.

챠브신 전경

우치사르 (Uchisar)

마을의 꼭대기에 오래된 성터가 있는데이곳에서 내려다 보이는 계곡과 전원 풍경은 가히 환상적입니다.바위산을 깎아 성을 만들었다고 합니다.올라가는 입구는 내부기념품 판매소를 통과해서 올라가야합니다.지금은 조그만 마을로 성으로 올라가는 길에 많은 팬션이 있지만물이 넉넉하지 못하여 문 닫은 곳이 많다고 합니다.

괴레메에서 3km 떨어진 곳이라 계곡을 따라 우치사르로 갈수도 있고아니면 도로를 따라 괴레메 전망대를 통해 갈 수도 있다고 합니다.매 30분 마다 돌무쉬가 운행합니다.

우치사르 전경

우치사르의 성(castle) 꼭대기에서 바라본 전경

우흘라라 계곡(Ihlara Valley)

절벽의 높이가 100여 미터에 달하는 이 계곡에는 맑은 시냇물을 따라수많은 교회와 비둘기 집, 오래전 여행객들이 머물던 장소와한가로이 농사일을 보는 아저씨의 모습도 볼 수 있는 곳입니다.

전체 길이가 15km 이상이지만 일반적으로 관광객들은매표소가 있는 곳에서 2~3km 정도를 걷게 됩니다.시간적인 여유가 있는 사람은바위를 넘어 계곡을 따라 쭉 하이킹을 해도 좋다고 합니다.

매표소에서 계단을 따라 내려가면11세기 경의 벽화로 장식되어 있는 교회들을 볼 수 있습니다.우흘라라 야외박물관에서 방문할 수 있는 곳은Agacalti, Sumbullu, Kokar and Yilanli 등이 있고,계곡으로 들어가면Egritas, Purenliseki, Karagedik, Kirkdamalti, Bahattin Samanligi, Ala Kilise 등의역사적인 교회들이 관광객을 맞이하고 있습니다.외딴곳에 위치해 있어서비잔틴 시대 수도사들이 많이 머물던 곳이라고 합니다.

계곡에는 식사 할 만한 곳이 많지 않고 위생상태가 불결하므로투어를 이용하지 않는다면 점심과 간식거리는 직접 준비하는게 좋다고 합니다.

지하동굴 (Underground City)

침략자의 기습을 피해 터키 곳곳에서 도망온 기독교 신자들과 수도승이 모여지하 대피소로 이용해 온 지하동굴로,카파도키아 일대에 수십개의 동굴이 연결되어 있다고 합니다.현재는 몇 곳만 일반인에게 개방되고 있는데그 엄청난 미로에 오싹함을 느끼게 됩니다.지하 도시를 처음 건설한 사람들은 히타이트인이라고 여겨지는데후에 기독교인들이 동굴 위에 집을 짓고 피신처로 이용했다고 합니다.이곳을 돌아보면 규모의 거대함에 놀라게 되고 인간의 생존능력에 다시 한번 놀라게 됩니다.

지하동굴

데린구유 (Derinkuyu)(Derin = deep, Kuyu = wall)

깊은 우물이라는 뜻의 데린구유는 지하 동굴 중 가장 유명한 곳입니다.동굴은 녹색과 빨간색의 화살표를 따라 이동하게 되어있는데마치 개미 집을 연상시키듯이좁은 동굴사이로 거대한 규모의 대피시설이 있습니다.환기시설은 상당히 과학적으로 되어있고 수많은 저장소와 함정들이 있는데이를 보면 이곳의 거주민들이 얼마나 힘든 투쟁을 했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통로마다 둥근 바퀴 모양의 돌문이 있는데적의 침입시 통로를 가로막고 숨는데 사용되었다고 합니다.성인 남자 4~5명이 힘겹게 굴릴 수 있는 무게이고돌문 중앙에 있는 둥근 홀이 있어서창을 집어 넣어 적을 물리치는데 사용했으며,이로 인해 도망갈 수 있는 시간을 벌 수 있었다고 합니다.또한 여러 갈래의 통로를 만들어 동굴을 미로화 시켜어둠속에서 쉽게 길을 잃게 만들었습니다.기독교인들은 지상에서 집을 지어놓고 농사를 지으며 생활하였고적의 기습시에만 대피소로 활용했었다고 합니다.

