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복음 묵상

2022년 10월 8일 연중 제27주간 토요일

Margaret K 2022. 10. 8. 05:14

2022 10 8일 연중 제27주간 토요일 

 

당신을 낳아서 젖을 먹인 여인은 얼마나 행복합니까?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지키는 사람들이 오히려 행복하다.
(
루가 11,27-28)

 

 Blessed is the womb that carried you
and the breasts at which you nursed.

He replied, Rather, blessed are those
who hear the word of God and observe it.

 

 오늘의 복음 : http://info.catholic.or.kr/missa/default.asp

말씀의 초대

 바오로 사도는, 그리스도와 하나 되는 세례를 받은 여러분은 다 그리스도를 입었고, 예수님 안에서 하나라고 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낳아 젖을 먹인 여인보다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이들이 오히려 행복하다고 하신다(복음).

-조명연신부-

http://cafe.daum.net/bbadaking/GkzT

 

세탁소에 옷을 맡겨서 입을 바지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옷장을 뒤지기 시작했습니다. 예전에 입던 바지가 옷장에 많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전혀 맞지 않습니다. 숨 한 번 크게 내쉬면 터져서 커다란 사고가 날 것만 같았습니다. 맞지 않는 이 옷을 어떻게 해야 할까 싶었습니다. 산 지 10년도 넘은 옷들이라 누구를 줄 수 있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결국 동네에 있는 헌 옷 수거함 속에 들어가고 말았습니다.

10년 전에는 분명히 제게 꼭 맞는 옷이었습니다. 그런데 왜 이렇게 맞지 않게 되었을까요? 옷이 줄어든 것일까요? 당연히 아닙니다. 옷은 변함이 없었지만, 부끄럽게도 제가 너무 살찐 것입니다. 제가 변했기 때문입니다.

함께 사는 부부를 생각해보십시오. 서로 너무 잘 맞는다는 생각에 부부의 연을 맺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점점 맞지 않는다고 생각하다가, 어느 순간 화를 내며 상대가 맞지 않는 이유를 말하게 됩니다.

친한 친구가 있습니다. 서로 잘 맞으니 친한 친구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일로 친구에게 커다란 서운함을 느끼게 됩니다. 그러면 그 친구와 내가 도저히 맞지 않는다고 생각해서 다시는 만나지 않겠다고 결심합니다.

주님과도 그렇습니다. 처음 신앙을 갖게 되었을 때, 주님과 너무 잘 맞는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신앙생활 하는 것 자체가 큰 기쁨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 주님과 내가 잘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듭니다. 세상의 물질적인 것들과 더 잘 맞는다는 생각에, 주님을 멀리합니다. 주님이 변한 것일까요? 아닙니다. 내가 변한 것입니다.

어떤 여자가 큰소리로, “선생님을 배었던 모태와 선생님께 젖을 먹인 가슴은 행복합니다.”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이들이 오히려 행복하다.”라고 대답하시지요. 하느님을 낳고 키우는 행복보다,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면서 얻는 행복이 더 크다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사람은 철저하게 하느님 편에 있는 사람입니다. 물질적이고 세속적인 것들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고, 오로지 하느님과 맞추는 삶을 살기에 영원한 생명이 보장되는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게 됩니다. 가장 큰 행복이 아닐 수 없습니다.

늘 변함없이 우리와 함께하시는 주님이십니다. 주님한테서 멀어지는 것은 늘 우리의 몫이었습니다. 주님께 멀어지면서 나와 맞지 않다고 생각했던 그 모든 이유가 나 자신에게 있었던 것입니다.

분명히 주님과 우리는 딱 맞습니다. 너무 잘 맞아서 영원히 함께해야 할 분입니다. 주님의 품에서 벗어나서는 안 됩니다.
행복이란 우리 자신의 가정에서 자라며, 남의 집 정원에서 뽑아지는 것이 아니다(D.W.제럴드).

 가족인가? 동지인가?

