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복음 묵상

2020년 8월 10일 성 라우렌시오 부제 순교자 축일

Margaret K 2020. 8. 9. 05:38

2020년 8월 10일 성 라우렌시오 부제 순교자 축일 

 

 라우렌시오 성인은 스페인의 우에스카에서 태어났다. 로마 교회의 일곱 부제 중 수석 부제였던 라우렌시오의 임무는 교회의 재산을 관리하고 빈민들을 구호하는 일이었다. 로마의 발레리아누스 황제의 박해 때, 박해자들이 교회의 보물을 바치라고 하자 라우렌시오 부제는 교회의 재산을 남몰래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준 뒤 그들을 박해자들 앞에 데려갔다. “이들이 교회의 재산입니다.” 이에 분노한 박해자들은 라우렌시오 부제를 불살라 처형하였다. 258년 무렵이었다. 라우렌시오 부제는 가난한 이들이 바로 교회의 보물임을 일깨워 준 성인이다 

☆☆☆ 

정말 잘 들어두어라.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아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요한 12,24-26)

 

"Amen, amen, I say to you,
unless a grain of wheat falls to the ground and dies,
it remains just a grain of wheat;
but if it dies, it produces much fruit.

 

 오늘의 복음 : http://info.catholic.or.kr/missa/default.asp

 

오늘의 묵상

 -박기석신부-

 

라우렌시오 성인은 로마의 일곱 부제 가운데 한 사람으로, 258년 발레리아누스 황제가 그리스도교를 박해할 때 순교하였습니다. 성인의 순교에 대한 교회의 전승이 있습니다.

식스토 2세 교황이 미사를 드리다가 발각되어 사형에 처하여졌는데, 라우렌시오에게 “사흘 뒤 너도 나를 따르게 될 것이다.”라고 예언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교회의 재산을 관리하던 성인에게 로마 총독이 교회의 보물을 황제에게 바치라고 협박하자, 사흘간 말미를 달라고 한 뒤 모든 보물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 주었습니다.

실제로 사흘 뒤에 라우렌시오는 가난한 이들을 데리고 나타나 바로 이들이 교회의 보물이라고 말하였고, 이에 격분한 총독은 석쇠 위에 눕혀 구워 죽이는 형벌을 내렸습니다. 그런데 성인은 오히려 형리들에게 “자! 한쪽은 다 익었으니 나 좀 뒤집어 주시오.” 하였고, 마지막에는 법관을 향하여 “이제 다 익었으니 잡수시오.”라고 말하며 숨을 거두었다고 합니다.

오늘의 독서와 복음 모두 재물과 생명에 대한 너그러운 자세를 통하여 라우렌시오 성인의 삶을 분명하게 밝혀 줍니다. 예수님께서는 즐겨 사용하시던 씨앗의 비유로 뜻밖의 수확을 말씀하시며, 당신의 희생으로 우리가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됨을 강조하십니다.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바오로 사도도 가난한 성도들을 돕는 일의 요점을 말하며 씨앗과 수확의 비유를 듭니다. “적게 뿌리는 이는 적게 거두어들이고 많이 뿌리는 이는 많이 거두어들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땅에 떨어진 씨앗입니다. 땅에 떨어져 썩지 않으면 많은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자기 목숨을 사랑하기보다 미워해야 합니다. 여기에서 미워한다는 것은 거저 받은 것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움켜쥐고만 있던 손을 펴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오로 사도의 권고가 라우렌시오 성인의 삶뿐만 아니라 우리에게도 구체적으로 다가옵니다. “그가 가난한 이들에게 아낌없이 내주니, 그의 의로움이 영원히 존속하리라.”

