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복음 묵상

2021년 5월 10일 부활 제6주간 월요일

Margaret K 2021. 5. 10. 07:10

2021 5 10일 부활 제6주간 월요일 

 

내가 아버지께 청하여 너희에게 보낼 협조자

곧 아버지께로부터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분이 나를 증언할 것이다.

내가 너희에게 이 말을 한 것은

너희의 믿음이 흔들리지 않도록 하려는 것이다.

(요한15,26─16,4ㄱ)

 

 "When the Advocate comes

whom I will send you from the Father,
the Spirit of truth

who proceeds from the Father,
he will testify to me.

so that you may not fall away.

 

오늘의 복음 : http://info.catholic.or.kr/missa/default.asp

오늘의 묵상

 -신우식신부-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진리의 영’을 보내 주실 것을 약속하십니다. ‘진리의 영’은 보호자, 변호자, 협력자, 인도자, 위로자라는 의미를 지닌 ‘파라클레토스’의 다른 표현입니다. 이 진리의 영은 어떠한 어려움과 고통 속에서도 우리를 도와주시는 ‘보호자’이시며, 억울함을 대변해 주시는 ‘변호자’로서 우리와 함께 계시는 분이십니다. 또한 그 어떤 어려움도 이겨 낼 수 있도록 필요한 순간에 나를 도와주시는 ‘협력자’이시고, 인생의 길에서 방황할 때 나침반이 되어 우리를 하느님께 인도하시는 ‘인도자’이십니다. 그리고 언제 어디서나 어려움과 고통 속에서 우리를 위로해 주시는 ‘위로자’이십니다.
믿음을 통하여 진리를 품으신 성모님께서는 우리에게 성령과 함께하는 삶의 모범을 보여 주십니다. 성모님께서는 주님의 말씀을 들으시고 기꺼이 “예.”라고 대답하시면서 당신의 신앙을 보여 주셨습니다. 성령을 통하여 기꺼이 인류의 구세주를 품으시고 하느님의 말씀을 곰곰이 되새기며 살아가신 성모님의 삶은 세례와 견진 성사를 통하여 성령을 받은 우리 신앙인들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알려 줍니다. 우리는 날마다 성경을 통하여 주님의 말씀을 귀 기울여 듣고, 우리의 마음을 주님께 열어 이웃에게 애덕을 실천하며, 우리의 삶이 그리스도인의 참된 기쁨의 삶이 되도록 날마다 기도해야 합니다. 성령께서는 우리가 하느님 안에서 살아가도록 이끄시고, 진리의 삶을 살아갈 수 있게 하시며, 성모님과 같은 참된 신앙인의 삶으로 우리를 이끌어 주실 것입니다.

-조명연신부-

http://cafe.daum.net/bbadaking/GkzT

 

 우리나라 65세 이상 노인의 1/10은 치매 환자라는 발표를 보았습니다. 그렇다면 어쩔 수 없는 것으로 받아들여야 할까요? 그러나 희망적인 발표도 있었습니다. 뇌를 활성화하면 그만큼 치매로 기억을 잃는 속도를 줄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새로운 언어나 악기를 배우거나, 해보지 않던 요리를 하는 것, 낯선 것에 뛰어들어 예측할 수 없는 상황에 부딪히는 것 등을 통해 우리의 마음이 유연해지고 기억력이 활발해진다고 합니다.


문제는 나이가 들어 몸과 마음이 약해지면서 이 모든 것을 할 수 없는 것으로 단정 짓습니다. 이런 단정으로 자신의 소중한 기억을 사라지게 만드는데 말이지요.

새로운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계속 시도하는 것이 자신의 건강을 위해 필요합니다. 할 수 없는 이유를 만들기보다 해야 할 당위성과 함께 할 수 있는 이유를 만들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이런 생각을 노인들만 가져야 할까요? 아닙니다. 왜냐하면 노인이 되면 저절로 새로운 일을 해야겠다는 마음이 생기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젊었을 때부터 그런 모습을 간직하고 있어야, 나이 들어서도 열정을 잃지 않고 힘차게 살아갈 수 있게 됩니다.

바로 지금, 열정을 가지고 새로운 일을 해 나가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분명히 지금보다 더 나은 ‘나’를 만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셨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기를 원하시지 않을까요? 그래서 주님께서는 우리의 보호자이신 진리의 영을 우리에게 보내십니다. 이 진리의 영이신 성령께서는 다가올 박해에서도 꿋꿋하게 이겨낼 힘을 주십니다. 실제로 많은 순교자는 진리의 영인 성령을 받아서 박해의 위협에서도 전혀 흔들리지 않고 주님을 증거했습니다.