-이기우신부-

 

유튜브 묵상 동영상 : https://www.youtube.com/watch?v=W5phz008RTA

 -조재형신부-

 

아메리카 드림(America Dream)'이란 말이 있습니다미국은 기회의 땅축복의 땅평등의 땅이라는 생각이 있었습니다예전에 한국에서도 많은 분들이 미국으로 이민을 왔습니다먹고 살기위해서 왔고공부하기 위해서 왔습니다지금도 중남미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아메리카 드림을 이루기 위해서 미국으로 향하고 있습니다미국에서 살기 위해서는 입국절차를 밟아야 합니다단순히 여행을 하려면 '이스타(ESTA)'를 신청하면 됩니다약간의 비용을 지불하면 3개월간 미국에서 지낼 수 있도록 허용해 주는 제도입니다좀 더 오래 있기 위해서는 비자(VISA)'를 받아야 합니다비자는 목적에 따라서 종류가 많습니다사제들은 종교비자를 받아서 미국에 오는 경우가 많습니다저는 신문사에 있기 때문에 언론이 비자를 받아서 왔습니다이스타나 비자는 정해진 날만큼 미국에 머물 수 있는 제도입니다.

 

미국에 더 오래 장기간 머물기 위해서는 영주권(PERMANENT RESIDENT)'을 신청하면 됩니다미국 정부는 서류심사를 거쳐서 영주권을 발급해 줍니다영주권을 받으면 미국에서 생활하는데 필요한 도움을 받을 수 있는데 그것을 권리라고 이야기합니다영주권자가 되면 정부가 후원하는 교육을 받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사회 보장메디케어 및 추가 보장 소득도 받을 수 있습니다영주권은 또한 비자보다 훨씬 적은 노동 제한을 제공합니다예를 들어미국에서 공부하는 학생이라면 영주권으로 캠퍼스 밖에서 일할 수 있습니다그러나 영주권을 받으면 미국에서 생활하는데 필요한 책임을 가지게 되는데 그것을 '의무'라고 이야기합니다영주권자로서 미국에서 살아갈 때 중요한 것은 속해있는 지역사회를 이해하고 그 지역사회의 모든 일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입니다미국의 문화역사정부에 대해서도 배우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신앙인으로 살기 위해서는 몇 가지 절차가 있습니다예비자 교리를 받고세례를 받아야 합니다교회에서 알려주는 신앙인의 의무와 권리를 지켜야 합니다이것을 교회법이라고 합니다그러나 교회법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겠다는 다짐과 결심입니다오늘 바오로 사도는 그래서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율법은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게 되도록그리스도께서 오실 때까지 우리의 감시자 노릇을 하였습니다그러나 믿음이 온 뒤로 우리는 더 이상 감시자 아래 있지 않습니다여러분은 모두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믿음으로 하느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기차는 연결된 객차가 많아도 늘 같은 방향으로 가기 마련입니다목적지가 같기 때문입니다피부가 다르고성별이 다르고문화가 다르고재능이 다르고자라온 환경이 다를지라도 우리는 신앙 안에서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그것은 우리가 가야할 목적지가 같기 때문입니다우리가 가야할 목적지는 하느님과 함께하는 영원한 생명입니다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이들이 오히려 행복하다.” 단순한 가족의 틀을 벗어버리는 말씀입니다우리는 세례를 받으면서 하느님의 뜻을 따르는 한 가족이 되었습니다성이 다르고직업도 다르고환경도 다르지만 우리를 모두 한 가족이 되게 하는 것은 하느님의 자녀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바오로 사도도 이와 같은 말을 하였습니다. “그리스도와 하나 되는 세례를 받은 여러분은 다 그리스도를 입었습니다그래서 유다인도 그리스인도 없고종도 자유인도 없으며남자도 여자도 없습니다여러분은 모두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하나입니다여러분이 그리스도께 속한다면여러분이야말로 아브라함의 후손이며약속에 따른 상속자입니다.” 이것이 초대 교회가 성장할 수 있었던 원동력입니다율법은 우리를 조직화하고나누고이방인들과 구별하게 합니다그러나 율법은 한계가 있습니다그러기에 바오로 사도는 믿음을 말하고 있습니다믿음은 우리 사이게 놓여있는 장애물들을 없앨 수 있기 때문입니다우리를 가로막는 지연학연계층이념의 벽을 허물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이들 중에 가장 으뜸인 분은 성모님입니다!

