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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투는 그 뒤에 사랑이 있다는 뜻이다.
나의 질투 뒤에 숨어계신
사랑을 볼 줄 알아야 한다.
불안은 그 뒤에 평화가 있다는 뜻이다.
나의 불안 뒤에 숨어계신
평화를 볼 줄 알아야 한다.
보나수사님의 “명상이 있는 기도”말씀입니다. 2011.7.17.
예수님의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 가라지의 비유 (마태 13,24-30 참조)
가라지와 밀은 금방 구분된다.
논에 벼가 클 때 피가 있다. 벼와 피는 구분이 어렵고, 다 커야 구분이 된다.
농부들은 피와 벼를 정확하게, 크기 전에 구분한다.
햇빛이 비출 때, 빛의 역광, 아침 해가 뜰 때 일찍 피사리한다.
정오나 늦게 오후에는 구분하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피와 벼를 구분 못하는 농사꾼은 가짜이고 치명적이다.
여러분 마음 안에 일어나는 것 중에서, 이것은 피다. 이것은 벼다 구분하십니까?
몇 가지로 test하면,
가짜 농사꾼인지, 진짜 농사꾼인지 금방 드러난다.
마음 안에 일어나는 것은 많다. 그 중에 대표적인 것은
1. 질투(사랑과 관련), 시기(능력과 관련) : 피
2. 사랑, 평화 : 벼
사랑, 평화는 크게 길러야하고 질투 시기는 없어야 된다고 생각 하는데,
질투 시기는 선천적인데 뽑혀 나갑디까?
피와 벼를 구분 못하는 가짜 농사꾼!
진짜 농사꾼이 되는 방법은
질투는 따로 없고. 사랑과 질투는 한 통속임을.
사랑이 없으면 질투도 없음을 아는 것이다.
평화의 반대는 불안: 내가 현재 불안하다는 느낌은 평화를 기준으로 불안한 것이다.
질투가 있으면 사랑이 있다.
질투 안에서 사랑을 볼 줄 알고 불안 안에서 평화를 볼 줄 알 때,
질투나 불안이 문제가 되지 않으니 뽑을 필요가 없다.
그냥 놔두면 된다. 이것이 올바른 농사꾼이다.
Direct course로 - 직행으로 가야된다.
사랑을 배경으로 하는 않는 질투 없고 평화를 배경으로 하지 않는 불안 없음을
명확하게 깨달으면, 다른 사람을 탓하지 않는다.
명상: 올바른 농사꾼은 가라지와 밀, 벼와 피는 같이 가는 것을
명확하게 인식한다.
질투 안에서 사랑을 본 사람, 불안 안에서 평화를 본 사람은 지혜로운 눈을 뜬것이다.
-거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