이렇게 가장 좋은 선물을 받았음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어떤 최악의 순간처럼 보이는 순간에서도 세상에서 가장 힘센 분이 함께하고 계심에 용기를 잃지 말아야 합니다. 이런 모습이 바로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낼 수 있게 합니다. 더불어 지금보다 더 나은 ‘나’를 만들 수 있게 됩니다.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할 수 없는 이유를 만들면서 점점 쇠퇴하는 ‘나’를 만들어서는 안 됩니다. 더 많은 선물을 받은 ‘나’이고, 그래서 더 많은 것을 할 수 있는 ‘나’음을 기억하면서 어떤 순간에서도 열정을 잃지 않고 살아갈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사랑은 서로가 서로에게 중요한 존재라는 걸 말해는 주는 것이다(칼 라르손).

그와 내가 다른 점은(인도 속담 중)

만일 그가 일을 끝내지 않았다면 그를 게으르다 하고, 내가 일을 끝내지 않았다면 나는 너무 바쁘고 많은 일에 눌려 있기 때문이라 하고.

만일 그가 다른 사람에 관해서 말하면 수다쟁이라 하고, 내가 다른 사람에 관해서 이야기하면 건설적인 비판을 한다고 하고.

만일 그가 자기 관점을 주장하면 고집쟁이라 하고, 내가 그렇게 하면 개성이 뚜렷해서라고 하고.

만일 그가 나에게 말을 걸지 않으면 콧대가 높다고 하고, 내가 그렇게 하면 그 순간에 복잡한 다른 많은 생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라 하고.

만일 그가 나를 친절하게 대하면 나에게 무언가 얻기 위해서 그렇게 친절하다 하고, 내가 그를 친절하게 대하면 그것은 내 유쾌하고 좋은 성격의 한 부분이라 하고.

그와 내가 이렇게도 다르다니 얼마나 딱한가!

사람은 다른 것이 거의 없지요. 단지 내가 스스로 구분하면서 딱한 사람의 길을 가는 것은 아닐까요?
 

 끝까지 가려면 내가 나에게 놀라는 삶을 살아라

-전삼용신부-

 

오늘 복음은 ‘포도나무와 가지의 비유’ 결말 부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포도나무이신 그리스도께 붙어있어야 하는 이유는 그분을 통해 오시는 ‘성령’ 때문입니다. 성령의 열매, 즉 사랑을 실천하지 못하면 버려진 가지처럼 하느님과의 관계가 단절됩니다.

    

    그런데 성령의 열매로 살 때 일어나는 일은 ‘세상의 박해’입니다.
박해받는 사람도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박해와 미움을 받습니다. 빛과 어둠은 물과 기름처럼 합쳐질 수 없는 본성이기 때문입니다.
이때 용기를 잃지 않고 끝까지 갈 수 있는 이유도 역시 ‘성령’이십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내가 아버지에게서 너희에게로 보낼 보호자, 곧 아버지에게서 나오시는 진리의 영이 오시면, 그분께서 나를 증언하실 것이다. 그리고 너희도 처음부터 나와 함께 있었으므로 나를 증언할 것이다.”(요한 15,26-27)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렇게 말씀하시는 이유는 우리가 아무 이유 없이 미움을 받을 때 실망하고 절망하여 포기하지 않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내가 너희에게 이 말을 한 이유는 너희가 떨어져 나가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요한 16,1)라고 하십니다.

    

    저도 작년과 비교하면 세상적으로 봤을때 인기가 많이 생긴 것 같습니다.
코로나로 인해 유튜브를 시작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랬더니 인기 때문에 유튜브를 한다, 돈 때문에 한다, 명예욕이 너무 강하다, 업적 주의다, 근거 없는 이야기를 한다 등 많은 비판이 쏟아집니다. 이제 그만큼 했으면 됐으니 유튜브를 그만두라는 말까지 합니다. 물론 제가 교만해질까 걱정되어 그런 말씀을 하시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에 의해 저지당하기 전까지는 이 길을 멈출 수 없습니다. 그 이유는 성령을 통해 매일 저 자신이 놀라기 때문입니다.