 

-조명연신부-

http://cafe.daum.net/bbadaking/GkzT 

 

‘삽질하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삽으로 땅을 파거나 흙을 떠내는 것을 ‘삽질하다’라고 말하지만, 아마 다른 의미로 더 많이 사용하고 있다는 것을 아실 것입니다. 헛된 일을 한다는 의미로, 별 성과가 없이 삽으로 땅만 힘들게 팠다는 데서 유래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 의미인 헛된 일을 의미하는 삽질을 참 많이 하는 우리가 아닐까요? 저 역시 삽질을 참 많이 했습니다. 야구선수가 되겠다고 야구부에 들어갔던 적이 있고, 기타리스트가 되어 보겠다고 방학 내내 기타만 쳤던 기억이 있습니다. 컴퓨터 프로그래머, 바리스타 등등 새로운 것을 배우려고 노력했지만, 어느 것 하나 제대로 하지 못합니다. 새로운 것에 쏟아부은 돈과 노력을 생각하면 분명히 삽질했습니다. 그러나 정말로 삽질로 끝난 것일까요?

별 성과가 없는 것 같지만 분명히 재미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재미난 일을 하면서 재미난 인생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이 경험을 통해 이 분야에 대한 지식을 갖추게 된 것도 내 삶에 또 다른 의미가 되었습니다.

생각해보면 어떤 것도 의미 없는 삽질은 없습니다. 실패에도 큰 의미가 있는 것처럼 의미를 찾아가는 삶 안에서 나의 소중한 삶을 만들어가는 것입니다.

오늘 주님께서는 씨앗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으면 땅에서 새 생명으로 싹이 터, 본디 그것을 낳은 식물의 본성을 드러낸다는 비유 말씀을 전해주십니다. 실제로 당신의 몸으로 그 모습을 보여주셨습니다. 주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자 교회가 무수한 밀알로 싹이 터서 성체라는 생명의 빵으로 구워졌으며, 그 빵을 받아 모시는 우리 안에서 몇 곱으로 늘어났습니다.

죽음 자체로 모든 것이 끝난 것처럼 보이지만, 절대로 그렇지 않음을 교회의 역사를 보면 알 수가 있습니다. 죽음으로 이제까지의 모든 일이 의미 없음으로 바뀌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이어서 사람이 생명을 잃고 얻음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그리스어에서 ‘생명’이라는 낱말은 영혼을 가리킵니다. 자신의 영혼을 사랑하는 옳은 방법과 그른 방법이 있습니다. 우리가 죄 안에서 자기 영혼을 사랑한다면 그것은 그른 방법이고, 하느님의 모습 안에 있는 영혼을 사랑한다면 제대로 사랑하는 것이 됩니다. 결국, 자신의 영혼을 구하기 위해서 하느님 안에서 하느님 뜻에 맞게 살아가는 삶, 주님을 섬기고 주님을 따라가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주님을 따르는 섬김의 길은 우리를 영광의 길로 이끌어줍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삶이 ‘삽질’이 아니라, 눈에 보이는 세상의 영광을 드러내는 삶이 ‘삽질’이 됩니다. 그렇다면 어떤 영광을 드러내는 데 최선을 다해야 할까요?

하느님께서는 기쁘게 주는 이를 사랑하십니다(2코린 9,7).

나누는 일을 이 다음으로 미루지 마라. 이 다음은 기약할 수 없는 시간이다(법정스님).



나의 본성은 어떤가요?


고스톱을 치다 보면 상대방의 성격을 알 수 있다고 말하더군요. 그런데 고스톱보다 더 정확하게 사람을 제대로 보기 위해서는 함께 등산을 가보라고 하더군요. 등산을 통해 그 사람의 본질을 알 수 있다고 합니다.

등산의 어려움 속에서도 남들을 위해 얼마나 배려하는지를 보고, 또 중간에 포기하는지 끝까지 가는지를 보고, 어렵고 힘들수록 자신도 모르게 터져 나오는 부정적인 말을 얼마나 많이 하는지도 봐야 한다고 합니다.

