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잣은 높은 산에 있다네

Margaret K 2007. 11. 10. 07:16


 잣은 높은 산에 있다네


조선 중종 때의 선비 정붕은 권문세가인 유자광과 외가 쪽으로 가까운 친척이었다. 하지만 대쪽같이 곧은 성품을 가진 정붕은 유자광이 워낙 간사하고 탐욕스러운 인물이라 멀리하고 싶었다. 하지만 친척 간에 가까이 살면서 모른 척할 수는 없는 노릇. 그래서 정붕은 간혹 하인을 시켜 유자광의 집에 문안 인사를 드렸는데, 꼭 하인의 팔을 삼 껍질로 만든 끈으로 꽁꽁 묶어 보냈다. 그렇게 한 덕분에 하인은 팔이 아파 유자광의 집에서 수다를 떨 겨를도 없이 곧장 집으로 돌아왔고, 집안에서 한 말이 밖으로 새어 나가는 것을 막을 수 있었다.

어느 날 그의 지혜로움을 소문으로 익히 들었던 중종은 정붕을 가까이 두려 했다. 하지만 정붕은 연거푸 높은 자리를 마다하고 마지못해 한가한 직위인 청송부사로 내려갔다. 정붕이 고을을 잘 다스리던 어느 날 평소 절친하게 지냈던 좌의정 성희안이 그에게 편지를 보냈다.

“청송의 토산물인 잣과 꿀을 보내 줄 수 있겠나?”

편지를 읽자마자 정붕은 이런 답장을 써 보냈다.

“잣은 높은 산꼭대기에 있고, 꿀은 백성의 집 벌통 속에 있는데 제가 무슨 재주로 그것을 구해 드리겠습니까?”

정붕의 편지를 읽은 성희안은 뒤늦게 염치없는 자신을 탓하며 잘못을 사죄하는 글을 보냈다. 하지만 정붕은 성희안을 편지를 받은 그날 부사 직무를 내놓고 곧장 시골로 내려가 더는 성희안이 그런 부탁을 할 수 없게 했다.

 (‘좋은 생각’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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