 

    세상에서 끝까지 가는 사람들은 자신의 의지만으로 끝까지 갈 수 없습니다.
김연아 선수도 그 좋은 실력을 갖추고 있으면서도 세례를 받고 묵주반지를 끼며 주님께 의지하였던 이유는 어느 정도 이상에서는 신적인 힘에 의지하지 않고있음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자신이 아니라 하늘에서 내려오는 힘에 의지하는 사람들은 그 과정 안에서 자신이 놀라는 업적을 달성하기 때문에 그것이 즐거워 끝까지 갑니다.
세상 사람들의 의견보다 성령께서 자신 안에서 이뤄내시는 일에 더 놀라기 때문입니다.

    

    산채로 관속에 들어가 땅에 묻혀 일주일을 버틴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높이 24m인 기둥 꼭대기에서 35시간을 안전 장비 없이 서 있기도 했습니다. 또 런던에 가서는 투명상자에 들어가 44일 동안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물만 먹고 견디는 단식에 돌입했습니다. 끝나고 나니 체중이 25kg이나 줄어있었습니다.

    

    마술사 ‘데이비드 블레인’은 이처럼 의지력이 필요한 묘기를 선보여왔습니다. 고통스럽고 환각이 보이고 죽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도 블레인은 참고 또 참으며 목표를 이뤘습니다. 그는 왜 자기 자신에게 이런 혹독한 고통을 주면서 업적을 이뤄내려는 것일까요?

    

    블레인이 다음으로 도전했던 것은 물속에서 호흡을 참고 버티기였습니다. 세계기록을 세우기 위해 블레인은 1년 동안 훈련에 들어갔습니다. 물속에서 심장박동 수를 낮추는 법을 배웠습니다. 심신이 완전히 이완되어 심장박동수가 1분에 50회 이하로 떨어졌고 때로는 20회 밑으로도 내려갔습니다. 호흡법을 익혔고 물속에서 ‘명상’하며 움직이지 않는 법을 배웠습니다.

    

    그리하여 2008년 오프라 윈프리 쇼에 출연해 만인이 보는 앞에서 세계기록에 도전했습니다. 그때까지의 세계기록은 16분 32초였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수영장에서 연습했던 것과는 달리 방송국 촬영장은 방해요소가 많았습니다. 촬영을 위해 몸을 바로 세워야 했는데 몸이 고정되지 않아 계속 움직여야 했고 유리 밖으로는 청중이 보고 있었으며 스텝진이 부주의하고 심장박동 모니터를 가까이 두어 삑삑거리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긴장이 되자 심장박동 수가 줄지 않고 오히려 증가했습니다. 50회 이하로 내려가야 하는데 시작 2분 후 맥박수가 130까지 증가했습니다. 8분이 지나자 벌써 고통이 느껴졌습니다. 해낼 수 없을 것이라는 직감이 들었습니다.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10분이 지나자 사지에서 피가 돌지 않기 시작했습니다. 손가락이 덜덜 떨렸습니다. 13분이 지나자 팔에 감각이 없고 가슴에 통증이 왔습니다. 숨을 쉬고 싶은 충동에 블레인은 기절 직전이었습니다.

 

    15분 후, 심장박동이 거칠어졌습니다. 맥박수가 150에서 40으로 다시 100으로 오르내렸습니다. 심장 발작의 징조였습니다. 16분, 블레인의 몸이 살짝 떠올랐지만, 블레인은 기절할 것 같은 느낌 속에서도 몸을 수면 속으로 밀어 넣었습니다. 고통과 충동 속에서 사경을 헤매다 청중의 환호 소리가 들렸습니다. 세계기록을 깼다는 의미였습니다. 블레인은 시계를 한 번 쳐다본 후 그로부터 1분 후, 세계기록 17분 4초를 달성하고 물 밖으로 나왔습니다.    

    [출처: ‘온갖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는 법’, 유튜브 채널, ‘책그림’]

    

    데이비드 블레인은 그 지독한 고통과 해내지 못할 것이라는 자기 의심과 최악의 상황 속에서 어떻게 버티며 성공할 수 있었을까요?
    바로 ‘훈련’ 덕분이었습니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자기 절제 훈련을 해 왔습니다.
추운 날에 티셔츠 한 장만 걸친 후 몇 킬로미터씩 걸어 다녔고, 침대 대신에 딱딱한 바닥에서 잠을 잤고, 옷장 안에서 꼬박 이틀을 지내기도 했습니다. 11살 때 헤르만 헤세의 ‘싯다르타’를 읽고 나흘 동안 물만 마시며 단식도 해 보았습니다.

