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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중에

Margaret K 2007. 6. 7. 08:17

 


나중에

파리 15구에 있는 아미랄 루생 거리에는 재미있는 식당이 있다.
돼지고기 요리를 전문으로 하는 집인데 요리사이며 주인인 사람이 괴짜이다. 전식과 후식까지 합쳐 한 끼의 값이 40프랑으로 다른 식당에 비해 아주 싼 것도 특이하다.


그러나 이보다 더 특이한 것은 식사 후 계산을 손님 스스로 하게 되어 있다는 점이다.


출구에 조그마한 돈통을 놓아두었으니 손님이 알아서 지불하고 가라고 한다. 40프랑을 내면 되는데 부족하거나 낼 돈이 전혀 없어도 나중에 지불하면 되니 상관없다고 말한다. 또 거스름돈도 돈통에서 스스로 챙겨가라고 한다.


이 괴짜 주인과 손님 사이에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없을 리 없다. 여러 번 돈 없이 밥을 먹었던 대학생이 2년만에 나타나 고맙다면서 500프랑을 놓고 갔다는 얘기도 그중의 하나이다.


100프랑짜리를 돈통에 집어 넣고 200프랑짜리를 집어넣은 듯 160프랑을 챙겨간 손님이 나중에 찾아와 “돈을 꿔줘서 고마웠다”고 털어놨다는 얘기도 있었다. 식당 주인은 “나는 그 사실을 알지도 못했다. 아마 돈이 급히 필요했던 모양”이라며 빙그레 웃었다.


식당 주인은 손님의 숫자와 손님이 낸 금액의 통계를 내보았더니 끼당 39.3프랑이 나왔다면, 그만하면 손님들의 양심이 괜찮은 게 아니냐면서 껄껄 웃었다. …


“배고픈 사람은 돈이 있든지 없든지 우선 먹어야 한다”고 주인은 말했다. 그는, “돈은 나중에 채울 수 있지만 고픈 배는 나중에 채울 수 없다”고 했다.


그의 말은 너무 옳았다. 북한 어린이들의 주린 배도 기다려주는 것이 아니어서 나중에 채워넣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다른 모든 것은 기다려줄 수 있다.

-홍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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