결국, 위기에서 자기 본성이 나옵니다. 그래서 위기가 기회가 될 수 있다고 하나 봅니다. 내 본성을 통해 새로운 기회를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위기를 피하지 않고, 오히려 즐길 수 있어야 합니다. 나의 본성을 더욱더 성장시킬 수 있는 시간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고행과 자기 학대의 차이점

-전삼용신부-

 

신자 중에서 가끔은 용하다고 인정받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영성이 높아서 많은 사람이 찾아가, 기도도 청하고 예언도 듣고 치유와 가르침도 받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분들은 대부분 외모가 비슷합니다. 생김새가 비슷하다기보다는 풍기는 이미지가 비슷합니다. 일단 화장을 하지 않습니다. 예쁘게 보이려는 마음까지 주님께 봉헌했다는 것입니다. 머리는 흰머리와 검은 머리가 반반 섞여 있습니다. 전혀 꾸미지 않고 그냥 고무줄 하나로 묶고 다닙니다. 옷도 생활 한복과 같은 멋을 낼 필요 없는 수수한 것을 좋아합니다. 그리고 아주 오래 성당에 앉아 있거나 엄청난 시간을 기도와 성경 필사 등에 투자합니다. 그런데 저는 그분들이 가치 있는 고행을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학대를 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고행은 좋은 것일까요? 예수님은 40일 동안 광야에서 세속-육신-마귀와 싸우기 위해 단식하시며 고행하셨습니다. 그렇다면 고행은 좋은 것이고 꼭 필요한 것입니다. 고행이 없는 종교는 없습니다. 그런데 고행 자체가 목적이 되어버리면 그것은 자기 학대일 뿐입니다.

      인도에 70년 이상 음식도 먹지 않고 물도 마시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프라흘라드 자니’입니다. 그는 하늘의 기운을 마시며 산다고 말합니다. 그는 어린 시절 여신의 축복을 받아 신비한 능력을 갖추게 된 이후로 음식을 입에 대지 않고 살아왔다고 주장합니다. 여신 때문인지 그는 여성의 모습처럼 분장하고 다닙니다.

 

      그가 세계적으로 명성을 얻자 인도 국방연구개발기구(ORDO)는 2010년 15일 동안 병원에서 그를 관찰하였습니다. 사람이 15일 동안 물을 마시지 않고는 살 수 없습니다. 그런데 30명의 의료진이 카메라와 CCTV를 통해 그를 살펴본 결과 정말 그는 음식과 물을 먹고 마시지 않았습니다. 물론 화장실에도 간 적이 없습니다. 놀란 의료진은 15일 뒤, 자니의 장기와 뇌, 혈관 등을 검사했으나 그 수치가 모두 정상인의 안전 범위를 벗어나지 않았습니다. 뇌의 상태는 25세 젊은이의 것과 다를 바가 없다고 밝혔습니다.

 

      DRDO는 그를 더 연구하면 군인들이 전장에서 음식물 없이 견디거나 재난 상황에서 고립된 사람들이 오래 버틸 수 있도록 하는데 보탬이 되는 의학적 성과가 나올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습니다.

 

      이것이 가능한 일일까요? 가능하더라도 아무런 가치가 없습니다. 이런 수행은 그저 자기 학대에 불과합니다.

 

고매한 스승 밑에서 수행하던 제자가 스승에게 달려왔습니다.

“스승님, 드디어 제가 물 위를 걸어서 강을 건널 수 있게 됐습니다.”

그러자 스승이 말했습니다.

“애 많이 썼구나. 그런데 이 강을 건너는 뱃삯이 얼마더냐?”

“20루피입니다.”

스승이 말했습니다.

“너는 20년 동안 그 고생을 하고 20루피를 번 것이니라.”

이런 이야기도 있습니다. 거의 경지에 오른 제자 하나가 스승에게 물었습니다.

“스승님, 어떻게 하면 하늘을 날 수 있습니까?”

스승이 답했습니다.

“하늘을 나는 일은 새들에게나 맡겨 두세나.”

      왜 스승들은 이런 시도를 하는 제자들을 칭찬해주지 않을까요? 그런 일을 하려는 목적이 자기 영광을 위함이기 때문입니다.