    

    그런데 이와 같은 고행을 왜 하는 것일까요? 업적을 위해서일까요? 아닙니다. 이들은 자신을 이기는 힘이 자신 안에 있다는 것에 매번 놀라워합니다. 자기만족이 아니면 타인에게서 오는 만족만으로는 이런 고행을 지속할 수 없습니다.

    

    아테네의 위대한 철학자 ‘디오게네스’는 배가 고프고 목이 마르기 전에는 음식을 먹지도, 물을 마시지도 않았습니다. 그리고 보리빵을 산해진미보다 더 맛있게 먹었고 시냇가에서 길러온 물을 와인보다 더 달게 들이켰습니다. 디오게네스는 인간이 욕구에 복종하여 욕망을 통제할 줄 모르는 탓에 마음의 평온을 찾지 못한다고 말했습니다. 데이비드 블레인은 말합니다.
“안락함을 부수는 공간이 제겐 항상 성장의 장소로 다가옵니다.”

    

    오프라 윈프리도 자신을 이긴 위대한 사람 중의 한 명입니다.
어렸을 때는 험한 인생을 살았지만, 책 읽기와 감사일기 등으로 이겨내며 최고의 여성이 되었습니다. 그녀가 이렇게 자신을 극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인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만약 그랬다면 사람들의 작은 비판이나 작은 실패에도 금방 포기하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녀를 버티게 만든 것은 자기를 이기는 신기함이었습니다. 그 신기함이 자기에게서 나오지 않고 절대적인 존재에게서 온다는 것을 의심할 수 없었습니다.

    

    그 신비로운 힘을 우리는 ‘성령’이라 부릅니다. 성령께서 우리 자신을 이기게 하고 우리 힘으로 이뤄낼 수 없는 일을 하시며 우리를 통해 신의 존재를 증명하게 하십니다.
    이 성령의 힘으로 매일 신비로운 체험을 하는 이들은 세상의 평판과 실패 등에 좌절하지 않습니다. 그들을 끝까지 가게 만드는 요인이 외부에 있지 않고 바로 자신 안에서 흘러넘치는 성령의 힘에 있기 때문입니다.
    끝까지 가려면 성령의 힘으로 내가 나를 십자가를 통해 극복하는 신비로운 체험을 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조재형신부-

 

나무는 햇빛을 받아 양분을 만듭니다보이지 않는 빛을 보이는 양분으로 만듭니다우리는 이것을 광합성(光合成)’이라고 합니다신앙인은 하느님의 빛을 받아서 삶을 변화시킵니다우리는 이것을 신앙생활이라고 합니다하느님의 빛은 어디에나 있지만 모든 사람이 신앙생활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하느님께서는 우리가 마음을 열고 하느님의 빛을 받아들일 때까지 기다리시기 때문입니다우리가 마음의 문을 열기만 하면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희망의 빛믿음의 빛사랑의 빛을 주십니다오늘 제1독서에서 티아티라 시 출신의 자색 옷감 장수 리디아는 마음을 열고 하느님의 빛을 받아들였습니다온 가족이 세례를 받고사도들을 집으로 모셨습니다신앙생활을 시작하였습니다.

 

우리의 몸에는 3가지 영양소가 있습니다. ‘탄수화물단백질지방입니다이 영양소가 있어야 우리는 활동할 수 있습니다우리의 마음에도 3가지 영양소가 있습니다첫째는 자유입니다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자유를 주셨습니다예수님께서도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주님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어 주시니 주님의 영이 내 위에 내리셨다주님께서 나를 보내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잡혀간 이들에게 해방을 선포하며 눈먼 이들을 다시 보게 하고 억압받는 이들을 해방시켜 내보내며 주님의 은혜로운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 신앙선조들은 신앙의 자유를 위해서 목숨을 바쳤습니다그러나 자유는 하느님의 사랑을 벗어나는 교만과 방종이 될 수도 있습니다.

 

두 번째는 만족감입니다하느님께서는 이 세상을 창조하신 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보시니 좋았다.” 삼라만상 우주를 만드신 하느님께서는 만족하셨습니다예수님께서도 십자가 위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다 이루었다.” 하느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세상을 구원하기 위해서 예수님께서는 최선을 다하셨고만족하셨습니다만족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소유함으로 만족해지는 경우가 있습니다원하는 집차를 가지면 만족할 수 있습니다존재함으로 만족해지는 경우가 있습니다성지순례나 여행은 체험과 경험을 가지는 것입니다선행과 봉사는 기억을 가지는 것입니다가치 있고소중한 일을 통해서 만족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힘들고 어려움이 있을지라도 존재의 삶을 통해서 만족을 느끼는 사람이 있습니다.