 -양승국신부-

 

예수님께서 군중들에게 명설교를 펼치고 계실 때의 일이었습니다. 다른 율법학자들이나 유다 지도자들의 고리타분하고 속 보이는 설교와는 완전 비교 대조되는 예수님의 명쾌하고 감동적인 설교에 사람들은 탄복합니다.

  

그중에 한 여인은 예수님의 말씀에 얼마나 매료되었던지 한참 설교를 하고 계시는 중인데도 불구하고 큰 소리로 이렇게 외칩니다. 

 

“선생님을 배었던 모태와 선생님께 젖을 먹인 가슴은 행복합니다.”(루카 복음 11장 27절) 

 

이 말은 예수님을 칭송하는 말이기도 하지만 이토록 훌륭하신 예수님을 낳고 기르신 성모님을 칭송하는 말입니다. 그런데 어머니 성모님을 향한 여인의 칭송에 대한 예수님의 반응은 꽤나 의외입니다.

  

저 같았으면 극도의 칭찬 앞에 그랬을 겁니다. “맞습니다. 지당한 말씀입니다. 저의 어머니 정말 지금 행복해하고 계실 것입니다. 저 낳고 키우시느라 고생도 많이 하셨습니다. 정말 제가 깊이 감사드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반응은 전혀 달랐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이들이 오히려 행복하다.”

  

성모님을 향해 여인이 보인 존경심과 예의를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탐탁하게 여기지 않는 표현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마저 들기도 합니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보니 오히려 반대였습니다. 예수님께서 강조하시는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이들” 가운데 가장 으뜸가는 분은 다름 아닌 성모님이셨습니다. 예수님 시대 당시 성모님보다 더 맑은 정신과 열린 마음으로 하느님의 말씀은 깊이 새겨듣고 철저하게 준수해나가던 사람들 없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성모님께서는 열 달 동안 ‘말씀’을 당신의 태중에 모시고 다녔고, 30년 세월 동안 그 ‘말씀’ 곁에서 생활하셨습니다. 말씀을 잘 듣는 것뿐만 아니라 말씀을 실천하는 데 있어서 성모님보다 더 전문가는 없었습니다.

  

이렇게 성모님께서는 군중들 가운에 한 여인의 칭송과 찬미에 가장 합당할 뿐만 아니라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이들이 행복하다.”는 예수님의 말씀에도 가장 잘 어울리는 분이셨습니다. 성모님을 향한 사랑과 존경과 공경은 덧붙인 예수님의 말씀으로 더 명확히 인증된 것입니다. 

 

보다 지속적이고 영원한 행복, 보다 가치 있는 진정한 행복을 어디에서 찾을 수 있겠는지 또다시 고민을 시작해봐야겠습니다.

  

때로 불나방처럼, 때로 철새처럼 여기저기 세상 속의 행복을 찾아 정신없이 돌아다니는 우리입니다. 그러나 사실 그 어디 가도 우리의 끝도 없는 갈증을 완벽히 해소해주는 그런 행복, 우리의 공허한 마음을 충만히 채워주는 그런 행복은 없더군요. 

 

다행히도 우리 그리스도 신자들은 조금만 손을 뻗으면 참 행복을 잡을 수 있습니다. 하느님 말씀의 보고인 성경입니다. 하느님 사랑의 표지인 성사입니다. 

 

우리의 눈이 좀 더 밝아지고, 우리의 마음이 좀 더 개방되어 그 값진 행복을 알아보고, 찾고, 만끽하는 그런 하루가 되면 좋겠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말씀을 지키는 이들이 오히려 행복하다.”>
 -이영근신부-


군중 속에서 한 여인이 목소리를 높여 말합니다.
“선생님을 배었던 모태와 선생님께 젖을 먹인 가슴은 행복합니다!”
(루카 11,27)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말씀을 지키는 이들이 오히려 행복하다.”
(루카 11,28)
 
여기서 여인의 행복선언과 예수님의 행복선언은 사뭇 다릅니다.
이처럼 모두 ‘행복’을 찾지만 각자가 찾는 행복이 서로 다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대체 어떤 행복이 참된 행복일까요?
 