 

저도 유학 가서 신학생 때 고행을 한답시고 밥도 안 먹고 잠도 안 잤습니다. 그러나 결국 음식을 먹을 때는 폭식을 할 때도 있었고, 잠은 수업시간에 잤습니다. 이런 모든 것들은 그저 고행 자체로 자신이 특별하다고 느끼려고 하는 자기 학대에 불과합니다.

      자기 학대는 자기만족을 위함입니다. 그러나 고행은 사랑을 위해 어쩔 수 없이 겪어야 하는 고생을 말합니다. 마치 내비게이션에 목적지를 찍으면 반드시 거쳐서 가야 하는 길이 있는데, 그 목적지가 사랑이라면 그 반드시 거쳐 가야 하는 길이 고행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자기를 죽이는 일은 고행입니다. 그러나 그 고행이 많은 열매를 맺기 위함이 아니면 자기 학대가 되는 것입니다. 이웃을 위해 오히려 얼굴을 예쁘게 꾸미고 머리도 예쁘게 단장하고 슬픈 일이 있더라도 웃는 모습을 보여주며 배가 불러도 필요하면 더 먹어주기 위해 당하는 고통이 바로 고행입니다. 어머니가 가족을 위해 맛있는 반찬을 만드는 것이 고행인 것입니다.

      한국의 방송국이 ‘프라흘라드 자니’를 찾아간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15일 단식 당시의 기록을 상세하게 살폈습니다. 그랬더니 샤워하러 들어가기 전에는 방광에 소변이 가득 차 있다가 샤워한 후에는 그 소변이 싹 빠져버린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는 샤워 물을 마시고 그때 소변을 보았던 것입니다. 훈련되면 음식 없이 40일 이상 사는 것은 어렵지는 않다고 합니다. 자니씨는 자신의 영광을 위해 고생한 자기 학대의 삶을 산 것뿐입니다.

      반면 오늘 축일을 지내는 성 라우렌시오 부제는 황제가 원하는 재물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주고 그 덕분으로 자신은 불로 달궈진 석쇠에 구워지는 고생을 하였으니 그것은 정말 고행입니다. 그것은 상을 받게 될 것입니다.

 

      기도하는 것도,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것도, 몸을 조금 괴롭히는 것도 그것이 이웃을 더 사랑하기 위한 열매의 목적이 아니면 상은커녕 평생을 자기에게 자기가 속은 삶을 살 수도 있습니다. 밀알은 썩어야 하지만 반드시 많은 열매를 맺기 위해 썩어야 합니다. 그 열매란 나의 고생으로 이웃이 더 행복해지는 것입니다.

 

-조재형신부-

 

신앙 안에서 죽음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이 생에서의 모든 것이 끝나고 단순히 흙으로 돌아가는 것은 아닙니다신앙인에게 죽음은 하나의 문을 통과하는 것과 같습니다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낸 사람이웃을 사랑한 사람주어진 사명에 충실했던 사람은 천국에서 빛나는 별이 될 것이라고 합니다우리는 그런 분들을 성인과 성녀로 공경하고 있습니다자신의 영광만을 위해서 산 사람이웃에게 상처를 준 사람회개하지 않았던 사람은 어둠의 세상에 머물 것이라고 합니다우리는 그런 사람들 또한 하느님의 자비하심으로 어둠에서 벗어날 수 있기를 전구하고 있습니다한 달 전입니다평생 군인으로 살았던 분이 하느님의 품으로 갔습니다최장수 시장이었던 분이 하느님의 품으로 갔습니다삶의 길이 언제나 영광과 행복이었던 사람은 없습니다때로 양심을 속이기도 했고때로 갈등과 번민을 겪기도 했습니다이 생에서의 공과 허물은 묻었으면 좋겠습니다예수님께서는 이 생에서 가장 뛰어났다는 사람도 하느님 나라에서는 가장 작은이보다 못하다고 하셨습니다우리들 또한 천상에서 빛나는 별이 될 수 있도록 주어진 하루에 충실했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교회는 성 라우렌시오 부제를 기억하고 있습니다로마의 발레리아누스 황제의 박해 때박해자들이 교회의 보물을 바치라고 하자 라우렌시오 부제는 교회의 재산을 남몰래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준 뒤 그들을 박해자들 앞에 데려갔습니다그리고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이들이 교회의 재산입니다.” 이에 분노한 박해자들은 라우렌시오 부제를 불살라 처형하였습니다라우렌시오 부제는 순교하였지만 교회는 성인으로 공경하고 있습니다그의 죽음이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냈기 때문입니다라우렌시오 부제에게 교회의 보물은 화려한 건물진귀한 그림황금이 아니었습니다가난한 사람굶주린 사람외로운 사람병든 사람이 교회의 보물이었습니다후배 신부님도 비슷한 일을 하였습니다코로나19로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는 교우들에게 1,000불씩 나누어 주었다고 합니다취지에 공감한 교우들 중에서 도움을 주신 분들이 많았다고 합니다지금 굶주리고지금 헐벗고지금 아픈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주님께 해 드린 것이라는 가르침을 실천하였습니다.