 

세 번째는 관계입니다우리는 관계의 아름다운 모습을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을 통해서 볼 수 있습니다하느님께서는 이 세상을 창조하셨습니다예수님께서는 우리가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이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야하는지 보여 주셨습니다우리는 그것을 복음이라고 합니다복음은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하느님 나라입니다복음은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표징입니다복음은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입니다성령은 은사를 통하여 우리의 신앙생활이 열매 맺도록 이끄십니다성령을 받은 제자들은 담대하게 복음을 전하였습니다성령을 받은 제자들은 병자를 치유하였습니다성령을 받은 제자들은 예언하였습니다성령을 받은 제자들은 고통 중에서도 희망을 보았습니다우리는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와 관계를 맺고 살아갑니다우리는 하늘과 땅 그리고 이웃과 관계를 맺고 살아갑니다가족이웃자연과 좋은 관계를 맺는 사람은 이 세상에서 하느님 나라를 사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협조자를 보내주시겠다고 하십니다이제 우리들의 말과 행동이 성령께서 보내 주신 협조자가 되면 좋겠습니다.

 오늘도 내일도 영원히, 우리를 안전하게 보호해줄 보호자 성령께서 늘 우리와 동행하십니다!

 -양승국신부-

 

큰 수술 받기 전에 반드시 거쳐야할 과정이 있습니다. 보호자의 동의와 서명입니다. 수술대에 오르는 환자 입장에서 누군가가 보호자가 옆에 있다는 것 얼마나 마음 든든한 일이겠습니까?

  

사고뭉치 아이들의 보호자로 사목할 때의 일들이 기억납니다. 제 마음은 언제나 어떻게든 이 아이들 잘 보호해줘야겠다는 사명감으로 불타올랐습니다. 아이들의 든든한 언덕이 되어주고, 어떻게든 아이들을 잘 양육하고, 아이들의 기를 살려주고, 끝까지 동행해줘야겠다는 책임감도 확고했습니다.

  

그러다보니 파출소나 경찰서 참 많이 들락거렸습니다. 죄송하다고, 앞으로는 잘 보살피겠노라고, 이번 한번만 선처해주시라고, 다짐도 하고 각서도 쓰고 그랬습니다. 따지고 보니 ‘보호자’란 말이 참 좋습니다. 생각만 해도 마음이 든든해집니다. 

 

혹시 지금 누구의 보호를 받고 있습니까? 아니면 누구를 보호해주고 있습니까? 인간 세상에서의 보호자, 노력한다고 하지만 아무래도 한계가 있습니다. 그가 나를 영원히 보호해줄 것 같지만 결코 영원하지 않습니다. 때로 그도 곤경에 처하기도 하고, 점점 노쇠해지고, 오히려 처지가 역전되어 내가 그를 보호해줘야 할 경우도 생깁니다. 

 

이런 면에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참으로 큰 행운아들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완벽하지 않고 흔들리는 보호자로 인한 근심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닌데, 우리에게는 세례를 통해 더할나위 없이 든든하고 완벽한 보호자를 얻게 됩니다. 

 

이 세상에서는 물론 또 다른 세상에서도, 오늘도 내일도 영원히, 우리를 안전하게 보호해줄 보호자 성령께서 늘 우리와 동행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분의 진리의 영이십니다. 혼돈과 무질서 속에 살아가는 우리, 늘 흔들리고 방황하는 우리에게 어느 길이 참된 길, 생명의 길, 영원한 길, 구원의 길인지를 명확히 알려주시는 영이십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성령의 존재와 역할에 대해서 언급하십니다. “내가 아버지에게서 너희에게 보낼 보호자, 곧 아버지에게서 나오는 진리의 영이 오시면, 그분께서 나를 증언하실 것이다.”(요한 복음 15장 26절) 

 

성령께서 우리 안에 힘차게 활동하실 때 기적 같은 변화를 직접 여러분의 눈으로 확인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지옥 같은 현실이 살아볼만한 현실로 변화될 것입니다. 미움 덩어리였던 이웃이 사랑 덩어리로 변화될 것입니다.