현재 관광객에게 열려진 곳은 지하도시의 일부분이며위험한 곳은 통로를 막아 두었습니다.전등과 화살표로 길을 잃지 않도록 순서가 연결되어 있습니다.지하 1, 2층은 양이나 기타 가축이 기거하던 곳과 부엌이 있고,지하 8층 까지 각 층별로 거실, 포도주 공장, 교회, 미션 스쿨, 감옥, 무덤, 우물 등이 있는데그 깊이가 총 85m 나 된다고 합니다.

아직도 지하 전체의 규모를 다 알지 못하고 있는 상태라고 하니그 규모를 가히 짐작하고도 남습니다.지하 도시들을 연결하여 주는 터널은 길이가 9 km에 달하는 것도 있으며,성인 남자 두세명이 나란히 서서 걸을 수 있을 정도로 넓은 것도 있습니다.여름의 데린구유는 투어 그룹이 많아 매우 복잡하다고 합니다.

이 외에도 카이마크르(KaymaklI)와 마즈쾨이(MazIkoy) 등의 지하도시가 있는데규모는 데린구유에 비해 작지만 내부 고안이 흥미롭고 멋있습니다.

카이막리 (kaymaklI)

데린구유와 거의 비슷한 형태로 미로의 홀이 연결되어 있는데규모는 약간 작고 계단의 경사가 심하고 통로도 매우 좁습니다.이곳은 기원전 5세기부터 사람들이 이용해 왔던것으로 추정된다고 합니다.

현재 4층 까지만 공개되고 있는데내부 각 층마다의 역할이 분담되어 있습니다.기본 환기구를 중심으로 지름 약 1.5m 정도의 맷돌 모양의 바위 문으로 통로를 차단하여서로 격리될 수 있도록 만들어졌습니다.회의실, 교회를 중심으로 축사, 무덤, 창고, 부엌, 포도주 양조장까지몇 개월은 충분히 안정된 생활을 할 수 있게 꾸며져 있습니다.이곳도 관광객이 많은 곳이기 때문에 아침 일찍 움직이는게 좋다고 합니다.네브세힐에서 남쪽으로 20km 떨어져 있고 미니버스가 수시로 운행합니다.

개미집 같은 지하도시

카파도키아는 거대한 지하도시로도 주목받는다. 카파도키아 일대에는 여러개의 지하도시가 있다. 데린쿠유의 지하도시가 잘 알려져 있다. 1960년대 작은 구멍으로 사라진 닭을 찾으려다가 발견했다. 누가 살았는지,무슨 용도로 쓰였는지를 알 수 있는 기록은 전무하다. 고대 전쟁 때의 피란처,초기 기독교도들의 은신처 정도로 알려져 있다.

데린쿠유 지하도시는 20층 규모다. 관광객은 지하 55m인 8층까지만 내려갈 수 있다. 지하도시 내부는 개미집처럼 복잡하게 얽혀 있다. 통로는 좁고 낮다. 겨우 한 사람이 허리를 굽히고 지나다닐 수 있을 정도다. 층마다 방 부엌 창고 가축우리로 쓰였을 공간이 따로 있다. 예배당으로 보이는 십자 형태의 공간도 있다.

방과 방을 잇는 통로 끝에는 연자방아 모양의 커다란 돌이 세워져 있다. 적이 침입했을 때 더이상의 진입을 막기 위한 장치다. 돌을 옆으로 굴리면 통로가 꽉 막힌다. 방과 방 사이에는 작은 구멍이 뚫려 있다. 의사 소통을 위한 것이다. 고기를 굽는 연기는 흔적 없이 빠져나가고 신선한 공기는 빨아들이는 통풍구도 있다. 식수를 위해 우물도 파두었다. 긴급 시 다른 지하도시로 피신할 수 있는 비밀통로도 9㎞나 이어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