 

울지마 톤즈에 이어서 부활이 개봉하였습니다울지마 톤즈는 이태석 신부님의 삶을 기억하는 영화였습니다아프리카로 건너가서 복음을 전한 이야기입니다나병환자들의 발에 맞게 신발을 만들어 주었고꿈이 없는 아이들에게 음악을 통해서 희망을 전해 주었습니다신부님은 건강이 악화되어서 하느님의 품으로 가셨고톤즈의 아이들과 교우들은 신부님을 기억하며 고마워하였습니다부활은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서 썩었지만 많은 열매를 맺는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영상으로 전하고 있습니다신부님의 강론을 들었던 학생들신부님과 음악을 함께 했던 학생들신부님과 정이 들었던 학생들의 이야기입니다신부님과 함께 했던 학생 중에는 의사약사공무원이 많았습니다지금 의대에 다니는 학생도 40명이 넘는다고 합니다남수단의 교과서에도 이태석 신부님의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습니다비록 신부님은 48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지만 180여명의 제자들은 신부님의 삶을 이어가고 있습니다제자들 모두 이태석 신부님께서 보여주신 희생의 길사랑의 길나눔의 길을 따라가고 있었습니다이것이 부활이라고 영화는 말하고 있습니다.

 

오늘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씨 뿌리는 사람에게 씨앗과 먹을 양식을 마련해 주시는 분께서 여러분에게도 씨앗을 마련해 주실 뿐만 아니라 그것을 여러 곱절로 늘려 주시고또 여러분이 실천하는 의로움의 열매도 늘려 주실 것입니다.” 참된 부활의 삶은 가난한 이들과 함께 사는 것입니다병든 이들과 함께 사는 것입니다이방인들을 도와주는 것입니다겸손하게 살아가며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여 주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 사람들이야말로 진정한 우리 교회의 보물입니다!

 -양승국신부-

 

라우렌시오 부제는 초세기 교회 식스토 2세 교황님의 충실하고 정직한 비서이자 관리인이었습니다. 교회가 박해 당하고 있었던 아주 어려운 시기였지만 낙천적인 성격의 소유자였던 그는 기쁜 마음으로 교황님을 보필하는 일에 최선을 다했습니다. 

 

교회에 대한 박해가 점점 심해지던 어느날 교황 식스토 2세는 지하 무덤에서 신자들과 함께 미사를 봉헌하다가 현장에서 체포되고 말았습니다. 당시 로마 황제 발레리아누스는 지체 없이 교황님에게 사형선고를 내렸으며 교수형에 처했습니다.

  

교황의 오른팔 격이었던 라우렌시오를 폭군이 그만 둘리 만무했습니다. 난폭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교활하기로 유명했던 발레리아누스는 라우렌시오 부제를 살살 설득하려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황제는 교회의 재산들, 특히 금으로 된 성작, 성반들이 탐이 났던지 교회의 보물들을 모두 모아 자신에게 바치면 아무 일 없을 것이라고, 그리고 앞으로 이러저러하리라고 장밋빛 청사진을 보여주며 회유책을 제시했습니다. 