  

그런데 뜻밖의 선물인 성령의 도움은 아무런 노력 없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목숨 걸고 열심히 기도해야 주어집니다. 충만한 영성생활의 가장 큰 독소들인 ‘용서하지 못하는 마음’ ‘분노’ ‘질투심’ ‘완고함’ ‘물질만능주의’를 극복해야 가능합니다. 성경을 손에 들어야, 영적생활에 맛을 들여야 시작됩니다. 

 

주님의 성령께서 우리 내면을 가득 채울 때 우리는 이 세상 그 어디서도 얻지 못할 참 평화를 누릴 수 있게 됩니다. 이 세상 그 어떤 것에도 흔들리지 않는 삶, 바람이 일어도 바람에 넘어가지 않는 안정된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천국은 이 세상이 끝난 뒤에 시작되는 곳이 결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천국은 성령께서 주시는 깨달음의 결과인 잔잔한 평화와 은은한 기쁨, 진정한 화해와 용서, 일치와 나눔이 이루어지는 내 안에서 시작되는 곳입니다.

 너희(제자들)도 처음부터 나와 함께 있었으므로 나를 증언할 것이다

-이영근신부-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세상으로부터 고난과 박해가 오면제자들은 오히려 그리스도를 증언하게 될 것이라고 예고하십니다증언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그 증언의 확실성인데그 확실성의 근거는 직접 눈으로 목격한 사실을 증언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에서는 예수님을 증언하게 될 이들이 둘이 있습니다그들은 모두 예수님을 직접 본 이들입니다.

<첫 번째>로 증언하게 될 이는 바로 성령이십니다.

                 “내가 아버지에게서 너희에게 보낼 보호자,

                  곧 아버지에게서 나오는 진리의 영이 오시면, 그분께서 나를 증언할 것이다.”(요한 15,26)

 

그렇습니다예수님과 함께 있으면서 직적 목격한 성령께서 예수님을 증언할 것입니다그러니 그 증언은 확실한 것입니다.

<두 번째>로 증언하게 될 이는 제자들입니다.

                 “너희(제자들)도 처음부터 나와 함께 있었으므로 나를 증언할 것이다.”(요한 15,27)

 

그렇습니다그들은 처음부터 예수님과 함께 있으면서 예수님을 목격했습니다그러니 직접 목격한 그들의 증언은 확실한 것입니다이처럼예수님을 직접 목격한 이들이 당신을 증언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이 예고 말씀에 대한 이유를 ‘우리가 떨어져 나가지 않게 하려는 것’(요한 16,1)이요‘당신께서 하신 말씀을 기억하게 하려는 것’(요한 16,4)이라고 말씀하십니다그런데 박해에 대한 예수님의 이러한 예고는 우리를 당혹하게 합니다왜냐하면단지 박해를 예고만 할뿐박해를 피할 방도나 극복할 방법을 제시하지는 않으시기 때문입니다단지 “그러한 때가 오면 내가 한 말을 기억하라고 너희에게 이렇게 미리 말해 두는 것이다”(요한 16,4)라고만 말씀하십니다기껏 “기억하라”고만 할 뿐입니다참으로 무력해보이기까지 합니다.

                    그런데 왜 예수님께서는 그렇게 예고만 하시는 것일까요?

 

그것은 당신을 따르는 길에서, ‘고통과 박해는 없어져야 할 그 무엇이 아니라오히려 그것을 통해 당신이 구세주이심을 증거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그래서 사도 바오로는 말합니다.

              “그리스도를 위하는 특권을, 곧 그리스도를 믿을 뿐만 아니라

               그분을 위하여 고난까지 겪는 특권을 받았습니다.”(필립 1,29)

 

그러니 고통과 박해는 없어져야 할 그 무엇이 아니라우리 신앙생활의 일부일 뿐만 아니라오히려 그리스도를 증언해야 할 공간이고 배경이 됩니다그리스도께 보내신 성령께서 바로 그 고통과 박해를 통해서바로 그 속에서 우리의 증언을 동행할 것입니다아멘.

 

- 오늘말씀에서 샘 솟은 기도 -

때가 오면 내가 너희에게 한 말을 기억하게 하려는 것이다.”(요한 16,4)

주님!

미움과 박해가 닥치면 피할 방도를 찾기보다 당신께서 하신 말씀을 기억하게 하소서.

안정과 편안을 찾기보다 당신의 증인으로 부름 받았음을 기억하게 하소서.