여인은 아기를 간직했던 태중과 젖을 먹인 가슴이 행복하다고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지키는 이들’이 행복하다고 하십니다.
엘리사벳이 마리아에게 보낸 찬사를 떠올려봅니다.
“말씀이 꼭 이루어지리라 믿으셨으니 복되십니다.”
(루가 1,45)
 
아우구스티노 역시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마리아께서는 그리스도의 몸을 잉태한 것보다, 그리스도를 믿었던 점에 있어서 더욱 복됩니다."
 
그렇습니다.
성모님께서는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믿으셨습니다.
하여, 말씀을 잉태하시고 이루셨습니다.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자신을 허용한 것입니다.
아빠 아버지의 뜻에 자신을 승복하신 것입니다.
말씀을 믿고 지키고 실행한 것입니다.
 
이처럼 행복은 획득하는 것이 아니라 말씀을 믿고 지키면 발생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곧 행복은 우리가 지니고 있는 것이 아니고 우리에게서 발생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오로지 주님께 있을 뿐이요, 우리가 주님을 믿을 때 우리에게서 발생하는 일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믿음이 곧 행복입니다.
경청한 바를 믿는 일 말입니다.
 
우리는 ‘말씀을 경청하는 일’, 그것을 성모님에게서 배웁니다.
그것은 먼저 '믿는' 일입니다.
말씀보다 앞서 말씀하시는 분을 믿는 일입니다.
그래서 비록 그 말씀을 알아듣지 못한다하더라도 그분을 믿고 말씀을 받아들이는 일입니다.
 
베네딕도의 <규칙서>는 이렇게 시작됩니다.
“들어라. 아들아, ~마음의 귀를 기울이고.
~ 기꺼이 받아들여 보람 있게 채움으로써 ~ 순명의 노고로 되돌아가라”
 
이는 ‘마음의 귀로 듣는 것’을 말합니다.
사실 우리가 제대로 듣지 못하는 것은 들려주는 대로 듣지 않고 자기 방식으로 듣기 때문일 것입니다.
 
사실 듣는다는 것은 마음의 귀로 듣는 일, 곧 ‘말씀하시는 분의 마음에 주파수를 맞추는 일’입니다.
마음의 귀를 경작하여 사랑과 믿음으로 듣는 일입니다.
 
그것은 ‘먼저 사랑하고 믿는 일’입니다.
말씀보다 앞서 말씀하시는 분을 사랑하고 믿는 일입니다.
 
그 사랑과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일입니다.
그렇게 받아들여지면 그 믿음의 능력으로 말씀이 성취되고 실현될 것입니다.
 
그러니 오늘 우리가 진정 참된 행복을 바란다면, 주님의 말씀을 듣고 그 들은 바를 사랑과 믿음으로 실행해야 할 일입니다.
그러면 행복할 것입니다.
아멘.
 
<오늘의 말 · 샘 기도>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지키는 사람들이 오히려 행복하다.”
(루카 11,28)
 
주님!
어머니 마리아에게서 듣는 법을 배우게 하소서.
들은 말씀을 잉태하는 법을 배우게 하소서.
말씀이 꼭 이루어지리라는 믿음으로 잉태하게 하소서.
하여, 말씀을 품은 감실이 되게 하소서.
또한 품은 말씀을 지키는 법을 배우게 하소서.
말씀을 알아듣지 못할 때도 사랑으로 지키게 하소서.
또한 말씀을 경작하는 법을 배우게 하소서.
다름 아닌 당신의 희망을 이루어지도록 경작하게 하소서.
주님, 저를 경작하여 당신 말씀을 이루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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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0월 10일 연중 제27주간 토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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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칸 성인들 : https://www.roman-catholic-saints.com/franciscan-calendar.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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