 

라우렌시오는 그렇게 하겠으니 조금만 기다리라고 답변합니다. 그 답변 이후 라우렌시오 부제는 엄청 바빠졌습니다. 당시 관리하고 있는 교회 재산, 보물, 귀중품, 기타 등등 가치 있는 모든 것들을 박박 긁어 가난한 사람들에게 모두 다 나누어주었습니다. 

 

부모 없이 굶기를 밥 먹듯이 하고 있던 고아들에게 뭉칫돈을 하나씩 쥐어줬습니다. 남편을 여의고 한숨만 쉬며 살아가던 여인들에게는 금으로 된 성작을 건네며 팔아서 생활비에 보태라고 말했습니다. 

 

그 소식을 전해들은 폭군이 가만히 있을 리 만무합니다. 길길이 뛰면서 라우렌시오 부제를 당장 끌고 오라고 명합니다. 

 

‘모아오라는 교회의 보물들은 다 어디 갔냐.’고 묻는 황제의 질문에 라우렌시오 부제는 천사 같은 미소를 지으며 웃었습니다. 그리고 주변에 둘러서 있는 가난한 사람들을 가리키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사람들이야말로 진정한 우리 교회의 보물입니다.” 

 

그 말에 황제는 완전히 뚜껑이 열렸습니다. 황제는 얼마나 화가 났던지 사형 도구로 빨갛게 달궈진 초대형 석쇠를 택합니다. 그리고 라우렌시오의 옷을 벗겨서 석쇠위로 올라가 누우라고 재촉합니다.

  

그 순간에도 우리 라우렌시오 부제는 유머감각을 잃지 않습니다. 활짝 웃으면서 제가 알아서 할테니 황제님께서는 조금만 인내심을 가져달려고 하면서 한 마리 굴비처럼 달궈진 석쇠위로 올라가 눕습니다.

  

라우렌시오는 석쇠위에서 누운 채 지글지글 익어가는 자신의 육체를 바라봐야만 하는 극한 상황 앞에서도 그리도 당당했다고 합니다. 오히려 긴장으로 벌벌 떨고 있는 사형 집행관을 향해 죽기 일보 직전에도 이런 농담을 건넸답니다.

  

“한쪽은 다 익은 것 같으니 이제 좀 뒤집어주실래요?”

  

라우렌시오 부제의 이 모습을 묵상하면서 후대에 아우구스티누스 성인께서는 이런 명언을 남기셨습니다. 

 

“라우렌시오의 비결은 영성체였습니다. 그 힘으로 그는 그토록 혹독한 고통도 웃으며 견뎌낼 수 있었습니다.”

  

우리도 이 한 세상 살아가면서 빨갛게 단 화덕 위에 올라가는 고통을 당하지는 않지만 다양한 고통과 십자가 속에서 살아갑니다. 갖은 역경과 시련이 매일 다가옵니다.

 

 

그 모든 인생의 부정적인 경험을 기쁜 마음으로 웃으면서 견뎌내고 극복할 수 있는 비결은 바로 영성체입니다. 미사입니다. 기도생활이며 영성생활입니다.

 

-조욱현신부-

 

복음요한 12,24-26: 누구든지 나를 섬기면 내 아버지께서 그를 높이실 것이다

로마의 일곱 부제 중의 한 분이신 성 라우렌시오(+258)는 교황 식스또 2세의 부제였다성인이 모시던 교황께서 사형선고를 받았을 때성인은 매우 슬퍼하였다이 모습을 본 교황은 라우렌시오 역시 삼일 안으로 당신의 뒤를 따를 것이라고 예언하였다라우렌시오는 사형을 당할 때 석쇠 위에서 불에 태워져 순교하셨다이 성인의 순교를 통하여 로마가 회개하는 계기가 되었다성인의 문장은 석쇠이다.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아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24고 복음에서 예수께서는 말씀하신다밀알이 땅에 떨어져 싹을 틔우고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자신이 없어져야 한다여기서는 죽는 것으로 표현했지만사실은 자신이 모두 없어지고 새로운 모습으로 변화되는 것을 의미한다죽는다는 표현은 지금까지의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모습을 모두 버린다는 의미이다.