피할 수 없는 고통이 불가항력으로 닥칠 때,

도저히 용서될 수 없을 것 같은 죄와 끝내 치유될 수 없을 것 같은 상처를 당할 때,

바로 그때가 당신을 증거 해야 할 때임을 알게 하소서!

바로 그것이 당신을 증언할 수 있는 선물임을 알게 하소서아멘.

 복음: 요한 15,26-16,4: 진리의 성령이 나를 증언할 것이다.

 -조욱현신부-

 

예수님께서는 ‘보호자 성령’에 대해 말씀하신다. 성령을 보호자라고 하는 것은 성령께서 우리를 위로하고 격려하며 나약한 우리를 도와주시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에게 기쁨으로 채워주시는 분이시다. 성령 안에 사는 사람들은 참 기쁨이 있다. 이 성령을 주님께서는 “아버지에게서 나오시는 진리의 영”(15,26)이라고 하신다. 성령은 아버지의 영이라고 아들은 말씀하신다. 바오로 사도는 성령이 아들의 영이기도 하다고 말한다. “하느님께서 당신 아드님의 영을 우리 마음 안에 보내주셨습니다. 그 영께서 ‘아빠! 아버지!’ 하고 외치고 계십니다.”(갈라 4,6) 우리는 아들 안에서 하느님을 아버지라 부른다. 그래서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을 모시고 있지 않으면, 그는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이 아닙니다.”(로마 8,9)라고 한다. 바로 사랑의 관계 안에서 이루어지는 친교는 바로 성령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렇게 성령은 아버지와 아들에게서 오시는 분으로, 아버지의 영이시며, 아들의 영이시다.

 

“그분께서 나를 증언하실 것이다.”(26절) 성령은 아버지에게서 나와 아들에 대해 증언하시며, 아버지에 대해서도 증언하신다. 성령께서는 당신이 말씀하신 것들이 사실임을 확인해 주실 것이라고 하신다. 우리도 또한 성령 안에서 하느님의 말씀과 뜻을 더 깊이 알아듣게 된다. 이제 중요한 것은 우리가 성령 안에 머무는 것이다. 성령에 잠기는 삶이 우리를 그분과 더욱 가까운 사이로 만들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갑자기 예기치 않은 환난이나 박해가 닥쳤을 때, 제자들의 믿음이 무너지지 않고, 이 어려움을 통해 더욱 굳세게 주님께 포도나무 가지처럼 결합하여 있으라고 하신다. “내가 너희에게 이 말을 한 이유는, 그들의 때가 오면 내가 너희에게 한 말을 기억하게 하려는 것이다”(4절). 이 말씀은 성령에 관한 약속과 그들이 고난받을 때, 주님께서 알려주실 증언에 관한 말씀이다. ‘그들의 때’라는 것은 예수님께서 떠나신 다음 제자들이 홀로 남아있게 되는 때이며, 그들이 적대자들로부터 박해를 받는 때를 말한다. 그러니 우리도 이런 일을 당할 때, “우리 믿음의 영도자이시며 완성자이신 예수님을 바라봅시다.”(히브 12,2)라는 말씀을 기억하며 우리의 성덕을 위한 것임을 기억하며 살아가야 한다.

 

이제 우리는 하느님 앞에 두려워할 줄 알아야 한다. 하느님 앞에 두려워하는 마음을 갖는다는 것은 바로 그분의 뜻을 제대로 따르지 못할까 봐 자신에 대해 긴장하고, 노력하는 삶이다. 인간을 통해서 나오는 박해를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다. 이 박해는 다른 모습으로 우리에게 닥칠 수 있다. 신앙생활을 하지 못하도록 교묘하게 나타나기도 한다. 이것은 유혹으로 나오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가 하느님 안에, 성령 안에 살게 되면 이러한 삶 속에서도 성령께서는 우리에게 길을 인도해주실 것이다. 성령께서는 이러한 상황 속에서도 지혜롭게 하느님의 뜻을 따라 살아가도록 용기와 힘을 주실 것이다. 성령 안에 잠기는 삶을 살도록 노력하여야 한다.

진리의 영이 오시면 나를 증언할 것이다."(요한 15, 26)

-한상우신부-

삼위일체는
하느님의
신비이다.

우리의
삶또한
하느님 안에서
이루어지는
삶의 신비이다.

신비는
영적 탄생으로
우리를 이끈다.

성령은
하느님이시다.

참되신
하느님의
인격이시다.

삶을
변화시키시는
하느님이시다.