 

그래서 새로운 모습으로 바뀌는 거기에서 풍성한 결실을 기대할 수 있는 것이다자신을 없이 하는 것은 새로운 모습의 내가 아닌가 하는 것이다그러기에 예수께서는 계속해서 자기 목숨을 사랑하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며 이 세상에서 자기 목숨을 미워하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에 이르도록 목숨을 간직할 것이다.”(25라고 하신다.

 

복음에서 죽는다는 표현이 많이 나오는데 그것은 우리의 육체적인 생명을 죽이는 의미가 아니라우리가 신앙인이기 때문에 대 사회적으로 소금과 누룩의 역할을 하기 위하여그리고 나의 이웃을 진정으로 하느님의 사랑으로 사랑하기 위하여 많은 경우에 나 자신을나의 의지를나의 고집을 죽이는 것을 말한다이러한 사도 바오로의 표현대로 묵은 나를하느님의 뜻에 역행하여 세상의 뜻을 따라가는 나를 죽이는 것이다그래서 어떤 면에서 그리스도인은 세상의 조류를 역행하는거슬러 사는 사람들이다.

 

그것이 어렵고 되지 않는 것은 내가 세상을 거슬러 살고 또 거기에 죽는 것을 견뎌낼 용기가 없기 때문이다그러나 항상 우리는 첫발을 내딛기를 망설이고과감히 내딛지를 못하기 때문에 항상 제자리에 서 있는 경우가 많다신앙인이든 다른 사회에서나 내가 여기에 멈추어 앞으로 나가지 않는다면 죄를 짓지 않을 수는 있겠으나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들에게 뒤처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어쩌면 공동체의 일치 대열에서 자신을 이탈시키는 결과를 낳게 된다.

 

그러기 때문에 예수님은 결론적으로 말씀하신다. “누구든지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라야 한다내가 있는 곳에 나를 섬기는 사람도 함께 있을 것이다누구든지 나를 섬기면 아버지께서 그를 존중해 주실 것이다.”(26라고 하신다나를 죽이는 삶은 예수님을 따르는 것이고 영광을 하느님 안에 있음을 체험하게 되는 것이다.

 

-오상선신부-

 

성 라우렌시오 부제 순교자를 성대히 기념하는 오늘, 미사의 말씀은 나눔과 일치를 이야기하십니다.

"하느님께서는 기쁘게 주는 이를 사랑하십니다."(2코린 9,7)

라우렌시오 성인은 가난한 이들을 교회의 보물이라 불렀습니다. 성인은 사회와 교회의 도움을 받는 가난한 이들이, 단지 혜택을 받는 수혜자에 그치지 않고 오히려 사회와 교회를 성화하는 존재임을 알고 있었지요. 가난한 이에게 기꺼이, 기쁘게 미소와 마음과 손을 여는 이는 하느님의 사랑을 받습니다. 하느님께서 이미 가난한 이들 안에 거처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언제나 모든 면에서 모든 것을 넉넉히 가져 온갖 선행을 넘치도록 할 수 있게 됩니다."(2코린 9,8)

사도 바오로는 하느님께서 은총으로 베풀어 주시는 모든 것은 결국 선행을 위한 것이라고 단호히 말합니다. 자신과 가족만 잘 살고 누리며 끝내는 허무한 소비재가 아니라 가난한 이들을 통해 하느님께 다시 되돌아갈, 길이 남을 열매가 되는 것이지요. 이 지혜를 일찌기 깨달은 이는 복됩니다. 그런데 이 귀한 깨달음은 아무에게나 주어지지 않습니다.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고"(요한 12,24)

밀알이 땅속에 묻혀 잘 썩으면 자기 자신의 형체는 사라지지만 다른 생명 여럿으로 변모됩니다. 하나의 생명이 여럿이 되는 셈이지요. 이 놀랍고 유쾌한 증식의 원리는, 그러나 한 생명의 죽음이 먼저 이루어지지 않고는 어렵습니다. 한 죽음이 여러 생명의 발화점이 되는 것입니다.

"자기 목숨을 미워하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에 이르도록 목숨을 간직할 것이다."(요한 12,25)

여기서 말하는 목숨은 본능적인 자기애와 이기심입니다. 나만, 내 가족만, 우리 편만 향하는 폐쇄적이고 편협한 차별적 욕망이지요. 이를 거스르는 것은 사실 본능을 거스르는 것이니 쉽지 않습니다. 하느님을 아는 지성과, 그분을 믿는 신앙과, 사랑이신 하느님을 닮은 사랑을 간직한 사람에게 가능한 축복이지요.

"내가 있는 곳에 나를 섬기는 사람도 함께 있을 것이다."(요한 12,26)

자기애와 이기심에서 죽을 수 있는 이에게는 엄청난 보상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바로 주님께서 계시는 곳에 그분과 함께할 특권이지요. 신앙인이라면 누구나 주님과 함께 머무르길 바라니까요.

"내가 있는 곳"
그런데 주님께서 계시는 곳은 가난한 이들 한가운데, 가난한 이들 안, 가난한 이들 곁입니다. 그러니 주님을 섬기는 사람은 동시에 가난한 이들을 섬기는 것입니다. 또 가난한 이들에게 베푸는 이는 바로 주님께 바치는 것이지요.

이 지혜를 깊이 깨달은 라우렌시오 성인은 죽음 앞에서도 굴하지 않습니다. 세상에서는 죽음을 당하지만 썩은 밀알이 되어 "의로움의 열매"(2코린 9,10)를 길이 맺었습니다.

"잘 되어라, 후하게 꾸어 주는 이!"(화답송)

시편 저자는 가난한 이에게 넉넉히 꾸어주는 이를 의인이라 부릅니다. 주님께 인정받는 의로움은 율법을 지킴으로써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얻어지지요. 이 세상에 가난하게 오셔서 가난한 이들 안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이는 나눔의 기회를 놓치지 않습니다. 이 나눔이 주님과의 영원한 일치로 가는 디딤돌이고 징검다리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벗님! 천재지변과 코로나19 감염병으로 우리나라 뿐 아니라 온 세상이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질병과 실직, 사랑하는 이와 삶의 터전을 잃고 아파하는 이웃이 망연히 하늘만 바라보며 울부짖고 있습니다. 이웃의 고통 앞에서 내 일이 아니라 다행이라고 가슴을 쓸어내리기엔 너무 미안하고 죄스럽기까지 합니다. 우리 모두가 이 세상을 이 지경까지 만든 공범이기 때문입니다.

너나할 것 없이 어려운 시대에 넉넉치 않을 줄 압니다만, 그저 주변을 한 번 둘러봐 주시고 도움이 필요한 이들에게는 활짝 편 손을, 위로가 필요한 이에게는 따스한 공감과 격려를, 영적 지지가 필요한 이에게는 아낌없이 기도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함께 연대하고 나누는 가운데 우리는 이미 예수님 안에 있습니다. 나눔으로 주님과 일치를 이룬 여러분 모두, 축하드립니다. 그리고 고맙습니다.

 

전 존재로서 사는 삶-김찬선신부-http://www.ofmkorea.org/ofmhomily/376509

 

지난 매일복음 묵상 글 보기 : 

2018년 8월 10일 금요일 성 라우렌시오 부제 순교자 축일

 

오늘의 성인 : http://maria.catholic.or.kr/sa_ho/saint.asp  

프란치스칸 성인들 : https://www.roman-catholic-saints.com/franciscan-calendar.html 

   

 

되새기고 싶은 글들