우리를
위로하시고
우리를
격려하신다.

우리의
인격에
들어오셔서

인격적인
방법으로
우리와 관계를
맺으신다.

우리를
돌보시고
우리를
품어주신다.

성령께서는
무질서에서
질서로
이끄신다.

모순과 오류
거짓과 혼돈을
참된 진리로
치유하시는
분이시다.

진리의 영이신
성령께서는
예수님의 삶을
증언하여 주시며
더욱 풍요롭게
하신다.

진리의 영이신
성령께서는
은총과 믿음을
더하여 주신다.

자유롭게
하시고
우리의 삶을
새롭게 하시는
성령이시다.

우리를
온전하게
하시는
성령이시다.

보호자이신
성령께
생명의
오늘을
맡겨드린다.

 -오상선신부-

 

오늘 미사의 말씀은 성령께서 하시는 일들을 보여 주십니다.

"바오로가 하는 말에 귀 기울이도록 하느님께서 그의 마음을 열어 주셨다."(사도 16,14)
필리피로 간 바오로 일행은 성문 밖 강가에 모인 여인들에게 주님의 말씀을 전합니다. 성령께서 그들 가운데 있던 자색 옷감 장수 리디아의 마음을 열어 주셨고, 그녀는 바오로의 말에 귀를 기울이며 자청해 세례를 받게 됩니다.

진정한 들음은 주님께서 허락하셔야 가능합니다. 인간이 자기 감각을 활용한다 해도 말씀의 소리만이 아니라 그 의미까지 들리게 해 주시는 분은 주님이십니다.

경청은 순종으로 이어지는 덕이지요. 리디아는 말씀을 받아들이는 데 그치지 않고 한 걸음 더 나아가 사도들을 자기 집으로 초대합니다. 당시 값비싼 자색 옷감을 취급했다고 하니, 앞으로 사도들과 교회를 위해 든든한 후원자가 되었으리라 짐작됩니다.

"내가 아버지에게서 너희에게로 보낼 보호자, 곧 아버지에게서 나오시는 진리의 영이 오시면, 그분께서 나를 증언하실 것이다."(요한 15,26)
복음에서 예수님은 성령을 "보호자", "진리의 영"이라 부르십니다. 성령의 역할은 예수님을 증언하시고, 제자들을 담대히 제자직을 수행하도록 보호하시며, 모두가 진리를 깨닫도록 일깨워 주시는 일입니다. 

"기억하게 하려는 것"(요한 6,4)
성령께서 하시는 중요한 역할 중 하나는 바로 기억하게 해 주시는 것입니다. 스승이 떠난 뒤 제자들에게 닥쳐올 박해와 죽음의 위협 앞에서, 이미 스승께서 이 모두를 예견하셨고 준비시켜 주셨음을 기억하게 하시려는 겁니다. 제자들이 육적 생명과 비할 수 없는 영원한 생명에 희망을 두고 믿음에서 "떨어져 나가지 않게"(요한 16,2) 하시려는 예수님의 섬세한 배려시지요.

사랑하는 벗님! 이렇게 우리는 부활시기를 지내면서 한 걸음 한 걸음 성령의 오심을 향해 나아가고 있습니다. 무디고 게으른 우리가 주님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경청하고 순종할 수 있도록 성령께서 나약하고 겁쟁이인 우리의 마음을 열어 주시기를 빕니다.

아울러 삶의 질곡 속에서 고통과 시련에 맞닥뜨릴 때마다 주님께 받은 사랑을 기억하고 말씀에 의지해 다시 일어설 힘을 북돋아 주시기를 빕니다.

성령께 순종함으로써 우리는 진리의 영과 함께 한 목소리로 주님을 증언하고, 그분 사랑을 증언하는 사도가 되었습니다. 저를 포함해 우리 모두가 제1독서 속의 리디아처럼 적극적이고 역동적으로 사랑에 응답하고 먼저 손을 내미는 진정한 회심자로 살아가길 축원합니다.

 말씀 나누기 - 부활 6주 월요일-하느님을 위한 여지 (ofmkorea.org)

-김찬선신부-

 

 

지난 매일복음 묵상 글 보기 : 

2019년 5월 27일 부활 제6주간 월요일

 

오늘의 성인 : 

http://maria.catholic.or.kr/sa_ho/saint.asp

프란치스칸 성인들 : https://www.roman-catholic-saints.com/franciscan-calendar.html 

   

 

되새기고 싶은 글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